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을 선물하는 한옥

삭막한 아파트를 떠나 잔디 마당과 별바라기용 툇마루가 있는 한옥에서 서로에게 소중한 기억을 선물하는 이 가족이 사는 법.


>> 일곱 살짜리 아들 율이는 한옥으로 이사 오고부터 제 세상을 만났다.이전에 살던 아파트에선 아들에게 ‘뛰지말라’는 협박성 주의를 줘야만 했던부부. 마음껏 뛰어노는 아이를 바라보는 부부의 표정이 흐뭇하다.

 

문구 브랜드 공책(o-check)으로 더 많이 알려진 라이프스타일 회사 스프링컴레인폴(spring come, rain fall)의 대표와 디자인 실장인 권재혁, 조수정. 패션 브랜드 오브제ㆍ오즈세컨의 디자인실에서 만난 두 사람이 부부의 연을 맺은 지 햇수로8년, 일곱 살배기 아들을 데리고 최근 한옥으로 보금자리를 옮겨 새로운 생활에 푹 빠졌다.


 안주인 조수정의 손끝에서 만들어진 주방의 한 벽면. 아기자기한 살림들이 펼쳐진 것이 마치 화보집을 들여다보는 것만 같다.


 거실 한쪽에 자리한 재봉틀은 손으로 조물락거리길 좋아하는 조수정 씨가 실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내추럴한 소품을 이용해 아기자기한 데커레이션으로 공간 꾸미기를 좋아하는 조수정 씨가 손수 타일을 바르고, 문틀을 바꾸고, 코디네이팅한 한옥은 고만고만한 처마들이 낮은 어깨를 기대고 있는 효자동 골목길 안쪽에 자리한다. 입구를 중심으로 오른쪽엔 행랑채로 쓰였을 독립된 방이 한 칸 위치하고, 입구 왼쪽부터 차례로 부엌, 부부 침실, 거실, 아이 방이 ‘반전된 ㄱ자’ 구조로 위치한다. 부엌 앞엔 툇마루가 마련돼 있는데, 이 공간의 용도가 참 다양하다.


편안해 보이는 쿠션과 아이의 그림을 끼운 액자,아내가 배우려고 사둔 클래식 기타, 디자인 관련 책 몇 권이 자연스레 흩어져 있어 아이가 마당에서 놀다 잠시 쉬기도 하는 공간이자 부부가 나란히 앉아 서로를 바라보는 공간임을 알 수 있다.


상 마룻바닥이 깔린 한옥에서는 자연스레 좌식생활이 이어진다. 아이방과 거실 사이의 문을없애고 대신 사다리에 물건을 수납해 파티션 삼은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잔디마당 한쪽에 위치한 욕실엔 아직 문이 없다. 공간을 직접 꾸민 부부가 아직 적절한 욕실 문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욕실 옆쪽으로 보이는 한옥 공간은 율이의 방. 율이는 가끔 거실로 난 방문이아닌, 이 창문을 통해 마당으로 드나든다.

 

한옥으로의 이사는 세 가족의 라이프스타일을 변화시켰다. 사람 만나기를 좋아하는 권재혁 대표는 늘 밖에서 사람들을만나 시간을 보내왔는데, 이곳으로 이사 온 후론 마당이 있는 집 안으로 사람들을 불러 모으기 시작했다. 회사 뒷마당에 있던 바비큐 그릴을 어느 순간 집으로 가져와 마당 한곳에 놓아두고 시간이 허락할 때마다 한옥 마당에서 소박한 파티를 여는 것이다. 아이 또한 제 세상을 만났다.


이들 부부가 가장 마음 아팠던 것 중 하나가 아파트 아래층에 사는 사람이 매번 쫓아 올라와 뛰지 말라는 주의를 주고 내려갈 때였는데, 여기선 그럴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온 가족이 툇마루로 나와 해바라기를 하고, 별 보기를 하는 시간도 늘었다. 가족은 부부가 직접 꾸민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고 기억을 쌓아가는 중이다.


>> 공간을 보면 그 주인의 성격을 알 수 있다고 했던가. 내추럴한 자연소재의 소쿠리와 바구니가정갈하게 수납된 부엌은 평소 이들 가족이 지향하는 삶을 엿볼 수 있게 한다.

 

물론 얻은 것이 있는 만큼 감수해야 할 불편한 점도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수납. 안 보이는 곳곳에 물건을 수납할 수 있었던 아파트에 비해 한옥은 모든 공간이 열려 있는 데다 수납공간이 턱없이 부족해 물건들이 제자리를 찾지 못한 것처럼늘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단 몇 개월간의 한옥살이에도 물건을 대하는 노하우를 체득할 수 있는 법.

일곱 살짜리 아들 율이는 한옥으로 이사 오고부터 제 세상을 만났다.이전에 살던 아파트에선 아들에게 ‘뛰지말라’는 협박성 주의를 줘야만 했던부부. 마음껏 뛰어노는 아이를 바라보는 부부의 표정이 흐뭇하다.


 안주인 조수정의 손끝에서 만들어진주방의 한 벽면. 아기자기한 살림들이펼쳐진 것이 마치 화보집을 들여다 보는것만 같다.

 

아파트에 살 땐 안보이는 곳에 넣어두고 잊어버리기 일쑤여서 잘 쓰지 못했던 물건들이 모두 밖으로 나와 제 역할을 찾기 시작했고, 그중에서도 안 쓰게 되는 것들은 또 따로 걸러져 이웃 혹은 아름다운재단에 기증했다. 다시 쓰고, 나눠 쓰는 생활이 자연스레실천되는 것이다. 하지만 늘어나는 살림은 고사하고 기존의 가전제품들조차 들여놓지 못할 만큼 자그마한 부엌은 최대의 불편 사항이었기에 장을 짜 넣기로 했다고 부인 조수정은 슬쩍 일러준다. 툇마루에 앉아 한옥살이에 대해 이야기를나누던 중 에디터의 눈에 포착된 재미있는 광경 하나. 마당에 위치한 욕실의 문이 열려 있는 줄 알았더니 아예 문이 없었다.

 

한옥의 느낌을 고스란히 남기고 원형을 유지하려고 공을 들이다 보니, 아직 적당한 문을 찾아주지 못해 24시간 활짝열린 채라는 것이다. 욕실이 2개인 점이 참 다행이라며 웃는 그녀의 모습에서 옛것을 그대로 지키려는 부부의 욕심이 드러난다.

 


 권재혁, 조수정씨 부부가 함께 일하는 스프링컴레인폴은 3층 짜리 건물에 자리하고 있다. 2층은 권재혁 씨가 사용하는 공간이며 3층은 디자이너들과 함께 조수정 실장이 이용하는 공간.


 권재혁, 조수정 부부의 사무실 역시아기자기한 소품 천국. 이건 대체 어디에서 구해왔을까, 궁금해지는 물건들이 눈에 띈다.

 

제2의 홈타운인 부부의 사무실, 스프링컴레인폴


지금은 아이와 함께이지만, 이들 부부도 한때는 세 살 난 아이를 남의 손에 맡겨놓고 치열하게 앞만 보고 달릴 때가 있었다. 그러다 아이가 네 살 때 그린 그림을 보고 충격을 받았는데, 그림이 온통 갈색인 데다 성의 없이 대충 그려놓은 느낌이역력했던 것. 전문가에게 진단도 받아보고, 주변의 조언도 구해 아이가 외로워한다는 것을 알고선 그때부터 부부 중 한 사람이 아이가 유치원에서 돌아오는 시간에 맞춰 퇴근하는 패턴이 시작됐다.


꼭 처리해야 할 일이 남았을 경우엔 아이를 데리고 도로 사무실로 돌아오기도 한다. 그래서 집과 5분 거리에 있는 이들 부부의 사무실은 가끔 율이가 찾아와 엄마, 아빠 곁을 맴돌며 시간을 보내는 곳이 됐다. 부부가 함께 근무하는 데다 아이가 가끔 들르는 사무실은 이들 가족의 제2의 홈타운인 셈이다.


사무 공간 역시 5년이라는 시간 동안 조수정 씨의 손길로 조금씩 조금씩 모습을 갖춰온 곳으로, 그녀의 취향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내추럴하면서도 소박한 소품들로 채워진 공간이다.


디자인실이 있는 3층으로 올라가기 2층 복도에 서서 바라본 시선. 아래쪽으로는 1층의 쇼룸 공간이 위쪽으로는 다락방을 연상케 하는 자그마한 복도가 보인다.


 발을 대딛을 때마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메아리처럼 따라오는 정겨운 나무 계단. 권재혁 대표의 사무 공간이 자리한 2층으로 향하는 통로다.

 

조수정 실장은 삶의 가치를 생각하는 것에도 변화를 느낀다고 한다. 한옥살이에 부쩍 관심을 갖게 되면서, 그리고 드디어한옥으로 옮겨와 생활하는 요즘 이들 부부가 회사에서 만들어내는 제품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이전엔그저 내추럴하고 소박한 멋을 선호했다면 지금은 리사이클링과 친환경에 더욱 중점을 둔다.


>> 스프링컴레인폴의 쇼룸과 회의실이 있던 1층은 최근 아늑한 카페로 개조했다.향기로운 커피와 달콤한 쿠키, 빼곡하게 꽂힌 여행서적과 공책 제품이 진열된 공간.

 

인쇄할 때 쓰는 잉크를 콩잉크로 바꾸고 비닐 포장지를 분해가 되는 재질로 바꾸는 것도 이런 이유다.


브랜드 론칭 초기엔 아이디어가 재기발랄하고 재미있는 제품, 그래서 한번 보면 신기해서라도 구매욕을 불러일으키는 디자인에 치중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는 예쁜 것보다 생활 속에 의식하지 못하지만 어느새 쓰고 있고 쓰게 되는 것들을 생각한다고. 집에서나 사무실에서나 기분 좋은 변화를 여러 가지 겪고 있는 권재혁 가족. 그렇게 원하던 한옥으로 이사한 요즘이 더욱 행복한 이유는 서로에게 소중한 기억들을 선물하듯 안겨주고 있어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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