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젤의 생각 미술관] "이건 사진인가요? 그림인가요?"
구분되지 않고 섞여 있는 '가상 세계'와 '현실 세계'

박준호의 ‘낙서나, 나낙서’, 디지털 프린트, 42×59 cm, 2005.

어린이 여러분을 ‘생각미술관’으로 초대합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미술관은 우리가 두 발로 직접 찾아가야 하지만, 이 생각미술관은 여러분 곁으로 성큼 찾아오는 친절하고 고마운 미술관입니다. 매주 금요일 우리는 생각미술관에서 다양한 미술 작품을 신나게 구경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관람을 하다 보면 생각이 새로워지고 깊어지고 다양해진답니다.

생각미술관을 안내해 줄 새 친구를 소개합니다. 성은 이씨이고 이름은 젤. 이젤입니다. 별명은 젤리지요. 젤리처럼 말랑말랑한 아이디어가 풍부하기도 하지만, 가끔은 엉뚱해서 어디로 통통 튀어나갈지 모르는 귀여운 친구랍니다. 이젤은 여러분을 만나기 전까지 화실에서 그림을 떠받치는 일을 해 왔답니다.

그러다 생각미술관 안내를 맡게 된 데는 나름대로 사연이 있지요. 차차 알게 될 겁니다. 참, 이젤의 비밀은 두 가지입니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그리고 몇 살인지 아무도 모른답니다. 다만 고향이 참나무 숲이라지요! 하여간 궁금한 것은 차차 알아보기로 하고, 슬슬 이젤을 따라 나서 볼까요?

●생각미술관 500 m →

이젤은 표지판을 보자 힘이 불끈 솟았다. 아침부터 미술관을 찾아 콩콩거리느라 몹시 지쳐 있었는데 드디어 찾게 되다니! 이젤은 이마에 송글송글 난 땀을 쓱 손으로 닦아 내고 앞으로 나아갔다.

오종종한 주택가가 끝나자 길이 좁아지더니 작은 숲이 나타났다. 이젤은 숲으로 난 오솔길로 접어들자 콧노래를 불렀다.

‘아, 이 냄새 얼마만이냐!’

이젤은 세모 코를 벌름거리며 마음껏 맑은 공기를 마셨다. 날씨는 아직 쌀쌀했지만 소나무 숲에서 나는 상큼한 냄새는 코를 뻥 뚫어 주었다.

잎을 떨어뜨린 채 맨몸으로 늘어서 있는 참나무 숲에 이르자 이젤은 동그란 눈을 연신 깜박거렸다. 고향 생각을 하자 왈칵 눈물이 날 뻔 했던 것이다.

막다른 길에 이상한 건물 하나가 나타났다. 거대한 레고 조각 덩어리 같이 울긋불긋했다. 칸막이만 없다면 해체해 놓은 정글짐 같기도 하였다.

이젤은 가까이 다가서서 천천히 주변을 살펴보았다. 노란색 나무 대문에 작은 메모지가 붙어 있었다.

●미술관 문은 항상 열려 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넓은 홀이 나타났다. 매표소도 없고 안내원도 없었다. 커다란 모니터에 개미굴처럼 복잡한 약도가 하나 그려져 있을 뿐이었다. 그림으로 표시되었기 때문에 한눈에 알아보기 쉬웠다.

첫 번째 방으로 들어갔다. 사진인지 그림인지 모를 작품이 한 점 걸려 있었다. 안경 낀 남자가 붕어처럼 담배를 뻐끔거리며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고 있었다. 책장에는 DVD가 가득 했고, 그 옆에는 만화책과 노트들이 가지런히 꽂혀 있었다. 작은 물건들은 정리함에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이젤이 방 안을 둘러보고 있을 때였다.

“그만 좀 하지?”

이젤은 소스라치게 놀라 소리 나는 쪽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컴퓨터 화면에서 돼지 귀에 소뿔을 단 괴물 하나가 머리를 디밀었다. 날카로운 손톱은 빨간색이었다.

“아, 좀 냅둬 봐…….”

남자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톡톡 컴퓨터 자판을 두들겼다. 화면이 알록달록하게 바뀌더니 세모꼴의 무늬를 피아노 건반처럼 등에 단 무지하게 길고 큰 뱀이 갑자기 튀어나와 방을 헤집고 다녔다. 책장 사이 빈 틈을 비집고 들어 칭칭 휘감더니 남자의 머리 뒤에서 함께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것 봐, 누가 왔잖아!”

장난스런 목소리의 주인공은 눈이 하나밖에 없는 대머리 도깨비였다. 남자의 옷장에서 붉은 티셔츠를 꺼내 입은 도깨비는 가지런한 이빨을 드러내 놓고 실실 웃고 있었다. 그제야 남자가 의자에서 일어나 이젤을 보고 손을 내밀었다.

“아, 반갑다. 젤리!”

이젤은 깜짝 놀랐다. 이 남자가 어떻게 별명까지 알아 냈단 말인가!

“너무 놀라지 마라. 나는 이 작품을 만든 작가란다.”

이젤은 비로소 상황을 파악했다. 이젤이 작품에 빠져 있는 동안 작가는 뒤에서 가만히 지켜 보고 있었던 것이다.

“내 작품을 그렇게 열심히 봐 줘서 고맙다. 혹시 궁금한 거 있니?”

작가는 친절하게 물었다.

“이건 사진인가요 아니면 그림인가요?”

이젤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그림을 합성한 사진이지. 사진을 합성한 그림이기도 하고.”

알쏭달쏭한 대답이었다. 대머리 도깨비식으로 말하자면 코이기도 하고 눈이기도 하다는 말인가!

“왜 이런 걸 만들었어요?”

“으음, 날카로운 질문이군. 왜 컴퓨터 게임을 하다 보면 흠뻑 빠져들지 않니? 가상 세계와 현실 세계가 구분되지 않고 한데 섞여 돌솥비빔밥이 된다 이 말이지.”

가상과 현실이라? 이젤은 작품 앞으로 좀더 가까이 다가갔다. 질문을 하나 더 하려고 돌아보니 작가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나도 혹시 가상의 세계를 꿈꾸었나?’

●글쓴이 약력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 및 동 대학원 졸업 *개인전 6 회 및 국립현대미술관ㆍ서울시립미술관ㆍ부산시립미술관 등 기획 초대전 다수 *한국일보 청년작가초대전 우수상 수상 *'우리가 알아야 할 우리 그림 백가지' 등의 책을 펴냄.


박영대(화가ㆍ광주교육대학교 미술교육과 교수)


출처 : 아동미술
글쓴이 : 즐거운미술수업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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