이름 Joanne Kathleen Rowling

닉네임 Jo

1966년 7월31일생 영국 치핑 소드베리의 시골태생(그럼..40세!)

액세터 대학 불문과 졸업 (불어를 전공했구나!)

해리 포터의 작가 조앤 캐슬린 롤링은

1966년 영국의 치핑 소드베리라는 작은 촌락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어린 시절에서 유별난 점이 있다면, 그건 바로 ‘몽상하는 기질’ 이었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우리가 ~이 되었다고 상상해 보자!”라는 말을

입에 담고 다닐 정도로 상상하는 놀이를 즐겨 했고,

자기가 만든 이야기를 손수 글로 적어서 여러 편의 동화를 쓰기도 했다.

액세터 대학 불문학과를 졸업한 조앤은 일반 비서직에 취직했으나,

항상 뭔가를 끄적거리며 공상하는 습관 때문에, 자신의 말처럼 “비서로는 아주 꽝”이었다.

결국 비서직에서 해고된 그녀는 궁여지책으로 다시 맨체스터에 있는 회사에 취직하는데,

바로 집과 맨체스터를 오가는 기차 안에서 ‘세기의 영감’이라

이름붙일 만한 영감이 떠오른 것이다.

그 후로 몇 달 동안 조앤은 여가가 생길 때마다,

한 마법사 소년과 그를 둘러싼 여러 가지 모험에 관한 온갖 아이디어를

닥치는 대로 적기 시작했다.

이리하여 친척집에서 초라하게 양육되다가 어느날 갑자기 자신이 마법사라는 사실을 알고

마법학교인 호그와트로 향하는 고아 소년 해리포터의 이미지가 구체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조앤이 머리를 싸매야 했던 것은, 바로 볼드모트라는 악인의 캐릭터였다.

그녀는 볼드모트가 보통 어린이 동화에 나오는 ‘나쁜 사람’ 정도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진짜 생생한 ‘악’을 소설 속에 구현하고 싶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조앤이 신경 썼던 것은,

이 책을 아동 동화로 이끌고 갈 것이냐,

아니면 성인이라도 얼마든지 읽을 수 있는 소설로 가느냐 하는 문제였다.

그녀는 오랜 망설임 끝에 후자의 길을 선택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 무렵 조앤은 포르투갈로 건너가 영어교사를 하고 있었고,

거기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한다. 그리고 딸 하나를 낳았지만,

그 결혼은 3년도 채 못 가 파경을 맞이하게 된다.

딸 하나와 가방 하나를 달랑 들고 다시 영국으로 돌아온 롤링은,

이제는 ‘조앤 롤링 스토리’에 빼놓을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도 유명해진,

그 빈곤한 시기를 겪게 된다.

작년한해동안 어린이와 어른들에게 가장 많이 읽힌 책은 해리포터의 시리즈이었다.

조앤.K.롤링이란 이름을 가진 불쌍한 엄마는 그녀옆에 잠든 그녀의 어린 딸을 데리고

시골 커피숍에서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을 써내려갔다.

마침내 <해리포터 시리즈> 첫번째 권인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을 완성한 롤링은,

출판을 하려면 에이전시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막연하게 듣고,

주소록을 뒤져서 에이전트 두 명에게 각각 원고를 보낸다.

8만 단어에 이르는 방대한 원고를 복사할 비용이 없어서

가까스로 구한 구식 타자기로 손수 두 번 타이핑했다는 에피소드는

이미 너무나도 잘 알려진 얘기.

그리고 드디어 크리스토퍼 리틀이라는 에이전트에게서 독점계약을 원한다는 답장이 오고,

에이전트의 노력으로 블룸스베리 출판사에서 겨우 2천 달러를 받고 계약을 맺은 것이

1996년.(내나이 2살때!)

1997년에 첫 권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이 나오자,

이 책에 대한 호의적인 평이 서서히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기 시작하면서,

몇 달이 채 되지 않아 전세계 출판업자들로부터 문의 전화가 쇄도하게 된다.

이제 어느 누구도 예측 못했던, 작가 자신도 꿈도 꾸지 못했던 ‘해리포터 열풍’이 지구촌을 뒤흔들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수중에 돈이 생기기 전에 지금 신은 신발이 맞지 않을 만큼

제시카가 커 버리면 어떻게 하나 걱정 안 해도 되는” 조앤 롤링은

빈곤했던 시절과 마찬가지로 니콜슨 카페에 나가 글을 쓴다.

지금 니콜슨은 세계적인 명소로 부상되어 관광객이 끊이지 않지만,

그래도 아직 한두 시간쯤은 차분히 앉아 글 쓰는 데 몰두할 수 있다고.

다음해 나온 [해리 포터와 비밀의 방(Harry Potter and the Chamber of Secrets)]도 대히트였다. 다음작인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Harry Potter and the Prisonet of Azkaban)역시 말할 것도 없다.

1,2,3,탄 모두 1년 넘게 뉴욕타임스지(지) 일반도서 베스트셀러 부문에서 수위를 유지하며 롱런하고 있다.

워너브라더스 영화사도 해리 포터 1,2,3탄의 영화화 판권을 사들였다.

4탄도 2000년 7월8일에 맞춰 전세계 어린이들과 어른들은 8일의 아침이 밝아오길 기다려 책을 사려는 줄이 마치 축제인 듯했다고 한다.

블룸스베리에서는 어른들이 버스-지하철 안에서 다른 어른들 눈을 의식하지 않고 마음껏 [애들 책]에 빠져들 수 있도록 알록달록한 표지를 떼고 점잖은 표지를 붙인 [성인판]까지 냈다.

"무명시절 나는 실업자에 이혼녀였지만,내 신세를 비관하지는 않았다.

해리 포터 이야기를 쓰고있노라면 마음이 저절로 명랑해져서 무일푼인 것도,

남편과 헤어진 것도 상관없었다.

내가 겪은 시련이 동화 줄거리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

해리 이야기는 내 어린 시절 상상의 세계에 깊숙히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고 밝히는 조지앤 롤링의 해리포터 이야기는 7권까지 시리즈로 아직도 어떻게 전개될지

전세계 애독자들을 숨죽이고 기다리게 하고 있기에 충분하며

조지롤링의 지금까지의 국제적 명성은 아직 7권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얼마나 더 유명해질지는 미지수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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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한 빈민가의 허름한 아파트. 쥐가 들끓고 난방조차 되지 않는 좁은 방안에서 한 이혼녀가 자신의 꿈을 종이에 옮기고 있었다. 멋지고 우아한 그런 꿈이 아니었다. 어린시절부터 마음속에 품고 있던 재미있는 동화를 조금씩 발전시켜나가기 시작했다. 배고파서 울다가 지친 어린 딸에게는 참으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못난 부모 만나서, 이 고생을 하다니. 그녀의 원고지는 눈물로 얼룩졌지만 그 고통만큼 쓰고 있던 소설은 완벽해지고 있었다.

가난의 그늘을 물리치고 이 이혼녀가 쓴 소설이 ‘해리 포터’이다. 물론 그 무일푼의 이혼녀가 현재는 억만장자가 된 조앤 캐슬린 롤링이다. 200개국에서 55개 언어로 출판돼 2억 부가 팔린 해리포터 이야기를 만들어낸 영국 작가. 그녀는 지난해 출판과 영화 흥행에 힘입어 4,800만 파운드인 약 930억 원을 벌어들였다고 한다.

이 액수가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수입보다 무려 6배나 많은 것이라고 하니 그녀가 얼마나 큰 부자가 되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녀의 수입만이 우리를 놀라게 하지는 않는다. ‘해리 포터’의 새로운 시리즈가 출판되는 날이면 미국 전역의 서점들이 한바탕 전쟁을 치른다. 그것은 바로 밤 12시에 판매하는 새로운 ‘해리 포터’를 만나기 위해서 줄을 서 있는 ‘해리 포터’ 마니아에 책을 팔기 위해서이다. 조앤 롤링의 명작은 그렇게 이 세대의 청소년, 아니 영혼이 맑아 상상을 즐기는 수많은 독자들에게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어린 딸의 우유 살 돈조차 없어 맹물을 먹어야 했던 가난뱅이 이혼녀 조앤. 일용할 양식을 걱정해야 할 그녀가 전 세계를 열광 속으로 몰아넣은 하는 작품을 만든 것을 단순히 행운으로 돌릴 수는 없을 것 같다. 조앤은 원래 상상력이 풍부한 소녀였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우리가... 무엇 무엇이 되었다고 상상해 보자!” 라는 말을 입에 담고 다녔다. 그만큼 상상 속의 세계를 동경했고 자기가 만든 이야기를 직접 글로 적어서 여러 편의 동화를 쓰기도 했다. 상상하는 습관은 성인이 되어서도 변하지 않았다. 항상 뭔가를 끄적거리며 혼자 중얼거리는 그녀를 보고 사람들은 이상하게 생각했다.

잘생긴 포르투갈 남자를 만나 결혼을 했지만 결혼생활이 원만치 못했다. 외모와는 달리 무능력하고 폭력까지 휘두르는 남편에게 실망하여 1년 만에 이혼을 하게 되었다. 4개월 된 딸을 데리고 고국으로 돌아온 그녀는 무일푼에다가 직업도 없는 이혼녀 신세였다. 아이 때문에 직장을 잡기도 쉽지 않았고 게다가 없는 돈에 보모를 쓸 처지도 되지 못했다. 정부가 지원하는 최저 생계비 69파운드, 약 13만으로 매달 끼니만 이어가는 것도 다행스럽게 생각할 일이었다. 눈물나도록 어려운 상황에서 그녀를 지켜준 것은 무엇이었을까?

꿈. 그것은 그녀의 꿈이었다. 상상속의 꿈에 대한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꿈은 가난 속에서도 그녀를 평화롭게 지켜주었고 그 가난에서 벗어나게 만들어 주었다.

꿈은 불확실성에 근거하고 비전은 다가올 현실이다. 그래서 어린이에게는 꿈이라고 표현이 어울리며 성인에게는 비전이 더 적절해 보인다. 또 꿈은 개인에게 해당되며 비전은 조직의 방향성을 나타낸다는 얘기도 있다.

꿈이든 비전이든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중요한 것은 살아가는 동안 끊임없이 희망을 만들어주는 그런 꿈이고 비전이면 되는 것이다.
지금 이 시간 자신이 무기력하다고 느낀다면 꿈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해 보라.
5년 후, 10년 후, 20년 후 자신의 모습이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끔찍하지 않은가? 꿈은 불안과 불편 속에서 당신을 지켜줄 행복의 열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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