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읽고 싶어서 1년 동안 225만원 어치의 책을 훔쳤다는 남자의 사연은 무엇일까.

1월 14일 방송된 SBS '당신이 궁금한 이야기'에서 지난 5일 대구의 대형서점에서 절도를 시도하던 40대 남자가 현장에서 붙잡혀 경찰에 넘겨졌다. 돈이 없어 책을 훔치는 게 일상이 된 이 남자의 방에서는 지난 1년간 훔친 약 162권의 책들이 발견됐다.

 

남자에게 다른 전과는 없었다. 고전부터 최신문학까지 고급스러운 독서 취향을 가진 이 책도둑에 대해 담당경찰들은 '학자풍'이라고까지 얘기했다. 제작진은 법적 처벌을 기다리고 있는 김도엽(가명 45세)씨를 만나기 위해 그의 집을 찾았다. 그의 방 한쪽 벽에는 책장이 있었다. 김씨는 "책장 속 비어 있는 자리는 훔친 책을 빼간 자리다"며 "원래는 꽉 차있었다"고 했다. 그의 책사랑은 대단했다. 김씨는 1988년에 출간된 '무림일기'를 꺼내보이며 "요즘은 구하기 힘든데 헌책방에서 힘들게 찾은 것"이라며 "책 좋아하는 사람들이 보면 부러워할 것"이라고 자랑했다.

회사부도로 실직한지 10년이 지난 김씨는 자신감을 상실하고 두문불출하며 독서에만 몰두했다. 함께 살고 있는 김씨의 부모는 그가 책을 훔치고 경찰 조사를 받았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김씨의 아버지는 일자리를 구할 생각도 없이 결혼도 하지 않은 채 살아가는 김씨를 사실상 포기한 상태라고 말했다.

대형서점을 함께 찾은 제작진은 김씨의 전혀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는 "책만 보면 눈이 커지는 것 같고 기분이 좋아진다"고 했다. 이어 제작진에게 마르케스의 '100년 동안의 고독'과 그가 지난 2009년 8월에 훔친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를 추천했다. 제작진이 김씨에게 취업과 관련된 자기 계발서를 내밀자 "그런 것은 전혀 읽을 생각이 없다. 한 트럭 줘도 안 읽는다"고 답했다. 김씨는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자신의 인생의 책으로 꼽으며 "책 내용이 나의 경험과 일치하는 점이 많아 공감이 많이 됐다"고 털어놨다.

김씨는 굳게 닫힌 방 안에서 어제와 같은 오늘을 살아가고 있었다. 스스로를 '루저'(낙오자)라고 말하며 희망을 잃은 모습이었다. 그는 책을 통해 위안을 얻고 힘든 현실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김씨는 그동안 120여 권의 책을 훔친 서점을 찾아 주인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했다. 주인은 김씨를 용서하고 "좋은 직장을 얻어서 돈 벌어서 책 많이 팔아달라"며 웃으며 말했다. 또 김씨가 가장 좋아하는 책인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선물로 건넸다.

그런 일이 있은 후 김씨에게 변화가 생겼다. 제작진이 다시 김씨를 찾았을 때 김씨는 취업을 위한 정보지를 보면서 이력서를 쓰고 있었다. 10년 만에 이력서를 쓴다는 그는 회사를 그만둔 2002년 이후부터 아무런 경력이 없었다. 김씨는 "지나고 보니 다 의미 없는 시간이었다"며 "올해부터는 취업을 해서 공백없는 삶을 살고싶다"고 각오를 내비쳤다. 이어 "돈을 벌어 한권 두권씩 책을 모아 책장을 다 채우고 싶다"고 했다. 김씨는 훔쳐서 갖게 된 여러 권의 책보다 노력해서 얻은 1권의 책이 더 소중하다는 사실을 깨달아가고 있었다.

 

 

원본출처 :http://photo.media.daum.net/photogallery/society/0806_affair/view.html?photoid=3299&newsid=20110115114912714&p=new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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