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장기 연재
만화, 가장 많이 팔린 만화책, 영원한 고전 등 일본 내에서 유리가면에 붙여준
훈장들이다. 삼십년 가까이 연재되고 있지만 아직도
끝이 안 난 만화. 이 만화를 기다리다 지친 사람들이 꽤 많은 걸로 알고있다. 나도 그 무리에 기여한 바가 꽤 큰 편.
유리가면을
생각하면 두 개의 기운이 불끈 솟아 오른다.
우선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만화에 대한 불 같은
애정? 반면 이십 여년이 흘러갔건만 아직도 끝을 못 낸 작가가(1951년생) 갑자기 운명이라도 하면 어쩌나 하는, 피 끓는 조바심. 이런 감정이 애증이 아니고
무엇인지...
왼쪽부터 오유경, 신유미,송연화, 민용식..꺄악!! ㅡㅡ;;;
불운을 고루 갖춘 박복한 여주인공이지만 꼭 필요한 사람은 곁에 둔 행운녀이자 타고난 천재 오유경( 해적판으로 봤고 지금
내가 소장한 세가지 버전이 모두 해적판이라 일본 원판 만화 주인공들 이름을 기억 못하고 아직도
한국식 이름으로 기억한다.) 외모, 지성, 환경
모두 보잘 것 없지만 연극에 대한 순수한 열정만큼은 모두를 매료 시키는
소녀.
이유 있는 카리스마
민용식(촌스러운 이름ㅡㅡ;) 그는 냉철한 사업가이지만 뜻하지 않게 만난 유경의 천재성에 시선을 빼앗기게 된다. 유경이 간신히 잡은 행복을
깨트리는 원인 제공을 하게 되지만 그녀가 배우로써 성장해 가는 것을 보이지 않게 지탱하고 도와주는 키다리 아저씨같은
존재이다.그야말로 선택 받은 천재 소녀 신유미, 보통 여주인공의 라이벌로 나오는 여조들이 나쁜 여자인 경우가
많지만 신유미 같은 경우는 따로 여주인공으로 내놔도 손색 없을만큼 매력적인 캐릭터이다. 만화의 흐름을 팽팽하게 해주는 또 다른 주인공이라 할 수
있다.
그 밖에 순정만화에 빠지지 않는 영원한 오빠 강준구 그리고...이 모두를 엮어주는 연결 고리인 왕년의
대스타 송연화가 중요 등장 인물들이다.
예전 환상의 공연이었던 흑나비를 둘러싼 이 인물들의 돌고 도는 애증의
시간들이 어느 한구석 어그러짐 없이 완벽히 흘러간다.
여주인공이 13세부터 시작하여 지금 20세에 다다랐다. 11살이 어린 여주인공에 향한 남 주인공의 사랑에
가슴이 설레이며 봤던 기억이 새롭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니 그놈 참 ...도둑놈이 따로
없다. 일종의 변형된(오유경에게 성적인 느낌은 전혀 없다. 아이다운 순진함 정도라면 모를까.) 로리타 증후군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ㅡㅡ^
예전 내 나이 13세쯤 올훼스의 창이니 베르사이유의 장미니 캔디같은 화려한 만화를 보다가 이 만화를 들었을 때 머리만 둥하니 큰 그림에
공포만화인가 하고 도로 내려 놓았던 기억이 있다.
요즘의 대여점이랑 많이
흡사하지만 아무튼 만화가게를 학교 드나들 듯 드나들며 만화삼매경에 빠져 살았던 시기였다. 웬만한 만화는 다 내
손을 거쳐갔을 만큼 만화계를 한동안 그렇게 주름 잡았었다. 순정만화 무협만화 가릴 것 없이 읽어대서 당시 떠 오르던 스타 작가들의 만화는 다
접해 봤고 앞으로 대박 작가가 될 지 아닐지도 대충 예언하기에 이르렀었다.
ㅡㅡ;;;
그때 알게 된 이현세란
만화가의 단권짜리 대지의 권법을 읽던 날 대단한 작가 하나 탄생했다 했는데 나중에 쭉쭉 성장하는 거 보고 역시 역시...했다나 어쨌다나...ㅡㅡ.
아무튼 한글도
만화책으로 뗀 사람이고 처음 그린 그림도 아버지께서 보시던 잡지의 한 컷 시사 만화를 베낀 거였으니 만화는 떼 놓을래야 떼 놓을 수 없는 내
인생의 중요한 한 축이다. 그 만화 베끼던 나이가 아마 5살 정도였으니 일찌기 진로를 정한 행보였다
여겨진다.
...그때부터 내
인생은 꼬인 거였어...덴장
아무튼 다시 돌아와서...한 동안 유리가면은 그렇게 잊고 살다가 다른 것들 다 보고 더
이상 볼 것 없을 때야 비로소 한번 봐주마 하고 달랑 1권만 택해서 읽었었다. 그리고...곧 바로 후회하고 말았다.
"이 멋진 만화를 밀어왔다니 아아... 내 눈이 잘못된
거였어. 이제야 보다니. 게다가 이미 만화가게는 문을
닫았잖아. 내일까지 어떻게
기다려...어떻게!!"
대충 뭐 이런 절규를
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 후로 유리가면의 매력에 콩깍지가 씌인 나는 비율이 안 맞는 느낌의 그림도 시간이 지나면서
매력적이라고 극찬하기 시작했다. 툭하면 꽃 그림이 떠다니는 촌스러운 화풍도 용서가 된 것은
물론이다.
무엇보다 극적인 흐름과 구성이 이 작가를 천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했다. 연극무대를 중심으로 무대를 향한 열정, 사랑 , 암투가 버무려져 지문하나도 버릴 것 없이 흡인력 있게
내 눈과 시간을
잡아당겼다.
순정만화로써의 미덕인
사랑 부분이 좀 인색한 편인데도 어느 애정만화 보다도 가슴 아프고 짜릿한 기분에 젖게 만든다.
워낙 러브신이 없다 보니 손만 잡아도 굉장한 자극을 주니 놀라울 뿐이다. 어쩌다 포옹이라도 하면 그 페이지는 내 뜨거운(
") 눈빛에 걸려 다음 장으로 넘어가지질 않았다.
거의 끝부분에
이르러서야 러브씬다운 러브씬이 하나 나오는데(낡은 산사의 하룻밤) 분위기가 제법
로맨틱하다.
민용식(마스미? 하야미?)이 추위에 떠는 여주인공에게 자기와 같이 체온을 나눌 것을
권유하며 하던 대사 하나.
"나도 남자다. 책임
못 질 수도 있다. 그래도 좋다면... 내게로 와라." 라는 대목에서 쓰러졌다. ㅡㅡ. 하지만 역시 건전한(?) 작가 쓰즈에는 더 이상의 진전은
막아버린다. 아쉬움...
게다가 나이 탓인지
펜선이나 뎃생이 다소 뭉툭해져서 민용식은 마치 아저씨 같은 분위기다. 촌스러운 배 바지에 둥글 둥굴한
턱선....흑흑 ㅠㅠ.
그래도 끝이나 내준다면
감사하게 봐 넘기겠다. (비굴
u.u;;)
중요 스토리 라인이
연극무대에 얽힌 일화들이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을뿐더러 허술하지도 않다. 마치 직접 무대를 보는 듯한 극적인 긴장감을 주는 작가의 능력은 무서울 정도다. 어떠한 문제상황에서도 술술
이야기를 풀어가는 기발함은 단연코 탁월하다. 적절한 긴장감이 살아있는 스토리는 계속해서 이 만화를 기다려가며 보게
만든다.
보잘 것 없는 인생이지만 자신을 온전히 던져서 열정을 다하는 여주인공의
삶은 애처로우면서도 감동적이다. 사랑마저도 저 버릴 정도로 자신을 던져가며 매어 달리는 무대에 대한 열정은 정말이지 제대로 감동적이다.
나태하게...열정도 없이...그렇게 사는 나를 뒤 돌아 보게 해주는 이
만화를 어찌 우습다 여길까? 만화에서도 얼마 든지 인생의 한 빛깔을 얻어 낼 수 있고 삶의 무게도 길어 낼 수 있다고 감히 생각하게 한
만화였다. 다른 이들은 어떨 지 몰라도 내겐 아주 근사한 만화임에 틀림없다.
[우리들은 유리처럼 깨어지고 부서지기
쉬운 가면을 쓰고 연기하고 있는 거야. 아무리 멋지게 극중의 인물이 되어 훌륭한 연기를 하려 해도, 아차하는 순간에 깨어져서 본 모습이 나타나고
말지...
얼마나 아슬아슬한 건지. 이 유리가면을
계속 쓰고 있을 수 있는가 없는가에 따라 그 연기자의 재능이 결정되는
거야.]
...이 대사는 만화 책 중에 나오는 대사인데 난 이 말이 비단 배우들에만
한정된다고 생각 안한다. 나에게 삶이란 시시 때때로 가면을 바꿔가며 살아가는 무대 위의 배우같은 기분이 들게 한다. 때문에 인간 누구나 보이지
않는 유리가면(이를테면 위선이나 이중성 혹은... )을 쓰고 있으며 그 가면은 한계 상황에 부딫일 때마다 깨어질 위기를 맞는다는 게 내
생각이다. 자신의 나약함 혹은 본성을 가린 유리가면을 얼마나 잘 관리하냐 따라 각자의 삶이 성공적일 수도 위태로울 수도 있지 않을까?
하긴....다른 사람들은 순수한 맨 얼굴로 살아 가는데 내 눈에만 그리
보이고 그리 느껴지는 건지도 모르지....
이 만화가 70년대 후반에 처음 나왔다 하니 일년에 한 살씩 그려나가도 벌써 끝이 났을
것을.
듣자 하니 우주론에 입각한 신흥 종교의 교주로 활동하느라 만화를 등한시하고 있단 소문이 들려
오고있다.
자신의 신념을 위해 종교를 만들었다는 것은 별 불만이
없지만 연재 되던 것은 제발 끝내고 신앙를 지키라 하면 넘 무례할까? 바라건대 마흔 넘기 전엔 끝을 보게
해주길...
--------------------------------------------------------------------------------
출처 : 파란만장 김춘추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