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탁마(切磋琢磨) 끊고 닦고 쪼고 가다
<끊고 닦고 쪼고 가다>.
원래 학문을 부지런히 닦고 덕을 기르는 것을 말하는데,
요즘은 어느 분야에서나 노력과 정진을 게을리 하지 말라고 권할 때 쓰인다.
출전은 《시경》 <위풍>(衛風)의 시 <기오(淇奧)>.

저 기수(淇水) 물가를 보니
푸른 대나무가 무성하구나.
빛이 나는 군자여,
마치 끊는 듯이 하고 닦는 듯이 하며(切磋),
쪼는 듯이 하고, 가는 듯이 하는구나(琢磨).

물가에 무성한 푸른 대나무처럼 군자는 늘 덕과 학문을 갈고 닦는다는 걸 노래한 시이다.
이 시는 《논어》 「학이」편에도 인용되고 있다.
공자와 자공의 문답인데, 절차탁마 의 뜻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어 소개한다.
자공이 공자에게 물었다.
「가난해도 아첨하지 않고, 부유해도 교만하지 않는다면 어떻습니까?」
「훌륭하다. 그러나 가난해도 도를 즐기고, 부유해도 예절을 좋아하는 사람만은 못하니라.」
「시경에 말하기를, 끊는 듯이 하고, 닦는 듯이 하고, 쪼는 듯이 하고, 가는 듯이 한다는 말이 나오는데, 바로 그런 뜻입니까?」
「사(賜;자공의 이름)야, 비로소 너와 시를 논할 만하구나. 지난 것을 일러주니, 앞으로 올 것까지 아는구나.」
 
;끊을 절
;닦을 차
;쫄 탁
;갈 마
 
영어 한마디
 

Don't nervous  relax relax !!

(긴장하지말고 즐겨라)

출처:cafe.daum.net/balloonfp

 

'학문이나 덕행 등을 배우고 닦음’

학문,기예등을 갈고 닦거나 수양에 힘쓰는 것을 비유한 말.

 

견마지로( 犬馬之勞 )
개나 말의 하찮은 수고라는 뜻으로,

윗사람에게 바치는 자기의 노력을 낮추어 말할 때 쓰는 말.

 


발분망식( 發憤忘食 )
일을 이루려고 끼니조차 잊고 분발 노력함.

 

 

불면불휴(不眠不休) 

자지도 아니하고 쉬지도 아니함. 쉬지 않고 힘써 일하는 모양을 말함. ∼의 노력.

 

 

절차탁마( 切磋琢磨 ).
옥·돌 따위를 닦아 빛을 내듯이 학문이나 덕행을 배우고 닦음.

끊임없는 노력에 의해 자기의 역량·소질을 닦음의 비유.

 

출처:프로마크5A님 2006-06-05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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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의 즐거움

 

 

출처 : ♡♥입시미술♥♡
글쓴이 : 그림패 원글보기
메모 :
 맹인모상(盲人摸象)

  盲 : 소경 맹 / 人 : 사람 인 / 摸 : 찾을 모, 만질 모 / 象 : 코끼리 상

【뜻】눈먼 소경이 코끼리 만지 듯 사물의 일부만을 알고 전체를 모르면서 함부로 결론을 내리는 좁은 견해.

【출전】<열반경(涅槃經)>

【고사】

  『옛날 인도의 한 국왕이 좌우에 있는 신하들에게 말했다.

  “누가 가서 코끼리 한 마리만 끌고 오시오. 그리고 소경들을 불러 코끼리를 보게 하시오. 그들이 소위 본다는 것은 손으로 만져야 할 테니까.”

  얼마후 한 사람이 코끼리 한 마리를 끌고 왔다. 모여든 소경들은 코끼리의 곁으로 다가섰다. 과연 소경들은 손으로 그 큰 코끼리를 조심스레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얼마가 지난 뒤 국왕이 이들 소경들을 앞으로 불러 세우더니 그들에게 물었다.

  “너희들이 방금 본 코끼리는 무엇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느냐?”

  소경들 중에서 코끼리의 이빨을 만져본 한 소경이 앞질러 말했다.

  “아뢰옵니다. 국왕 폐하, 코끼리의 형상(形狀)은 굵고 큰 무와 같습니다.”

  코끼리의 귀를 만져본 다른 소경이 말하길,

  “코끼리의 형상은 쌀을 까부는 키와도 같습니다.”

  코끼리의 발을 만져본 세 번째 소경이 말했다.

  “아닙니다. 코끼리의 형상은 절구질하는 절구통과 같습니다.”

  코끼리의 등을 만져본 다른 소경이 언뜻,

  “제가 보기엔 코끼리가 흡사 평탄한 침대와 같은 줄 아옵니다.”

  다섯 번째 코끼리의 뱃가죽을 만져 본 소경이,

  “코끼리의 형상은 배가 툭 튀어나온 옹기와 꼭 같습니다. ” 

  그러자 마지막으로 코끼리의 꼬리를 만져본 소경이 큰 소리로,

  “천만의 말씀이옵니다. 다들 틀렸습니다. 코끼리의 형상은 굵은 밧줄과 같습니다.”

  아무튼 설왕설래하면서 각기 자기의 견해가 옳다고 고집하였다. 물론 각 소경들이 만져 보고 접촉한 부분은 코끼리 몸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불교 경전인 <열반경(涅槃經)>에 보이는 다음과 같은 내용에서 비롯된 말이다.

   옛날 인도의 어떤 왕이 진리에 대해 말하다가 대신을 시켜 코끼리를 한 마리 몰고 오도록 하였다. 그리고는 장님 여섯 명을 불러 손으로 코끼리를 만져 보고 각기 자기가 알고 있는 코끼리에 대해 말해 보도록 하였다. 제일 먼저 코끼리의 이빨(상아)을 만진 장님이 말하였다.

  "폐하 코끼리는 무같이 생긴 동물입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코끼리의 귀를 만졌던 장님이 말하였다.

  "아닙니다, 폐하. 코끼리는 곡식을 까불 때 사용하는 키같이 생겼습니다."

  옆에서 코끼리의 다리를 만진 장님이 나서며 큰소리로 말하였다.

  "둘 다 틀렸습니다. 제가 보기에 코끼리는 마치 커다란 절구공이같이 생긴 동물이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코끼리 등을 만진 이는 평상같이 생겼다고 우기고, 배를 만진 이는 코끼리가 장독같이 생겼다고 주장하며, 꼬리를 만진 이는 다시 코끼리가 굵은 밧줄같이 생겼다고 외치는 등 서로 다투며 시끄럽게 떠들었다. 이에 왕은 그들을 모두 물러가게 하고 신하들에게 말하였다.

  "보아라. 코끼리는 하나이거늘, 저 여섯 장님은 제각기 자기가 알고 있는 것만을 코끼리로 알고 있으면서도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는구나. 진리를 아는 것도 또한 이와 같은 것이니라."

  이 우화는, 진리를 알기 위하여는 바른 눈과 깊은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을 말하기 위한 것으로,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알고 있는 만큼만 이해하고 고집하려 한다는 사실을 깨우쳐 주기 위한 것이다. 남의 말에 쉽게 따르는 것도 좋지 않지만, 자기 주장만을 계속 고집하는 행위도 옳지 않다는 교훈이다.』


출처 : 김영관의 국어방
글쓴이 : 김영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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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뮤비 다이어리
글쓴이 : 매니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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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한국사회를 강타한 '된장녀' 논쟁

그 논쟁의 중심에는, 미국 드라마를 비롯하여 소비사회의 증후 속에

중독된 우리들의 모습이 녹아 있습니다.

 

세계적인 호텔 체인 힐튼 그룹의 상속녀, 패리스 힐튼. 이 세상 누구보다도

남부러울것 없을 것 같은 그녀는, 언제부터인가 미국을 넘어 전세계적인 스캔들 메이커로

성장해 버렸지요. 화려함과 극도의 성형미, 소비중독, 쇼퍼홀릭

뭐 이런 단어들이 항상 그녀를 따라 다니며 규정합니다.

 

 

다니엘 에드워드 <부검실의 패리스 힐튼> 2007년 5월 캐스팅 갤러리

 

최근 그녀는 음주운전으로 인해 45일간 유치장 신세를 지게 되었고

이로 인해, 사람들은 이제까지의 그녀가 이번 기회로 자신을 좀 돌아보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연예인들을 모델로 비꼬는 메세지의 조각작품을 제작하는

다니엘 에드워드의 작품에서, 그녀는 싸늘한 시체가 되어 부검실에 눕혀 있는 모습으로

우리에게 나타납니다. 물론 이 작품은 청소년들에게 미성년자 음주에 대한

경고를 위해 제작한 작품이라고 작가는 밝히고 있습니다.

 



Sasa[44]〈ㅍㄹ ㅅ ㅎ ㅌ〉혼합재료_2007

 

이번 봄에 열린 ZAIN-마리 이야기란 전시회에서 Sasa란 작가가 만든

설치작품〈ㅍㄹ ㅅ ㅎ ㅌ>입니다. 한글의 초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시겠지요?

바로 패리스 힐튼입니다. 작가는 소비사회 속에서 여성의 미가 인위적으로 조형되는 과정을

드러내기 위해 패리스 힐튼이란 문화 아이콘을 작품 속에 녹여냈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그녀의 행동과 태도를 볼때, 모든 걸 자본주의의

뷰티산업의 잘못으로 돌리기도 어렵다고 생각해요.

 

 

 

저는 뭐 원래 누구를 도덕적으로 비난하고

그 사람의 행동의 기준을 가지고 평가 하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생각지 않게 서문이 길어졌는데요. 원래 오늘은 패리스 힐튼이 즐겨 입는 패션에 대해

다루려고 했고, 그녀가 좋아하는 신인 패션 디자이너에 대해

소개하려고 했답니다.

 

 

 

쭈욱 한번 살펴보시면 옷들이 매우 독특함을 느끼실 텐데요

오늘 사실 <디자이너 연구>라는 폴더의 첫번째 주인공으로 삼은 디자이너는

히더레트(Heatherette)란 브랜드를 이끌고 있는 듀오 디자이너

트레버 레인스와 리치 리치입니다.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패션 듀오

트레버 레인스와 리치리치, 전직 카우보이에 클럽키드란 특이한 이력을 가진

패션계의 악동이라 불리는 디자이너입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이들을

소개하고자 하는 이유는 물론 패리스 힐튼이 그들의 일급 고객이기 때문이죠.

 

 

 

우연하게 디자인한 옷을 헐리우드 최고의 패션 스타일리스트였던

패트리샤 필드가 발견했고, 현장에서 그녀는 20벌의 옷을 주문했다죠

이후 힙합 스타였던 폭시 브라운이 패트리샤 필드 매장에서

이 옷을 보고 입게 되고, 이런 사실들이 입소문을 타면서

헐리우드의 내노라 하는 스타들이 하나씩 그들의 옷을 입게 됩니다.

스타마케팅의 완전한 승리였던 셈이죠.

 

물론 트레버 레인스와 리치리치는 의류회사와 다양한 공동작업을

했습니다. 가령 아이들 프로그램의 주인공인 미스 피기(Miss Piggy)의 옷을 디자인했고

헬로 키티(Hello Kitty)를 주제로 한 의상들을 선보이기도 했죠.

이 뿐만이 아닙니다. 축구 스타 데이비드 베컴을 위해, 그만의 패션 스타일을

디자인하기도 했지요.

 

그의 고객에는 저스틴 팀버레이크, 앨리시야 키스, 브리트니 스피어스등

정말 많은 유명인사들이 그들의 브랜드를 입고, 패션의 뮤즈가 되어 주었답니다.

 

 

 

팝아트의 미학을 패션에 도입하여 자신만의 빛깔을 끌어낸

디자이너로 명성을 떨치고 있습니다. 60년대에 들어오면서 패션은

현대미술의 지대한 영향력 속에서, 서로 상호간의 긴밀한 영향을 주고 받지요

저는 가장 아래에 있는 탑 드레스를 볼때마다

이번 45일간의 반성의 시간을 마친 패리스 힐튼이 왠지

이 옷을 입을거 같다는 생각에 빠져봅니다.

여러분은 어떠세요?

 

이제 완연한 여름의 기운이 거리를 덮네요

무엇을 입건, 자신감을 갖고, 누군가의 의견에 따른 복식이 아닌

여러분의 내면과 진실한 모습 그대로 담아내는 분들이 되길 저는 오늘도 바라고 또 바랍니다.

행복하세요. 프랭크 시나트라의 목소리로 듣습니다. <뉴욕 뉴욕>

 

 

 

 

 

 

 

출처 : 김홍기의 문화의 제국
글쓴이 : 김홍기 원글보기
메모 :
매매시장과는 달리 전세시장은 강세를 보이고 있다. 매매시장이 불안하면서 위험회피자·중립자들은 매입보다는 전세를 선호하고 있는데다가 결혼시즌을 앞두고 신혼집을 구하려는 예비부부들과 가을 이사철로 전세수요가 증가하는데 비해 전세물은 딸리고 있기 때문에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일단, 강남권과 분당신도시, 용인권의 전세시장이 꿈틀대고 있다. 매매시장이 떨어진 가격에도 달라붙는 매수세가 전무해, 극심한 거래 부진을 띄는 마이너스 변동률을 기록한 반면, 수요에 비해 매물이 달리는 전세시장은 학군이 좋거나 재건축이주 수요가 넘치는 지역을 중심으로 강세를 띄고 있다.

특히, 이들 지역은 하반기 신규 입주물량이 많지 않은데다, 상반기 내내 가격이 숨가쁘게 오르면서 꼭지에 다다른 곳이 많아 매수세로 돌아서기도 쉽지 않은 요인이 크다. 그리고, 최근 정부규제로 조정기를 겪으면서 좀더 가격이 하락하기를 기다리는 대기수요나 투자가치를 반신반의하는 수요자들이 전세로 선회하거나 전세시장으로 옮아가기도 했다.

강남권역은 방학특수가 사라졌다하더라도 교육수준이 높은 지역여건 때문에, 다른 지역으로 전세를 갈아타는 것보다 전세기간 만료후 재계약하는 세입자가 많다. 즉, 시장에 출하되는 전체 매물량이 부족한 것도 가격 상승을 부채질 하는 이유였다.

잠원동과 반포동 주공 2~3단지는 이주수요로 전세가가 꾸준히 상승중이다. 용인지역은 비교적 저렴한 전셋값 때문에 수요가 넘치는 편이다. 최근 신규아파트 입주가 는 데다, 인근 수원·분당생활권에 접하면서도 상대적으로 전세시세가 싼 편이여서 요사이 매물이 달리는 형국이다. 수도권 주요지역은 이미 이사철에 접어들기 시작하면서 매물부족현상이 심각해 당분간 이러한 움직임이 지속될 것으로 보이니, 전세를 원하는 수요자들은 미리미리 매물찾기에 나서는 것이 현명할 듯 싶다.

전세구할 때 주의사항
전세구할 때 유의할 점이 많다. 잘못하면 계약할 때와 계약완료시점의 보증금 반환 문제 등으로 골머리를 썩힐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등기부등본을 떼어 등기부에서 계약자와 등기상 소유자의 이름, 주소가 맞는 지 확인해야 한다. 가압류, 가등기, 가처분, 경매등기, 예고등기가 있는 지 살펴보고 이런 것들이 없다면 안전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또 지상권·지역권·전세권·저당권·권리질권·임차권 등이 설정돼 있지는 않은지도 살필 필요가 있다. 이미 담보권이 있거나 압류·가압류·가처분·가등기된 집을 전세로 들어갈 경우 보증금도 못 받고 집을 비워 줘야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등기부등본은 계약당시만 확인하는 경우가 많은데 한번에 그치지 말고 계약직전, 중도금 치를 때, 잔금 치를 때, 전입신고 직전 등 각 단계별로 챙겨보는 것이 좋다. 계약을 한 뒤에 대출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계약후 입주시점에 전입신고를 한 뒤 바로 확정일자를 받는 것이 좋다. 확정일자를 받아야 우선변제권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변제권은 임차주택에 관한 경매절차 등에서 후순위 권리자나 기타일반채권자보다 우선적으로 배당받을 수 있는 권리이다.

확정일자는 주택을 인도받고 주민등록이전까지 마친 뒤 임대차 계약서 원본에 확정일자를 동사무소나 등기소에서 저렴한 비용으로 받을 수 있고, 그날부터 경매시 후순위 담보물권, 일반채권자 보다 우선하여 전세보증금을 변제받을 권리가 주어지는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전세권과는 달리 임대인의 동의여부와 관계없이 세입자 단독으로 처리가 가능한 장점이 있지만 임대인이 보증금을 반환을 지체할 경우 반환청구소송 승소후 강제집행이 가능하기에 반환시기가 오래 걸린다는 점이 단점이다. 참고로 전세보증금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계약후 동사무소에 가서 전입신고를 하고 확정일자 날인을 받아야 확정일자의 효력이 발생된다다. 확정일자만 먼저 받았을 경우 어떠한 효력도 발생되지 않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계약서 쓸 때 꼭 챙겨야 할 사항
도배, 바닥장판, 하자보수 책임, 각종 공과금 해결, 관리비 문제 등을 어떻게 할 것인지 집주인과 합의했다면 향후 분쟁 소지를 없애기 위해 구두로 약속하기보다는 이런 사항들도 계약서 특약란에 기입하는 게 좋다. 특히 계약서 작성 시 ‘잔금치를 시 등기부등본상 변동이 있을 경우 계약을 무효로 하고 임대인은 임차인에게 계약금을 반환한다’ 라는 문구도 기입하면 아주 좋겠다. 또한 전세계약을 할 때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이 해당주택의 등기부등본상 소유자와 계약 당사자가 일치하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계약을 할 때에는 등기부상의 실소유자와 하는 것이 원칙이며 임차인은 자신과 계약을 하는 상대방이 등기부상 진짜 소유주인지를 계약 체결 전에 신분증을 통해 확인해야 한다. 참고로 주민등록증만을 믿고 거래하는 것이 상례이지만, 주민등록증을 위조해서 집주인인 것처럼 계약을 한 후 받은 돈을 가지고 도망쳐 버리는 일도 심심치않게 발생하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의료보험증, 운전면허증, 여권 등을 통해 중복검증을 거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할 수 있다.

만일 피치못할 사정으로 대리인과 계약을 체결해야 한다면 필히 집주인 인감증명서가 첨부된 위임장을 받은 뒤 계약해야 한다. 인감도장도 확인해야하며 위임장 없이 계약을 맺었다가 추후 분쟁이 일어나면 권리행사가 어렵게 되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재계약할 때 이런 점 주의를
만일 재계약 시 보증금을 올려서 재계약을 할 때에는 등기부등본을 다시 확인해서 계약하는 것이 좋다. 처음 전세계약을 체결할 당시에는 해당주택에 아무런 근저당권 등의 권리가 설정되지 않았는데 시간이 지나 근저당권 등이 설정되었고, 그 후에 계약이 완료되어 재계약을 체결하면서 보증금 인상분을 지급하고 확정일자를 새로 받은 경우에는 근저당권의 설정이전 보증금액만 보호받고 계약갱신으로 인상된 전세 보증금은 보호받지 못할 수도 있다.

이때에는 재계약할 때에도 마찬가지로 등기부등본을 떼어본 다음 근저당권이 설정되어 있다면 다시 설정금액을 비교해 경매로 넘어갔을 때, 자신이 낸 보증금 인상분을 받을 수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확정일자 외 세입자가 보호받을 장치는
전세금보증보험과 전세권설정등기가 있다. 전세금보증보험이란 집주인이 전세계약이 끝난 뒤에도 전세금을 돌려주지 않을 경우 보험회사에서 전세금을 보상받을 수 있는 상품이다. 전세계약을 체결한 날로부터 5개월 이내에 서울보증보험의 전국 각 지점에서 가입할 수 있다. 세든 주택이 압류, 가압류, 가처분, 가등기돼 있거나 전용면적이 100m²이상일 경우 또는 전세금이 전세물건 추정시가의 70% 이상인 경우, 가입할 수 없어 가입요건이 까다로운 것이 단점이지만 가장 손쉽고 빠르게 보증금을 반환받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참고로 보험료는 전세금의 연 0.7%정도이다.

전세권 설정등기는 확정일자보다 절차는 까다롭지만 확정일자보다 더 안전한 방법으로서 확정일자와 달리 보증금 반환이 늦어지는 경우에 재판없이 바로 임의경매를 신청할 수 있으므로 신속하게 절차가 진행되어 보증금을 보다 빨리 반환 받을 수 있다.

또 경매시 확정일자는 반드시 법원에 배당신고를 해야 보증금을 변제받을 수 있지만 전세권 등기는 배당신고 없이 청구가 가능하며 설정순위에 따라 보호가 된다. 그러나 전세권 설정등기시에는 집주인의 동의와 인감증명서가 필요하고, 절차가 확정일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복잡해 대부분 법무사의 협조를 필요로 한다. 또한 비용도 많이 소요되는 편이며, 전세기간만료시에는 전세권설정등기를 말소해 주어야 한다.

전세 분쟁 대처법
집주인과 협의를 통하는 방법인 민사조정을 신청하면 되는데, 세입자가 관할법원에 조정신청서를 제출하면 된다. 조정 담당판사나 법원에 설치된 조정위원회가 조정안을 제시해 합의를 유도하는 방법으로 만일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 경우에는 법원이 강제조정을 통해 분쟁을 해결할 수 있다. 법원의 결정문을 받은 뒤 세입자와 집주인이 2주일 내에 이의를 신청하지 않으면 결정문은 전세금 반환청구 소송 때 법원이 내리는 ‘판결문’과 동일한 효력을 가져 세입자는 곧바로 강제집행절차를 밟을 수 있다.

즉 전셋집에 대해 경매를 신청해 전세보증금을 경락대금에서 배당받을 수 있다는 얘기이다. 다만 조정신청은 재판에 비해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강제조정에 대한 이의신청이 제기되면 조정이 종결되고 보증금반환소송이 진행되어서 바로 소송이 진행될 때보다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는 단점이 있다.

소송은 어떻게
민사조정이 안된다면 소송을 해야 한다. 만료가 되었음에도 전세금을 반환하지 않는다면 주인과 협의하에 전세금을 받을 수 있겠지만, 주인이 비협조적이면 법적으로 소송을 해서 전세보증금을 받을 수 있다. 단, 보증금을 받았거나 임차권등기가 설정되기 전까지는 집을 비워서는 절대 안된다. 집주인이 전세금을 반환해주지 않고 ‘버티기‘로 나간다면 전세금반환소송을 할 수밖에 없다. 우선 세입자는 계약만료전에 내용증명을 집주인에게 내용증명을 우편으로 보내신 뒤 관련서류를 지참해서 임대인 주소지관할 지방법원 민사과에서 소장을 작성해 제출하면 된다.

이때 필요한 관련서류는 내용증명사본, 계약서사본, 임대인 주민등록초본(법원제출용) 등이다. 만일 계약기간이 지난 후에 내용증명우편으로 통보하게 되면 전세금 반환 효력이 통보한 날로부터 3개월 뒤에 생긴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전세금반환소송 시 소송기간은 법원사정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1~3개월 정도 걸리며, 비용은 금액에 따라 다르지만 송별료와 인지대로 대략 30~40만원이 든다. 대개 전세금반환소송은 절차가 까다로워 법무사를 통해 소송을 많이 하는 편으로 이때 법무사 수수료는 20~30만원 정도이다.

소송을 한 뒤 판결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집주인이 이행을 하지 않는다면 주택강제 집행절차를 밟을 수 있다. 법원에 가서 경매신청을 하면 되며, 경매날자가 잡히는 기간은 보통 2개월 이상 걸린다. 신청 이후 법원에서 권리신고하라는 통보가 오면 우선변제권을 법원에 신청해야 하고, 그런 다음 경매가 낙찰되면 낙찰자에게 집을 비웠다는 명도확인서에 확인을 받고 법원에 제출하면 전세금을 받을 수 있다.

김영진[housemy@yesapt.com]
출처 : 부동산 연구소
글쓴이 : arumi 원글보기
메모 :

catch a star                        별을잡다

 

nevertheless...                   그럼에도불구하고

 

Out of sight, out of mind.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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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지에 다다르다
→ 관련단어 : 다다르다  
arrive at one´s destinati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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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ver mind 《구어》 ① 걱정 말아라; 아무 것도 아니야; 네가 알 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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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inten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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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Chief조직 Executive실행.집행 Officer 관리.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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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ve up ① ~을 단념하다, 체념하다; 항복하다; (의사가)[환자]를 포기하다 ②[습관 따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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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커밍제인-영화(제인 오스틴 (Jane Austen))

becoming

 

be·com·ing

be·com·ing
〕 a.어울리는,알맞은,적당한(suitable)
━n.【철학·심리】 생성(生成),발달 과정
~·lyad.~·ness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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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ː-데이

디ː-데이(D-Day)

 [명사]
1. 공격 개시 예정일.
2. (보안 유지가 필요한) 어떤 일의 거사(擧事) 예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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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ve a nice day

 

Nice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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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o farther! → 관련단어 : farther  
이제 됐어, 이제 그만!

 

- That will do! → 관련단어 : do  
(1) 그거면 됐어! (2) 이제 그만!

 

 Give me a break! → 관련단어 : break  
《미·구어》 (1) 그만해둬, 그만해, 이제 그만! (2) (한 번 더) 기회를 줘, 해보게 해줘


I couldn't.
이제 그만 됐습니다[충분합니다]. 《음식의 권유를 받고서 정중히 사양하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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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t1

1 [필요를 나타내어] …해야 하다 《[USAGE] 이 뜻의 부정에는 need not 또는 do not have to(필요없다)를 씀;또한 과거·미래·완료에는 have to의 변화형을 씀》
2 [의무·명령·요망·충고를 나타내어] …해야만 하다, …하지 않으면 안 되다;[부정문에서 금지를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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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ght to +동사원형 ->반드시 ~해야한다. must, should, have to 랑 비슷한 뜻.
다만 당위의 강도에 차이가 있져. 제 기억으로는 ought to가 가장 세고 다음이 must 다음이 should 다음이 have 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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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Ought to

1. 의무,당연
2. 추측
3. 후회,유감,비난

☞ ought to 는 대체로 should에 준함(더 강한 의무), 부정: ought not(oughtn't) 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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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ght1

1 [의무·도덕적 책임·당연·적당·필요] …해야 하다, …할 의무가 있다, …하는 것이 당연하다 《★ 「의무·당연」을 나타낼 때는 should보다 다소 뜻이 강하고, 「필요」에서는 must보다 약함》
2 [개연성·가망·가능성·당연한 결과] …하기로 되어 있다, …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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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d ought to do ·구어》 《 표현 표준으로 사람 있음》 (1) … 하다(ought to do) (2) … 했다(ought to have done):You ~ to have told me. 에게 말했어야 했다. 《하지 않은 나쁘다
n. , 의무, 책임

인테리어디자이너 마영범

 

마영범  


1986 경희대학교 대학원 미술교육학과 졸업 1986 현재 소 갤러리 대표 1997 현재 경원대학교 실내건축학과 겸임교수 1995 KOSID 협회상 수상 1995 월간 디자인 올해의 디자인상 수상 1999 월간 인테리어 명가명인상 수상





  왜 인테리어디자이너가 되었는가?   


동기/ 유치원도 들어가기 전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부모님은 나를 화가로 키우기 원하셨고, 나도 그 이외의 다른 내 모습은 상상도 한 적이 없었다. 국민학교 때부터 장래희망을 물으면 한 번도 망설이지 않고 ‘화가’라고 대답하였다.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계속 미술을 했고, 미술교육학과를 졸업하였던 이유로 대학 졸업 후 잠시 고등학 교에서 미술을 가르친 적도 있다. 첫 개인전을 개최한 이후 후원해주는 평론가의 도움으로 두 번째 전시회를 초대전으로 치루게 되었다. 두 번째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젊었을 때 빨리 유명해지고 싶었고, 젊은 나이에 초대전을 갖게 된 것에 대해 자랑스러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그것이 스물 아홉 살의 일이었다. 그런데 두 번째 전시회를 마치고 나서 극심한 혼란을 겪게 되었다. 첫 번째 개인전과 두 번째 전시회 사이의 기간이 6개월밖에 되지 않았고, 충실한 준비를 하지 못한 채 전시회를 마치고 나서 나 자신을 속였다는 자책감과 절망감을 느꼈다. 극도의 혼란 속에서 다시는 그림을 안 그리겠다 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어려서부터 순수예술을 한다는 데 대해 자부심을 가져왔고, 디자인 분야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었 고 경시하는 마음이었다. 순수예술만이 가치가 있는 것이고, 그림을 통해 세상에 메시지를 전하고, 또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이 때 세상에 대한 인식을 다시 하게 되었고, 세상에 대해 새로운 눈을 뜨게 되었다. 1주일 동안의 전시 기간 중 고작 몇 백명의 관람객만이 그림을 감상할 수 있는데, 이것으로는 세상에 영향을 미칠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당시 나의 그림은 매스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반박과 인간성 회복에 관한 주제를 담고 있었다. 죽을 때 까지 예술가로서 남고자 했었지만, 두 번째 전시회를 마친 후의 기간에는 그렇게 폼 잡고 사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 후 4, 5년 동안을 일반인들의 기준으로 ‘방탕하게’ 보냈다. 그러나 사회에 대한 인식의 폭을 넓히게 된 시기였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리고 나에 대해 다시 인식하고 ‘나’를 알게 되었다. 이렇게 나는 화가의 길을 버리고 디자이너의 길로 들어서는 전기를 맞게 되었다. 과정/ 처음부터 인테리어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내가 처음 인테리어디자인을 시작하였을 때는 ‘인테리어 디자인’이라는 명칭조차도 일반화되지 않았을 때이다. 공식적인 나의 인테리어디자인 작품은 1989년의 카페 ‘앵콜’이었다. 내가 클라이언트로서, 디자이너로서 나의 가게를 꾸미는 작업이었다. 작업의 댓가를 금전적 환산으로 돌려받는 일로 시작 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디자이너들과는 인테리어디자인에 대한 접근이 달랐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디자인은 ‘일’이 아니 라 그냥 ‘생활’이었다. 나를 솔직하게 보여줄 수 있는 방법으로 택한 하나의 표현 방식이었다. 그 공간을 통해 내가 좋아하 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었고, 내 공간을 통해서 세상과 대화하고 싶었다. 그렇게 남과 다른 시선으로 ‘일’을 보았고, 그 일에 대한 개념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인테리어디자인을 하면서도 제도권에는 관심이 없었다. 1994년 이영희 한국의 상점으로 KOSID 협회상을 수상하면서 처음으로 KOSID에 가입하게 되었다.

  디자이너로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디자이너는 사고방식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디자이너들에게는 일을 위한 사고방식만이 존재한다. 디자이너 는 생활 자체가 디자인과 연결되어야 한다. 도면과 씨름하는 것이 디자이너가 아니다. 큰 차를 타고, 많은 직원들을 거느 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디자이너다운 생활방식이 중요한 것이다. 디자인은 책에서, 말로써 배우는 것이 아니라 생활 자체에서 배워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에게 인테리어디자인이 가지는 의미는?   


‘인테리어디자인은 내 방식으로 그리는 그림’이다. 나는 인테리어디자인에 너무나 자유스럽게 접근했다. 구한테 인테리어 디자인을 배운 적도 없고, 누구 밑에서 일을 한 적도 없다. 심지어 도면도 못그린다. 이 일이 내게 있어서 직업이 될 줄은 정말 몰랐다. 바보가 아닌 바에야 직업이 되리라고 생각했으면 학원에라도 다녔을 것이다. 그림을 그리면서 과외로 디자인 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은 인테리어디자인이 그림을 그리는 행위와 같다고 생각한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그 표현 형태가 달라졌을 뿐이며, 캔버스가 공간이라는 영역으로 바뀐 것이다. 디자인은 내 생활의 전부이며, 내게 목숨을 걸만한 가치로서의 의미를 가진다.









  자신에 대한 사람들의 부정적인 시각에 대한 반론을 제기한다면?   


어려서부터 예술가가 되고 싶었고, 그것만을 위해 생활해왔었다. 세상의 틀과 규정에 얽매이기 싫었다. 어떤 사람들은 나의 직선적인 면에 대해 좋지 않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것을 안다. 하지만 나는 나의 이익이나 개인적 발전을 위해 하 고 싶지 않은 얘기를 한다든가, 하고 싶지 않은 행동을 해야 하는 것에 부정적이다. 그러나 나의 일이나 삶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았다고 생각한다. 이 시대는 예술가나 디자이너에 대한 구분 자체가 애매모호한 시대이다. 나는 그저 크리에이티브한 일을 할 뿐이지 사람들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이 없다. 한편으로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 리는 것은 그만큼 화제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일의 결과보다 중요한 것은 디자이너의 정신이다. 나는 디자이너로서 나의 일로써만 보여지고 싶을 뿐이며, 현재의 나의 위치나 사람들의 시선은 상관하지 않는다. 조그만 사무실 에서 행복하게 공부하고, 좋은 디자인을 보고 그것을 사용하는 것에 만족을 느낀다.

  미니멀 디자인으로 규정되는 자신의 작품 경향에 대해서   


첫 번째 작품이었던 ‘앵콜’의 디자인은 ‘소 갤러리’의 디자인으로 이어졌다. 소 갤러리를 만들면서 그림을 그렸던 것처럼, 순수예술을 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디자인을 해나갔다. 디자인을 통해 나를 알리고, 세상을 바꾸고 싶었으며, 하다 보니 까 디자인이 너무나 재미있어졌다. 인테리어디자이너가 되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지만 작업을 하다보니 조금 유명해지기 도 하고, 책임감도 무거워졌다.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미니멀적인 그림에 대한 과정을 거쳤다. 그림을 그릴 때는 ‘LESS IS MORE’라는 말은 몰랐지만 추상회화를 전공했기 때문에 화면 속에서 이야기를 지워나가는 작업을 했었다. 그와 연결해서 공간도 그래야 된다고 생각했다. 10년이 넘는 기간동안의 나의 작품은 거의 비슷하게 미니멀리즘적인 성향을 띄고 있다. 물론 중간에 장식적인, 앤틱적인 디자인 스타일에 대한 시도도 있었지만 이는 변화를 위한 과정의 일환이었다. 작품을 진 행할 때마다 공부를 한다는 마음으로 임한다. 계속 다른 변화를 주고 싶었고, 의도적으로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그래서 모든 작품이 어떤 의미에서는 계속 미완의 작품으로 남아있다고 생각을 한다.





  디자인 작업을 풀어나가는 자신만의 방법   


디자인 작업은 시행착오를 거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흔히 현장용어로 사용되는 ‘데나오시’를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의 작업은 그림을 그리는 것과 같은 과정을 겪는다. 바탕이 되는 밑그림은 있지만 색, 질감, 재료 등은 그리면서 변화를 겪는다. 설계의 큰 줄기는 정해져 있지만 나머지는 진행해 나가면서 수정을 되풀이 한다. 그래서 나는 작은 일들을 좋아한다. 변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체로 우리나라에서 진행되는 인테리어디자인 작업이 시간적으로 여유가 없기 때문에 충분한 리서치 과정을 거칠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까운 점이다.

  자신의 작품 중에서 좋아하는 작품과 내놓기 싫은 작품이 있다면?   


나의 인테리어디자인 작업 중 내게 그 의미가 남다른 특별한 작품이 2개 있다. 이영희 한국의상점과 Barba가 그것인데, 이영희 매장은 내게 공간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가져다 준 작품이었고, Barba는 내가 의도했던 변화가 일반 대중에게 영향을 준 경우였다. 둘 다 일반적인 상식을 깨는 무언가가 존재했고, 이것은 내가 그림을 그렸던 경험에서 나올 수 있었 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두 공간 모두 영업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에 의해 처음의 나의 의도와는 다르게 바뀌어져 갔고, 그렇게 다른 사람에 의해 나의 디자인이 변질될 때 디자이너는 서글픔을 느낀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So Gallery’로서 내 공간이었고, 내가 계속 직접 손 대고 꾸밀 수 있었기 때문이다. 디자이너로서 내놓기 싫거나 부끄러운 작품은 없다. 다 잘 했기 때문이 아니라 작품 하나하나가 나를 나타내는 수단이었고, 또다른 나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 다. 물론 작업 도중 클라이언트와의 관계라든가 사람들하고의 마찰이 있어서 애를 먹은 경우는 많지만 작품 자체로서는 모두 다 애정을 가지고 있다.







  디자인 카피에 대한 의견과 본인의 예를 든다면?   


디자인이란 그 시대의 정치, 종교, 사회상이 반영된 문화의 한 단상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그러한 문화는 없이 디자 인만 외부에서 유입되었기 때문에 당연히 COPY가 있을 수밖에 없다. 어느 나라든 COPY는 존재하는 것이고, 유명한 디자 이너도 자기의 것을 찾기 위해서 COPY의 과정을 거친다. 자기가 너무나 좋아하는 디자이너처럼 되기 위하여 그 사람의 작품을 모방하는 것은 언젠가 자기 자신의 디자인이 나오기 위한 과정이다. 하지만 그냥 아무런 생각없이 잡지를 보다가, 또 책을 넘기다가 그냥 베끼면 괜찮겠다 싶어서 무조건 베끼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단순하게 베끼기 위한 COPY는 곤란하다. 나의 경우도 이전에 필립 스탁을 좋아했기 때문에 스탁의 작품을 COPY 한 적이 있다. 또 누구 것인지 모르는 작품을 COPY 한 적도 있다.

  디자이너로서 자신에게 부족한 점을 꼽는다면?   


디자이너로서 비즈니스 마인드가 결여되어 있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돈 계산을 전혀 못한다는 점. 이것 은 우리나라의 사회구조적인 문제와도 관계가 있고, 내가 순수미술을 전공했다는 사실과도 관계가 있다. 나는 화가란 세상 과 담 쌓고 은둔하면서 그냥 그림만 그리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 때의 사고방식이 지금도 나를 지배하고 있는 것 같다.

  현재 좋아하는 디자이너는 누구인가?   


예전에는 필립 스탁을 좋아했지만 지금은 신예 디자이너들이 너무 많아서 한 두명만을 얘기할 수가 없다. 요즘은 디자이 너의 춘추전국시대인 것 같다.얼마 전에는 네델란드의 DROOG DESIGN에 관심이 많았고, 최근에는 잉고 마우러의 CD ROM을 보고 있다. 또 레고의 ‘TECHNICS’ 시리즈에 푹 빠져있다. 이 시리즈는 너무나 놀랍고, 신나고, 재미있다.







  21세기의 디자이너로서의 자화상   


요즘은 하루에 6시간씩 컴퓨터 앞에 앉아있다. 또 사무실에서 LP를 들으며 행복해하고 있다. 사실 나는 컴맹이었기 때문 에 컴퓨터가 보기도 싫고 무서웠지만 또 다른 변화를 위해서는 필요하다는 생각에 컴퓨터에 매달렸고, 지금은 무척이나 재미를 느끼고 있다. 외부의 것을 받아들이는 데 누구나 어려움을 느끼지만 극복해야 한다. 책에서 보거나 남들이 떠드는 얘기 때문에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라 생활을 하면서 느껴야 한다. 내가 변함으로써 세상이 변하는 것이지, 세상의 변화에 따라 내가 따라서 변화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2000년은 단순히 숫자의 변화일 수도 있지만 내 스스로 변화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영희 한국의 상점 이후 한동안 한국성에 대한 고민과 함께 그 해결방안을 찾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이제는 인위적으로 일부러 찾으려 하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나’라는 개체를 통해 사람들이 세상을 인식할 수 있는 안테나가 되고 싶고, ‘나의 공간’에 대해 새로움의 인식을 가지고 접근했으면 좋겠다.



  앞으로의 계획   


내가 디자인을 잘 한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항상 부족함을 느끼다 보니까 다음에 더 잘 할 것을 다짐하곤 한다. 디자인은 나를 보여주는 작업이기 때문에 남과는 다른 디자인 환경을 설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10년 이상 이 일을 하다보니까 목표도 생기도, 생각도 확장되고, 뭔가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지금 나의 관심은 현재의 나의 위치보다는 앞으로 오랫동 안, 백발이 되어서도 현역에서 디자인 작업을 할 수 있을까하는 것이다. 백발이 성성해서도 디자인을 하고 있을 때 그때 진정한 디자이너라고 이야기 할 수 있을 것 같다. 앞으로 새로운 것을 제시할 수 있는 여건의 디자인 작업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후배들에게 해 주고 싶은 이야기   


디자이너다운 삶을 살 것을 말하고 싶다. 사회에 대한 인식이라든가, 문화라는 관점에서 보다 ‘큰’ 것을 볼 수 있기를 기대 한다.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생활 자체가 디자이너답다면 일로도 반드시 나타나게 된다. 그것이 솔직한 결과이다. 디자인의 시작은 개인적인 문제이지만 결국은 사회적으로 커다란 영향을 끼치게 된다. 교육도 물론 중요 하지만 진정으로 디자인을 미치도록 좋아하느냐에 대한 자기 성찰이 있어야 한다. 성적에 맞춰서, 전망이 좋다고 하기 때문에 디자인을 선택해서는 안된다. 또한 학교에서는 가장 기본적인 것과, 가장 진보적이고 전위적인 것을 동시에 학생들 에게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지금 대학의 교육 시스템은 작은 것밖에 볼 수 없도록 강요하고 있기 때문에 더 큰 발전을 위해서는 가르치는 사람들부터 변화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는 디자이너들이 서로 인정하고 북돋아줘야 발전을 이룰 수 있다. 도시의 라이프 스타일은 그 도시를 이루고 있는 건축, 인테리어디자인에 의해 달라질 수 있다. 디자이너들 은 이러한 면에 책임감을 느껴야 할 것이다. 많은 디자이너들이 변화를 두려워하고,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디자 이너는 세상의 변화와 새로움에 대해 적응하고, 체험하고, 포용하여야 하며, 그 속에서 자기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






 

 

협력교육기관

  

출처 : 인테리어뱅크차태현인테리어이야기
글쓴이 : 차태현 원글보기
메모 :
“어느 땐 엄마도 마녀… 아이들에게 통쾌함 주고 싶었다”
[조선일보   2007-04-21 07:27:34] 
볼로냐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 박연철

작가 박연철(37)은 한국 그림책 분야에 혜성처럼 등장했다. ‘어처구니 이야기’(비룡소)로 ‘2005황금도깨비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한 그는, 이번엔 두 번째 그림책 ‘망태할아버지가 온다’로 2007년 볼로냐국제어린이도서전이 선정하는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 80인’ 명단에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

경력이 독특하다. 치기공과를 전공했지만 그림을 그리고 싶어 영국 킹스턴 대학이 운영하는 사이버대학에서 일러스트레이션(API) 과정을 2년간 공부했다. ‘망태 할아버지가 온다’는 이 대학 졸업작품으로 준비한 것이다. “한국은 물론 전세계 아이들에게 유령 캐스퍼 같은 친근한 존재로 우리의 망태 할아버지를 소개하고 싶었다”는 그를 도서전(4월24~27일) 참가를 위해 볼로냐로 떠나기 사흘 전에 만나 인터뷰했다.

―첫 작품 ‘어처구니 이야기’나 이번 ‘망태 할아버지가 온다’ 모두 옛이야기 구조에 바탕을 두었다.

“나는 옛 이야기가 좋다. 단순하고 반복적인 구조에 선악이 명쾌해서 좋다. 그 속에 숨은 다층적 의미를 파악해가는 것도 재미있고.”

―논란의 여지가 있는 ‘문제작’이다.

“졸업 작품으로 이걸 심사하던 영국 교수가 엄마를 잡아가는 대목은 안된다고 결사반대했다. 아이를 집에 혼자 있게 해도 아동학대로 처벌받는 자기네 문화 때문이었을까?(웃음) 그래도 고집을 꺾지 않았다. 어린이 책은 반드시 안전한 결말로 가야 하는 걸까?”

―엄마들이 괘씸하다고 책을 안사면 어쩔텐가.

“건강한 엄마라면 자신의 두 가지 모습을 있는 그대로 유쾌하게 받아들일 거라고 믿는다. 왜 엄마는 늘 천사로, 구세주로 묘사돼야 하는가. 엄마가 너무너무 미울 때 아이들이 죄책감을 느끼는 대신 이 그림책을 읽고 히죽 웃으며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고 싶었다.”

―그림도 아이들이 보기엔 칙칙하고 뾰족뾰족하다.

“내 37년 인생이 좀 뾰족뾰족하다.(웃음) 원색을 좋아하지만 내가 A형이라 소심해서 그런지 잘 쓰지 못한다. 무채색을 쓰면 마음이 안정된다.”

―혜성처럼 등장했다.

“그렇지 않다. 황금도깨비상 받기 전까지 8년 동안 학습지 그림도 그리고 전집 일도 했다. 그림이 전공이 아니라는 콤플렉스를 극복하는 게 가장 힘들었다.”

[글=김윤덕 기자]

[사진=정경렬 기자 krch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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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오르라고 한 까닭은?  
 
 


모든 지혜를 젊은 제자에게 전수하고
죽을 날만을 기다리고 있는 늙은 스승이
어느 날 제자를 불러 말했다.

"저기 저 너머에는 아주 높고 깊은 산이 있단다.
나는 이제 거기서 편히 쉬고 싶으니
짐을 챙겨서 떠나지 않으련?"
제자는 기꺼이 스승을 업고
짐을 진 채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산은 가파르고 너무나 높았기에
올라도 올라도 힘만 들고 끝은 보이지 않았다.
제자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서 스승을
시원한 그늘에 앉혀놓고는 짐을 풀고 쉬었다.

스승이 제자에게 물었다.
"그만 오르고 싶더냐?"
"아닙니다. 잠시 쉴 뿐입니다."
스승은 아무 말 없이 기다려 주었고
제자는 다시 스승을 업고 산을 올랐다.

한참 오르다가 제자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짐은 잠깐 내려놓고 스승만 업고 가겠노라고 했다.
하지만 한참 스승을 업고 가던 제자는 다시
"스승님. 제가 나중에 모시러 올 터이니
제가 산을 다 오를 동안만 기다려 주세요.
먼저 올라가서 집 상태를 보고 모시러 오겠습니다."
스승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내려온 제자에게
어찌하여 벌써 내려왔냐고 스승이 묻자
"산이 너무 높아 도저히 정상을 보지 못하고
내려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그 말에 스승은 들고 있던 지팡이로
제자를 힘껏 내리치며 호통을 쳤다.

 

"이런 어리석은 놈! 산을 오르며 너는 어찌하여
아무 것도 얻지 못했더란 말이냐?


중간에 하나둘 포기하더니
이제는 네 자신마저 포기하고
너에게 남은 것이 무엇이란 말이냐!"

제자는 그제야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힘을 내어 스승을 업고 산 정상에 도달했다.

 


- 솔 바 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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