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직장생활을 시작한 후 2년 내에 두 차례 이상 직장을 바꾼적이 없다.

2. 회사에서 맡은 업무가 있을 때 마감 시간 전에 여유롭게 일을 완수한다.

3. 동료들과 밥을 먹을 때 주로 밥값을 낸다.

4. 남에게 비난을 듣더라도 소신껏 행한 것이면 신경쓰지 않는다.

5. 일, 운동, 취미 등의 활동을 시작하면 반드시 끝장을 본다.

6. 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잘 다스린다.

7. 동료나 친구에게 배신을 당했다하더라도
여유롭게 용서하고 분발의 계기로 삼는다.

8. 체계이나 용모 등 이미지 관리에 신경을 쓰는 편이다.

9. 자기계발을 위해 회사 교육 이외의 별도의 교육기관에 등록, 공부하고 있다.

10. 정기적으로 자신과 이야기를 나누는 내면의 시간을 갖고 있다.

11. 좌우명, 목표 등을 적어본 적 있다.

12. 자신이 하는 일의 고객, 경쟁자가 누구라고 정확히 말할 수 있다.

13. 아침에 일찍 출근하는 편이다.

14. 회사의 비전과 개인의 비전이 정확히 일치된다고 생각한다.

15. 일생생활에서도 업무와 관련된 아이디어가 자주 떠오른다.

16. 명함에 자신의 회사명, 직급 말고도 경쟁력을 부가기킬 브랜드명을 가지고 있다.

17. 상사가 즐겨보는 드라마나 잡지, 신문 등 관련 정보를 잘 파악하고 있다.

18. 부하직원과 회식을 의도적으로 자주하고 있다.

19. 이메일에 대해선 신속하게 답변해 준다.

20. 나는 내 업종이나, 연배 말고도 다양한 친구들과의 모임을 갖고 있다.

21. 나는 좋은 동료, 선배가 있으면 주위사람들에게 소개시켜 준다.

22. 자신과의 약속을 그 누구와의 약속보다 무섭게 생각한다.

23. 자신이 하는 일이 사회적으로도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24. 새로운 것을 겁내지 않고 즐기는 편이다.

25. 장애물이 있다면 도전의식이 생긴다.

26. 열정적이라는 말을 주변에서 자주 듣는다.

27. 세상의 불공평에 대해 탄식하기보다 극복하려고 한다.

28. 일상적인 일에서도 자주 감동과 충격을 받는다.

29. 잘 나가는 때일수록 위기상황에 대비한다.

30. '나는 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31. 자투리 시간을 잘 활용하고 있다.

32. 직원임에도 사장처럼 일한다는 말을 종종 듣고 한다.

33. 나의 제안을 상대방이 거절할 것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는 편이다.

34.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기어코 실행하고 만다.

35. 메모장과 필기구를 가장 먼저 챙긴다.

36. 일주일에 3일이상은 점심 약속이 있다.

37. 말하기보다는 질문하기를 좋아한다.

38. 거절하더라도 상대방의 마음이 상하지 않도록 배려하는 편이다.

39. 어떤 사업아이템을 보더라도 수익구조를 따지는 버릇이 있다.

40. 일주일에 책을 한권 이상 읽는다.

========================================================================

35개 이상: 지금의 태도만 지키면 이미 CEO
30~34개: CEO자질 충분. 조금만 노력
25~29개: CEO가능성이 있음. 한층 분발 노력.
24개 이하: 자기일에 몰두 하는 편. CEO마인드는 필요합니다.

출처 : 나도 최고경영자(CEO)가 될 수 있다
글쓴이 : 여행과음악 원글보기
메모 :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 등 유명 인사들은 자신의 인생을 성공으로
이끈 나름대로의 규칙을 갖고 있다. 이들은 과연 어떤 좌우명을 갖고 있을까.

비즈니스 2.0은 28일(현지시간)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 엘리엇 스피처 뉴욕주 검찰총장,
'기업사냥꾼' 칼 아이칸 등 유명인사 49명에게 사업과 인생의 철학이 무엇인지에 대해
물어보고 그 내용을 소개했다.

버크셔 헤서웨이의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로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버핏(사진)은
"두명의 당신은 있을 수 없다(There can't be two yous)"를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

버핏은 "당신이 아침에 일어나서 그날 하고 싶은 일을 생각할 때
사람들이 내일 신문 1면에서 당신이 한일에 대해 읽기 원하는지를
당신 스스로에게 물어보라"며 "이런 마음을 갖고 있으면
아마 조금 다르게 행동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텔의 전 회장 겸 CEO인 앤디 그로브의 경우
"오직 편집광만이 살아남는다(Only the paranoid survive)"를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억만장자이자 '기업사냥꾼'으로 유명한 아이칸은
"어떤 것을 판단할 때, 특히 스스로를 판단할 때 행운과 능력을 혼돈하지 말라"고 주문한다.

스피처 뉴욕주 검찰총장은
"말할 수 있을 때는 쓰지 말라. 행동할 수 있을 때는 말하지 말라.
그리고 이메일에는 아무 것도 쓰지 말라"고 강조했다.
스피처는 이메일을 추적함으로써 많은 피고인을 기소할 수 있었다.

이외 마이크로소프트(MS)의 CEO인 스티브 발머는
"우수한 인재 채용을 최우선으로 하라"고 주문했으며

시스코 시스템즈의 CEO인 존 체임버스는
"고객은 언제나 행복해야 한다"는 철학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모토로라의 회장 겸 CEO인 에드 잰더는
"성공의 절정에서는 당신의 사업을 변화시키라"고 강조했다.

세일스포스닷컴의 마크 베이오프 CEO는
"당신의 고객을 세일스 포스로 이용하라"고 했고,

포커 월드 챔피언인 필 헬무스는
"정직한 사람은 절대 속일 수 없다"고 고백했다.

 

 

 

 

 일러스트레이터인 Jeffrey Fulvimari는 Ohio, Akron에서 태어났으며 현재 그는 New York City에서 거주하며 활동하고 있다.


그는 Bachelor of Fine Arts를 받은 Cleveland Institute of Art에서 art를 전공 하였으며, 1985년에 사진과 비디오, conceptual art을 집중적으로 공부하기 위해 Cooper Union으로 옮겼다.


“나는 학교에서 진정한 바우하우스(Bauhaus) 교육을 받을 만큼 충분히 럭키했다” 라고 Fulvimari는 말한다. 심지어 그는 그의 새로운 Bobbypin 컬렉션에서 디자인의 근원이 Fulvimari가 극찬하는 선각자인 Josef Albers의 철학 - 모든 것을 시도하고 당신이 시도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잘 되도록 노력하라 - 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말한다.


Jeffrey는 printed media, 즉 advertising, editorial, sales promotion 등 모든 방면에 걸쳐 일을 해 왔으며, 그의 일러스트레이션들은 Naked Chef of Food Network, MTV, Nick at Night, 뮤직 비디오와 수많은 일본 광고를 위해 창작되었다.


1999년 Jeffrey는 US에 800여 개의 샵 체인을 두고 있는 패션 액세서리 리테일 체인 AFTER THOUGHTS의 마케팅 컨셉과 메인 비쥬얼을 했는데 이 때 리테일 세일은 Jeffrey의 일러스트레이션을 사용한 이후 400%나 성장하였다.


이처럼 Jeffrey의 아이디어, 일러스트레이션 그리고 스케치들, 머천다이저는 수많은 제품들로부터 창조되어 왔다.


이런 제품의 모든 디자이너들은 Jeffrey의 열렬한 팬이며 그들은 Jeffrey 버전이 상품들 속으로 반영되어 상품이 다시 창조되는 것을 기꺼이 받아 들인다.  


만일 우리가 이런 제품들의 부틱에서 상품들을 가까이서 보게 된다며 Jeffrey가 그의 일러스트레이션으로 새로운 장소를 차지하게 된 것을 알아 채게 될 것이다.


Jeffrey Fulvimari의 섬세하고 아주 귀여운 예쁜 어린 소녀들의 드로윙은 Charles Schulz에서부터 Peter Max나 Andy Worhol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들로부터 영감을 받아 창작되고 있다.


Fulvimari는 Marc Jacobs나 Tori Amos 그리고 MOMA와 함께 일하고 있을 뿐 아니라 Calvin Klein의 대변인으로 일해 오고 있으며 최근 Anna Sui를 위한 film Zoe Cassavetes에 출현하였다. 또한 그는 스스로 사진을 찍을 뿐 아니라 “ 나의 베스트 프렌이며 내가 처음 뉴욕에 왔을 때 나에게 힘이 되어주고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을 하게 만든 사람” 이라고 말하는 David Lachapelle과 함께 일해오고 있다.

 Jeffrey의 일러스트레이션은 미국 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인기 있다.
1998년 3월, Jeffrey는 그의 일본에서의 커리어 시작으로 Parco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그는 IT'S OKAY AND EVERYTHING'S GOING TO BE ALRIGHT와 Hiiragi Nonaka가 쓴 BELIEVE, Betty Halbreich와 Sally Wadyka가 쓴 SECRETS OF A FASHION THERAPIST 라는 그의 책을 발간하였다.
 Jeffrey Fulvimari브랜드 런칭으로 2001년 스프링 시즌에서부터 제품들은 선보여졌다.
그 몇몇 제품들은 가죽 지갑과 동전 지갑, pochets, 세라믹 컵과 saucers, 케� 접시, 벽시계 및 데스크 시계, 손수건, 스카프, 패브릭 토트백, 타월, 배쓰 로브, 배쓰 매트, 속옷, greeting 카드, 엽서, 포스터, 달력 등을 포함한다.


  주요한 작업은 Sunstar, Ora2를 위한 TV 광고를 포함한다.
Jeffrey는 2000년 9월부터 애니매니트 된 장소를 위해 마네킹을 디자인했다. 코스메틱 회사인 Lepias를 위해 Jeffrey는 틴 에이저를 대상으로 하는 코스메틱 라인인 Lotus Love를 위한 패키지 디자인을 했다. 이 패킹은 2000년 10월에 완성되었으며 여전히 쓰여지고 있다. 일본전역에 1500여 개의 스토어 체인을 가지고 있는 패스트푸드 회사인 Mos Burger는 Jeffrey에게 signage와 모든 패키지 디자인을 요청하여 2001년 3월부터 선보였다. 


  Jeffrey는 일본에서 수많은 전시회를 가졌다.
2000년 3월, Jeffrey는 일본의 남쪽 부분에 있는 Fukuoka에 있는 IMS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Jeffrey는 “live painting”을 하기 위해 사인회를 가져왔는데, 500명이 넘는 사람들이 live painting에 왔으며 그들 중 일부는 저 멀리 중국에서부터 왔다. 그의 사인회는 5시간을 기다리게 하는 긴 라인을 만들었다.
2000년 7월에 Jeffrey는 그의 특별한 t-shirts라인의 창작을 위한 쇼를 Osaka에 있는 Selbis Gallery에서 가졌다.
1999년 9월, Jeffrey는 Umeda Loft에서 전시회와 함께 그의 제품을 위한 특별한 샵을 열었다. 그곳에는 또한 사인회가 있었다.
 수상
Jeffrey는 1994년 그래픽 디자이너 Chris Thompson과 함께 Ella Fitzgerald를 위한 “best of” CD box set package로 그래미 상을 받았다.

www.jeffreyfulvimari.com

Belinada Invented Punk
오렌지 신발의 형태에서 Punk가 Fulvimari식의 표현방법에 영향 받았다.
Footwear and flip-flops - Otto Tootsi Plohound, NYC

 

 

Plain Isn’t Bad
그는 점차 늘어나는 드로윙에 대한 요구를 받아넘기지 않고 Bobbypin이라는 브랜드를 런칭하였다. Bobbypin은 신발에서부터 문구류까지의 모든 장식적인 것을 포함한다. 

 

Pucci Mannequins
Fulvimari의 수 많은 합작 가운데 하나인 이것은 art에 기초 하는 마네킨 메이커인 Ralph Pucci. 핸드 페인팅 한 것을 특징으로 하는 남녀의 색다른 라인.
Courtesy of Ralph Pucci

 <발췌:ceci 8월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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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덕 변호사

나는 외모에 컴플렉스가 있다.
아시겠지만, 대학교 때 고시 3개를 합격했다.
사법고시 합격, 외부고시 2등, 행정 고시 1등.
그리고 서울대 법대를 수석 졸업했다.

학교 졸업 후 부모님께 큰 절을 했었다. 똑똑한 머리를 물려줘서가 아니라, 사실은 변변찮은 외모덕에 그저 고시에만 전념할 수 있게 해줬기 때문에 감사하다는 의미로.


내 직업은
1. 변호사이면서
2. 방송도 하고
3. 책을 쓰고 있다. 평생 소원이 1년에 1권씩 평생 책을 내는 것이다.
4. 글도 쓴다. 모 신문사에 경제기사를 1주일에 2개정도 쓴다.
5. 또 오늘과 같은 특강도 한다. 평균 1주일에 2회 정도
6. 증권분야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운영하고 있는 사이트가 있는데 회원수만도 3만5천명 정도 된다.
나름대로 홈페이지 관련 사업을 하나 구상 중인 것도 있다.
7. 마지막으로 대학에서 겸임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이처럼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무척 많은 것 같고,
어떻게 이걸 다 할까 생각이 들겠지만 다 가능하다.

이 중에서 한가지만 하더라도 힘들다고 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가능하다고 생각하면 다 가능하다.

무엇이든지 목표가 중요하며,
그 목표 달성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확신이다.
사람들은 어려운 일일수록 확신을 갖지 못한다.

인생에 있어 2가지 자세가 있다.
보통 사람들은 남보다 적게 노력하고 결과는 남들과 같은 똑같이 나오게 하려고 한다. 사실은 이것이 경제학 법칙에 맞는 것이다. 투입을 적게하고 효과를 많이 내는 것.

반대로, 다른 사람들 만큼의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 도 있다. 나의 경험상으로 보면 후자가 훨씬 좋은 결과를 낳는다.

남보다 노력을 더 많이 해서 비슷한 결과를 가져 오는 것이 비효율적인 것 같지만, 실제로 이것은 어느 시점이 지나면 훨씬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이것이 내가 인생을 살면서 내 스스로 내린 결론이다.


그럼 노력이란 무엇이냐?
나는 "노력이란 성공의 확률을 높이는 것이다."라고 정의 내린다.
하지만 물론 결과를 반드시 보장하지는 않는다.

노력에도 함수 관계가 성립한다.
* 노력 = f(시간 X 집중)

내가 실제 노력을 했는가 안했는가를 판단하려면
시간을 많이 투입했거나 집중을 잘했거나 살펴보면 된다.

똑같은 일을 하더라도 3시간만에 끝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5시간만에 끝내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3시간만에 끝내는 사람이 실제 일을 더 잘하는 것 같지만 나머지 2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가 중요하다.
더 많이 알기 위해 그 2시간을 투자하지 않았다면 노력하지 않은 것이다.

짧은 시간을 비교해 보면 노력을 적게하고, 많이 하는 것이 결과만 보면 거의 미미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순간을 이겨내면 주식처럼, 가속도가 붙기 시작하면서 그 차이는 엄청나다.

집중에 대해서 얘기해 보면, 고시 공부할 때 예를 들어 보겠다.
나는 고시 공부를 1년간 해서 합격했다. 어떻게 가능 했느냐?
첫째는 된다고 생각하는 확신 있었기 때문이고,
둘째는 남보다 더 많은 노력을 했기 때문이다.

보통 고시에 합격하려면, 봐야 할 책이 50권, 권당 페이지는 500p.
그 책을 5번을 봐야 합격한다는 얘기가 있다.
그러나 나는 7번을 봤다. 이를 계산해보면,
50 X 500 X 7 = 175,000 페이지를 읽어야 한다는 얘기다.
이것을 1년을 360일로 계산해보면 1일 목표량이 나온다.
즉, 1일 500페이지 정도의 분량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목표를 세울때는 구체적으로 세워야 한다.
막연한 목표는 달성하기 힘들다.

이 결론을 보면 "인간이 할 짓이 아니다"라고 생각할 것이다.
누구나 그렇게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사람들은 포기하게 된다.
설사 하게 되더라도 하다가 흐지부지 된다.

이렇게 목표에 대해 확신이 없고,
목표를 의심하는 사람은 집중을 할 수 없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목표에 확신을 가져라.


된다는 사람만 되고 안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안된다.
일단 안 된다고 생각하는 대부분의 85%의 사람들은 이미 나의 경쟁상대가 아닌 것이다. 된다고 생각하는 일부만 나의 경쟁이 된다. 그럼 경쟁대상이 줄어드니 훨씬 마음도 한결 가벼워진다.

세상도 절대적으로 잘하는 사람은 원하지도 않고 필요하지도 않다. 남 보다만 잘하면 된다. 그럼, 다른 사람보다 잘하고 있는지를 어�게 판단하느냐? 그것은 나 자신을 판단 기준으로 삼으면 된다.

인간은 거의 비슷하다. 내가 하고 싶은 선에서 멈추면 남들도 그 선에서 멈춘다. 남들보다 약간의 괴로움이 추가되었을 때라야 비로소 노력이란 것을 했다고 할 수 있다.

고시 공부할 때 7시간 잤다. 장기간 공부를 해야할 경우라면 일단 잠은 충분히 자야한다. 하루 24시간 중 나머지 17시간이 중요하다. 고시생의 평균 1일 공부시간은 10시간 정도다.

그러나 정말 열심히하는 사람은 잠자는 시간빼고 17시간을 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 정말,
밥먹는 시간도 아까웠다. 남들과 똑같이 먹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반찬 떠 먹는 시간도 아까웠다.씹는 시간도 아까웠다. 그래서 모든 반찬을 밥알 크기로 으깨어 밥과 비벼 최대한의 씹는 시간도 아꼈다. 숟가락을 놓는 그 순간부터 공부는 항상 계속 되어야했다. 나의 경쟁자가 설마 이렇게까지 하겠냐하고 생각들면 노력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미국에서 생활할 때 보면 소위 미국의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은 간단한 샌드위치로 끼니를 때운다. 점심시간 1시간 다 쓰고, 이래저래 20~30분 또 그냥 보내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들에 비하면 일 하는게 아니다.

집중을 잘 하는 것은 벼락치기 하는 것이다. 벼락치기 할 때가 더 기억에 오래 남는다고 한다. 우등생은
평소에 벼락치기 하는 마음으로 공부를 한다.

이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목표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막연한 목표를 가지면 이렇게 긴장이 안되지만 분명하면 항상 긴장되고 집중을 잘 할 수 있다.

방송하면서 인생이 많이 바뀌었다.
처음 주변 사람들은 말렸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

나는 세상을 살면서 이런 생각을 해본다.
사람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다. 사람이 해야할 일이란 남에게 해을 끼치는 일이 아니면 해도 되는 일이다 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세상에 해야 할 일이 참 많다.

인생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쌓아 가면 된다. 하다가 안되면 포기하더라도 아예 안하는 것보다는 낫다. 아예 하지 않으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

나의 징크스는 시험에 합격하려면 10번을 봐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합격의 확신을 갖는다. 3~4번만 보면 불안하다. 그래서 그냥 뭐든지 기본적으로 10번을 본다. 몇 번 3~4번 책을 보고 시험을 본 적 있다. 역시 떨어졌다.


앞으로는 이렇게 해보자.
첫째는 남보다 많이 노력하는 것이다.
둘째는 어려운 목표일수록 확신을 가져보자.
그러면 정말 되는 일이 훨씬 많다.
셋째는 남보다 최소 3배는 해야한다고 생각하자.

직장에서 윗사람이 일을 시킬 때 남보다 더 많은 일을 시키고, 나한테만 어려운 일을 시키더라도 신나는 표정을 지어보자. 대부분의 사람, 아니 나의 경쟁자는 이럴 때 얼굴을 찌푸릴 것이다.
그러나 내가 이기려면 그들 보다는 다른 모습이어야 한다.

힘들더라도 괴로움을 추가해 보자.

남들에 비해 노력한 만큼의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3배의 노력만 한다면 4번째부터는 분명 가속도가 붙어 급속도로 차이가 날 것이다.

마지막으로 대인관계에 대해 강조하고 싶다. 세상을 살다보면 대인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노력이다. 성공을 위해서는 나 혼자의 노력 외에 대인관계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경우가 있다.
어떤 상대를 만나든 최소 5분은 상대방을 위해 생각하는 시간으로 할애해 보자.

남과 똑같이 해서는 절대 노력했다고 할 수 없다.





출처:모네타

단순하고 명쾌한 말일수록 지키기 어렵다. 성경에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이 나온다. 당연한 말로 들리지만, 성경에 나오고 설교 때마다 강조되는 것은 그만큼 지키기 어렵기 때문이다. 인류를 사랑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저 멀리 아프리카 동쪽에 살고 있는,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쉽다. 하지만 바로 옆집에 사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자신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밤마다 쿵광거리며 단잠을 방해하는 바로 윗집 이웃은, 사랑은커녕 증오의 감정을 누그러뜨리기도 힘든 상대다.

 

“한 우물을 파라.” 이 단순한 진리를 실천할 수 잇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억대 연봉자들의 공통점을 조사한 적이 있다. 말이 억대 연봉이지 우리나라 직장인 중 억대 연봉을 받는 사람들은 0.1%가 채 되지 않는다. 이들에게 중요한 공통점은 최소한 한 분야에서 10년 이상 한 우물을 판 사람들이라는 것이었다. 성공한 사람들은 이곳저곳 기웃거리기보다 ‘선택과 집중’을 잘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이일 저일 하면서 성공하기에는 이 세상에는 너무 많은 경쟁자들이 있다. 그래서 기업 경영에서도 ‘선택과 집중’을 강조하는 것이다. 자신이 잘 할 수 있거나 경쟁 우위에 분야를 찾아서 거기에 집중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성공을 기대하기 힘들다.

 

그런데 왜 ‘한 우물을 판다는 것’ 즉, ‘선택과 집중’이 힘든 것일까. 아마 선택의 다른 이름이 바로 ‘포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인가를 적극적으로 선택한다는 것은 다른 많은 것을 적극적으로 포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혼에 빗대어 생각해보자. 한 여성에게 프러포즈를 한다는 것은 세상에 존재하는 그 외의 모든 여성을 포기한다는 의미다. 학교도 마찬가지고 직업도 마찬가지다. 한 가지를 선택하면 다른 모든 것은 포기해야 한다. 포기가 힘들기 때문에 집중이 잘 안 되는 것이다.

어린이 경제 교육에서도 ‘선택의 문제’를 강조한다. 경제학 교과서에서 제일 먼저 언급하는 것 중의 하나가 자원의 희소성이다.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는데 반해,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자원에는 한도가 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누구나 원하는 것을 원하는 만큼 가질 수 없다’는 말이다.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려면 머리를 써야 한다. 보다 큰 만족을 얻기 위해서는 현명한 선택을 할 줄 알아야 한다. 경제학에서 가르치는 이론들 중에 많은 부분은 현명한 선택을 위한 논리들이다.

 

아이들에게 현명한 선택을 가르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어떤 것을 선택한다는 것은 다른 것을 포기한다는 것부터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어렸을 때 외출을 하면서 운동화와 장화를 둘 다 신겠다고 떼를 쓰는 일이 있다. 이런 경우 한 번에 하나만 신고 나갈 수 있으며, 한 가지를 선택하면 다른 것은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어야 한다. 아이가 원한다고 아이에게 운동화를 신기고 부모가 장화를 들고 가다가, 아이가 장화를 신겠다고 하면 장화를 신겨주고 운동화를 들고 다니는 일은 아이를 망치는 일이다.

 

모든 교육이 그렇듯이 선택과 포기의 원칙을 가르치려면 아이에게 자주 선택의 문제를 접하게 해야 한다. 아동 심리학자들에 의하면 생후 18개월에서 2살 정도의 어린아이들도 자신이 모든 것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배울 수 있다고 한다. 이때부터 아이들에게 자주 선택과 포기의 문제를 경험하게 해야 한다.

 

아이가 무엇을 원할 때 아이에게 선택권을 준다. 아이들은 유모차를 탈 때 인형이나 장난감을 갖고 타려고 한다. 서너 개의 인형을 모두 데리고 가겠다고 한다. 여러 개를 가지고 가면 잃어버리기 십상이다. 장난감을 가지고 갈 수 있게 해주는 대신 하나만 고르도록 한다. 나머지는 포기하게 해야 한다. 옷가지를 사러 갈 때도 아이에게 물건을 고르도록 한다. 아이가 여러 개를 사고 싶어해도 그 중 하나만 살 수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말하고 실천한다.

 

아이들이 선택을 원하지 않아도 선택의 규칙을 따르게 해야 한다. 중국집에서 음식을 시켜 먹을 때 ‘자장면을 시킬까, 짬뽕을 시킬까?’ 묻는다. 아이가 ‘자장면도 먹고 싶고 짬뽕도 먹고 싶다’고 해도 두 가지 모두를 해줄 수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한다.

 

현명한 선택을 위해서는 선택을 하기 전에 어느 것이 유리한지 신중하게 생각을 하는 습관도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에게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게 해야 한다. 후회를 한다고 해도, 어른들이 추가적인 조치를 취해주지 않아야 한다. 자장면을 먹고 싶다고 시킨 아이가 부모의 짬뽕을 보고 마음이 바뀌어 바꾸자고 해도 들어주지 않아야 한다.

 

부모가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모두 들어준다면 그야말로 잔치 같은 삶을 살고 있는 셈이 된다. 하지만 잔치는 끝나기 마련이다.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는 삶이란 없다. 성인이 되면 한 가지를 선택하고 집중해야 한다. 여러 가지 재능이 있어도 하나의 직업, 하나의 직장에 대해 만족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머지를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 아이들에게 선택을 가르치는 것은 적극적인 포기를 가르치는 것과 동일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출처 머니투데이]

 

출처 블로그 > 아이와 친해지기 위한 공간
원본 http://blog.naver.com/kidzine/80024864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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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15일 만능엔터테이너 박경림씨가 결혼했다. 그의 결혼식은 유명영화제 시상식을 방불케 했다. 참석자는 카펫이 깔린 길을 통해 입장했고 참석자들 인터뷰와 사진찰영을 위한 zone까지 마련되었다.

 

식장에서 진행된 결혼식도 볼만했다. 한국최고의 엠시 유재석과 박수홍 두 사람이 공동사회를 봤고, 노홍철, 엠시몽 등 요즘 잘 나간다는 초특급 엔터테이너들이 박경림의 결혼식을 위해 온갖 재롱을 떨었다.

 

정말 왠만한 시상식도 한데 모을 수 없는 대한민국 최고의 스타들이 한자리에 모였고 자신들만의 퍼포먼스도 아끼지 않았다. 대단한 이벤트였다. 많은 스타들의 결혼식이 있었지만 이 정도로 크게 기획된 결혼식은 보지 못했다.

 

약간 불안감이 들었다. “이거 너무 크게 하는 거 아니야” 또 그런 생각도 들었다. “만약 박경림이 아니라 다른 연예인이었다면 좀 씹힐 수도 있겠는데”

 

시청자의 시선을 의식해야 하는 연예인으로서 카펫을 깔고 촬영존을 만드는 등 한국정서상 지탄을 받을 수도 있는 호화 이벤트를 기획한다는 것이 여간 조심스런 일이 아니다.

 

그런데 박경림을 그런 이벤트를 기획했고 성공리에 마쳤다. 왜 그럴까? 박경림과 다른 연예인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왜 박경림은 별 탈이 없는 걸까.

 

 박경림 홈페이지

 

 

그건 기획의 차이다. 박경림은 자신의 쇼를 기획할줄 안다. 그러나 다른 많은 연예인들은 쇼를 스스로 기획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기획을 따라간다.

 

5,000명의 하객이 몰리고 히딩크와 이명박이 참석하고 최고의 스타들이 동원되어도 그의 결혼식이 비난받지 않는 것은 이벤트의 기획자가 박경림이라는 것을 시청자들이 알기 때문이다.

 

그건 박경림다운 쇼였다. 기획자 박경림의 기획의도가 분명히 드러나고 알 수 있기 때문에 시청자들은 그 화려한 이벤트에서 호화로움에 대한 불쾌감보다는 기획자가 의도한 재미를 더 느꼈다.

 

다른 연예인이 이같은 잔치판을 벌였다면 어땠을까. 아마 호화로움만 있고 기획의도는 알 수 없는 결혼식에 비난이 쏟아졌을지 모른다. 박경림의 결혼식은 박경림이라서 가능한 쇼였다. 중요한 것은 쇼가 ‘요란스럽냐’ ‘아니냐’가 아니라 기획이 ‘있느냐’ ‘없느냐’ 이다. 

 

쇼를 기획하는 사람은 무리한 쇼와 가능한 쇼를 구분하고 진행방향을 예측하고 대비한다. 자신의 감정선에 맞추어 기획하기 때문에 연기도 어설프지 않다. 쇼를 리드하고 자유자재로 연출한다.

 

그러나 기획된 쇼를 따라가는 사람은 어색하다. 자꾸 기획자를 처다본다. 중요한 쇼의 구분과 진행을 남에게 맡겨버림으로서 돌발적 사태에 당황하게 되고, 나중엔 쇼기획자를 원망한다.

 

“누구 때문에 이렇게 됐다”며 또 다른 눈물의 사과‘쇼’를 연출하게 되는데, 그 땐 이미 늦었다. 결국 모든 책임은 자신의 쇼를 철저히 기획하지 못한 연예인에게 돌아간다.

 

연예인의 일거수일투족은 대중에게 드러난다. 그들의 결혼도 이혼도 아이도 세상에 모두 공개되어 진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그들은 노출되는 모든 것들에 대한 기획이 필요하다.

 

기획사가 달리 기획사가 아니다. 대중에 노출되는 것이 본업인 연예인에겐 기획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기획사다. 신해철 식이든 김흥국 식이든 배용준 식이든 어떤 일관되고 포인트를 가진 기획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기획사의 기획으로 장사 해먹을 수 있는 것은 고작 몇 년이다. 인기가 지속될려면 결국 연예인 스스로의 기획력이 필요하다. 박경림처럼 5,000명 하객의 결혼식을 기획하고 지휘하는 기획력이라면 특A급 기획가라 할 수 있다.

 

연예인들이여 명심하자. 성공하고 싶다면 기획당하지 말고 박경림처럼 기획해야 한다.

 

 

댓글 보고 추가 : 이 글에서의 기획은 "박경림이 결혼식을 기획했다"가 아니라 "박경림의 결혼식엔 기획이 있다"라는 말로 이해하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벤트 자체에 대한 기획이 아니라 이런 이벤트가 가능하게 한 박경림의 연예생활 전반에 대한 기획력을 말하는 것입니다.

 

 

 

 

 

by  커서

moveon21.com

 

출처 : MoveOn21.com
글쓴이 : MoveOn21 원글보기
메모 :

태어나지 얼마안된 쌍둥이

하지만 왼쪽의 아이는 몸이 약하여

작고작은 인큐베이터 안에서 혼자죽음을 맞이했습니다

 

간호사가 이를 너무 안타깝게 여겨

다른 쌍둥이를 인큐베이터안에 같이 넣었다고합니다

 

그런데 다른 쌍둥이가 죽은 쌍둥이의 어깨의 힘없이 손을올리며 안아주었다고합니다

그런데 죽은줄알았던 왼쪽쌍둥이는 맥박,심장,체온 모든게 정상으로 돌아왔다고합니다


                     -출처:다음-

참된 자기확립은 자기정신 안에서만 가능합니다

                                                             글쓴이 : 푸른솔

 

자기 정신의 확립은 누구에게나 가장시급한 자기과제 일것입니다.

 

자기를 발전시키고 향상 시키는것은 그의 정신이 확고 하게 자기 자신을

 

지배할 능력이나 힘이 확보 되어 있는가  없는가에 달려 있을것입니다.

 

마치 자기집을 건축할때 단단한 기초위에 건물의 중심을 이루는 강한

 

철근 골조를 먼저 세우는 것처럼  자기정신은 자기확립의 가장 근원이며

 

중심이 되기때문입니다.

 

사람의 정신이나 마음은 삶의 내면생활의 중심이고  자신의 이성이나

 

감정, 의지를 구성하는 자기인격의 근본이라 할수있읍니다.

 

그런데 이러한 정신이나 마음보다도 이시대는 무한경쟁의 물결속에  자기분량은

 

무시되고 오직 이기기위하여 더많은 지식의 필요와 요구를 받고 있읍니다.

 

내몸은 내힘으로 일으키며 ...    내힘으로 걸을수 있어야  자기인생이 되는것입니다.

 

내손의 힘으로 식사도하고 ...    내 생각으로 나를 말할수 있어야  하는데

 

이 시대를 상호 의존적 협력의 시대라는 이유로 결코 누구에게도 의존해서는 안되는

 

부분까지 모두 의존케 하므로 자기 스스로의 정신활동의 중요한 시기와 기회를

 

잃고 있다는것입니다.

 

사람은 살면서 나보다 능력있고 힘과지혜가 월등한사람들과 수없이 만나게됩니다.

 

그러나 우리 의 정신적인 생활이나 육신의 생활에는 할수있는 일이있고 할수없는

 

일도 있읍니다.  

 

정신이나 마음에도 득이되는것이있고 해가되는것이 있고

 

음식생활에도  득이되는 음식과 독이되는 음식이 있읍니다.

 

이모두가 자기가 판단하는 능력을 가추지 못한다면  어떤 진보와 발전도 기대할수

 

없게 될것입니다.

 

기독교의 가롯유다는 예수님의 사랑받는 12제자중의 하나였지만 그는 악한생각에

 

자기 마음을 빼았기므로 자기의 스승을 은 30량에 팔아 버리는 일을 했읍니다.

 

나를 바로 옳게세우는것은 내가해야 하는것입니다.

 

내 마음의 방향을 바로잡는것은 오로지 나만이 할수있는것이고  내가 할수 있어야 하는것입니다.

 

자기 근본을 생각지 않는 이득은 아무런 자기도음이 되지 않는것입니다.

 

오직 이득과 손실만을 생각하고 자기근본을 잃어 버린다면 목표없는 난파선이

 

될수도있을것입니다.

 

자기확립이 없이 상호 의존적협력을 한다는것은 서로를 진심으로 위하는 것이

 

될수 없고 옳바른 자세도 아닐것입니다.

 

내 인생은 마땅히 내정신으로 살아야합니다.

 

자기 정신구조의 확고한 확립이  가장시급한 자기과제인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삽시다.

 

행복한 휴일 되시기 바랍니다.

 

-출처:http://cafe.daum.net/kbd2004-

- 김형태가 살아온 길 -

 

여기서(김형태님 홈피www.thegim.com의 카운셀링 코너) 고민을 토로하는 많은 분들 중에,

정말 최선을 다해도 한계가 있다는 분들이 많습니다. 1년을 해보고 한계에 부딪혔다고 말씀

하시네요. 아니, 그럼 1년 해서 일이 잘 풀린다면 세상에 어려운 일이 어디 있습니까?

그리고, 놀라운 것은 많은 청춘들이, 나는 돈도 없고 빵빵한 배경도 없고 받혀줄 집안도 없다면서 좌절을 하고 있습니다.

눈치 빠른 그대들은 조금만 생각해 보면, 봉급쟁이 생활해서 어느 세월에 행복하고 성공하고 풍요로운 인생을 즐기겠는가, 그것이 얼마나 불가능한지 알고, 좌절해 버립니다. 그리고, 막막한 내일을 보며 오늘과, 나의 배경과 현실을 탄식합니다. 그리고, 많은 분들이, 나 김형태에 대해서, 이 사람은 참 좋은 환경에서, 음악, 미술, 연극, 먹고 살 걱정 없으니 맘대로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사는구나. 하고 단정짓기도 합니다.

내가 '20대 여러분 당신들 더 노력해라' 라고 말한 것에, '당신은 아티스트이고 회사원 생활을 안 해봤으니 현실을 모른다'며 내 말에 귀를 닫아 버린 사람도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보시다시피 제 홈피에 올려져 있는 저의 작품들을 보면, (다 올려놓은 것도 아니지만)그 예술성이야 논할 게재가 아니라고 치더라도 양적으로만 봐도, 보통 이상이고, 그 작업의 다양성과 장르의 폭도 거의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폭 넓은 것이 사실 입니다. (자화자찬이 아니라, 비현실적으로 작업량이 많다는 뜻이죠. 양으로만 따져도, 직장생활이나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사람이라면 시간적으로도 저만큼 작업할 수가 없다는 계산이 나올 겁니다. 그러니 당연히 여러분은 '김형태는 경제적 환경은 좋을 것이다'라고 추측하는 게 당연하겠죠)

 

자 그럼, 당신이 물어 본, 내가 해온 일에 대해서 나의 최선에 대해서 이야기 해드리죠.

우선 나의 경제적 환경은, 여러분의 예상과 다르게, 아주 열악했습니다. 어릴 적 가난은 이야기 할 필요 없습니다. 그것은 내가 가난한 것이 아니라, 나의 부모님이 가난했던 것이므로, 나의 인생은 아닙니다. 자신의 부모님이 가난한 것을 자신의 인생과 연결해서 자기까지 가난한 인생으로 규정짓는 사고는 정말 어리석은 것입니다. 또 자기 부모가 부자라는 사실을 자기가 부자라는 사실로 착각하는 젊은이들도 많은데, 둘 다 자기 인생을 꾸려나가지 못한다는 점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님과 같이 살았던 시절은 생략하고, 나는, 스무 살 때부터 자취를 했습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제 밥벌이는 제가 했습니다. 덕분에 고생은 뭐 남부럽지 않게 했지요. 평균 하루에 한끼 정도 먹고 살았기 때문에 스물여덟에 결혼하기 전까지 내 체중은 50kg을 넘어본 적이 없습니다. 신혼살림은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10만 원짜리 삯월세 단칸방에서 시작했습니다. 서울의 신촌 부근이었는데도 재래식 화장실이 존재하는 집이었죠. 나의 가난에 대해서는 이 정도만 이야기 하지요. 단지 김형태에게 풍요로운 경제적 배경이 있었을 것이다라는 오해만 풀 정도면 충분합니다.

저는 제가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합니다.

성격상, 하려면 하고 안 할려면 아예 안하는게 낫다고 생각하는 쪽이죠.

그럼 어떤 식으로 최선을 다했다고 말하는지 들어 봅시다.

 

- 미술 -

저는 아주 어릴 때부터 훌륭한 화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그 꿈을 갖고 항상 그림을 열심히 그렸죠. 하지만 중학교 이후로는 정식 미술 교육을 받지 않고 타고난 재주만으로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없습니다. 경쟁이 안되죠. 부모님 형편은 미술학원에 보내줄 만큼 넉넉치 않았기에 미대가는 것도 반대하셨습니다. 나는, 미술학원을 두 달만 보내달라고 졸랐지요. 두 달 안에, 그 입시미술학원에서 가장 장래가 촉망 받는 학생으로 인정 받아서 수강료를 면제 받는 장학생이 되면 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됐죠. 중3때부터, 재수생 시절까지 5년 동안 저는 그렇게 미술학원을 무료로 다녔습니다. 아무리 타고난 재능이 있어도, 두달안에 그렇게 인정 받는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재능은 물론 남들보다 훨씬 성실한 자세와 가능성까지 모두 인정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장학생 제도가 규칙으로 있는 것도 아니고 단지 나의 바램일 뿐입니다. 인정을 받고 나면, 사정을 얘기합니다. '제가 사실은 돈이 없어서 더 못 다녀요' 그럼 학원에서는 입학률을 높여서 학원 이미지를 올려줄 이 학생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돈이 없으면 노력과 지혜가 필요합니다. 노력과 지혜는 돈으로 안됩니다.

다시 말하지만, 미성년자일 때의 가난은 어른들의 인생일 뿐입니다. 그것 때문에 내 인생의 가능성이 한계에 부딪힌다는 것은 핑계입니다. 난 그렇게 미술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홍익대 회화과에 들어간 것은, 단순한 논리에 의한 목표였습니다. 당시에 내가 보기에 최고의 미술대는 홍익대 회화과였는데 입학정원이 100명이었습니다. 나는 장차 세계적인 화가가 목표인 사람인데, 세계적인 화가는 보아하니 10년에 한명정도 나오더군요. '그럼 난 10년에 한 명 뽑는 최고의 정상에 도전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일년에 100명 뽑는 아마추어 대학에 못 들어간다면 말이 안 된다. 그 100명안에도 못 들면 난 미술 포기한다' 뭐 이런 논리였습니다. 타당한 논리였죠. 흔히들 말하는 증빙서류로서 일류 대 졸업장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내가 정한 나의 최선의 기준에 부합해서 스스로 입증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미술대에 들어가고, 스무 살 때부터 나는 '앞으로 10년간 나의 예술세계를 찾기 위한 미술을 공부하겠다'고 계획을 세웠습니다. 여러분들은 대학 1학년 때부터 4년 후에 취직에 대해서 걱정하지요? 그리고 열심히 취업준비를 합니다. 성적을 관리하고, 자격증도 이것저것 따놓고, 토익 점수도 높여가고, 입사시험에 대비하고...... 저는 대학 1학년 때 10년 계획부터 세웠습니다. 물론 예술장르이니까. 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여러분이 어떤 전공을 하던 간에 애초부터 10년 계획을 잡고 준비하면 4년 동안 취업 준비하다가 졸업한 후에 몇 년간 백수로 허송세월하며 계속 똑같은 이력서만 여기저기 넣어보는 숱한 사람들보다 훨씬 경쟁력 있는 인재가 됩니다. 아무튼, 전 그렇게 내가 원하는 미술을 잘하기 위해서 먼 계획을 잡았고, 아르바이트로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하며 작업을 했습니다. 미술에 관련된 내 바이오그라피를 보면 대학 졸업하던 해인 89년부터 개인전을 비롯한 전시회를 시작해서 94년까지 미술 활동을 한 것을 확인 할 수 있습니다. 94년에 저는 서른이 됐고, 10년 공부도 계획이 너무 짧았다는 것을 알고, 또 새로운 10년 계획을 세웠습니다. 이번엔 세상과 대중을 더 잘 알기 위해서 미술이 아닌 다른 장르를 10년간 경험하자. 그래서 미술활동은 잠시 접었습니다.

 

10년간, 저는 나의 꿈 - 화가가 되겠다는 그 꿈을 포기 하지 않고, 뺏기지 않고, 좌절하지 않기 위해서 엄청난 고통의 시간들을 대가로 지불했습니다. 소위 홍대 회화과 나오면 미술학원 강사만 해도 웬만한 월급쟁이보다 많이 법니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하던 해에, 이 틀려먹은 입시 제도를 비난하면서 한편으로는 그걸로 돈을 벌고 먹고 살고, 그 돈으로 내 작업을 한다는 이중성을 인정할 수 없어서,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는 미술학원 강사짓은 완전히 그만두었습니다. 약간만 현실과 타협하면 굳이 고생 안해도 되는데, 그런걸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닌데 나는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부터 고생길은 시작이죠. 회화과 나와서 강사 안하면 먹고 살길은 천국에서 지옥으로 완전히 바뀝니다. 그리고, 대부분 미술공모전이 학연과 지연으로 나눠먹는다는 이야길 들은 후로 단 한번도 그런 것에 출품한적도 없습니다. 오로지 내 자신이 인정하는 방식 안에서 최선을 다했을 뿐입니다. 먹고 살기도 힘든 20대에 나는 네 번의 개인전을 비롯한 전시회들을 통해서 쉬지 않고 작업을 했습니다. 열심히 했다고는 하지만, 사실은, 하고 싶은데 돈이 없어서 못한 작업이 더 많습니다. 그래도, 두드리면 열리고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을 나는 믿습니다. 그 많은 전시회들을 하기 위해서 나는 평균 하루에 한끼 먹는 생활을 7년간 했습니다. 그 한끼도 대부분 라면이었죠. 라면 오래 먹으니 피부병 생기데요. 허허.

 

- 끼니에 대한 에피소드 하나 -

서른이 넘어서, 어느 날 동문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그 동문은 7수인가를 하고 들어와서 저보다 나이가 훨씬 많았습니다. 서로의 안부를 묻다가 이런 대화를 했습니다.

"형태야 너 요즘은 날계란에 흰우유 안먹지?"

"예? 그게 뭐예요. 우유는 안 먹어도 계란은 먹는데......"

" 그게 아니고, 너 옛날에 그거 먹고 살았쟌니"

난 기억이 안나서 뭔 소리냐고 물었더니, 그 형이 얘기해줍니다.

어느 날, 학교에서 점심시간이었는데, 내가 캠퍼스 벤치에서 흰 우유와 날 계란을 들고 홀짝홀짝 먹고 있더랍니다. 그 형은 제게로 와서 뭐 그런걸 먹느냐고 물었더니 김형태 왈,

"형, 이렇게 날 계란하고 흰 우유를 먹으면요, 200원이면 되는데, 소화가 잘 안돼서

하루 종일 배가 안고파요. 헤헤. " 그러더라는 겁니다.

나는 그런 당시에도 내가 고생한다는 생각은 해 본적이 없고, 단지 예술이 뭘까 그런 고민만

했던 기억밖에 없던 시절입니다. 그 형은 나이가 좀 있었던지라 엄청 충격 먹고 아직도

 

잊혀지질 않는다고 말해서 알게 된 나의 과거. 그러나, 그 10년은 내 기억에 하나도 고통스럽지 않습니다. 오히려 가장 자랑스러운 시간들이지요. 한번도 현실 문제 때문에 내 꿈을 포기해야 했던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정말 가난한 것은, 돈이 없는게 아니라, 돈 때문에 꿈을 포기하는 것이므로.

 

이제 음악얘기 해줄까요?

미술을 하다가 왜 갑자기 음악을 했는가. 10년간 미술에만 정진 하다 보니 오히려 현실과 동떨어진 예술이 되더군요. 나는 폭넓은 대중과 소통하는 예술가가 되길 원했지 나 혼자 학처럼 고고한 예술가를 꿈꾼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번엔 세상을 공부하자. 좀 더 대중과 가깝고 권위적이지 않은 장르를 통해서 대중들을 만나고 소통의 가능성을 연구하자. 그런 목적으로 대중음악을 시작한 중요한 의미도 있었지만, 사실, 록 밴드는 10대 때부터 나의 꿈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사실 심한 음치에다가 박치였습니다. 밴드는 꿈도 못 꾸었습니다. 홍익대 그룹사운드 동아리 블랙테트라에 가입하러 갔다가 오디션 보는 다른 애들 연주하는거 보고 기죽고 도망 나왔습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혼자 기타는 쳤지만 실력은 보통이거나 그 이하였을 겁니다. 지금도 어릴 때의 나를 아는 친구들은 내가 밴드를 해서 유명해진 것을 세계 불가사의 중에 하나로 넣어야 한다고 주장할 정도입니다. 나는 남몰래 기타를 열심히 치고 노래 연습을 했었습니다. 노래를 참 못했기 때문에 연습하는걸 남들에게 절대 보여서도 안됐죠. 그렇게 한 일년 하면 된다! 라고 말하면 여러분은 그럼 나도 해볼까? 하겠죠? 그러나 1년 해서 안됩니다. 1년짜리 계획은 계획도 아닙니다. 그냥 잠시 맛이나 보는 거지. 나는, 음치주제에 오히려 얼토당토않게 '내 나이 서른에 나는 내 음반을 낸다'라는 장담을 했습니다. 그 장담은 일종의 결심이고, 계획이 수립되고 길고 긴 도전이 시작 되는것을 의미합니다. 제가 서른 한 살 되던 해에 '황신혜밴드'라는 팀 명으로 '짬뽕'이라는 해괴한 노래를 들고 나왔을 때 사람들은 한바탕 해프닝 정도로 여겼을 뿐, 15년 동안 포기하지 않은 집요한 꿈이 이루어 지는 순간이었음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단지 여유 있는 30대의 취미밴드가 관심 꽤나 끈다고 여길 뿐이었죠. 모두가 '음악으로 성공할 자신 없으면 이제 기타는 그만 쳐라' 라고 말하고, 역시 그 말이 일리가 있다고 수긍하며 밴드의 꿈같은 거 너도 나도 포기할 때도, 나는 한번도 기타를 놓아본 적이 없었습니다. 내가 꿈을 이루는 최선의 방법은, 손가락에 피가 나도록 기타연습을 1년 정도 해보고 결판을 내는 것이 아니라, 10년이 걸리든 20년이 걸리든 그 꿈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나는 황신혜밴드를 15년간 준비했습니다. 그걸 누가 상상이나 하겠습니까. 당시에 홍대 앞에 우후죽순처럼 활동하던 수많은 인디밴드중에 15년 동안 준비해서 나온 밴드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 당시 다른 밴드들보다 제가 열 살은 더 많을 수 밖에 없었던 이유지요. 다른 밴드는 너바나 보고 시작할 때 저는 산울림보고 시작했습니다. 꿈을 이루는 데에 있어서 여러 가지 최선의 노력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결코 잊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내가 했던 많은 일들.

그림과 설치미술과 퍼포먼스들, 아르바이트로 했던 자잘한 디자인들, 공연기획과 잡지사

 

다녔던 일, 영화 세트와 CF 세트 만들던 시절, 연극배우, 칼럼니스트, 이 모든 무규칙이종 예술들. 공연들과 음반 발매와 책 발간...... 그리고 20년간 쉬지 않고 벌어야 했던 쌀값과, 각종 생활비와 집세와 병원비와 옷값과 노부모 생활비와 주차위반 벌금과 등등등... 모두가 벌어야 하는 그 돈벌이들. 이 모든 일들을 하기 위해서는, 일의 양도 양이지만, 누가 시켜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나는 항상 돈은 없었기 때문에 내가 하고 싶은 일도 내 스스로 벌이지 못하고, 누가 의뢰해야 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대충하면 누가 나에게 의뢰를 하겠습니까. 저는 일단 하기로 하면 무조건 최선을 다하고, 보통의 최선이라고 하는 수준에서 1cm정도 조금 더 합니다. 그럼 일을 부탁한 사람입장에서는 항상 기대이상이지요. 제가 장르를 불문하고 많은 일을 하게 된 까닭입니다. 제가 끼가 넘치고, 욕심이 바다와 같아서 일을 막 벌리고 다양한 일을 한이게 아닙니다. 제 앞에 다가온 일은 아무리 사소해도 무조건 최선을 다하고, 기대 이상으로 해주고, 돈을 떠나서 일을 합니다. 그럼 한번만 의뢰할 예정이었던 일이 다시 또 의뢰가 들어옵니다. 그런 일들이 쌓이고 보니, 지금의 무규칙이종 종합예술이 된 것이랍니다.

 

나는 오직 최선을 다하는 길만이,

돈 없이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다 해보고

이루고 싶은 꿈을 이룰 수 있었던 유일한 길이었습니다.

최선을 다했지만 환경이, 기회가 받혀주질 않아요. 라고 말하는 사람 들으세요.

좋은 기회는, 내가 최선을 다 할 때가 좋은 기회이고,

좋은 환경은 내가 최선을 다하는 그 때가 좋은 환경인 것입니다.

 

저도 최선을 다했는데 안됐어요.라는 말은 적어도 마흔살쯤에 하는 겁니다.

그 이전에 한다면 그건 무조건 엄살입니다.

왜냐면 젊음에는 어떤 한계도 없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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