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라는 제목의 책을 읽었다. 다소 도발적인 타이틀로 내 눈길을 사로잡은 이 책은 책 읽는 여자들의 다양한 모습을 담은 그림과 함께 시대별 여성의 지위가 책과 함께 어떻게 변화했는지 설명한다. 이 책에 따르면, 18세기 이후 문맹이 퇴치되고 여자들에게도 책이 보급되면서 그녀들이 변해갔다고 한다. 뜨개질을 하고 쿠키를 구우며 하루하루를 보내던 여자들이 책에 빠져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기 시작했고, 더 이상 남자들을 우러러보지 않게 된 것이었다. 위협을 느낀 일부 남자들은 책에 빠져서 꿈과 현실을 혼동하는 《마담 보바리》, 《돈키호테》 등의 주인공을 예로 들며 ‘책은 현실감각을 잃게 하고 몸을 허약하게 하며 여자들의 경우 생식기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주장으로 독서에 몰두하는 여자들을 일종의 정신병자로 취급하기도 했다.
이 책은 그림 속 책 읽는 여자들을 통해 다시금 강조한다. 여자들이 책을 읽기 시작하고부터 똑똑해졌고, 용감해졌고, 그래서 ‘위험해졌다’고. 하지만 책 읽는 여자들을 향한 남자들의 경계는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한 것 같다. 나는 이외수 씨가 진행하는 〈언중유쾌〉라는 라디오 프로를 즐겨 듣는다. 그만의 독특한 입담과 허를 찌르는 비판들이 이 프로그램의 묘미인데, 하루는 그에게 재미있는 사연이 도착했다.
“저는 책 읽는 걸 좋아하는 주부입니다. 퇴근 후 남편이 TV를 보고 있을 때에도 저는 책을 읽어요. 그런데 문제는 남편이 제가 책 읽는 걸 싫어한다는 겁니다. 급기가 책을 읽지 말라고까지 하네요. 책을 둘러싼 갈등이 점점 심해지고 있어요. 남편은 왜 제가 책 읽는 걸 싫어할까요? 어떻게 하면 좋죠?”
독서가 부부 갈등의 원인이라니 참 재미있는 사연이다. 이에 대한 이외수 씨의 답변 또한 흥미롭다.
“먼저 남편과 같이 드라마를 시청하고, 책을 읽는 것에 대해 양해를 구하세요.”
책 읽는 게 무슨 죄라고 양해까지 구해야 한단 말인가. 책 읽는 여자가 무슨 잘못이라고 남편에게 구박을 받아야 한단 말인가.도대체 왜 남자들은 책에 빠져 있는 여자들에게 겁을 내는 것일까?
책은 여자에게 또 다른 권력과도 같다. 책을 즐겨 읽는 여자에겐 감히 범접할 수 없는 힘이 존재한다. 미처 경험하지 못한 세상과의 만남, 앎이 주는 즐거움, 사고의 확장이 불러일으키는 가슴 떨림, 정서적 교감이 가져다 주는 풍요로움, 상대방을 꿰뚫어 보는 직관력, 좋은 사람을 알아볼 수 있는 능력……. 이 모든 것을 선사하는 책을 통해 여자는 더욱 당당해질 수 있고, 더욱 행복해질 수 있고, 남자보다 우위에 설 수 있다. 정보의 시대에서 정보가 힘인 것처럼, 지식 기반의 사회를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책은 자신을 지키는 힘이자 권력인 셈이다. 그러니 남자들이 겁을 내는 건 당연하다. “우와! 우리 남편 그런 것도 알아? 정말 멋있다”가 아니라 “그것도 몰라?”라고 반응하는 여자를 상대하려니 위협을 느끼고 주눅이 드는 것이다.
책을 통해 권력을 손에 쥔 여자는 참으로 멋있다. 어느 자리에 있든, 어떤 화제로든 자신의 생각을 막힘 없이 풀어낼 수 있는 여자, 무한한 상상력과 해박한 지식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여자, 짧은 대화에서도 깊이가 묻어나는 여자, 그런 여자들은 분명 매력적이다. 그녀들이 지닌 남다른 안목과 교양에 사람들은 쉽게 마음을 빼앗긴다. 그뿐인가. 책을 통해 얻은 아이디어로 남보다 훌륭한 사업 계획서를 쓸 수 있고, 조직 내에서 발생하는 갈등도 현명하게 극복해나간다. 때문에 독서는 성공적인 리더를 꿈꾸는 여자라면 반드시 갖춰야 할 경쟁력이나 다름없다.
독서를 즐길 줄 아는 여자가 매력적인 또 다른 이유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할애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책을 구입할 수는 있지만 아무나 책을 즐겨 읽지는 못한다. 주변을 둘러보면 책 읽는 여자가 주는 환상에 젖어 책을 읽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는 여자들이 꽤 있다. 한 달에 한 번쯤 의무적으로 서점에 들러 신간을 확인하고 베스트셀러 동향에 대해 조사한다. 그러나 결국 이들이 집어 드는 책이란 칙릿 류의 소설이나 유명 연예인이 쓴 미용 서적에 불과하다.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감도 없고 특별히 구입하고 싶은 책도 없는, 그야말로 ‘책과 친하지 않은’ 여자들이다. 베스트셀러 몇 권 읽었다고 해서, ‘이 주의 추천 도서’ 몇 권 구입했다고 해서 책을 보는 안목이 생기지는 않는다. 독서에 대한 즐거움을 접하기는 더욱 어렵다. 적잖은 시간을 투자해 책을 읽으며 자신만의 관심 분야를 찾고 좋아하는 분야에 대한 지식이 쌓여야 비로소 책 읽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는 것이다.
아직 많은 책을 읽지는 못했어도 책을 가까이하려고 노력하는 여자는 참 예쁘다. 비록 지금은 쉽고 재밌는 책들로만 눈길이 가겠지만 언젠가는 그 책들과 함께한 시간들을 토대로 좋아하는 작가가 생기고, 전문가적 식견을 자랑하는 분야도 생길 것이다.문제는 도통 책 읽을 생각을 하지 않는 여자들이다. 이런 부류의 여자들은 친구들과 만나면 연예계 숨은 비화나 타인의 뒷담화에만 열을 올린다. 공통의 관심사를 공유할 만한 지적 수준이 형성되지도 않았고 나누고 싶은 문화적 코드도 없으니 그 나물의 그 밥처럼 시시한 이야기들만 나열하게 되는 것이다. 간혹 공식적인 미팅에 참여하게 될 때면 괜히 주눅이 들어 꿀 먹은 벙어리처럼 침묵만 지킬 뿐이다. 혹시라도 모르는 주제가 나올까 봐, 모르는 분야에 대한 토론이 이어질까 봐 두려워한다. 책이 주는 권력의 맛을 알지 못하는 여자는 이처럼 힘을 쓰지 못하고, 어떤 사람에게도 ‘위험한 여자’가 되지 못하는 것이다.
책을 읽지 않는 여자는 만만하고 시시하다. 아무리 뛰어난 미모의 소유자라도, 훌륭한 스펙을 자랑하더라도, 모두가 탐내는 명품 백과 옷으로 치장하더라도 말이다. 작가가 만들어놓은 또 다른 세계를 통해 짜릿한 흥분과 쾌감을 경험하지 못한 여자는 날개 잃은 천사처럼 비상을 꿈꿀 수 없는 안쓰러운 존재이다. 책 읽는 여자와 읽지 않는 여자, 그 둘의 차이점을 주변 사람들을 통해 하나씩 찾아보자. 서둘러 어떤 책이라도 읽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히게 될 것이다.
출처:http://news.kyobobook.co.kr/comma/openColumnView.ink?sntn_id=5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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