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화, 일류로 사는 일


A씨는 보통아이로 자랐다. 그나마 다른 애들보다 더 잘하는 게 있다면 그림 그리기 정도였다. 부모는 그를 미술학원에 보냈다. 몇 달 동안 그는 미술학원에서 데생 수업을 받았다. 단조롭고 재미도 없는 일이었다. 그는 어머니와 갈등을 겪다가 곧 미술학원을 그만두었다.


성적이 남달리 좋아지기 시작한 것은 중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부터였다. 중학교 2학년 때는 반에서 일등을 했고, 졸업반 때는 전교 일등을 했다. 어머니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종달새 같은 목소리로 ‘우리 아들, 우리 아들 …’ 했다. 등하교에 한 대뿐인 자가용이 그에게 배정됐고, 청소를 비롯하여 집안의 모든 일에서 그는 언제나 제외됐다. 특별취급을 받기로는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선생님이 그의 이름을 알고 있었고 모든 동료들이 머리 좋은 그를 우러러보았다.


고등학교 이학년 때 잠시 진로를 고민한 적이 있었다. 갑자기 미술대학을 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났다. 어머니는 펄쩍 뛰었다. 학교 선생들도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은 전교 일등짜리가 무슨 미술대학에 가느냐고 말했다. 그로서도 어차피 확신이 있어서 해본 소리는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특별취급을 받는 게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영원히 특별취급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는 무난히 일류 대학에 들어갔다.


경영과였다. 성적은 대학에서도 언제나 상위권이었다. 상위권을 유지하느라 다른 일은 경험할 겨를이 없었다. 여전히 그는 전도유망한 청년으로 특별취급을 받았다. 그는 머리가 좋아서 남이 이맛살을 찌푸리게 할 만큼 우쭐해하진 않았지만, 속으론 언제나 그 자신이 남과 다르다고 생각했다. 남과 다른 그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곧바로 취직했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동경해 마지않는 회사였다. 연봉도 물론 좋았다. 시집오겠다는 이쁜 처녀들도 줄을 섰다. 공부를 줄곧 일등 해온 것만큼 애썼더니, 회사에서도 당연지사 진급이 빨랐다. 그의 눈엔 세상이라는 게 별게 아니었다. 그는 오로지 회사가 요구하는 길을 갔다. 고등학교 때는 담임선생과 부모가 요구하는 대로 살았고, 대학교 때는 교수와 부모, 사회에선 회사와 아내가 요구하는 대로 살았다. 모든 것이 탄탄대로였다. 그는 진급을 거듭했고, 아파트를 계속 늘렸고, 더 좋은 차를 샀다.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성공’했다고 말했다. 성공하느라, 한 번도 인생을 뒤돌아볼 기회도 없었다.


그러다가 40대 후반에 그 일이 닥쳤다.


종합건진을 받았더니 무슨무슨 수치가 높다고 했다. 전무로 진급한 지 6개월도 채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사람들은 그가 곧 부사장, 사장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미래의 부사장, 사장이 될 그는 아무런 예감도 없이, 병원에서 시키는 대로 정밀검사를 받았다. 놀랍게도 그의 내장에 똬리를 튼 암 덩어리가 이미 자랄 대로 자라나 있었다.


그는 미칠 것 같았지만 병이 너무 깊어 어찌해볼 도리가 없었다. 항암치료를 받고 나면 몸이 끝간 데 없이 졸아들었다. 미술대학엘 갈까 하고 고민하던 시절이 불현듯 떠올랐다. 병원 복도에 걸린 그림 앞에 서면 전에 없이 눈물이 나왔다. 몇 달 지나지 않아 회사에선 그를 대신한 새 전무가 임명됐다. 그는 병상에서 아무도 몰래 울었다.


그는 처음으로 오랫동안 생애를 뒤돌아보았다.


그제야 생애의 대부분을 누군가의 ‘노예’로 살았다는 걸 그는 비로소 깨달았다. 그에겐 평생 어떤 것을 요구하고 지시하는 ‘명령권자’가 존재했던 것이다. 한 번도 자기 인생의 지도를 자기 혼자 그린 적이 없었다. 매순간 그는 자신의 좋은 머리로 어떤 걸 ‘선택’했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죽음에 앞서 돌아보자 그 모든 건 가짜 자유, 가짜 선택에 지나지 않았다. 그가 평생을 바쳐서 올라온 고지는 애당초 그 스스로 원했던 고지가 아니었다.


‘아아, 내가 원했던 게 이 산이 아니었어.’


그는 죽을 때 마침내 회한에 차서 중얼거렸다.


[출처] 한겨레신문 / 박범신 작가·명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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