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명 : 인간지사 새옹지마(수 필) 조회수 : 60
작가명 : 조동희   (원본은 서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등록일 : 2006-01-30

인간지사 새옹지마(人間之事 塞翁之馬)



  그랬다. 하늘은 어두워지고 뇌성은 귀를 때렸다. 아무리 태풍의 위력이 세기로 나에게는 오면 안될, 아니 나를 피해 돌아가야 할 바람이 하필 나를 덮친다는 말인가? 나는 한동안 망연자실(茫然自失)할 수밖에 없었다.
  태풍주의보가 내려질 때만 하여도 영향권의 사람들은 태풍의 진로를 놓고 얼마나 설왕설래했던가. 동쪽으로 빠질까? 서쪽으로 빠질까? 아니면 갑자기 발달된 상승기류를 타고 대해로 빠져나가 자연 소멸되진 않을까? 태풍의 방향은 여러 사람들의 화두가 되었다. 두셋이 차를 마실 때에는 첨가제가 되었고, 너댓 사람이 술집에 앉았을 때에는 몇 접시의 안주가 되기도 하였다.
  변덕쟁이 태풍을 기다리는 마음은 실로 불안하기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은근한 바램이 있었으니-태풍이 자연 소멸되지 않을 거라면 최소한 나로부터 먼 곳으로 돌아 지나갔으면-하는 것이었다. 몇 달 전에 불어왔던 태풍 앞에서도 무사히 바람을 피했기에 갖는 바램이었다.
  드디어 주의보는 경보로 바뀌고 태풍 IMF호는 휘몰아 왔다. 녀석은 나의 바램을 비웃기라도 하듯 나를 덮치고 있었다. 뇌성도 들리고 벽력도 쳤다. 나는 소용돌이의 와중에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아이들의 교육비는? 앞으로의 생활은? 지명(知命)의 나이에 내가 갈 곳은? 아, 모르겠다. 도무지 모르겠다. 나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망연자실. 얼마를 그렇게 있었을까. 한 마디 글귀가 떠올랐다. 인간지사 새옹지마(人間之事 塞翁之馬). 칠흑의 밤에 어둠을 밝히는 등불이었다.
  새옹지마는 화(禍)가 복(福)으로 바뀔 수도 있다는 고사성어.
  그렇다. 그 말은 나에게도 맞는 말일 터. 바람 앞에 무릎을 꿇어서는 안 된다. 내가 겪어야 하는 오늘의 이 아픔을 훌훌 떨치고 일어나야 한다. 아이들에게는 IMF의 독한 바람맛도 보여서 다릿심도 길러주고, 나는 새로운 세계로 나가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시방까지의 안일에서 벗어나 눈을 크게 뜨고 귀를 활짝 열자. 외환위기라는 경제 대란 몇 개월만에 넘치느니 실업자들이라지만, 3D 업종에서는 일꾼을 못 구한다지 않는가. 굴에는 반드시 출구가 있고, 오르막길 끝에는 내리막길이 있는 법. 희망을 갖자.
  잠시 후, 뇌성벽력은 사라지고 하늘은 걷히기 시작했다. 그름 사이로 길게 내린 한 줄기 햇살을 바라보며 나는 차츰 안정을 찾을 수가 있었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경제 난국은 육이오 참화에 버금가는 국란이라고 한다. 그렇기에 우리가 겪어야 하는 고통은 그만큼 크겠지만, 한편으로 생각하면 고마움 또한 크다. 쓰러진 사상누각을 걷어내고 새로운 터전을 다질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동안 우리는 모래밭에 급히 세운 화려한 누각에서 얼마나 즐겁게 놀았던가? 커다란 풍선 드높이 띄우고 오는 사람 가는 사람 불러 세운 채 놀이에만 열중하지 않았던가? 사상누각은 오래 가지 못한다는 충고를 누군들 귀담아 들으려 했던가?
  태풍은 해일을 몰고 왔다. 해일은 모래밭의 그 화려하던 누각을 쓸어 넘어뜨리고 물러갔다. 이제 남은 것은 몇 점 쓰레기와 잔해들, 그리고 힘 빠진 놀이패들 뿐. 구경꾼들은 저만큼 물러나며 하하하 좋아라 웃고 있다.
  구조 조정과 기업 도산. 실업과 물가고. 이 모든 것들이 우리에게 벅찬 일이지만 마냥 허탈해 할 수만은 없지 않겠는가. 우리는 내일의 희망을 안고 다시 일어서야 한다. 네 탓, 내 탓을 가리기에 앞서 우리 모두의 탓임을 깨닫고 서로의 어깨를 붙안아야 한다.
  오늘 나를 덮친 실직이라는 바람도 화禍의 바람이 아닌 복福의 바람일 것으로 나는 믿는다.
                           -1998년 6월에 직장을 하직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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