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있는’ 기업
선진 기업과 대등한 경쟁을 해야 하는 이상 이제 우리 기업에게도 ‘생각’이 필요해졌다. ‘물건만 열심히 만들면 된다’는 소박한 믿음으로도 성장이 가능했던 시절은 지나갔다. 한국 기업들도 창의적인 전략으로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개척해 나아가야 한다.
한국에 귀화해서 살고 있는 변호사이자 방송인인 로버트 할리 씨가 한국말 중에 이해되지 않는 표현이 있었다고 한다. 바로 헤어질 때 하는 인사말 ‘수고하세요’이다. ‘수고하라’는 표현은 영어로 따져보면 ‘Work hard’인데, 미국 사람들은 헤어지면서 이러한 말을 하지 않는단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한테 ‘수고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찜찜했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이 경우에 ‘Take it easy’라는 인사말을 자주 사용하는데, 이 말은 ‘천천히 하라’는 뜻으로 ‘수고하세요’와 정반대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할리 씨는 그래서 한국생활 초창기에 ‘수고하지 마십시오’라고 했더니, 어떤 사람은 기분 나빠하며 ‘안녕히 가지 마십시오’라고 되받아 치더라고 한다. 그 후 그 역시 ‘수고하라’는 말을 쓰지만 아직도 왜 이렇게 표현하는지 알 수 없다고 한다. ‘정말로 한국인들은 열심히 일하는 것을 좋아하는가 보다’라고 생각할 수 밖에……
‘수고하라’는 말과 함께 한국인들이 자주 쓰는 말이 ‘열심히 하라’는 말이다. 언어는 시대를 반영한다. 먹고 살기 힘들었던 시절, ‘밥 먹었어?’라는 인사말을 자주 썼던 것이 그 예다. ‘수고하라’, ‘열심히 하라’는 표현에도 한국의 발전 과정이 녹아있을 것이 틀림없다.
한국인들은 선진국이 했던 것을 뒤따라 하면서 발전해 왔다. 그 노력이 오늘의 한국을 만들었다. 한국 기업들 역시 선진 기업들이 하던 것을 그대로 들여와서 그들과 같은 수준으로 이루어 내기 위해 일단 열심히 일하고 보았다. 당시로서는 한국 기업들에게 고민 많이 하지 말고 열심히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고 정답이었다. 생산성이 뒤지는 것을 더 많은 시간 일해 보충했고, 품질이 떨어지면 전수검사를 해서 맞추는 식으로 일했다. 한국인들에게 ‘수고해’라는 말은 아주 자연스런 것이었다.
허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이제 한국도 선진국 문턱에 와 있고, 한국 기업 역시 세계 최고의 글로벌 우량기업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선진국을 모방하고, 선진 기업을 벤치마킹 하는 것으로 충분했던 시대가 지나간 것이다. 한국 기업들도 글로벌 기업들과 선진시장에서 같은 조건 하에서 경쟁해야 한다. 해외 시장의 고객들이 한국 기업의 제품이라고 해서 봐주지 않는다. 이제 일등이 하는 것을 그대로 따라 해서는 일등이 될 수 없다. 우리가 모방하는 동안 그들은 저만큼 앞서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 열심히 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잘 해야 한다. ‘열심히 한다’는 것은 ‘아무 생각 없이 부지런히 일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통하던 시대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기업도 생각을 해야 한다. 아무 생각 없이 열심히만 해서는 글로벌 경쟁에서 승자가 될 수 없다. 똑똑한 기업만이 살아남는 시대가 된 것이다.
네 종류의 사람
기업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한번 개인을 생각해 보자. 흔히 부지런하냐, 똑똑하냐에 따라 네 가지 유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똑똑하고 부지런한 사람 ‘똑부’, 똑똑하고 게으른 사람 ‘똑게’, 멍청하고 부지런한 사람 ‘멍부’, 멍청하고 게으른 사람 ‘멍게’ 등이 그것이다. 얼핏 생각하기에는 똑부가 가장 바람직한 유형인 것 같지만 어떠한 일을 하느냐,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느냐에 따라 적합한 유형이 달라진다. 가령 예술처럼 창의적인 일에는 똑게가 어울리지만, 단순 작업은 생각 많은 것이 오히려 방해가 되며 멍부가 가장 잘 할 수 있다.
네 유형 중에 누가 가장 바람직한 리더냐에 대한 논의는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 단순한 생각으로는 똑똑하고 부지런한 지도자가 가장 바람직할 것 같은데, 실제는 그렇지 않다. 똑부는 너무나 유능한 나머지 조직원들이 그에게 기대게 되어 조직 전체가 게으르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똑부 밑에서는 아랫사람들이 일을 게을리 해 실력이 늘지 않을 가능성이 많다. 그래서 똑똑하고 게으른 리더가 가장 바람직하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민경조 코오롱건설 부회장은 CEO에도 앞서 말한 네 가지 유형이 있다고 하면서, 똑똑하고 게으른 사람이 최고라고 이야기했다. 똑게 CEO는 직접 뛰어다니는 일이 적고 유능한 직원에게 책임을 맡겨 일을 효과적으로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최악의 리더 유형은 무엇일까? 멍청하고 게으른 경우가 최악일 것 같지만, 오히려 멍청하고 부지런한 경우가 최악의 리더라고들 한다. 멍게는 생각도 없지만 게으르기 때문에 큰 사고를 치지 않는다. 복지부동형으로 조직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지만 똑똑한 사람들이 정한 방향을 따라 가기 때문에 조직에 해가 되지도 않는다. 하지만 멍청하고 부지런한 지도자는 잘못된 결정을 내린 뒤 바로 실행에 옮기기 때문에 바로잡을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 방향감각이 없는 상태에서 열심히 하기 때문에 커다란 사고를 치게 되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멍부는 대부분 ‘나는 멍청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데 있다. 열심히 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무언가 일을 잘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한편 네가지 유형의 사람 중에 누가 가장 좋은 부하인가를 생각해 보면 사정이 달라진다. 부하들 중에서는 말을 잘 알아 듣고 열심히 하는 똑부가 제일 좋다. 멍부도 부하로 나쁘지 않은데, 방향을 정해주면 열심히 실행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어느 유형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말할 수 없다. 역할에 따라 적합한 사람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창의력과 실행력
그러면 기업에게 똑똑하고 부지런하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똑똑한 기업, 즉 생각이 있는 기업이라 함은 경쟁사와 다른 창의적인 전략으로 기업이 나아갈 방향을 미리 그려놓고 실행하는 기업이다. 이들은 새로운 시장을 창조하며 고객에게 차별화된 가치를 제공하고 산업을 선도한다. 많은 기업들이 이러한 기업의 전략을 따라 한다. 하지만 그 때 이 기업은 다른 전략으로 한발 더 앞서간다.
기업에게 있어 ‘부지런하다’는 것은 ‘해야 할 일을 뒤로 미루지 않고 즉각 해낸다’는 의미다. 그래서 목표가 정해지면 무슨 일이 있어도 이를 달성해 내는 실행력이 부지런한 기업의 특징이다. 이러한 기업은 체질이 강하고 대부분의 일을 스스로 해내는 뚝심이 있다. 산업 환경이나 시장 여건이 좋지 않아도 목표를 달성한다. 주로 기존 고객을 공략하고 기왕에 존재하는 가치를 제공하는데 역점을 둔다.
기업에게 있어 똑똑함과 부지런함은 창의력과 실행력으로 귀결된다. 두 가지 기준으로 나누면 기업 역시 네 가지 유형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창의력도 없고 실행력도 부족한 기업은 경쟁에서 낙오되므로, 세 가지 유형을 이야기할 수 있겠다. 기업의 경우에도 어느 유형이 가장 좋다고 말할 수 없다. 기업이 처한 환경과 시대적 상황에 따라 적합한 전략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기업의 유형을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자.
창의적인 전략을 선도하고 실행력도 뛰어난 기업으로는 GE를 생각해 볼 수 있다. GE는 설립 초기부터 산업 내에서 선두 기업이었다. 항상 남다른 생각으로 사업에 임했기 때문에 시장 환경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바꾸기도 한다. 가령 전기산업 태동기에 시장이 작을 때는 고객들에게 다양한 금융 지원을 통해 시장을 창출하기도 했다. 이러한 전략을 발전시켜 현재 가장 많은 이익을 창출하는 금융서비스 사업을 일구었다.
그런가 하면 GE는 실행력을 강조하기도 한다. GE의 전 CEO였던 잭 웰치는 관료화된 GE를 혁신하기 위해서 워크아웃 운동이나 6시그마를 활용하여 GE의 실행력을 이끌어냈다. 잭 웰치가 리더십 있는 사람을 구별해 내는 방법으로 제시한 것이 4E다. Energy(활력), Energize(동기부여), Edge(결단력), Execution(실행력)이 그것인데,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 실행력이다. 앞의 세 가지 E를 충족시키더라도 실제로 계획을 실행시켜 결과를 산출하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이야기다.
실행력보다는 창의력이 뛰어난 기업으로는 애플을 들 수 있다. 2007년 애플은 회사 이름에서 ‘컴퓨터’란 단어를 뺐다. 맥(Mac), 아이팟(iPod), 애플TV, 아이폰(iPhone) 등 제품 카테고리 중 컴퓨터 관련 제품은 ‘맥’뿐이어서 회사명을 바꿨다고 한다. 사실 그 때까지 애플은 기술적으로 늘 앞서가는 컴퓨터 기업이었다. 이러한 애플이 자기정체성을 부정하며 새로움을 추구한 것이다. 애플은 아이팟과 아이튠스로 미국인들이 보다 편리하게 음악을 즐길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후 아이폰을 출시하여 다양한 멀티미디어를 모바일 영역으로 확산시켰으며, 이제는 애플TV로 그 외연을 확장하고 있다. 컴퓨터 기업이 미디어 제품이나 통신, 가전 제품을 출시하면서도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것은 고객에게 차별화된 가치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차별화된 전략으로 애플은 비즈니스 위크에서 선정하는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에서 2005년 이후 줄곧 1위를 지켜오고 있다. 그런데 애플은 모든 것을 스스로 하지는 않는다. 핵심이 되는 소프트웨어의 설계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제품을 대만의 폭스콘(Foxconn Electronics)에서 제조한다. 제조 경쟁력보다는 아이디어로 승부를 거는 기업이 애플이다.
마지막으로 창의력보다는 실행력이 뛰어난 기업으로는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한국 기업을 들 수 있다. 잡생각 없이 앞만 보고 뛰는 실행력이 지금의 한국 기업을 만들었다.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최근 경영 환경은 실행력이 중심인 기업에게 전략적 창의성이나 차별화된 그림을 그릴 것을 요구하고 있다. 실행력이 중심이 되었던 과거의 전략이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된 것이다. 그런데 실행력이 핵심인 기업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멍부처럼 열심히 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사실 이러한 기업 중에는 전략이 없는 기업이 많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전략이 없다는 것을 모른다. 이들은 대부분 목표를 달성하는 것 자체를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들의 ‘전략’이라는 것을 보면 매출과 이익을 얼마 달성하겠다는 식으로 숫자투성이다. 그럼에도 바쁘게 일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들이 전략이 없다는 사실조차도 모른다.
행동하는 기업에서 생각하는 기업으로
유행이나 다른 사람의 생각을 그대로 이야기하는 것이 생각 없는 사람의 특징이다. 이는 곧 생각 없는 기업의 특징이기도 하다. 생각이 있는 기업은 항상 남다른 일을 하고 남과 다르게 일한다. 기존의 관행에 얽매이지 않고 항상 새로운 시도를 한다. 혁신이 일상화되어 있다. 특히 운영 효율성 혁신보다는 전략적 혁신에 많은 시간을 들인다. 그러면 생각이 있는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 새로운 일을 시도하라
우선 경영진이 자기 회사가 생각이 없는 기업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목표 수치를 설정하고 달성하는 것이 전략이 아니라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또 생각하는 기업으로 바꾸겠다는 의지가 명확해야 한다. 해보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막상 도전하기가 힘들 것이다. 하지만 일단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이 변화의 첫걸음이다.
흔히 기업에서는 성공 가능성이 적은 혁신적인 일을 시도하는 것을 꺼린다. 많은 자원을 투입해도 실패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손해가 날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실패가 경력에도 좋지 않고 보상에서도 불리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움직이지 않는다. 그래서 기업에서는 잘 아는 것만 시도하게 된다. 그러다가 사업 전체가 어려움에 빠진 후에야 어쩔 수 없이 색다른 시도를 하게 된다.
그러나 희망적인 진리가 있다. 가능성이 적은 일을 성공하기는 힘들지만 여러 번 시도하면 성공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동전을 10번 던질 때 나오는 결과를 모두 맞출 수 있다고 장담하는 사람은 없다. 확률이 무려 1/1024로 0.1%도 안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1,000명이 시도한다면 어떻게 될까? 1,000명이 시도했을 때 동전 10번 던진 결과를 맞힌 사람이 나올 확률은 62%나 된다. 2,000명이 시도한다면 86%, 3,000명일 때는 95%나 된다. 5,000명이 시도했을 때는 99%가 넘는다. 성공 가능성이 0.1%도 안되는 일도 5,000명 이상인 회사에서 시도했을 때는 99% 이상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이다. 결국 많은 시도를 하는 기업이 성공의 열매를 딸 수 있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일단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 실행의 극한으로 창의력을 만들어 내라
새롭고 창의적인 일을 시도하라고 해서 실행력이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는 아니다. 제조업으로 역량을 쌓아온 한국 기업에게는 브랜드 자산이나 마케팅 파워 역시 제조 역량에서 나온다. 과거 일본 기업들이 원가가 싼 인도네시아 등으로 생산기지를 옮겼다가 다시 유턴하는 사례에서도 기본을 버리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깨달을 수 있다. 우리 기업이 하루 아침에 애플이 하는 방식으로 일을 하는 것은 어렵다. 또 나이키가 하듯이 마케팅만 하고 제조 등 나머지 기능을 아웃소싱하기도 어렵다. 최근 소프트 경쟁력이 강조되면서 나이키의 사업모델이 자주 거론된다. 사실 1962년 설립된 나이키는 초기부터 아웃소싱 전략을 택했다. 초기에는 일본의 신발 제조업체에서 신발을 만들다가 원가가 비싸지자 한국과 대만으로 공급처를 옮겼고 지금은 대만을 비롯한 인도네시아, 중국, 태국 등에서 아웃소싱을 하고 있다.
한국 기업의 창조적 전략은 우리의 장점인 실행력을 극대화했을 때 나온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가 과거에 쌓아온 것을 토대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한다. 조선업에서 새로운 제품을 만든 대우조선해양의 LNG-RV선 사례를 살펴보자. LNG-RV선은 해상에서 뽑아낸 천연가스를 액화 및 기화 과정을 거쳐 소비자에게 직접 전달하는 선박이다. 즉 플랜트와 선박이 합쳐진 것인데, 대우조선해양의 플랜트 설비 제조 기술과 선박 건조 기술이 합쳐져 탄생했다. 2005년에는 천연가스를 해양에서 뽑은 후 바로 액화시켜서 운반하는 장치를 탑재했는데, 작년에는 기화시키는 장치까지 탑재하기 시작했다. 현재 이러한 선박을 건조할 수 있는 곳은 이 회사뿐이다. 차별화된 제품의 창의성이 실행력에 기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한국 기업은 우리가 잘 할 수 있는 제조역량을 차별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도요타가 창업 이래 지속적으로 제품을 끊임없이 개선해서 차별화된 제품을 만들어 내듯이, 우리의 역량을 토대로 새로운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
●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를 조성하라
기업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는 것은 실패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흔히 우리는 잘 했을 때 칭찬하고 실패했을 때 벌을 받는다는 신상필벌을 이야기한다. 결과를 중시하는 기업에서 이러한 현상이 나타난다. 하지만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 위해서는 실패를 인정하고 용인할 필요가 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3M의 포스트 잇 역시 실패에서 나온 것이다. 1968년 3M의 스펜서 실버라는 연구원은 참담한 실패를 맞보았다. 강력접착제 개발 프로젝트가 고무풀보다 약한 접착력을 가진 접착제로 막을 내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버는 이 부끄러운 결과를 동료들에게 털어놓았다. 몇 년 후 아트 프라이라는 연구원이 교회에서 성가집에 붙은 메모 테이프를 떼려고 애를 먹은 일이 있었다. 이 일로 쉽게 붙였다가 떼는 메모지를 개발하면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몇 년 전 실버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 결과 발명된 것이 포스트 잇이다. 만약 3M에서 실패를 용인하고 드러내는 분위기가 아니었다면 그 회사의 최대 발명품 중 하나인 포스트 잇은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실패를 창피하게 여기면서 숨기는 경향이 있다. 최근 롯데 자이언츠에 새로운 희망을 불어넣고 있는 제리 로이스터 감독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문화 차이인지 모르겠지만, 한국 선수들은 실패할 때마다 크게 실망한다. 미국 선수들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실패 경험을 바탕으로 성장한다.” 비슷한 이야기를 축구 명장인 히딩크 감독에게서도 들을 수 있다. “축구는 실패투성이 게임이다. 골을 만들어내려고 수많은 드리블과 패스끝에 겨우 한두 골로 승부가 결정되는 경기다. 그 숱한 시도들은 대부분 실패하고 만다. 축구는 실패를 컨트롤하는 경기다. 축구에서는 단 한 번의 실패보다 한 번의 성공을 위해 얼마나 많은 시도를 했느냐가 훨씬 중요하다.”
● 성공체험을 확산시켜라
실행에 익숙했던 조직에 창의성이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또 하나가 필요하다. 바로 성공체험이다. 새로운 시도에 대한 성공체험은 기존의 관성을 바꾸는데 중요한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얼마 전 EBS TV에서 방영된 <아이의 사생활>이란 프로그램에서, 자아존중감을 가진 아이들은 공통적으로 성공체험을 했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성공체험이 자기확신과 자신감을 갖다주는 것이다. 기업 조직도 마찬가지다. 일단 쉬운 일이라도 성공을 거듭하게 되면 어려운 일에 부닥쳤을 때 인내심이 커진다. 그 결과 점점 더 어려운 일을 시도할 수 있게 되고 마침내 성공하게 되는 것이다.
2000년부터 8년 연속 세계 판매 1위를 하고 있는 LG전자의 에어컨 사업부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성공체험이었다. 에어컨 사업부의 한 직원의 말이다. “조직 내에서 한번 성공체험을 해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천지 차이가 있다. 성공체험을 해본 사람은 중간 과정이 힘들어도 ‘된다’는 확신을 가지고 꾸준히 밀어붙인다. 반면 성공체험이 없는 사람은 중간 과정이 힘들면 자꾸만 다른 곳에 눈을 돌린다.” 다른 구성원이 부연한다. “성공체험을 해본 사람은 낙관적이고 긍정적이다. 그래서 꾸준히 노력하며 일에 대한 두려움과 망설임이 없다.” 즉 비즈니스라는 것이 답답하고 지루한 과정을 거치며 꾸준하게 진행되어야 성과가 나는데, 성공체험을 해본 사람과 조직만이 그 과정을 견딜 수 있다는 것이다. 작은 성공체험을 한 후 이것을 확산시키는 것이 그래서 중요하다.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길러야
지금 한국 기업은 ‘부지런히 일하는 기업’에서 ‘생각이 있는 기업’으로 변해야 하는 시점에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많은 기업들이 차별화된 전략을 수립하기 위해서 동분서주하고 있다. GE를 찾아 다니고, 애플을 연구한다. 컨설팅 회사에서는 구미에 맞는 상품을 기획하여 판매하고 있다. 포트폴리오 조정, M&A, 신사업 등 중장기 전략 수립부터 창의적으로 생각하는 기술까지 패키지도 다양하다. 그러나 경쟁무기로서의 생각은 남이 해줄 수 없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멋진 이야기를 자기 것인 양 떠벌려봤자 금방 들통난다. 내가 가진 철학과 무언가 어울리지 않기 때문에 말의 앞뒤가 맞지 않는다. 돈을 주고 논술 과외를 했다고 해서 큰 도움 안된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 아니므로 시험 볼 때만 당장 써먹고 금방 잊어버리게 된다. 논술 과외 받기보다 신문 보면서 스스로 생각한 학생들이 시험 더 잘 본다. 스스로 우리 체질에 맞는 전략을 개발해야 진정한 차별화가 가능하다. 생각은 하늘이 인간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다.
[출처] LG경제연구원
선진 기업과 대등한 경쟁을 해야 하는 이상 이제 우리 기업에게도 ‘생각’이 필요해졌다. ‘물건만 열심히 만들면 된다’는 소박한 믿음으로도 성장이 가능했던 시절은 지나갔다. 한국 기업들도 창의적인 전략으로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개척해 나아가야 한다.
한국에 귀화해서 살고 있는 변호사이자 방송인인 로버트 할리 씨가 한국말 중에 이해되지 않는 표현이 있었다고 한다. 바로 헤어질 때 하는 인사말 ‘수고하세요’이다. ‘수고하라’는 표현은 영어로 따져보면 ‘Work hard’인데, 미국 사람들은 헤어지면서 이러한 말을 하지 않는단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한테 ‘수고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찜찜했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이 경우에 ‘Take it easy’라는 인사말을 자주 사용하는데, 이 말은 ‘천천히 하라’는 뜻으로 ‘수고하세요’와 정반대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할리 씨는 그래서 한국생활 초창기에 ‘수고하지 마십시오’라고 했더니, 어떤 사람은 기분 나빠하며 ‘안녕히 가지 마십시오’라고 되받아 치더라고 한다. 그 후 그 역시 ‘수고하라’는 말을 쓰지만 아직도 왜 이렇게 표현하는지 알 수 없다고 한다. ‘정말로 한국인들은 열심히 일하는 것을 좋아하는가 보다’라고 생각할 수 밖에……
‘수고하라’는 말과 함께 한국인들이 자주 쓰는 말이 ‘열심히 하라’는 말이다. 언어는 시대를 반영한다. 먹고 살기 힘들었던 시절, ‘밥 먹었어?’라는 인사말을 자주 썼던 것이 그 예다. ‘수고하라’, ‘열심히 하라’는 표현에도 한국의 발전 과정이 녹아있을 것이 틀림없다.
한국인들은 선진국이 했던 것을 뒤따라 하면서 발전해 왔다. 그 노력이 오늘의 한국을 만들었다. 한국 기업들 역시 선진 기업들이 하던 것을 그대로 들여와서 그들과 같은 수준으로 이루어 내기 위해 일단 열심히 일하고 보았다. 당시로서는 한국 기업들에게 고민 많이 하지 말고 열심히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고 정답이었다. 생산성이 뒤지는 것을 더 많은 시간 일해 보충했고, 품질이 떨어지면 전수검사를 해서 맞추는 식으로 일했다. 한국인들에게 ‘수고해’라는 말은 아주 자연스런 것이었다.
허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이제 한국도 선진국 문턱에 와 있고, 한국 기업 역시 세계 최고의 글로벌 우량기업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선진국을 모방하고, 선진 기업을 벤치마킹 하는 것으로 충분했던 시대가 지나간 것이다. 한국 기업들도 글로벌 기업들과 선진시장에서 같은 조건 하에서 경쟁해야 한다. 해외 시장의 고객들이 한국 기업의 제품이라고 해서 봐주지 않는다. 이제 일등이 하는 것을 그대로 따라 해서는 일등이 될 수 없다. 우리가 모방하는 동안 그들은 저만큼 앞서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 열심히 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잘 해야 한다. ‘열심히 한다’는 것은 ‘아무 생각 없이 부지런히 일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통하던 시대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기업도 생각을 해야 한다. 아무 생각 없이 열심히만 해서는 글로벌 경쟁에서 승자가 될 수 없다. 똑똑한 기업만이 살아남는 시대가 된 것이다.
네 종류의 사람
기업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한번 개인을 생각해 보자. 흔히 부지런하냐, 똑똑하냐에 따라 네 가지 유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똑똑하고 부지런한 사람 ‘똑부’, 똑똑하고 게으른 사람 ‘똑게’, 멍청하고 부지런한 사람 ‘멍부’, 멍청하고 게으른 사람 ‘멍게’ 등이 그것이다. 얼핏 생각하기에는 똑부가 가장 바람직한 유형인 것 같지만 어떠한 일을 하느냐,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느냐에 따라 적합한 유형이 달라진다. 가령 예술처럼 창의적인 일에는 똑게가 어울리지만, 단순 작업은 생각 많은 것이 오히려 방해가 되며 멍부가 가장 잘 할 수 있다.
네 유형 중에 누가 가장 바람직한 리더냐에 대한 논의는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 단순한 생각으로는 똑똑하고 부지런한 지도자가 가장 바람직할 것 같은데, 실제는 그렇지 않다. 똑부는 너무나 유능한 나머지 조직원들이 그에게 기대게 되어 조직 전체가 게으르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똑부 밑에서는 아랫사람들이 일을 게을리 해 실력이 늘지 않을 가능성이 많다. 그래서 똑똑하고 게으른 리더가 가장 바람직하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민경조 코오롱건설 부회장은 CEO에도 앞서 말한 네 가지 유형이 있다고 하면서, 똑똑하고 게으른 사람이 최고라고 이야기했다. 똑게 CEO는 직접 뛰어다니는 일이 적고 유능한 직원에게 책임을 맡겨 일을 효과적으로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최악의 리더 유형은 무엇일까? 멍청하고 게으른 경우가 최악일 것 같지만, 오히려 멍청하고 부지런한 경우가 최악의 리더라고들 한다. 멍게는 생각도 없지만 게으르기 때문에 큰 사고를 치지 않는다. 복지부동형으로 조직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지만 똑똑한 사람들이 정한 방향을 따라 가기 때문에 조직에 해가 되지도 않는다. 하지만 멍청하고 부지런한 지도자는 잘못된 결정을 내린 뒤 바로 실행에 옮기기 때문에 바로잡을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 방향감각이 없는 상태에서 열심히 하기 때문에 커다란 사고를 치게 되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멍부는 대부분 ‘나는 멍청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데 있다. 열심히 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무언가 일을 잘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한편 네가지 유형의 사람 중에 누가 가장 좋은 부하인가를 생각해 보면 사정이 달라진다. 부하들 중에서는 말을 잘 알아 듣고 열심히 하는 똑부가 제일 좋다. 멍부도 부하로 나쁘지 않은데, 방향을 정해주면 열심히 실행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어느 유형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말할 수 없다. 역할에 따라 적합한 사람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창의력과 실행력
그러면 기업에게 똑똑하고 부지런하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똑똑한 기업, 즉 생각이 있는 기업이라 함은 경쟁사와 다른 창의적인 전략으로 기업이 나아갈 방향을 미리 그려놓고 실행하는 기업이다. 이들은 새로운 시장을 창조하며 고객에게 차별화된 가치를 제공하고 산업을 선도한다. 많은 기업들이 이러한 기업의 전략을 따라 한다. 하지만 그 때 이 기업은 다른 전략으로 한발 더 앞서간다.
기업에게 있어 ‘부지런하다’는 것은 ‘해야 할 일을 뒤로 미루지 않고 즉각 해낸다’는 의미다. 그래서 목표가 정해지면 무슨 일이 있어도 이를 달성해 내는 실행력이 부지런한 기업의 특징이다. 이러한 기업은 체질이 강하고 대부분의 일을 스스로 해내는 뚝심이 있다. 산업 환경이나 시장 여건이 좋지 않아도 목표를 달성한다. 주로 기존 고객을 공략하고 기왕에 존재하는 가치를 제공하는데 역점을 둔다.
기업에게 있어 똑똑함과 부지런함은 창의력과 실행력으로 귀결된다. 두 가지 기준으로 나누면 기업 역시 네 가지 유형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창의력도 없고 실행력도 부족한 기업은 경쟁에서 낙오되므로, 세 가지 유형을 이야기할 수 있겠다. 기업의 경우에도 어느 유형이 가장 좋다고 말할 수 없다. 기업이 처한 환경과 시대적 상황에 따라 적합한 전략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기업의 유형을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자.
창의적인 전략을 선도하고 실행력도 뛰어난 기업으로는 GE를 생각해 볼 수 있다. GE는 설립 초기부터 산업 내에서 선두 기업이었다. 항상 남다른 생각으로 사업에 임했기 때문에 시장 환경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바꾸기도 한다. 가령 전기산업 태동기에 시장이 작을 때는 고객들에게 다양한 금융 지원을 통해 시장을 창출하기도 했다. 이러한 전략을 발전시켜 현재 가장 많은 이익을 창출하는 금융서비스 사업을 일구었다.
그런가 하면 GE는 실행력을 강조하기도 한다. GE의 전 CEO였던 잭 웰치는 관료화된 GE를 혁신하기 위해서 워크아웃 운동이나 6시그마를 활용하여 GE의 실행력을 이끌어냈다. 잭 웰치가 리더십 있는 사람을 구별해 내는 방법으로 제시한 것이 4E다. Energy(활력), Energize(동기부여), Edge(결단력), Execution(실행력)이 그것인데,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 실행력이다. 앞의 세 가지 E를 충족시키더라도 실제로 계획을 실행시켜 결과를 산출하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이야기다.
실행력보다는 창의력이 뛰어난 기업으로는 애플을 들 수 있다. 2007년 애플은 회사 이름에서 ‘컴퓨터’란 단어를 뺐다. 맥(Mac), 아이팟(iPod), 애플TV, 아이폰(iPhone) 등 제품 카테고리 중 컴퓨터 관련 제품은 ‘맥’뿐이어서 회사명을 바꿨다고 한다. 사실 그 때까지 애플은 기술적으로 늘 앞서가는 컴퓨터 기업이었다. 이러한 애플이 자기정체성을 부정하며 새로움을 추구한 것이다. 애플은 아이팟과 아이튠스로 미국인들이 보다 편리하게 음악을 즐길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후 아이폰을 출시하여 다양한 멀티미디어를 모바일 영역으로 확산시켰으며, 이제는 애플TV로 그 외연을 확장하고 있다. 컴퓨터 기업이 미디어 제품이나 통신, 가전 제품을 출시하면서도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것은 고객에게 차별화된 가치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차별화된 전략으로 애플은 비즈니스 위크에서 선정하는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에서 2005년 이후 줄곧 1위를 지켜오고 있다. 그런데 애플은 모든 것을 스스로 하지는 않는다. 핵심이 되는 소프트웨어의 설계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제품을 대만의 폭스콘(Foxconn Electronics)에서 제조한다. 제조 경쟁력보다는 아이디어로 승부를 거는 기업이 애플이다.
마지막으로 창의력보다는 실행력이 뛰어난 기업으로는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한국 기업을 들 수 있다. 잡생각 없이 앞만 보고 뛰는 실행력이 지금의 한국 기업을 만들었다.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최근 경영 환경은 실행력이 중심인 기업에게 전략적 창의성이나 차별화된 그림을 그릴 것을 요구하고 있다. 실행력이 중심이 되었던 과거의 전략이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된 것이다. 그런데 실행력이 핵심인 기업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멍부처럼 열심히 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사실 이러한 기업 중에는 전략이 없는 기업이 많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전략이 없다는 것을 모른다. 이들은 대부분 목표를 달성하는 것 자체를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들의 ‘전략’이라는 것을 보면 매출과 이익을 얼마 달성하겠다는 식으로 숫자투성이다. 그럼에도 바쁘게 일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들이 전략이 없다는 사실조차도 모른다.
행동하는 기업에서 생각하는 기업으로
유행이나 다른 사람의 생각을 그대로 이야기하는 것이 생각 없는 사람의 특징이다. 이는 곧 생각 없는 기업의 특징이기도 하다. 생각이 있는 기업은 항상 남다른 일을 하고 남과 다르게 일한다. 기존의 관행에 얽매이지 않고 항상 새로운 시도를 한다. 혁신이 일상화되어 있다. 특히 운영 효율성 혁신보다는 전략적 혁신에 많은 시간을 들인다. 그러면 생각이 있는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 새로운 일을 시도하라
우선 경영진이 자기 회사가 생각이 없는 기업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목표 수치를 설정하고 달성하는 것이 전략이 아니라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또 생각하는 기업으로 바꾸겠다는 의지가 명확해야 한다. 해보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막상 도전하기가 힘들 것이다. 하지만 일단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이 변화의 첫걸음이다.
흔히 기업에서는 성공 가능성이 적은 혁신적인 일을 시도하는 것을 꺼린다. 많은 자원을 투입해도 실패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손해가 날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실패가 경력에도 좋지 않고 보상에서도 불리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움직이지 않는다. 그래서 기업에서는 잘 아는 것만 시도하게 된다. 그러다가 사업 전체가 어려움에 빠진 후에야 어쩔 수 없이 색다른 시도를 하게 된다.
그러나 희망적인 진리가 있다. 가능성이 적은 일을 성공하기는 힘들지만 여러 번 시도하면 성공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동전을 10번 던질 때 나오는 결과를 모두 맞출 수 있다고 장담하는 사람은 없다. 확률이 무려 1/1024로 0.1%도 안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1,000명이 시도한다면 어떻게 될까? 1,000명이 시도했을 때 동전 10번 던진 결과를 맞힌 사람이 나올 확률은 62%나 된다. 2,000명이 시도한다면 86%, 3,000명일 때는 95%나 된다. 5,000명이 시도했을 때는 99%가 넘는다. 성공 가능성이 0.1%도 안되는 일도 5,000명 이상인 회사에서 시도했을 때는 99% 이상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이다. 결국 많은 시도를 하는 기업이 성공의 열매를 딸 수 있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일단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 실행의 극한으로 창의력을 만들어 내라
새롭고 창의적인 일을 시도하라고 해서 실행력이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는 아니다. 제조업으로 역량을 쌓아온 한국 기업에게는 브랜드 자산이나 마케팅 파워 역시 제조 역량에서 나온다. 과거 일본 기업들이 원가가 싼 인도네시아 등으로 생산기지를 옮겼다가 다시 유턴하는 사례에서도 기본을 버리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깨달을 수 있다. 우리 기업이 하루 아침에 애플이 하는 방식으로 일을 하는 것은 어렵다. 또 나이키가 하듯이 마케팅만 하고 제조 등 나머지 기능을 아웃소싱하기도 어렵다. 최근 소프트 경쟁력이 강조되면서 나이키의 사업모델이 자주 거론된다. 사실 1962년 설립된 나이키는 초기부터 아웃소싱 전략을 택했다. 초기에는 일본의 신발 제조업체에서 신발을 만들다가 원가가 비싸지자 한국과 대만으로 공급처를 옮겼고 지금은 대만을 비롯한 인도네시아, 중국, 태국 등에서 아웃소싱을 하고 있다.
한국 기업의 창조적 전략은 우리의 장점인 실행력을 극대화했을 때 나온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가 과거에 쌓아온 것을 토대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한다. 조선업에서 새로운 제품을 만든 대우조선해양의 LNG-RV선 사례를 살펴보자. LNG-RV선은 해상에서 뽑아낸 천연가스를 액화 및 기화 과정을 거쳐 소비자에게 직접 전달하는 선박이다. 즉 플랜트와 선박이 합쳐진 것인데, 대우조선해양의 플랜트 설비 제조 기술과 선박 건조 기술이 합쳐져 탄생했다. 2005년에는 천연가스를 해양에서 뽑은 후 바로 액화시켜서 운반하는 장치를 탑재했는데, 작년에는 기화시키는 장치까지 탑재하기 시작했다. 현재 이러한 선박을 건조할 수 있는 곳은 이 회사뿐이다. 차별화된 제품의 창의성이 실행력에 기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한국 기업은 우리가 잘 할 수 있는 제조역량을 차별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도요타가 창업 이래 지속적으로 제품을 끊임없이 개선해서 차별화된 제품을 만들어 내듯이, 우리의 역량을 토대로 새로운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
●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를 조성하라
기업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는 것은 실패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흔히 우리는 잘 했을 때 칭찬하고 실패했을 때 벌을 받는다는 신상필벌을 이야기한다. 결과를 중시하는 기업에서 이러한 현상이 나타난다. 하지만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 위해서는 실패를 인정하고 용인할 필요가 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3M의 포스트 잇 역시 실패에서 나온 것이다. 1968년 3M의 스펜서 실버라는 연구원은 참담한 실패를 맞보았다. 강력접착제 개발 프로젝트가 고무풀보다 약한 접착력을 가진 접착제로 막을 내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버는 이 부끄러운 결과를 동료들에게 털어놓았다. 몇 년 후 아트 프라이라는 연구원이 교회에서 성가집에 붙은 메모 테이프를 떼려고 애를 먹은 일이 있었다. 이 일로 쉽게 붙였다가 떼는 메모지를 개발하면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몇 년 전 실버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 결과 발명된 것이 포스트 잇이다. 만약 3M에서 실패를 용인하고 드러내는 분위기가 아니었다면 그 회사의 최대 발명품 중 하나인 포스트 잇은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실패를 창피하게 여기면서 숨기는 경향이 있다. 최근 롯데 자이언츠에 새로운 희망을 불어넣고 있는 제리 로이스터 감독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문화 차이인지 모르겠지만, 한국 선수들은 실패할 때마다 크게 실망한다. 미국 선수들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실패 경험을 바탕으로 성장한다.” 비슷한 이야기를 축구 명장인 히딩크 감독에게서도 들을 수 있다. “축구는 실패투성이 게임이다. 골을 만들어내려고 수많은 드리블과 패스끝에 겨우 한두 골로 승부가 결정되는 경기다. 그 숱한 시도들은 대부분 실패하고 만다. 축구는 실패를 컨트롤하는 경기다. 축구에서는 단 한 번의 실패보다 한 번의 성공을 위해 얼마나 많은 시도를 했느냐가 훨씬 중요하다.”
● 성공체험을 확산시켜라
실행에 익숙했던 조직에 창의성이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또 하나가 필요하다. 바로 성공체험이다. 새로운 시도에 대한 성공체험은 기존의 관성을 바꾸는데 중요한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얼마 전 EBS TV에서 방영된 <아이의 사생활>이란 프로그램에서, 자아존중감을 가진 아이들은 공통적으로 성공체험을 했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성공체험이 자기확신과 자신감을 갖다주는 것이다. 기업 조직도 마찬가지다. 일단 쉬운 일이라도 성공을 거듭하게 되면 어려운 일에 부닥쳤을 때 인내심이 커진다. 그 결과 점점 더 어려운 일을 시도할 수 있게 되고 마침내 성공하게 되는 것이다.
2000년부터 8년 연속 세계 판매 1위를 하고 있는 LG전자의 에어컨 사업부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성공체험이었다. 에어컨 사업부의 한 직원의 말이다. “조직 내에서 한번 성공체험을 해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천지 차이가 있다. 성공체험을 해본 사람은 중간 과정이 힘들어도 ‘된다’는 확신을 가지고 꾸준히 밀어붙인다. 반면 성공체험이 없는 사람은 중간 과정이 힘들면 자꾸만 다른 곳에 눈을 돌린다.” 다른 구성원이 부연한다. “성공체험을 해본 사람은 낙관적이고 긍정적이다. 그래서 꾸준히 노력하며 일에 대한 두려움과 망설임이 없다.” 즉 비즈니스라는 것이 답답하고 지루한 과정을 거치며 꾸준하게 진행되어야 성과가 나는데, 성공체험을 해본 사람과 조직만이 그 과정을 견딜 수 있다는 것이다. 작은 성공체험을 한 후 이것을 확산시키는 것이 그래서 중요하다.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길러야
지금 한국 기업은 ‘부지런히 일하는 기업’에서 ‘생각이 있는 기업’으로 변해야 하는 시점에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많은 기업들이 차별화된 전략을 수립하기 위해서 동분서주하고 있다. GE를 찾아 다니고, 애플을 연구한다. 컨설팅 회사에서는 구미에 맞는 상품을 기획하여 판매하고 있다. 포트폴리오 조정, M&A, 신사업 등 중장기 전략 수립부터 창의적으로 생각하는 기술까지 패키지도 다양하다. 그러나 경쟁무기로서의 생각은 남이 해줄 수 없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멋진 이야기를 자기 것인 양 떠벌려봤자 금방 들통난다. 내가 가진 철학과 무언가 어울리지 않기 때문에 말의 앞뒤가 맞지 않는다. 돈을 주고 논술 과외를 했다고 해서 큰 도움 안된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 아니므로 시험 볼 때만 당장 써먹고 금방 잊어버리게 된다. 논술 과외 받기보다 신문 보면서 스스로 생각한 학생들이 시험 더 잘 본다. 스스로 우리 체질에 맞는 전략을 개발해야 진정한 차별화가 가능하다. 생각은 하늘이 인간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다.
[출처] LG경제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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