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꿈은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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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에 퍼온 글은 황신혜밴드의 리더로 알려진 김형태씨가 그의 홈페이지를 통해 카운슬링하는 것중

인터넷에 퍼져 유명해진 것중 하나입니다.

아마 이미 읽어보신 분들도 계실 겁니다.

직설적이고 촌철살인의 대가로 유명하죠. 너, 외롭구나 라는 책까지 냈습니다.

 

소냐도르님과 같은 고민은 누구나 해봄직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글이 님의 상황에 딱 맞거나, 정답이나 해결책은 아닐지언정,

스스로 마음을 다잡고 무엇이든 하나의 목표로 정진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한번 올려봅니다.

 

 

------------------------------------------------------------------------------고민 상담 : 김형태님께 카운셀링 의뢰합니다

저는 지방대 디자인학과 졸업 예정이고
다른 이태백 일원들과 마찬가지로 여러 군데 이력서를 넣고 있는 와중입니다.

 

연락오는 곳은 별로 없고
무언가 불안하면서도 편안한(?) 생활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곳저곳 이력서를 넣고 있지만 솔직히 제가 무엇을 하고픈지 알 수가 없습니다.
원래의 전공인 제품 디자인을 하고 싶다가도
디스플레이를 하고 싶기도 하고

영화공부를 하고 싶기도 합니다.

제품 디자인을 하자 라고 하면
평생 영화 공부는 커녕 영화 찍는 것도 구경하지 못할 듯하고
영화 공부를 하자고 하면 학교 다닐때 했던 과제들의 즐거움이 떠오릅니다.


일단은 먹고 살아야하니 직장을 다녀야 할 듯해서 계속 이력서는 넣고 있지만
만약 회사에 다닌다면 영화 공부는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완전히 영화에 미쳤다든가 비범하다든가 하는 인간 극장에 나올법한 사람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회사에 다니면서 다른 것을 병행하기란 힘이 들 것 같습니다.

아, 정말 모르겠습니다.
올 해 후반에 있을 영화교육기관(?) 시험을 보고싶은데 모르겠습니다.
그때까지 매달려야할까,
아니면 직장을 다니면서 틈틈히 해야할까.
그렇다고 영화라는 것이 내 평생 직업으로서 가치가 있는 것일까.
힘들고 배고픈 그 직업에 대해 환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나.
또한 4년 동안 했던 디자인은. 대체...

기대를 걸고 있는 부모님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부모님께서는 당연히 제가 하고 싶은 것을 하도록 놔두시겠지만
그래도 안정된 직장 생활을 하면서 부모님께 조금이라도 호강을 시켜드리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 "안정된" 직장생활의 끝에는 나의 꿈이 있을 것 같진 않습니다.

백수가 되어 이것저것 가릴 때는 아니지만 신중하고 싶습니다.
섣불리 조금 앞만 바라보고 결정했다가는 나중에 후회 할 일들이 이만저만이 아닐것 같습니다.

사실 이 글을 쓰면서 생각하기를
일단은 취직을 하고
회사에 다니면서 영어 공부를 하고,
영화 쪽이나 디자인 쪽으로 유학을 가리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but

회사를 몇년 다니면 유학을 갈 수 있을까,
아니면 그 영화교육기관에는 들어갈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부메랑처럼 또 따라옵니다.

횡설수설 앞 뒤 안맞는 소릴 해댔습니다.
하고 싶은 일이 많다는 것이 행복한 고민일까요.
어쩌면 진짜 하고 싶은 것이 없어서 하는 소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조금 더 많이 사신 사회선배님들..
지금 제가 어떤 선택을 해야 나이가 들어서도 그때 나 정말 잘했어 라는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조언 부탁드립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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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


당신은, 요즘 20대 청년실업자의 전형입니다.

20대가 왜 그렇게 취직하기가 어려운줄 아십니까?
사람들은 불경기라서 그렇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그 반대입니다.

20대들이 정확히 하고 싶은 일이 없고,
확실하게 할줄 아는 것이 없고,
겁은 많아서 실패는 무진장 두려워 하고,
무엇이든 보상이 확실하게 보장되지 않으면 절대 시작도 하지 않으며
눈은 높아서 자기가 하는일도, 주변의 현실들도 모두 못마땅하고, 시시껄렁하고,
옛날사람들처럼 고생고생하면서 자수성가하는 것은 할 자신도 없고 하고 싶지도 않고,
어떡하면 편하고 안정된 직장을 얻어 돈을 벌수 있을까만 궁리합니다.

 

20대가 그런 식이니까 사회가 무기력해지고
경제가 침체되어 불경기가 오는 것이죠.

그럼 세상은 어떤지 이야기 해드리죠.

 

취업문이 좁다고들 난리지만,
사실 모든 회사에서는 새로운 인재가 없어서 난리입니다.


세상은 자꾸 변해가고 경제구조도 바뀌어가니까
새로운 젊은 인재들이 회사에 들어와서 젊은 피를 수혈해줘야 하는데
이력서를 디미는 젊은이들은 하나같이 개성도 없고
창의력도 없고 일에 대한 열정도 없이
그저 돈만 바라보고 온 사람들입니다.

회사 입장에서 볼 때 그런 사람들은
조금만 더 나은 봉급을 주는 직장이 나타나면 미련없이 회사를 그만둘 사람들로 보이고,
또 그들이 기대하는 젊은 혈기와 창의력도 없이
누구나 학원좀 다니면 딸 수 있는 뻔한 자격증만 잔뜩 가지고 오죠.

그래서 요즘 회사들은
신입사원 최우선 기준이 "충성도"랍니다.

이말인즉슨,
너희는 그냥 시키는 일이나 로보트처럼 한다면 일자릴 주겠다.는 뜻이죠.
개성과 창의력은 포기하고 잡부나 시키겠다는 것입니다.

지금 20대들은 자신들이 신세대이고 새로운 감각을 가지고 있다고 믿겠지만,
사실, 회사나 산업현장에서 당장 필요한 능력은
그런 겉멋이나 추상적인 감각이 아닙니다.

그리고 직장은 돈을 벌자고 다니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당신처럼 하고싶은 일은 따로 있으면서

단지 돈만 바라보고
원하지도 않는 직장에 입사원서를 내는 것을, 회사중역들은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500명 1000명이 와도 뽑을 사람이 없는 것이죠.

이를테면 사랑하는 사람이 따로 있는 사람과 결혼을 하겠습니까?
그런 사람은 세상 어디에서도 원하지 않습니다.


20대가 취직을 못하는 이유는,
바로, 특별히 할줄 아는 일도, 특별히 하고 싶은 일도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어른들은 그 사실을 면접때 눈빛만 봐도 다 알아봅니다.

그리고, 나약한 의지박약에 굴리는 잔대가리가 문제입니다.

당신이 쓴 글을 보십시오.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은데,

저걸 하면 배고플거 같고,
이걸하면 잘된다는 보장은 없고
돈도 벌고싶으니 취직도 하고싶은데 직장은 재미없을 것 같고....
그 와중에 대학원엘 갈까 유학을 갈까...
편안한 학생신분만 연장하려고 하고, 대체 뭘 하고싶다는 것입니까.

당신의 진로 문제를 짧게 정리해보면,
"하고싶은건 많지만 고생해가면서까지 꼭 해야할건 아니고,
그냥 먹고살게 안정된 직장에 들어가면 좋겠는데
그게 쉽지도 않거니와 또 시시할거 같아요"
입니다.

 

그런 사람을 받아주는 회사는 세상에 하나도 없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만든 영화가 감동스러울 수 없고,
그런 사람이 기획한 디자인이 아름다울리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날의 20대들이
그렇게 많은 자격증과 명문대 졸업장과 수백장의 입사원서를 들고 뛰어 다녀도
취직이 안되는 이유이고,
나라의 심장부가 그 모양이니
이 나라의 경제가 침체되고, 장기 불황이 시작되는 이유인 것입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당신들은 잘못된 교육탓으로 돌립니다.
물론 맞는 이야기입니다. 동정표 한장!

하지만, 교육이 엉망이었던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도 당신들의 부모나 선배들은 더 발전적인 삶을 살았다는 것을 보고 배워야합니다.

훨씬 열악한 환경 안에서
훨씬 일찍 철이 들고, 나라를 발전 시켰으며
그 와중에 나름대로의 문화 생활도 영위했습니다.

남탓,
시대탓,
환경 탓하는 것만큼 구제불능의 바보는 없습니다.

참고로,
아시아 모든 국가중에서 우리나라가
청소년의 어른에 대한 공경심 조사에서 꼴찌를 차지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어른을, 선배를, 과거를 존경하지 않는 젊은이는
원대한 꿈을 가질 수 없습니다.

꿈과 희망이란,
"나도 저 누군가처럼 될테다"하는 동경에서 시작되는 것이거든요.

당신들의 큰바위얼굴은 누구입니까?
그런게 있습니까?

오직, 자기자신과 돈에 대한 동경만 있지않은가요?

섣불리 결정했다가 나중에 후회할까 두렵다고요?
왜 해보지도 않은 일을 후회할 걱정부터 합니까?


보지도 않은 영화를 재미없을까봐 포기하고,
가보지도 않은 여행지에 볼게 없을까봐 안가기로 하고,
저 요리가 맛이 없을까봐 안먹고...
사는건 대체 뭘까요?

당신이 어떤 인간인지 당신은 알고 있습니까?

정말 영화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얼마나 잘 만들수 있는지,
디자인은 또 얼마나 훌륭하게 할지,
회사를 다니면 얼마나 뛰어난 업무능력이 발휘될지,
당신이 어떻게 해보지도 않고 침대위에서 그 짧은 인생경험으로 알수 있겠습니까.

양다리에 삼발이에 문어발로 온갖 일에 맘을 다 걸쳐놓고
실제로 하는 일은, 해본 일은 하나도 없으니 불안할 수 밖에요.

"하고싶은 일이 많다는 행복한 고민"이요? 웃기는 자위입니다.

"내가 뭘 할줄 알고 뭘 하면 행복해 하는 인간인지 이나이 먹도록 하나도 모르겠어요. "
로 들리는 헛똑똑이의 넋두리로밖에 안들립니다.

좀더 신랄하게 당신의 심리를 파헤쳐보자면,
영화를 하고 싶다는 것은 현실도피성 희망입니다.
솔직히 디자인도 최고로 잘할 자신이 없는것이죠.

자신의 전공쪽으로도 별로 희망이 보이지 않으니까,
"사실 나는 디자인보다 영화에 관심이 훨씬많다.
그래서 늦게라도 영화공부를 다시 한다 "
라는 상황에 대한 알리바이를 미리 준비해두려는 것이죠.

취직이 계속 안되는 상황에도 대비하고 있습니다.
여기저기 입사원서 던지다가 어디 좋은데 운좋게 취직되면, 당신은 이러겠죠.

"먹고 살아야하고, 부모님께도 효도하려고
내가 진짜 좋아하는 디자인과 영화를 포기했어"

그냥 나약한 생활인일 뿐인데
어느새 순교자로 승화되는거죠.

그 좋은 머리를 그런 자기합리화에 쓰기에 바쁘니
뭘 하나 똑부러지게 실천하겠습니까.

내 말이, 억울합니까?
그럼 실천해보십시오.

우선,

근무조건이 좀 열악한 직장을 선택해서 취직을 하세요.
그럼 금방 취직됩니다.

봉급도 좀 만족스럽지 못하겠지만,
자기 한입 먹고 살 만큼은 줄겁니다.

그리고 20년 계획으로 영화에 대한 공부를 시작하세요.
용돈을 쪼개서 모으고 모아서 캠코더를 사고...
컴퓨터를 사서 편집장비를 마련하고
(왠만한 PC로 다 가능합니다)

책을 사서 읽고, 주말에 영화 관련 포럼에 찾아 다니고,
틈틈히 시나리오를 쓰고,
휴가 때는 비디오 영화를 만들어 보고,
이 모든 것은 직장 다니면서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20년 계획으로 꾸준히 하면,
습작이 꽤 될거고,
시나리오도 몇편 나올겁니다.

디자인 공부한건
영화에 고스란히 활용될거니까 아깝다고 생각하지 말고요,

그렇게 해서 40대가 되면,
당신은 어느새 다니던 직장에서 직위도 올라가있어서

월급도 꽤 되고 어느새 안정된 직장이 되어있으며,
영화 감독으로 데뷔하기에 경쟁자가 없으리 만큼
탄탄한 준비를 가진 40대 신예 영화감독이 되어있을 것입니다.

그럼 바로 성공이냐?
아니죠.

입봉하고 나서 한 10년 현장에서
시행착오도 겪고, 기대도 받았다다가

실패도 했다가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진정한 실력을 쌓습니다.

앗 어느새 50대가 되었네요.
여러분들은 이정도되면 인생 쫑났다고 생각할겁니다.

 

그러나 나이 먹고 알고보면,
세상은 어른들의 세계입니다.

그렇게 30년 줄기차게 정진해서 60가까이에 걸작을 하나 남길 수 있다면,
당신은 최고로 멋진 인생을 산 것입니다.

인생은 결과보다 과정에 더 많은 가치가 있으며,

결과까지도 좋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는 것이거든요.
인생은 60부터란 말에는 삶의 커다란 진실이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내 말을 못믿어서가 아니라,
후줄근한 직장에 다니면서 20~30년이나
투자할 만큼 영화를 그정도로 갈구한것도 아니거든요.

 

이 글을 읽는 동안에도,
저렇게 할 수 없는 피치못할 적당한 구실을 찾느라 머리를 쓸 뿐이죠.
벌써 몇가지 변명을 만들어 냈을지도 모르죠.

결국 자기인생에 변명을 만드느라
젊은 날을 허비하고 있다면 참 암울할 뿐입니다.

당신들,

정말,
왜들,
그렇게도,


경험으로 진리를 찾기를 두려워한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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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쩜 이렇게도 ... 이렇게도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정확하게 할까.

나역시 해보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리고 경험으로 쌓은 자산이야말로 진정한 발전의 밑거름이라 생각한다. 난 비록 30대가 되었지만 아직도 두려운것이 없다. 남들이 힘들다는일? 꺼려서 하기 싫다는일 왠만큼은 경험해봤기때문에..

 

나도 우리나라의 20대에게 해주고 싶은말이 있다..

"나가서 니가 하고 싶은 일을 해라!!"

이말에 반문과 변명만 둘러대고 있다면 그냥 남들처럼 살아라.

 

톱클래스는 아니였지만 수도권 대학에.. 대기업면접제의에 교수추천까지 받아서 편하게 직장생활 할수잇는나였지만 난 내꿈을 위해 학교졸업전부터 회사를 차렸고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하며 20대에 내모든것을 바친것이 있다. 비록 계속 넘어졌지만 비록 성공하진 못했지만 비록 지금 나의 동기들과 많은 갭이 떨어져있지만..

결코 후회하지도 변명하지도 날 비하하지도 않는다. 난 언제나 떳떳하고 아직 두렵지않고 인생의 쓴맛이 단맛으로 바뀔꺼라 믿어 의심치 않으니까..

이시대 최고의 배우 장동건 클로즈업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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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연예인보다 예뻐지는 카페™
글쓴이 : *쥔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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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 악플 박진영 “악플 저장해 두고 즐겨본다”

박진영악플 저장해 두고 즐겨본다”

1994년 <날떠나지 마>로 데뷔. ‘비닐 바지 무대 의상’‘누드 화보 촬영’ 등 그는 가수 활동 내내 파격의 중심에 섰다. 그리곤 프로듀서로 전향해 god·박지윤·비 등 가수를 키워냈다.

윌스미스의 앨범 참여를 통해 ‘빌보드 차트에 이름을 올린 한국 최초 작곡가’가 됐다. 쉴새없이 새로운 도전의 길에 서 있는 박진영(35)은 올해 뉴욕 맨해튼 중심에 국내 최초로 음반사를 설립한다. 해외서 굵직한 뉴스를 끊임없이 쏟아내는 경영인이자 프로듀서 박진영. 하지만 그의 꿈은 팔순이 돼서도 무대서 춤출 수 있는 ‘영원한 딴따라’다.

싸이 공연 게스트 참여와 녹음 작업을 위해 지난해 12월 31일 미국서 귀국. 열흘간 한국서 머문 박진영을 지난주 서울 청담동의 와인바 74에서 만났다.

“겸손하지 못한 것이 내 콤플렉스”라며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그의 화법은 술이 들어가자 더욱 도전적이고 거침없다.



- 술·여자·춤 모두 중학교 때 배웠죠

한국서 머문 열흘간 박진영의 일정은 숨돌릴 겨를이 없었다. 싸이의 결혼과 생일선물로 ‘싸이 콘서트 게스트’로 서기 위해 한국에 잠시 들렀다. 그 사이 처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다.

빡빡한 스케줄 와중에 기울이는 술잔이라 서로 무리하지 않기 위해 오늘의 주종은 와인으로 골랐다. 기자와 박진영이 잔을 채우고 새해 인사를 건네며 잔을 부딪쳤다.

“저에게 술은 참 고마운 존재죠. 언제나 복잡하게 돌아가는 내 머리를 일시정지 시켜주거든요. 사람을 만나 얘기하고 있을 때도. 음악을 들을 때도 쉴새없이 다른 생각을 하고 분석을 해요. 얼마나 피곤하겠어요. 그런데 술을 마시면 머리가 아무 생각없이 쉬게 되니 좋아할 수밖에 없죠.”

그의 주량이 최고에 달했던 시절은 가수 활동 전성기 때로 소주 7~8병은 너끈했다. 이훈과 소주 15병을 나눠 마시고 기분 좋게 헤어지기도 했다. 요즘은 3~4병 정도가 적당하다.

데뷔 후 솔직히 밝혔듯 그는 중·고교 시절 좀 ‘놀았다’. 중학교 때 춤·여자·술 모두 섭렵했다. 주먹도 꽤 쓸 만했다.

“10대엔 내가 춤에 재능이 있는지도. 의지가 있는 사람인지도 잘 몰랐어요. 그저 지는 것을 싫어해 춤·공부·싸움·오락 모두에 집착했어요. 싸움도 꽤나 잘해서 어느 학교에 주먹이 센 친구가 있다고 하면 찾아가서 싸움을 했어요. 싸워서 진 기억은 별로 없어요.”

놀긴 했지만 부모님을 크게 걱정시키진 않았다. “가출도 자주 했어요. 친구들 사이에 제가 우두머리라 가출하는 친구들을 돌봐야 했거든요. 가출해서도 부모님께 어디에 있는지. 언제 들어갈지는 늘 알려드렸죠.”



- 박진영 난 악플을 즐긴다

가수 박진영의 행보는 늘 튀었다. 비닐바지를 입고 엉덩이를 흔들었고. 누드 사진을 촬영하기도 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우린 사랑을 나눴지’ 등 가사는 선정성 공격을 받았다. 왜 이렇게 튈까.

“20대에 난 음악과 사랑을 좋아하고 억압을 싫어한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사랑을 좋아하니까 사랑하는 사람 사이의 섹스는 아름다운 일이라고 자유롭게 말했죠. 그런데 우리 사회는 섹스에 대해서 얘기하면 성적으로 문란한 사람이 돼 버리죠. 사실 전 원나잇 스탠드 같은 거 별로 안좋아해요. 대학시절 몇 번 경험이 있긴 했지만 기억이 별로 좋지 않았어요.

그리고 또 난 힘으로 억누르는 걸 싫어해요. 공경을 하는 것은 좋지만 힘이 센 사람이 약자를 억누르기 위한 도구로 쓰는 권위는 싫어요. 내가 활동할 당시 방송국의 권위도 규제도 커 선글라스를 쓰는 것도 허용되지 않을 정도였죠. 그런 것에 대한 항거로 비닐바지도 입고 누드도 찍었어요. 같은 맥락에서 청와대에 갈 때도 망사를 입은 것이죠.”

한참 목소리를 높인 박진영이 목이 탄지 와인을 들이켠다. 비난도 많았지만 박진영은 사랑받은 음악인임이 분명하다. 그는 왜 대중이 박진영에게 매력을 느낀다고 생각할까.

“일부러 가식떨지 않고 또 착한 척하지 않아서인 것 같은데…. 늘 지금처럼 격앙되고 흥분된 상태에서 말을 하고 주장이 강하니 좋아하는 분도 많지만 안티도 참 많구요. (웃음)난 안티 없으면 끝난다고 생각해요. 안티들의 글과 좋은 글을 다 폴더에 스크랩해두고 그날 기분에 따라 꺼내 보거든요.

악플 중에서 제 음악을 표절이라고 하면서 ‘너 빌보드에 한번 가 봐라’하는 내용을 보고 ‘내가 못할 것 같아’하고 마음을 먹으니 정말 미국에 와 있게 되더라구요. 성격이 독특해 남들에게 일부러 미움을 사려 한 적도 있어서 학교 다닐 때 아마 60명 중에서 55명 정도 날 싫어하기도 했죠.”

직접 만날 때마다 느끼지만 이 사람 말 참 잘한다. 잘 나가는 박진영도 스스로에게 느끼는 단점이 있다.

“과묵하고 겸손하기를 못해요. 그것이 콤플렉스죠. 난 조그만 일 하나만 해도 ‘내가 이거 했다’고 떠벌리고 싶어 안달이거든요. 그런데 내가 봐도 엄청난 일을 한 사람이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땐 참 대단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죠. 남자가 봐도 그런 남자는 멋져서 내 여자를 뺏길까 봐 걱정돼요.”



- 비를 보면 질투심 1%도 안느껴

박진영의 위치는 프로듀서 데뷔 후 더욱 탄탄해졌다. 올 상반기 계약이 만료되는 비의 재계약 문제가 가요계의 이슈다. 비의 몸값이 50억. 100억이란 얘기가 심심찮게 흘러나온다.

“며칠 전에도 같이 술마시고 놀았지만 한 번도 재계약에 대해 얘기를 꺼낸 적이 없어요. 계약 만료 시점에 가서 비와 JYP의 상황에 따라 달라질 일이잖아요. 철저하게 비의 이익을 생각해서 도움이 되는 곳과 계약을 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난 재계약과 관계없이 비가 다른 회사에 가더라도 영원히 형-동생으로 지낼 거예요. 비가 떠나도 난 비가 너무 좋아요. 그만큼 뜬 아이가 그 정도 겸손하고 성실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예뻐요. 사람들이 안 믿겠지만요.”

무대 위 비를 보면 질투를 느낄 것 같다는 뒷얘기도 많다. “다들 정말 안 믿지만 1%도 아니에요. ‘정말 많이 늘었다’는 생각이 들고 대견할 뿐이죠.”

관객들은 비를 보면 그저 열광하지만 박진영에겐 비의 부족한 부분이 보인다. “연기도 춤도 노래도 힘을 빼야 해요. 모든 게 (정)지훈이의 성격처럼 너무 진지하거든요. 나와 비는 처음부터 춤에 대한 태도가 정반대였어요.

나에겐 춤이 놀이였지만 비에겐 춤이 삶의 해법 같은 것이었죠. 비는 자신의 환경을 극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춤을 췄으니 한없이 심각할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이젠 비도 힘을 빼고 즐겼으면 좋겠어요. 비가 힘을 빼는 순간 정말 춤·연기에서 무서운 존재가 돼 있겠죠.”

기자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지만 검은 피부의 박진영은 도무지 술을 마셨는지도 모르겠다. 주당 확실하다.



- 80세에도 무대에서 춤추는 할아버지

박진영의 목표는 ‘영원한 딴따라’다. “전 절대 70. 80이 돼도 은퇴 안할 거예요. 내 목표가 할아버지가 돼서도 100명 소규모 무대에서도 춤추고 노래하는 것이거든요. 죽고 난 후 ‘술 주면 춤 잘 추고 잘 놀던 애’로 기억됐으면 해요.”

정치에 관심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지만 자신의 길이 아님을 알았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5년 전에 확실히 알았죠. 예전엔 시사토크쇼도 하고 싶었는데 난 그냥 딴따라예요. 얼마 전에도 클럽에 들어가자마자 춤을 계속 췄더니 (양)현석이형이 ‘넌 영락없는 딴따라’라고 하더군요. ”

이렇게 무대를 좋아하는 박진영이 제 물을 떠나 프로듀서만 하고 있자니 좀이 쑤실 만도 하다. “나 같은 프로듀서가 있었다면 나도 가수만 했겠죠. 평생 가수를 하기 위해서 지금 시스템을 만들어 놓고 있는 것이죠. JYP엔터테이먼트를 설립한 것도 미국으로 가 바닥부터 새로운 도전을 한 것도 모두 가수를 하고 싶어 한 일이에요.”

올해 목표는 JYP 미국 지사를 설립. 신인을 미국 팝시장에 데뷔시키는 것이다. 그리곤 한국으로 돌아와 10월께 7집을 발표할 예정. 곡도 다 썼고 안무까지 짜 놓은 상태다. 가수로 다시 서기 위해 미국서도 하루 3시간 운동을 거르지 않는다.

“1년여 만에 싸이의 콘서트 게스트로 무대에 섰는데 팬들의 환호에 감격스러워 눈물이 났어요. 작년까지도 미국 시장 성공에 대해 이렇게 자신있게는 말하지 못했지만 이젠 정말 고지가 눈앞에 보여요. 망한 음반의 판매량이 50만 장인 미국 릴 존과 손을 잡는 기적 같은 일이 생겼잖아요. 올해 안에 꼭 앨범을 내고 싶어요.”

“아무리 가수가 하고 싶어도 미국서 성공 안하면 절대 안 돌아올 것”이라는 결의에 찬 박진영과 마지막 잔을 부딪쳤다.

마츠모토 시오리님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사이트에 찾아봐도 이렇다할 내용은 없고.....

 

한 수 배워가겠습니다.^^

 

 

GOLDFISH
18.0×14.0cm/0il on canvas
Shiori Matsumoto 2006

 

 

APPLE BLOOD
22.7×15.8cm/0il on canvas
Shiori Matsumoto 2006


 

 

RETROGRESSION
40.9×31.8cm/Acrylic,Oil on panel
Shiori Matsumoto 2001


 

 

INNOCENCE
145.5×112.0cm/Oil on canvas
Shiori Matsumoto 1999

 

 

SLEEPLESS NIGHT
38.5×38.5cm/Acrylic,Oil on wood
Shiori Matsumoto 2001

 

 

A GIRL OF THE CIRCUS
22.7×15.8cm/Oil on canvas
Shiori Matsumoto 2003


 

느낌...

 

아이디:nanbluemoon

 

어른들의 생각없는 행동에 힘없는 소녀의 무표정한 표정을 표현함으로써 추악한 어른들의 무분별한 힘에 저항할 수 없는 무기력함에 대한 잠재적 분노와 슬픔을 느끼게 해주는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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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디:분노의토끼

 

임신한 어린 여자아이와 성적 은유로 가득찬 그림인 것 같은데요.. 미성년자에 대한 성애라니 일본인들의 환상이 많이 반영된 주제 같네요. 배부른 물고기, 화살에 뚫린채 피흘리는 사과, 새를 품은 여성, 날개(순수)를 떼고 비밀의 문으로 들어가는 소녀...

실내와 방안, 문, 상자, 배부름, 사과등은 여성의 상징입니다. 말, 남자, 화살, 떨어진 3장의 카드, 칼은 남성의 상징이고요. 비유가 간단한 만큼 더욱 강렬한 표현이네요. 써커스하는 여자아이의 그림은 스스로를 보호하고자 하는 여자아이의 보호본능을

뜻하는 목도리와, 결국은 스스로를 상처입히게 하는 속성을 가진 칼(성적인 의미로의 남성)로 써커스를 해야하는 소녀의 강압적인 상황이 보입니다. 상품화되기 위해서 목이나 귀가 겉돌아보일 정도로 화장 당한체로 남들을 위해 칼놀이를 해야 하는거죠

서커스라는 것 자체가 스스로를 위한 것이 아닌 남을 위한 것이라는 속성을 가져요. 그렇게 생각하니까 애기들 전부 불쌍해보이네..


 

출처:다음/nanbluemoon : 松本 潮里(Shiori Matsumoto)

그녀와 함께 쇼핑 중, 프라모델(조립식 장난감) 매장을 보자

갑자기 옛날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어릴적 유달리 좋아했던 프라모델...

일단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저거 하나 살까?"

그러자 그녀가 대답했다.

"그래? 그럼 한번 보자!"

그녀의 첫 번째 배려였다.

매장 안에서 이것 저것 고르다,

마치 어린애처럼 그녀에게 의견을 물어 보았다.

"어떤 것이 괜찮을까?"

그러자 그녀가 대답했다.

"이게 더 멋진 것 같은데! 그리고 이건 30% 세일도 하네!"

그녀의 두 번째 배려였다.

계산을 하고 나와서 프라모델 상자를 열어보니

십자 도라이버가 필요했다.

"십자 도라이버도 사야하는데...여긴 철물점 같은 곳이 없네..."

그러자 그녀가 대답했다.

"이 근처에 내가 아는 철물점 있는데 거기서 사면 될거야!"

그녀의 세 번째 배려였다.

그 당시 정말 그녀는 단 한번도 내게 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장난감? 너 나이가 몇살이니!"

"대충 사고 얼른 가자! 난 이런 것 잘 몰라!"

"십자 도라이버는 너희 동네가서 사!"

그녀는 그렇게 나를 이해해주었고, 배려해주었던 것이다.

대개,

"유치하다."

"수준 이하다."

"참 독특하네!"라며 자신의 기준에서 상대방의 취미나 기호를 무시하곤 한다.

그것에 어떤 추억이 담겨있는지 먼저 헤아리기 보단(나의 경우 프라모델을 보자 과거의 추억이 떠올라 그 추억을 다시 한번 느껴보고 싶어서 그것을 샀다.)

자신의 의견부터 배설하고 본다.

하지만 그녀는 세번이나 나를 배려하며,

나 자신을 존중해 주었던 것이다.

그렇게

상대방을 존중해 주면서,

자신을 사랑스러운 여자로 만들어 나갔던 것이다.


"남자는 유치하다. 그래서 여자에게는 남자의 유치함을 이해해줄 수 있는 배려심이 필요하다."
출처 : 쿨카사노바
글쓴이 : kool 원글보기
메모 :


담배모양을 한 차 티백!
출처 : 이색적인 디자인의 제품들!
글쓴이 : 스마일 원글보기
메모 :

 

 

 

 

 

 

 

 

 
브리짓의 이미지가 너무 강했던 르네 젤위거 .
 
19세기의 베아트릭스 포터로 변신한 그녀는 여전히 너무나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
 
그녀의 열정적인 연기와 아름다운 자연풍경 .그리고 생동감 넘치는 캐릭터들의 표현 .
 
  
 
운명보다 열정적인 그녀 베아트릭스 포터 .
"미스포터"는 잔잔하면서도 여운이 남는 영화였다 .
 
 
따스한 햇살이 있고 시원한 바람이 부는날
산 언덕에 앉아 저 멀리 보이는 나무와 새파란 호수를
바라보면서 나도 글을 쓰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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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azonry.com/name_generator/usname.php

 

성별은
famale-여자
male-남자

 

enter your name란에 자신의 한글이름을 쓰면

 

(예)길동 홍 <-이름쓰고 띄우고 성 쓰면됨

 

 

 

-출처:정글(아이디:whitequeen)-

 

 

 

 

제발.........

                                                                      

                                                             ................이소라

       
          
 잊지못해 너를 있잖아..
  아직도 눈물 흘리며
      ...널 생각해
          
    늘... 참지 못하고
  투정부린 것 미안해...
          
          
 나만 원한다고 했잖아...
  그렇게 웃고 울었던
      ...기억들이
          
 다른 사랑으로 잊혀져
  지워지는게 난 싫어
          
       어떻게든 다시 돌아오길 부탁해.........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길 바랄게
          
 기다릴게 너를 하지만...
 너무 늦어지면은 안돼...
          
      .....멀어지지마
    더 가까이.... 제발
          
          
 모든걸 말할수 없잖아...        
  마지막 얘길 할테니
       좀 들어봐
          
 많이 사랑하면 할수록...
  화만 내서 더 미안해...
          
       어떻게든
 다시 돌아오길 부탁해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길 바랄게......
          
 기다릴게... 너를, 하지만..
 너무 늦어지면은 안돼
          
          
 멀어지지마.......                         

                                     더 가까이.......
          
       잊지말고
 다시 돌아오길 부탁해...
          
       헤어지면
 가슴 아플거라 생각해...

           
 기다릴게..... 너를, 하지만...
 너무 늦어지면은 안돼

 

           
 멀어지지마 더 가까이
       

 

  .........제발
           

 

 

 

스티비 원더.

이사람은 미국 가수이다. 미국 가수이다 뭐뭐 다 라고

할 것 없이, 시각 장애인이기 떄문이다.

시각장애인.. 아무도 사람들은 스티비 원더가 가수가 될 거라는걸

예상치 못 했을 것 이다. 하지만, 내가

왜 스티비원더를 올렸냐 하면..

스티비 원더는 결혼을 해 딸을 한명 낳았다.

하지만, 스티비 원더는 시각장애인이기 때문에

그저 소리로 딸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세월이 흘르고 흘러.

스티비 원더는.. 뒤늦게 개안수술을 위해 의사를 찾아갔다.

딸을 보기위해...

의사는 스티비원더에게

"수술이 성공적이여도..5분...밖에 따님을 보지 못합니다. 그래도

하시겠습니까?"  라고 말을 했다.

스티비원더는 딸이 얼마나 보고 싶었으면,의사에게

"네, 자식의 얼굴을..단 한번만이라도 보면 저는 괜찮습니다."

라고 말을 하고, 스티비 원더는 개안수술을 하였다.

그런데..

수술을 안타깝게도 실패로 돌아 갔다.

하지만, 스티비 원더는 실망을 하되 기뻤을 것 같다.

 

자식을 위해 최선을 다 했으니..

출처 : 何月歌
글쓴이 :  내사랑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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