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신혼 부부는 통장을 따로 쓴다. 그러나 책들은 합쳤다. 지난해 11월 화촉을 밝힌 장시경(여·28) 이주창(30)씨 부부는 경기도 안양시 호계2동의 36평형 아파트에 신혼집을 꾸미며 서재까지 ‘결혼’시켰다. 신랑 책 400권과 신부 책 400권은 거실 책장에서 사이 좋게 뒤섞여 있었다.
“TV랑 소파만 놓기엔 거실이 휑해 보여 책장을 들였어요. 이게 보기보다 쓸모가 많아요. 오빠(남편)는 글자들이 빽빽한 역사책이나 사상책을 즐겨 읽고, 저는 미술서적이나 그림책을 좋아하거든요. 자연스럽게 상대방 책까지 뒤적거리며 취향을 알게 되고 이해심도 커지는 것 같아요.”
둘은 사실상 주말부부다. 삼성전자에 다니는 아내는 아침 일찍 출근해 밤 11시쯤 잠자리에 들고, 외국계 기업에 다니는 남편은 밤일이 많아 한밤중에 퇴근한다. 책은 주로 주말에 읽는다.
장씨는 “TV 켜놓고 멍하니 남의 사연 보자니 인생이 아까워 TV는 잘 안 보게 된다”며 “교회에 가거나 가끔 함께 탁구 치는 시간을 빼면 주말은 책을 읽으며 보내는 편”이라고 했다.
결혼 전 각각 신림동과 봉천동에서 자취생활을 한 신랑·신부는 책이 많았다. 이씨는 “손이 종종 갈 것 같은 책만 거실에서 살아 남았다”며 “기독교 서적, 과학·기술, 역사, 소설, 아동, 요리법으로 칸마다 분류하고 한가운데는 결혼 코너로 꾸몄다”고 말했다. 액자에 담긴 결혼 사진과 가족 사진, 성혼 선언문, 앨범 등이 결혼 코너를 채우고 있었다.
사람마다 책 읽는 습관이 있다. 아내는 남편의 책에서 뭘 발견했을까. “오빠가 밑줄을 안 긋거나 메모 흔적이 없는 책은 재미없었다는 뜻이에요. 또, 다른 일엔 꼼꼼한 편인데 책은 꺾어서 보더라고요. 퇴근해 화장실에 들어가 보면 늘 책 한두 권이 놓여 있어요. 그것만 봐도 아침에 뭘 읽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 금방 알지요.”(웃음)
같은 교회에 다니며 10년 알고 지냈고 연애 6개월 만에 결혼했지만 취향은 판이하다. 상대가 가지고 다니는 책을 사 읽으며 관심사를 따라잡으려 했던 적도 있으나, 보통은 서점 가면 “30분 있다 보자”며 각자 선호하는 코너에서 책을 읽었다.
책을 합친 지금은? 아내는 최근에 남편의 책 ‘제자입니까?’를 읽었고, 남편은 아내가 회사 도서관에서 빌려온 재테크 실용서를 읽고 브리핑을 해줬다. 이씨는 “아이가 생기면 내가 그림책을 잡아야 할 것 같고, 그 애가 학교 다닐 땐 엄마가 역사책을 읽어주는 식으로 서로의 취향이 더 섞일 것 같다”며 웃었다.
거실 서재는 집들이 때도 요긴했다. “사교적이지도 않고, 눈을 어디 둬야 할지 모르는 남자들도 거실 서재 덕에 심심해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이웃 아줌마들에겐 대출도 해준단다. 장씨는 “언젠가는 집을 도서관처럼 개방해 아이들이 책을 읽고 꿈을 꾸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
“거실 서재 말고 결혼하며 합친 게 또 있냐고요? 통장도 그대로고, 옷장도 구분해 놓았고, 컴퓨터 파일도 따로 저장하고… 그러고 보니 침대와 책들뿐이네요.”(웃음)
[안양=박돈규기자 coeur@chosun.com]
[하누리 인턴기자(이화여대 국문과4년)]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