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 신고 껑충 뛰는 사진이 좋겠는데…. 될까요?"
신동엽
(37)이 잠시 멈칫거렸다. 한 달 전 식당에서 다른 사람에 밀려 넘어지면서 탁자 모서리에 가슴을 부딪쳐 갈비뼈 2개에 금이 갔다고 했다. 아직 다 낫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한번 해보겠다"며 사진기자의 신호에 맞춰 펄쩍펄쩍 뛰었다. "이렇게 충격을 잘 흡수하니 관절에도 무리가 없다는 게 증명이 된 셈이죠?"

국내 정상급 MC 신동엽은 요즘도 1주일에 4개 프로그램에 출연한다. 바쁜 와중에도 2005년에는 자기 이름을 딴 DY엔터테인먼트라는 연예 매니지먼트 회사를 만들더니 이번에는 '채널tb'라는 회사의 공동대표가 됐다.

이 회사는 스프링 달린 다이어트용 신발 '아이젝스(IXEX)'를 제조·판매하고 있다. 오는 6월부터 가맹점을 통해 정식 발매를 하기에 앞서 지난달 28일 그랜드 하얏트 서울 호텔에서 론칭(Launching·출시) 행사를 가졌다.

◆화재 피해자로 인터뷰한 것이 첫 방송
신동엽을 만난 6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사무실은 한창 단장 중이었다. 주스 잔 건너편에 항상 장난꾸러기처럼 보였던 'TV 속' 신동엽이 앉아있었다.

―방송 생활한 지 꽤 됐지요?
"벌써 17년이 됐군요. 서울예전(현 서울예술대학) 다닐 때 학교 축제 MC를 봤죠. 그때 이성미 선배 추천으로 특채됐지요. PD가 어느 날 끼 있는 친구들도 데려오라고 했어요. 그때 데려간 사람이 안재욱, 송은이, 이휘재, 김진수입니다. 안재욱은 이틀 하더니 재미없다고 안 나오고, 송은이는 가수 하겠다고 안 나오고, 이휘재는 연기하겠다고 그만뒀습니다. 김진수는 당시 영화 '장군의 아들'에 출연 중이어서 중도 포기했지요. 그런데 안재욱 빼고는 나중에 같은 동네에서 만났습니다."

―대학 시절부터 스타였군요.
"경복고 다닐 때 방송반이었어요. 축제를 통해 제법 인기가 있었고, 근처 여학생들이 다 알아봤을 정도였습니다. 참, 제 방송 데뷔는 1991년 연예 프로가 아니라 1990년 뉴스에 등장한 겁니다. 효자동 카페에서 큰불이 나 사람이 죽었는데 저도 혼수상태로 병원에 실려갔었죠. 깨어난 다음에 방송에서 당시 상황을 인터뷰한 게 방송을 탔지요."

◆웃음은 경박하다는 인식이 문제
―성격이 처음부터 활달했나요?
"내성적인 성격에 가깝습니다. 카메라 앞에만 서면 편안할 뿐이죠. 밖에서는 한마디 못 하다 엄마 아빠 앞에서 재롱떠는 아이들 있지요? 연예계 생활하면서 익명성을 잃었지요. 대신 엄청난 행복, 경제적인 여유를 누렸습니다. 다시 자연인으로 돌아간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빠질 때도 있습니다."

―개그맨의 위상을 많이 바꾸고 영역을 넓히는 데도 일조했는데.
"MBC 청춘 시트콤 '남자 셋 여자 셋'에서 주인공을 맡은 적이 있습니다. 개그맨으론 처음이었죠. 그때 함께 출연했던 이제니만 해도 처음 출연 제의 받고 '개그맨이랑 연기 안 하겠다'고 했었습니다. 나중에 들었어요. 저는 내가 속한 예능이라는 장(場)의 위상을 높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코미디(Comedy)는 꼭 필요한 것, 어찌 보면 신성한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코미디를 격하시키려는 분위기가 있어요. 많이 웃으면 점잖지 못하다는 인식, 지위가 높아지면 덜 웃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지요."

―그래서 일부러 '신장개업' '러브하우스'처럼 사회적으로 메시지가 담긴 프로를 맡았나요?
"일부러 그런 프로그램을 한 건 아닙니다. 당시 '코미디언이 왜 의미 있는 프로그램을 하려고 하느냐'는 분도 계셨어요. 기본적으로 박장대소가 좋지만, 살며시 짓는 미소도 의미가 있잖아요. '감동 있는 웃음'이지요. 그건 제가 할 수 있는 새 분야였어요. 그런 프로그램을 교양 쪽에서 했다면 그런 반향이 일어났을까요? 러브하우스를 그만둘 때도 주변에서는 '시청률 잘 나오는데 왜 그러느냐'고 말렸지요. 하지만 저는 한계에 부딪혔다고 생각했어요. 그 뒤 건방지다는 소리 많이 들었어요."

―시청자가 원하고, 제작진이 원하는 쪽으로 맞추는 것이 진정한 프로라는 생각은 안 들었나요?

"TV를 통해 스포츠 스타가 시청자를 만나는 것과 개그맨 MC가 시청자를 만나는 건 굉장한 차이가 있어요. 축구 선수가 꼭 인간성이 좋아야 할 필요는 없잖아요? 개그맨 MC는 자신의 생각, 인생관, 가치관 등이 자기가 하는 말에 녹아들 수밖에 없어요. 자신의 색깔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연예계에는 전설적인 '주당(酒黨)'이 많다. 가수 이승철은 '폭탄주 47잔'을 하룻밤에 마신다. 그 이승철이 라이벌로 꼽는 '강적'이 신동엽이었다. 그는 술을 너무 많이 마시는 것이 몸에 해로운 것 같아 와인으로 바꾸고는 하룻밤에 8병씩 마셨다는 '전설'이 있다.

―요즘도 폭음(暴飮)을 하는 편입니까?
"결혼한 다음에는 거의 술을 안 합니다. 예전에는 정말 제가 생각해도 무모했지요. 요즘은 부부 동반으로 함께 모여서 얘기하는 게 좋습니다."

신동엽은 2006년 5월 27일 MBC 선혜윤(30) PD와 결혼했다. '신동엽의 러브하우스'에서 연출자와 진행자로 만나 사귄 지 1년 만에 가정을 꾸렸다. 작년 4월 4일 첫딸 지효가 태어났다.

―결혼하고 나서 많은 게 달라졌지요?
"뭐랄까? 수컷의 본능이라고 할까요. 집에서 아이와 아내가 자는 모습을 보면 가슴에서 뜨거운 게 용솟음칩니다. 전에는 결혼 안 할 생각이었어요. 안재욱 등 몇몇 친구한테 '우리 결혼하지 말자'고 얘기도 했죠. 그 바람에 안재욱만 아직 노총각이라 미안해요."

요즘 신동엽의 '낙(樂)'은 가족과 함께 하는 '주말 맛집 순례'다. 원래 취미는 골프와 바둑이다. 이븐파(72타·2001년 서서울CC)를 기록한 적이 있고, 바둑은 5급 실력이다. 하지만 시간이 없어 취미를 즐길 틈이 없다고 했다. 일 이외의 시간은 오로지 가족들을 위해서 할애한다. 작년 4월에 딸 지효가 태어났다. 그는 "힘들 때 힘이 되어주는 이들은 가족뿐"이라고 했다.

◆"우리나라 시트콤에서 콘돔 다루면 저질?"
―지난달 26일 시작한 '신동엽 신봉선의 샴페인'(KBS 2TV)이 첫날 동 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했더군요. 성인 프로그램이라는 느낌이 들던데.

"맞습니다. 밤 11시가 넘은 시간대이니까요. 예전부터 성인 시트콤을 해보고 싶었어요. 이제 정말 괜찮은 성인물이 나와야 합니다. 애들 교육에 안 좋다고 그러는데 정작 아이들은 인터넷으로 온갖 성적인 악영향은 이미 다 받았을 겁니다. TV에서는 저급하게 가서는 안 되겠지요. 하지만 그저 어른들이 나눌 수 있는 소재 정도라면 문제없을 거라고 봅니다. 미국 드라마 '섹스 앤드 더 시티'에서 콘돔을 소재로 다루면 재미있다고 깔깔대다가, 우리나라 시트콤에서 그런 소재 다루면 저질이라고 난리가 나는 상황은 바뀌어야지요."

―시청률 1위는 자신의 능력 덕분이라고 생각하나요?
"지난 2~3년간 신동엽이 예전 같지 않다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제가 작품을 대하는 태도부터 달랐던 것 같아요. 전에는 섭외 들어오면 같은 시간대에 타 방송사 프로그램이 뭐고, PD와 작가까지 조사했어요. 함께할 제작진의 면면도 살폈죠. DY엔터테인먼트를 출범시킨 뒤에는 회사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전에 제 에너지의 98%를 방송에 쏟았다면, 50% 정도밖에 못 썼으니 그런 반응이 나오는 게 당연하지요. 요즘은 '신동엽은 2류'라는 글도 올라오더군요."

―자신보다 나은 MC로 꼽을 수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전에도 지금도 제가 최고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브레인 서바이벌'의 김용만, '무한도전'의 유재석, '1박2일'의 강호동 씨의 능력은 제가 따라갈 수 없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지요. 그건 노력한다고 되는 게 아닌 것 같아요. 타고난 달란트(고대 화폐 단위·재능이라는 뜻)라고 해야겠지요."

◆"내 속에는 새것에 도전하는 DNA 있어"
겸손하게 이야기했지만, 신동엽은 지난달까지 5개 프로그램, 이달에도 4개 프로그램을 맡고 있다. 신동엽 같은 특급 MC들은 한 프로그램을 맡으면 연간 4억~5억원을 번다. 1년에 20억원 이상을 벌어들인다는 얘기다. 방송 활동만으로도 일반인들이 꿈도 못 꿀 거액을 버는 그가 왜 또 신발 사업에 뛰어들었는지 궁금했다.

―돈에 대한 욕심이 많은가요?
"솔직히 말씀드려서 그냥 방송 생활 열심히 하고, 저축하면 평생 먹고사는 걱정은 없을 겁니다. 저는 연예인들이 편하고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싶어요. 음, 그리고 결정적으로 제 몸속에는 항상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싶어하는 DNA가 있는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이 안 하는 프로를 맡고 싶고, 때로 변태 역할도 하고 싶고…. 개그맨 생활 시작한 직후 제가 한 달에 40만원 벌 때 80만원씩 주고 스타일리스트를 채용했어요. 선배들이 '미친놈 아니냐'고 했죠. 하지만 저는 그게 싸게 먹힐 거라는 걸 예상했어요. 버라이어티 쇼는 늘어나는데, 매번 옷을 살 수는 없었지요."

신동엽은 이번에 신발 사업에서 '대박'이 나면 다양한 코미디를 접할 수 있는 문화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그의 큰형은 청각장애인이다. 그 영향인지 모르겠지만 신동엽은 장애가 있는 사람들도 함께 웃고 즐길 수 있는 공간도 만들고 싶다고도 했다. "나중에 그 문화센터를 사회에 환원하고 싶습니다. 어머님의 유언대로 선교 사업에도 힘을 보태고 싶고요."

신동엽의 어머니는 1995년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1991년 '간암으로 3개월밖에 못 산다'는 판정을 받았지만, 기도원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4년을 더 살았다고 했다. 그는 "병원에서 안 된다고 했지만, 다른 힘으로 버티는 걸 보면서 인간은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는 사실을 믿게 됐다"고 했다.

◆"연예인의 의견 표명은 신중해야"
―요즘 연예인들이 미국산 쇠고기와 광우병 논란에 대한 입장을 블로그 등을 통해 표명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저는 연예인은 공인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나라의 녹을 먹는 건 아니니까요. 그냥 유명인일 뿐입니다. 하지만 저는 연예인은 신중해야 한다고 봅니다.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내가 좋아하는 스타가 이렇게 얘기했기 때문에 나도 그렇게 한다'는 팬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의견을 내려면 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하거나, 신문에 칼럼을 쓰는 등 공식적인 방법을 택하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순간적인 감정에 의해 자극적인 단어를 써가면서 블로그 등에 글을 올리는 것은 신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대중의 사랑을 받는 연예인이라면 어떤 사회적 현안이 정치 논리로 흘러가는 것을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3시간여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후배 기자들이 꼭 물어봐 달라고 했던 질문을 어렵게 던졌다.

―예전에 사귀던 수퍼 모델 이소라 씨와는 전화 연락이라도 하시나요?
"아니요. 새로운 사업을 준비한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헤어진 이후로는 전혀 연락을 안 하지요."

―지금 부인께서 이해해 주십니까?
"에이, 뭐 온 국민이 다 아는 얘긴데…. 하긴, 신혼 초기에 아내와 함께 TV를 보는데 채널을 돌리다가 이소라씨가 진행하는 프로가 딱 걸린 거예요. '이걸 채널을 바꿔야 하나, 그냥 봐야 하나' 고민했죠. 애꿎은 남자 진행자에 대해 혼자 한참을 얘기하다가 바꿨지요. 아내가 '아니, 왜 그래요'라며 웃으며 넘겨주더군요. 정말 진땀 나는 순간이었습니다."

★신동엽은 누구?


1971년 충북 제천에서 태어났다. 경복고와 서울예대 연극영화과를 나왔다. 1991년 SBS 특채 개그맨으로 데뷔해 "안녕하시렵니까?"라는 유행어로 인기를 얻었다. 1999년 대마관리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지만, 뛰어난 재치와 순발력으로 예능 MC의 간판으로 자리 잡았다. 2002년 KBS 연예대상, 2003년 KBS 연예대상, 2004년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TV부문 방송진행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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