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영 악플 박진영 “악플 저장해 두고 즐겨본다”

박진영악플 저장해 두고 즐겨본다”

1994년 <날떠나지 마>로 데뷔. ‘비닐 바지 무대 의상’‘누드 화보 촬영’ 등 그는 가수 활동 내내 파격의 중심에 섰다. 그리곤 프로듀서로 전향해 god·박지윤·비 등 가수를 키워냈다.

윌스미스의 앨범 참여를 통해 ‘빌보드 차트에 이름을 올린 한국 최초 작곡가’가 됐다. 쉴새없이 새로운 도전의 길에 서 있는 박진영(35)은 올해 뉴욕 맨해튼 중심에 국내 최초로 음반사를 설립한다. 해외서 굵직한 뉴스를 끊임없이 쏟아내는 경영인이자 프로듀서 박진영. 하지만 그의 꿈은 팔순이 돼서도 무대서 춤출 수 있는 ‘영원한 딴따라’다.

싸이 공연 게스트 참여와 녹음 작업을 위해 지난해 12월 31일 미국서 귀국. 열흘간 한국서 머문 박진영을 지난주 서울 청담동의 와인바 74에서 만났다.

“겸손하지 못한 것이 내 콤플렉스”라며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그의 화법은 술이 들어가자 더욱 도전적이고 거침없다.



- 술·여자·춤 모두 중학교 때 배웠죠

한국서 머문 열흘간 박진영의 일정은 숨돌릴 겨를이 없었다. 싸이의 결혼과 생일선물로 ‘싸이 콘서트 게스트’로 서기 위해 한국에 잠시 들렀다. 그 사이 처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다.

빡빡한 스케줄 와중에 기울이는 술잔이라 서로 무리하지 않기 위해 오늘의 주종은 와인으로 골랐다. 기자와 박진영이 잔을 채우고 새해 인사를 건네며 잔을 부딪쳤다.

“저에게 술은 참 고마운 존재죠. 언제나 복잡하게 돌아가는 내 머리를 일시정지 시켜주거든요. 사람을 만나 얘기하고 있을 때도. 음악을 들을 때도 쉴새없이 다른 생각을 하고 분석을 해요. 얼마나 피곤하겠어요. 그런데 술을 마시면 머리가 아무 생각없이 쉬게 되니 좋아할 수밖에 없죠.”

그의 주량이 최고에 달했던 시절은 가수 활동 전성기 때로 소주 7~8병은 너끈했다. 이훈과 소주 15병을 나눠 마시고 기분 좋게 헤어지기도 했다. 요즘은 3~4병 정도가 적당하다.

데뷔 후 솔직히 밝혔듯 그는 중·고교 시절 좀 ‘놀았다’. 중학교 때 춤·여자·술 모두 섭렵했다. 주먹도 꽤 쓸 만했다.

“10대엔 내가 춤에 재능이 있는지도. 의지가 있는 사람인지도 잘 몰랐어요. 그저 지는 것을 싫어해 춤·공부·싸움·오락 모두에 집착했어요. 싸움도 꽤나 잘해서 어느 학교에 주먹이 센 친구가 있다고 하면 찾아가서 싸움을 했어요. 싸워서 진 기억은 별로 없어요.”

놀긴 했지만 부모님을 크게 걱정시키진 않았다. “가출도 자주 했어요. 친구들 사이에 제가 우두머리라 가출하는 친구들을 돌봐야 했거든요. 가출해서도 부모님께 어디에 있는지. 언제 들어갈지는 늘 알려드렸죠.”



- 박진영 난 악플을 즐긴다

가수 박진영의 행보는 늘 튀었다. 비닐바지를 입고 엉덩이를 흔들었고. 누드 사진을 촬영하기도 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우린 사랑을 나눴지’ 등 가사는 선정성 공격을 받았다. 왜 이렇게 튈까.

“20대에 난 음악과 사랑을 좋아하고 억압을 싫어한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사랑을 좋아하니까 사랑하는 사람 사이의 섹스는 아름다운 일이라고 자유롭게 말했죠. 그런데 우리 사회는 섹스에 대해서 얘기하면 성적으로 문란한 사람이 돼 버리죠. 사실 전 원나잇 스탠드 같은 거 별로 안좋아해요. 대학시절 몇 번 경험이 있긴 했지만 기억이 별로 좋지 않았어요.

그리고 또 난 힘으로 억누르는 걸 싫어해요. 공경을 하는 것은 좋지만 힘이 센 사람이 약자를 억누르기 위한 도구로 쓰는 권위는 싫어요. 내가 활동할 당시 방송국의 권위도 규제도 커 선글라스를 쓰는 것도 허용되지 않을 정도였죠. 그런 것에 대한 항거로 비닐바지도 입고 누드도 찍었어요. 같은 맥락에서 청와대에 갈 때도 망사를 입은 것이죠.”

한참 목소리를 높인 박진영이 목이 탄지 와인을 들이켠다. 비난도 많았지만 박진영은 사랑받은 음악인임이 분명하다. 그는 왜 대중이 박진영에게 매력을 느낀다고 생각할까.

“일부러 가식떨지 않고 또 착한 척하지 않아서인 것 같은데…. 늘 지금처럼 격앙되고 흥분된 상태에서 말을 하고 주장이 강하니 좋아하는 분도 많지만 안티도 참 많구요. (웃음)난 안티 없으면 끝난다고 생각해요. 안티들의 글과 좋은 글을 다 폴더에 스크랩해두고 그날 기분에 따라 꺼내 보거든요.

악플 중에서 제 음악을 표절이라고 하면서 ‘너 빌보드에 한번 가 봐라’하는 내용을 보고 ‘내가 못할 것 같아’하고 마음을 먹으니 정말 미국에 와 있게 되더라구요. 성격이 독특해 남들에게 일부러 미움을 사려 한 적도 있어서 학교 다닐 때 아마 60명 중에서 55명 정도 날 싫어하기도 했죠.”

직접 만날 때마다 느끼지만 이 사람 말 참 잘한다. 잘 나가는 박진영도 스스로에게 느끼는 단점이 있다.

“과묵하고 겸손하기를 못해요. 그것이 콤플렉스죠. 난 조그만 일 하나만 해도 ‘내가 이거 했다’고 떠벌리고 싶어 안달이거든요. 그런데 내가 봐도 엄청난 일을 한 사람이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땐 참 대단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죠. 남자가 봐도 그런 남자는 멋져서 내 여자를 뺏길까 봐 걱정돼요.”



- 비를 보면 질투심 1%도 안느껴

박진영의 위치는 프로듀서 데뷔 후 더욱 탄탄해졌다. 올 상반기 계약이 만료되는 비의 재계약 문제가 가요계의 이슈다. 비의 몸값이 50억. 100억이란 얘기가 심심찮게 흘러나온다.

“며칠 전에도 같이 술마시고 놀았지만 한 번도 재계약에 대해 얘기를 꺼낸 적이 없어요. 계약 만료 시점에 가서 비와 JYP의 상황에 따라 달라질 일이잖아요. 철저하게 비의 이익을 생각해서 도움이 되는 곳과 계약을 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난 재계약과 관계없이 비가 다른 회사에 가더라도 영원히 형-동생으로 지낼 거예요. 비가 떠나도 난 비가 너무 좋아요. 그만큼 뜬 아이가 그 정도 겸손하고 성실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예뻐요. 사람들이 안 믿겠지만요.”

무대 위 비를 보면 질투를 느낄 것 같다는 뒷얘기도 많다. “다들 정말 안 믿지만 1%도 아니에요. ‘정말 많이 늘었다’는 생각이 들고 대견할 뿐이죠.”

관객들은 비를 보면 그저 열광하지만 박진영에겐 비의 부족한 부분이 보인다. “연기도 춤도 노래도 힘을 빼야 해요. 모든 게 (정)지훈이의 성격처럼 너무 진지하거든요. 나와 비는 처음부터 춤에 대한 태도가 정반대였어요.

나에겐 춤이 놀이였지만 비에겐 춤이 삶의 해법 같은 것이었죠. 비는 자신의 환경을 극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춤을 췄으니 한없이 심각할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이젠 비도 힘을 빼고 즐겼으면 좋겠어요. 비가 힘을 빼는 순간 정말 춤·연기에서 무서운 존재가 돼 있겠죠.”

기자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지만 검은 피부의 박진영은 도무지 술을 마셨는지도 모르겠다. 주당 확실하다.



- 80세에도 무대에서 춤추는 할아버지

박진영의 목표는 ‘영원한 딴따라’다. “전 절대 70. 80이 돼도 은퇴 안할 거예요. 내 목표가 할아버지가 돼서도 100명 소규모 무대에서도 춤추고 노래하는 것이거든요. 죽고 난 후 ‘술 주면 춤 잘 추고 잘 놀던 애’로 기억됐으면 해요.”

정치에 관심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지만 자신의 길이 아님을 알았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5년 전에 확실히 알았죠. 예전엔 시사토크쇼도 하고 싶었는데 난 그냥 딴따라예요. 얼마 전에도 클럽에 들어가자마자 춤을 계속 췄더니 (양)현석이형이 ‘넌 영락없는 딴따라’라고 하더군요. ”

이렇게 무대를 좋아하는 박진영이 제 물을 떠나 프로듀서만 하고 있자니 좀이 쑤실 만도 하다. “나 같은 프로듀서가 있었다면 나도 가수만 했겠죠. 평생 가수를 하기 위해서 지금 시스템을 만들어 놓고 있는 것이죠. JYP엔터테이먼트를 설립한 것도 미국으로 가 바닥부터 새로운 도전을 한 것도 모두 가수를 하고 싶어 한 일이에요.”

올해 목표는 JYP 미국 지사를 설립. 신인을 미국 팝시장에 데뷔시키는 것이다. 그리곤 한국으로 돌아와 10월께 7집을 발표할 예정. 곡도 다 썼고 안무까지 짜 놓은 상태다. 가수로 다시 서기 위해 미국서도 하루 3시간 운동을 거르지 않는다.

“1년여 만에 싸이의 콘서트 게스트로 무대에 섰는데 팬들의 환호에 감격스러워 눈물이 났어요. 작년까지도 미국 시장 성공에 대해 이렇게 자신있게는 말하지 못했지만 이젠 정말 고지가 눈앞에 보여요. 망한 음반의 판매량이 50만 장인 미국 릴 존과 손을 잡는 기적 같은 일이 생겼잖아요. 올해 안에 꼭 앨범을 내고 싶어요.”

“아무리 가수가 하고 싶어도 미국서 성공 안하면 절대 안 돌아올 것”이라는 결의에 찬 박진영과 마지막 잔을 부딪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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