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요정 김연아가 세계 정상에 서기까지에는 그녀의 어머니 박미희씨의 눈물과 희생이 있었다. 그는 아이와 함께 동작을 연구하고 문제점을 해결했을 뿐 아니라 아이가 힘들 때마다 용기를 복돋아주었다. 그리고 적절한 시점에서 경쟁심을 유도한 것도 바로 어머니였다. 발군의 실력으로 일취월장하고 있는 김연아를 키워낸 어머니의 열정과 남다른 교육법을 담았다.

딸의 재능을 알아보다

김연아 선수의 어머니 박미희씨(49)는 어렸을 때부터 스케이트를 좋아했다. 이 덕분에 연아는 어린 시절부터 스케이트를 접할 수 있었다.

“연아나 애라(김연아의 언니)는 스케이트 타는 걸 아주 재미있어 했어요. 특히 연아는 뭐가 그렇게 신이 나는지 스케이트를 탈 때마다 싱글벙글이었죠.”

그러나 스케이트를 배운 지 1년이 채 안 됐을 때 코치와 충돌이 생겨 그만두게 됐다. 박미희씨는 그때 알았다. 스케이트를 좋아했던 연아가 레슨을 그만둔 뒤 틈만 나면 스케이트 선수들의 비디오를 틀어놓고, 보고 또 보았다는 것을. 스케이트를 잊게 하려고 발레 학원도 보내고, 바이올린도 가르쳐봤지만 통 흥미가 없었다. 결국 박미희씨는 아이의 손을 붙들고 다시 스케이트장으로 향해야 했다. 연아는 물 만난 고기처럼 신나게 얼음 위를 다녔다.

연아는 스케이트에 특별한 재능을 보이기 시작했다.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점프를 하도록 한 번 잡아주면 그 감각을 놓치지 않고 오래도록 기억하는, 타고난 감각이 있었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스케이트를 시작했다. 연아와 미희씨의 삶은 스케이트 이외의 것들과 완전히 단절됐다.

“모든 지출은 스케이트를 중심으로 재편되어야 했어요. 레슨비 이외도 스케이트 용품 등 초기부터 들어가야 할 돈이 만만치 않았어요. 취미로 할 때는 한 시간의 강습이 전부였지만 개인 레슨에 들어가면서 한 번에 두 시간씩 하는 연습을 두 차례씩 했죠. 피아노나 미술 수업도 모두 중단했어요. 저는 독하게 마음먹고 개인 시간을 모두 포기했죠. 동창회, 아파트 모임, 친구들 모임은 물론이고 다니던 문화센터도 그만두어야 했어요.”

아이의 성향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

연아는 어렸을 때부터 지고는 못 살았다. 연아는 게임이든 과제든 어떤 승부라도 꼭 이기려고 했다. 악착같이 해내고야 말겠다는 집념도 남달랐다. 욕심만큼 잘 안 되면 엉엉 울면서 했고, 잠까지 못 자며 속상해했다. 연습도 남들 한 번 할 때 두 번씩 했다. 이러한 성향을 파악한 박미희씨는 연아가 조금이라도 나태해지려고 하면 꺼내 드는 비장의 무기가 생겼다.

“너 그러다가 ‘그럼 그렇지. 잠깐 반짝 했던 애구나’라는 소리 들으면 어떡하니? 다들 김연아가 최고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모습을 보여줘서 되겠니?”

“그러면 연아는 무섭게 다시 일어났어요. ‘의지’보다 더 큰 에너지는 없어요. 부모는 아이가 스스로 잘하고자 하는 마음이 들도록 환경을 만들어주고 자극을 주어야 해요. 물론 그 전에 무엇이 아이에게 의욕을 불어넣을 수 있는지 파악해야 하구요.”

아이들은 좋아하는 일은 스스로 배운다. 연아는 동계 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장면을 녹화해두고 수없이 보고 또 보았다. 그렇게 반복해서 선수들의 모습을 보고 그대로 따라 하길 즐겼는데, 나중에는 자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아이들까지 동원했다. 쉬는 시간이 되면 각자 출전 선수 이름을 정해놓고 그 선수 동작을 그대로 따라 했다. 놀이지만 아주 진지했고, 격식까지 지켰다. 연아는 비디오에서 봤던 동작을 순서 하나 틀리지 않고 빠짐없이 해냈다.

집중력은 스케이트에서만 나타난 건 아니었다. 스케이트장을 오가는 차 안에서 영어 테이프를 틀어줬더니, 나중에는 저절로 영어를 하게 됐다.

“매일 이동하는 차 안에서 20, 30분 동안 영어 테이프를 들려주었어요. 특별한 효과를 기대했던 것은 아니었죠. 그런데 얼마쯤 반복하자 연아는 그것을 그대로 따라 하더라고요. 심지어 남자 목소리는 남자 목소리로, 아이 목소리는 아이 목소리로 흉내 내면서요. 어느 날부터는 영어 책을 읽더라고요. 오로지 반복해서 듣고 따라 한 것만으로 스스로 깨우친 거예요.”

선택의 기준은 늘 아이

늘 연아 곁을 지켰던 박미희씨는 이제 코치 버금가는 피겨스케이팅 전문가가 됐다. 자꾸 넘어지는 연아를 보며 ‘어떻게 하면 넘어지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스케이팅에 전문적인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박미희씨는 연아를 보며 어떻게 하면 넘어지고 어떨 때는 넘어지지 않는지 유심히 살폈다. 따로 공부하지 않았다. 오로지 미희씨의 교제는 연아였다. 그러다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비디오를 봤다. 궁금한 점이 있으면 그때그때 코치에게 질문을 했다. 이러한 지식은 연아에게 도움이 됐음은 물론이다.

“운 좋게도 연아는 좋은 선생님을 만나 기초를 탄탄하게 다졌어요. 저는 옆에서 지켜보면서 연아가 선생님들의 지도를 흐트러짐 없이 기억하고 실천해나갈 수 있도록 도왔을 뿐이죠. 그것이 시너지 효과를 가져온 것 같아요.”

미희씨는 아이를 위해서라면 과감했다. 특히 피겨스케이트를 하는 아이를 둔 엄마들은 인맥이나 뒷말이 무서워서 코치를 바꾸는 일을 주저한다. 그러나 미희씨는 코치와 관계가 깨지고 감정이 상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연아를 가르치던 코치가 국가대표 선수들을 가르치게 됐어요. 아무래도 연아에게는 신경이 덜 가게 되니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며 기술을 익혀가던 연아가 상대적으로 멈칫거리게 된 거예요. 저희에게는 은인이나 마찬가지였던 그분을 떠나는 건 쉽지 않았죠. 그분도 많이 섭섭해하셨고요. 그런데 코치님 때문에 한창 성장해야 할 시기에 시간을 낭비할 수 없어서 과감히 행동했죠. 매정하게 보였을 수 있어요. 그러나 저는 코치를 선택하고 지도를 맡길 때 철저하게 연아 중심으로 판단했어요.”

미희씨의 역할은 링크 밖에서 더욱 빛났다. 바로 운동 전후의 스트레칭이다. 스케이트는 근육을 많이 쓰는 격렬한 운동이고 더욱이 차가운 빙판 위에서 몸을 쓰기 때문에 근육의 이완과 정리에 몇 배 더 신경 써야 한다. 몸을 제대로 풀지 않고 얼음 위에서 점프를 하는 것은 부상을 부르는 지름길이었다. 연아가 부상이 많지 않은 건 미희씨의 이러한 훈련 방법 덕분이었다.

동기부여는 가장 달콤한 채찍질

연아의 점프는 세계가 알아준다. 점프의 정석으로 평가되고 있을 정도로 점프력은 타고났다. 물론 점프를 위해서 하체 근력을 기르기 위한 근력 운동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처음 점프를 배울 때 코치에게 제대로 배워야 한다는 점이다. 상위권 선수 80%가 일부 점프를 잘못된 방법으로 하고 있어 문제가 된다. 상대적으로 연아가 빛날 수 있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연아는 언제나 정석만 고집했다. 조금 더 쉽게 갈 수 있지만 회전수를 정확하게 채우기 위해 몇 배나 더 연습했다. 연아의 점프는 그렇게 완성된 것이다.

“가끔 회의가 들기도 했죠. 너무 정석만 요구하다가 아이를 고생시키는 것이 아닌가 싶어서요. 그렇게 늘 정확하게 연습한 것이 좋은 평가를 가져온 것 같아요. 기본에 충실하면 언젠가는 보답을 받게 마련이죠.”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동기가 필요하다. 연아도 마찬가지였다. 연아에게는 국제 대회 출전이 바로 동기부여였다.

“국제 대회 출전 이후로 스케이트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어요. 막연히 재미있어서 타던 시기를 넘어 스스로에게 채찍질을 하는 시기로 옮겨간 거죠.”

세계 대회 우승까지 차지한 이후 연아에게는 늘 따라다니는 라이벌이 있었다. 일본의 동갑내기 선수였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트리플 악셀이라는 기술의 벽에 부딪혀서 뛰어넘을 수 있는 가능성이 보이지 않았다. 그건 인정해야 했다.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분석해야 했어요. 연아의 장단점을 파악했고, 라이벌의 약점도 발견했죠. 그리고 바로 그 점을 공략했어요. 여기에 연아만의 장기를 만들어야 했죠. 바로 연기였어요.”

미희씨의 분석은 적중했다. 이러한 노력 끝에 연아는 연기력에서도 인정을 받고 있다. 현재 광고 모델로 활동할 수 있는 힘도 바로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위기, 또 위기

연아가 지금에 있기까지 스케이트를 그만둘 뻔한 위기는 여러번 찾아 왔다. 첫 번째는 부상이었다. 연아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으로 부상을 당했다. 높게 점프한 후 착지를 하면 오른쪽 발목에 충격이 가는데 그로 인해 인대가 늘어난 것이다. 그렇다고 연습을 마냥 쉴 수는 없다. 부상은 대체로 시즌 때 오기 때문에 최소한의 연습을 이어가야 했다.

사춘기도 위기였다. 연아가 스케이트를 시작한 이후 미희씨의 역할이 대단히 컸는데, 사춘기에 들어서면서부터 대답도 잘 안 하고 반항의 기미를 보였다. 워밍업을 하다가 “다 때려치우고 가자”면서 그냥 집으로 온 적도 다반사. 미희씨는 ‘조금 더 연아를 너그럽게 대했더라면…’ 하는 후회도 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도 사춘기를 넘어서는 길은 모른다고 고백한다. 모든 엄마들의 마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연아의 이유 없는 반항으로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연아가 처음으로 부상을 당했어요. 마침내 벼랑 끝으로 몰리게 된 거예요. 남편의 회사가 결국 문을 닫을 처지에 놓인 거죠. 더 이상 견딜 수 있는 힘이 없었어요. 연아도, 저도, 남편도요.”

결국 코치에게 그만두겠다고 했고, 전국체전까지만 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연아는 체전에서 경이로울 만큼 멋지게 해냈다. 점프도 완벽했고, 프리플 점프 다섯 개를 모두 성공하면서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결국 그만두겠다는 말은 쏙 들어갔다.

한번은 가족회의를 통해 연아가 스케이트를 그만두기로 결정한 적이 있다. 스케이트화 때문이었다. 전문 스케이트화는 발목을 보호할 수 있는 특수 소재가 소가죽으로 덮여 있는데, 단단하게 발목을 받쳐줘야 할 가죽이 자꾸 무너져 운동을 할 수 없었다. 신발 회사를 바꿔가며 주문을 해봤지만 소용없는 일. 신발을 새것으로 교체한 뒤 적응해서 신으려면 발에 맞게 길들이는 데만 한 달 정도가 걸리는데, 새 신발은 일주일 만에 무너졌다. 신발 때문에 기술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비용도 문제였지만 연아가 견뎌내지 못했다. 또 미희씨도 감당하기 힘들었다. 날의 각도와 위치를 잡는 것이 엄마의 몫이었는데, 힘이 많이 들어가는 과정이었다. 한 번 하고 나면 어깨가 빠질 듯 아팠다. 일본까지 건너가 신발을 맞추었지만, 그 신발도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위기 때 연맹에서 도움을 주었다. 스케이트화 문제는 해결하지 못했지만, 연습 장소나 비용문제를 털어놓자 연맹 쪽에서 해결책을 주었다.

상황은 시니어 월드 대회 이후 좋아졌다. 한 회사에서 연아에게 무료로 신발을 제공해주겠다고 했다. 다행히도 맞춤 부츠 못지않게 딱 맞는 사이즈를 찾아내 그간의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엄마의 칭찬은 연아의 힘

미희씨는 연아에게 때로는 독한 소리도 서슴지 않았고, 연아는 엄마에게 ‘말 안 듣는 원수’로 보였지만, 서로에 대한 존중은 잊지 않았다. 그 힘은 바로 칭찬에서 나왔다.

“칭찬은 굉장한 도구예요. 직접 아이에게 해주는 칭찬도 좋지만 아이가 있는 자리에서 다른 사람에게 내 아이를 칭찬하는 것은 상당히 큰 의미가 있죠.”

미희씨는 누군가가 아사다 마오의 연기력에 대해 칭찬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 말을 듣고 그는 발끈해 “어머, 웃겨. 우리 연아가 훨씬 낫지. 걔가 무슨 연기력이 있다고 그래. 심판들도 연아 연기가 얼마나 풍부한지 다 알아준다고”라고 했고 마침 그 자리에 연아가 있었다.

얼마 후 연아는 인터뷰 자리에서 자신의 장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연기력이라고 이야기했다. 스스로 연기력에 대해 인정하고 당당하게 말하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마음 깊이 느끼고 있지만 ‘엄마가 나를 자랑스러워하는구나’라는 것을 알게 됐을 때 아이들은 스스로의 존재에 대해 자부심과 긍지를 갖게 됩니다. 가까운 사람들은 오히려 남들보다 따뜻한 말을 자주 나누지 않죠. 사랑해, 고마워, 미안해, 네가 자랑스러워. 우연히 나온 그 한마디가 아이에게는 큰 감동을 줄 수 있어요.”

재능만으로 최고가 되지는 못한다. 좋은 스승과의 만남 이상으로 엄마의 힘은 큰 위력을 발휘한다. 어렵지 않다. 아이를 지켜보고, 발견하고, 격려하고, 칭찬하고, 신뢰하고, 때로는 인내로 견디며, 참고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한다. 피겨 요정 김연아 선수를 성공으로 이끈 안내자도 바로 엄마였다.

칭찬은 굉장한 도구예요. 직접 아이에게 해주는 칭찬도 좋지만 아이가 있는 자리에서 다른 사람에게 내 아이를 칭찬하는 것은 상당히 큰 의미가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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