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베벌리힐스 성남'' 벌써 ''꾼''들로 득실
[세계일보 2005-10-04 00:27]

연휴 마지막 날인 3일 시원스레 뚫린 수서∼분당 간 고속화도로를 10여분 남짓 달리다 우회전해 23번 국도를 이용, ‘개발 백지화’를 부르짖는 플래카드가 나부끼는 판교에 이르렀다. 이곳에서 57번 국지도(국가 지원 지방도)를 타고 의왕·과천 방면으로 3㎞ 정도 가다 왼쪽으로 폭 2m 남짓한 샛길로 접어들자 뻘겋게 맨살을 드러낸 조그만 민둥산이 나타났다. 그 뒤편이 바로 최고급 전원주택단지 개발설로 인해 ‘투기열풍’이 불고 있는 성남시 대장지구다. 고급 전원주택단지로 조성하려는 대한주택공사의 개발계획이 최근 공개되면서 국민들의 관심이 집중된 곳이다.

울퉁불퉁한 시멘트 길과 비포장도로를 연이어 지나다 보니 미장공사 중인 빌라 두 채가 눈에 띈다. 곧 이어 비닐하우스와 밭 사이로 3∼4층짜리 저층 빌라들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서고 있다.

현지 주민들은 “올 초부터 ‘한국판 베벌리힐스’로 개발된다는 소문이 돌면서 외지인 방문이 급격히 늘었고, 하루 이틀이 지나면 터가 닦이고 건물이 올라갔다”고 말했다. 대장동에서 10년째 살고 있다는 A씨는 “강원도 산골이라 해도 여기만큼 도로사정이 좋지 않은 곳은 별로 없을 것”이라며 “젊은 사람들은 예전에 도시로 나가 버리고 소수의 늙은이들만 집을 지키고 있었는데, 올 들어 갑자기 집이 많이 생겼다”고 전했다.

실제 이 마을에는 이미 공사가 끝났거나 짓고 있는 빌라가 50여채에 달했다. 또 마을 입구에는 원주민 주택보다 더 많은 30여개의 부동산중개업소가 들어서 영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봐 투기열풍이 한창 진행되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었다.

휴일인데도 문을 연 K부동산 관계자는 “개발한다는 얘기가 돈 뒤 보상을 노리는 빌라가 급속하게 늘었다”며 “현재 실평수 13평짜리 빌라가 2억3000만원을 호가한다”고 말했다. 그는 “만약 개발계획이 백지화되면 저런 빌라들은 5000만원을 불러도 안 팔릴 것”이라며 “최근 위험부담을 느낀 사람들이 일부 매물을 내놓고 있지만 거래는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대장동 주민들 간에 갈등의 골도 깊어지고 있다. 한 주민은 기자가 신분을 밝히자 “누가 불렀느냐”며 예민한 반응을 나타냈다. 또 다른 주민은 “이미 자기 땅에 빌라를 짓는 사람은 개발에 적극 찬성이고, 기존 땅을 지키려는 사람은 환경단체와 함께 이를 저지하면서 마을 주민들은 서로 감정이 쌓일 대로 쌓였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성남시가 지난달 26일부터 주민공람에 들어간 ‘2020년 도시기본계획’에도 대장동 일대를 전원주택단지로 개발하는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올 초부터 외지인들의 발길이 늘어난 데다 보상을 노리는 빌라들이 급증한 것으로 봐 올 초부터 개발정보가 샌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성남참여자치시민연대 김현지 사무국장은 “해당 부지에선 주민들을 대변해야 할 통장이 빌라를 지어 투기열풍에 합세하는 등 민심이 극도로 흉흉하다”며 “지난 7월부터 시청이 3년간 토지거래를 중지시켰지만 이미 투기자본이 휩쓸고 간 뒤여서 주민의 허탈감만 심해졌다”고 말했다.

성남=김창덕 기자 drake007@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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