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에게서 받아 자식에게 물려줄 것”

 

존 줄리어스 노리치 경의 서재는 책으로 가득했다. 그는“책을 전기·역사·문학·논픽션 등 주제별로 정리한다. 자주 참고하는 책은 손 닿기 쉬운 곳에 놓는다”고 말했다.


“나는 학자(scholar)가 아니다. 모든 사람들이 읽을 수 있도록 쓰는 이야기꾼(story teller)일 뿐이다.” 자신을 이렇게 소개한 작가의 집을 찾느라 런던 시내를 조금 헤맸다. ‘작은 베니스(Little Venice)’라 불리는 런던 중심 서부의 고급 주택가. 동화 속에 나올 것 같은 아담한 2층집들이 낮은 담장을 두고 이어졌다.

존 줄리어스 노리치(John Julius Norwich·78) 경은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역사작가 중 한 사람이다. 영국 왕실로부터 대대로 작위를 세습받는 귀족인 그는 20~30대 젊은 시절 유고슬라비아 베오그라드와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외교관으로 활동했다. 1964년 12년간의 외교관 생활을 접고 역사저술에 뛰어들어 ‘시칠리아의 노르만인들’ ‘아토스 산’ ‘베네치아의 역사’ 등 문제작을 잇달아 출간했다. 1994년부터 7년간 집필한 ‘비잔티움 연대기’(바다 출판사)는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그의 집을 찾은 지난 10일 런던 날씨는 여전히 변덕스러웠다. 아침에 조금 흐리다 싶더니 이내 장대비가 쏟아졌다. 노리치 경은 “험한 날 오게 해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건 당신 잘못이 아니다” 했지만 미안한 기색을 고치지 못했다. 그는 낯선 동양 기자에게 우산 놓을 위치를 알려주고 거실 소파 어디든 편한 곳에 앉으라고 했다. 고급 양장본 책들이 가득했다.
―서재가 꽤 오래돼 보인다.

“이 서재는 40년째 사용하고 있다. (런던 서남부) 바스(Bath) 남쪽 30분 거리의 별장에도 서재가 있다. 세보지는 않았지만 책은 3000~4000권 정도 될 거다.”

―서재를 부모로부터 물려받았나.

“서재뿐이 아니다. 여기 보이는 모든 것을 물려받았다. 책은 물론 벽에 붙어 있는 그림, 이 전화기, 작은 물품들 모두 부모님의 손때가 묻어 있다.”

―부모님의 서재가 당신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나.

“아버지는 직업 정치인이었다. 프랑스 혁명의 정신적 지주인 탈레랑(Charles de Talleyrand-Perigord· 1754~1838)의 전기를 쓴 작가이기도 하다. 어머니도 세 권의 책을 썼다. 나는 열한 살 때까지 유모의 손에서 컸고 기숙학교를 다녔다. 아버지 어머니로부터 혼난 기억은 없다. 하지만 책을 좋아한 부모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는 “잠깐 기다리라” 하더니 책 한 권을 들고 왔다. ‘더프 쿠퍼의 일기(The Duff Cooper Diaries)’라는 제목의 책이었다. 그는 “아버지가 쓴 일기다. 2년 전 새로 신판을 냈다”면서 책 표지에 기자의 이름을 쓰고 사인한 뒤 책을 건넸다.

―그런데 당신은 성(姓)이 노리치이고, 아버지는 쿠퍼인 게 이상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2년 전에 작위를 받았다. 작위를 받으면서 선택한 성이 노리치다. 아버지는 평생 쿠퍼라는 성을 써왔기 때문에 (이 책에는) 쿠퍼라고 한 것이다. 나도 23세 때까지는 성이 쿠퍼였다. 아버지로부터 작위를 물려받은 후 노리치가 된 거다. 내 아들도 쿠퍼인데 내가 죽고 작위를 물려받으면 노리치를 쓰게 된다.”

―런던 동북부에 노리치라는 도시가 있던데 당신과 무슨 관련이 있나.

“조상들이 그곳에서 대대로 살았다. 아버지가 작위를 받으면서 그 지역 이름을 딴 것이다. 작위를 받고 상원의원 자리도 세습됐는데, 5년 전 토니 블레어 총리가 세습제를 없애 버렸다.”

―아버지가 자주 하던 말씀을 기억하는 게 있나.

“아버지는 ‘모든 것을 미워하고 모든 것을 사랑하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라틴어로 ‘오디 에트 아모(Odi et amo)’다. 세상의 모든 것에 자신을 내던지고 모든 것을 끝까지 겪은 뒤에 미워하든지 사랑하든지 결단하라는 이야기다.”

―서재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 외에 다른 일도 하나.

“편지를 쓴다. 요즘은 서재에서 글을 쓰지 않는다. 집에서 가까운 사설 도서관에서 글을 쓴다. 전화벨 소리 같은 생활소음을 떠난 조용한 곳이다. 내 전용 자리가 있다. 도서관에는 세계의 모든 책이 있다. 몰두할 수 있는 공간이다. 아침 11시쯤 도서관에 가서 밤 늦게 집에 돌아온다. 나는 침대에 누우면 단 두 페이지도 읽지 못하고 곯아 떨어진다.”

―글은 손으로 쓰나.

“노트북 컴퓨터로 쓴다. 전에는 손으로 썼는데 타자기를 거치지 않고 컴퓨터로 바로 넘어갔다.”

―서재가 자녀 교육에도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하나.

“딸은 작가고, 아들은 건축가다. 아들은 책 읽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딸에게는 영향을 준 것 같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줬는지는 모르겠다. 딸이 더 잘 알고 있을 거다.”

―자녀들이 읽었으면 하고 바라는 책을 손 닿기 쉬운 곳에 비치해 놓기도 했나.

“그런 적은 없다. 영향을 주려고 일부러 노력한 적은 없다. 아이들이란 부모와 반대로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나. 딸은 자기 스스로 많이 읽었다. (책이 가득한) 환경이 영향을 준 것은 틀림없다.”

―서재를 자녀에게 물려줄 생각인가.

“(단호하게) 물론이다.”

―당신의 책 ‘비잔티움 연대기’ 한국어판(바다출판사)은 세 권짜리 두꺼운 책인데 한국에서 초판이 다 팔렸다.

“(놀라며) 그런가? 듣기 좋은 소리다. 매우 놀랐다. 잘 팔리는 이유? 당신에게 물어봐야 하지 않겠나. 다만 글을 쓸 때 쉽게 읽히려고 노력한다. 나는 학자가 아니라 이야기꾼이라고 말하지 않았나. 처음부터 목차를 잡고 책을 쓰는 건 아니다. 먼저 쓰기 시작하고 다시 읽어보고 주제를 잡아 그곳에 분속시키는 방식으로 쓴다. 주제별로 쓰기보다는 시간 순서대로 쓰는 편이다.”

―지금 준비하고 있는 책이 있나.

“교황의 역사(History of the Pope)를 쓰고 있다. 2000년을 거슬러 올라가서 지금까지 정리한 교황의 역사다. 450쪽짜리 책 한권으로 낼 것이다. 요즘은 참고 도서를 읽고 있다.”


영국작가 존 노리치씨가 거실 서재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한수 기자


[런던=이한수 기자 hs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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