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챔피언으로 태어나 패배자가 되었다’
세계적인 신발 회사 캔버스가 내건 유명한 광고 문구다. 모든 사람은 챔피언이 될 만한 천부적인 재능을 갖고 태어나지만, 현실에서 부딪히는 수많은 장애물 때문에 결국 패배자가 된다는 말이다. 영재 만들기 프로젝트가 넘치고 판치는 현실에서 단순한 광고 카피로 치부하기에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영재를 만들어보겠다는 부모의 교육열과 영재로 만들어주겠다고 호언장담하는 사교육 현장. 아수라장이 된 교육 현실에서 그 중심을 잡기란 쉽지 않다.
우리 아이가 영재성을 갖고 태어난 아이라면 영재를 ‘만들겠다’는 오만을 버려야 한다. 아이 앞에 나타나는 수많은 장애물 중에 불필요한 것들을 치워주는 데 포커스를 맞춘다면 아이와 엄마 모두 윈윈할 수 있다는 말이다. 사교육 시장이 조성하는 공포 마케팅에도 쉽게 동요하거나 흔들리지 않고 여유 있게 대처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다. 그러면 우리 아이가 만나게 될 수많은 장애물은 어떤 것들일까? 무한 경쟁 시대에서 꼭 치러야 하는 각종 시험, 실패와 좌절의 경험, 진로 선택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장애물이 아이가 자라는 과정 마디마다 놓여 있다. 하지만 이런 장애물은 사실 통과의례 같은 것이다. 한 단계 더 성장하기 위해서 반드시 거치고 넘어가야 할 관문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장애물 중에 ‘엄마’가 속해 있다면?
아이를 낳고 기르고 양육하는 엄마는 아이에게는 최초의 선생님이자 최후의??? 선생님이다. 그렇듯 어린아이에게 엄마는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존재다. 세상의 모든 문제에는 분명한 인과가 있는 법이다. 그래서 아이에게 문제가 있을 때 아이와 엄마가 맺는 관계의 특성상 외적인 것보다 아이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엄마에게서 찾는 것이다. 여러 방송사에서 방영되는 각종 어린이 문제 솔루션 프로그램들을 보아도 결국에는 양육자인 부모에게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않던가.
이미 챔피언으로 태어났다는 내 아이! 공부가 문제인지, 성격이 문제인지 고민하고 있을 엄마들을 위해 아이들의 문제점을 유형별로 분석해보았다. 아이의 특성을 분류하고, 이에 따른 엄마들의 양육 스타일을 유추해 문제 해결의 대안과 최선의 개선점을 제안한다.
type 1 “엄마! 나 이제 뭐 해요? ”
엄마 의존형 아이 | 공부면 공부, 악기면 악기, 운동이면 운동 못하는 것이 없는 이 시대의 엄친아(딸)! 그러나 무엇이든 엄마의 결정대로만 하는 엄마 의존형. 공부는 물론이고, 음악과 미술, 체육 등 다양한 영역에서 재능을 보이는 전형적인 영재형 모범생이다. 학업 성적도 우수할 뿐만 아이라 부모의 사랑도 충분히 받아 자존감도 높다. 여러 개의 학원에 다니며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는 초등생으로 여러 분야에서 재능을 발휘해 엄마는 아이의 진로를 두고 행복한 고민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엄친아(딸) 아이들에게도 문제는 있다. 짜여진 스케줄대로 움직이다 보니 수동적으로 변해 의존형으로 크기 쉽다는 것이다. 꽤 유명한 일화가 있다. 사립초등학교 출신으로 특목고를 거쳐 명문대를 졸업한 후 미국으로 유학해 박사 학위를 딴 서른의 아들이 귀국해서 엄마에게 한 첫 말이 “엄마! 이제 나 뭐 하면 되나요?”였단다. 다 큰 아들의 물음에 엄마는 때늦은 후회를 했다고 한다. 이런 아이들은 엄마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엄마의 말과 행동에 용기를 얻기도 하고, 심하게 좌절하기도 한다. 싫어도 엄마를 실망시키는 것에 큰 부담을 느끼기 때문에 자기 의사를 정직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사춘기를 심하게 앓는 아이 중에는 엄마 의존형 아이가 많다.
엄마 의존형 아이 뒤에는 매니저형 엄마가 있다.
“그건 안 된다고 했지? 이거 하자.”
매니저형 엄마 | 아이 일상에 관한 모든 스케줄을 조정하는 매니저형 엄마. 현대의 맹모라고 자부하는 엄마들이 대부분 여기에 속한다. 아이의 성적에 울고 웃고, 자식의 생활에 감정이입을 하며 살아간다. 자신이 옳다고 믿기 때문에 충고나 제안에 대한 거부감도 큰 편이다. 무소불위의 현대판 맹모라고 할 만하다. 과정의 효율과 결과의 성취를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시행착오를 아주 싫어한다. 그렇기 때문에 정보를 모으고, 판단하고, 선택한다. 아이의 의사를 무시하기 쉽고, 본인의 결정대로 아이를 집요하게 설득하기도 한다.
해결 솔루션!
멘토(mento)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사람이다. 오디세우스는 트로이 전쟁에 나가면서 가장 절친한 친구인 멘토에게 자기 아들의 교육을 부탁하고 떠난다. 멘토는 10여 년 동안 왕자의 친구이자, 상담자로서 그가 훌륭한 리더가 되도록 지도했다.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을 끝내고 돌아왔을 때, 왕자는 놀랄 정도로 훌륭하게 성장해 있었다. 그 후로 ‘멘토’는 경험이 많은 사람으로서 상대방의 잠재력을 파악하고 그가 꿈과 비전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는 스승이자 안내자 등의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과잉 통제를 하는 매니저형 엄마는 놀랍게도 ‘멘토형 부모’로 훌륭하게 변신할 수 있다. 아이에게 단순히 선택권을 넘겨준다고 생각하지 말고, 일단 아이의 의사 표현에 동조하는 것부터 시작하자. 그게 쌓이면 아이는 엄마에게 거부감이나 어려움을 느끼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게 된다.
type 2 “그건 하기 싫어요, 제가 좋아하는 것만 할 거예요.”
자신만만형 아이 | 싫은 것과 좋은 것에 대한 의사 표현이 분명하고, 좋아하는 분야만 들이파는 성향이 있다. 이런 타입의 아이들은 다재다능한 경우가 많다. 음악이나 미술뿐 아니라 춤과 노래 등에도 두각을 보일 정도로 예능적인 면모를 과시하기도 한다. 성취 욕구도 높은 편이다. 학업 성적이 조금 낮더라도 다른 분야에서 열심히 노력해온 과정이 있고, 인정도 받기 때문에 자칫 자신의 길을 빨리 찾은 것으로 착각하기 쉽다. 또 자신의 감정과 의사를 표현할 때 자신감이 넘치고, 분명하게 밝히기 때문에 아이의 진로나 생활에 대해 반대하거나 좋은 길이라도 다른 것을 강요하는 것이 부모 입장에선 옳지 못한 것처럼 느껴져 혼란을 겪기도 한다.
자신만만형 아이 뒤에는 자율방치형 엄마가 있다.
“자기 일은 자기가 알아서 하는 거야!”
자율방치형 아이 | 이런 타입의 엄마가 가장 즐겨 쓰는 단어가 바로 ‘스스로’다. 또 자신의 양육 방식이 민주적이라고 자부한 가운데 아이의 요구를 무조건 들어주거나, 무제한의 자유를 허용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유형의 엄마들은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혼란스러워하고, 억울해한다. 아이가 원하는 대로 자신은 다 해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좋지 못한 결과에 대해서도 ‘네 탓’이라고 하며 위로에 인색한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해결 솔루션!
자기 의지로 자신을 통제할 수 있는 것, 다시 말해서 자신의 의지에 따라 공부할 수 있는 것은 초등학교 고학년이나 되어야 가능하다. 방치를 자유로 착각하지 말자. 부모의 관심은 간섭이 아니다. 예비 스타성 면모를 가진 아이들은 성취욕이 아주 강한 경우가 많아서 엄마가 학습 부분을 조금만 이끌어준다면 비교적 쉽게 좋은 성과를 내기도 한다. 따라서 엄마가 앞장서서 아이의 목표나 수준을 체크해 가이드를 세워줄 필요가 있다. 옆에서 도와주면 바로 표가 나는 유형이다.
type 3 “혼자는 싫어! 친구들과 같이 노는 것이 더 좋아!”
나 홀로 집에형 아이 | 아이의 재능이나 성격이 고려된 유형은 아니다. 주어진 상황에 따라 나타나는 특성으로 맞벌이 부부나 워킹맘의 자녀에게 많이 나타나는 유형이다. 엄마가 일하는 낮 시간을 혼자 보내야 하는 아이들로 엄마가 내준 숙제에 급급하며 혼자 이 학원, 저 학원을 전전한다. 이런 아이들은 자신이 공부를 좋아하는지, 잘하는지 등에는 관심이 없다. 모든 것을 혼자 해야 한다는 사실에 외로움과 거부감을 느낀다. 혼자가 아닌 것, 가깝게는 친구와 어울릴 수 있는 놀이터에서 노는 것을 더 좋아한다. 상황 때문에 아이의 잠재력이 무시된 채 공부에 뜻이 없는 아이로 오인되기 쉽다.
나 홀로 집에 아이 뒤에는 결과 중시형 엄마가 있다.
“엄마가 시킨 것 하나도 안 해놨어!”
결과 중시형 엄마! | 바빠도 너무 바쁜 엄마. 아이 뒤치다꺼리는 물론 집안일에 직장까지 다니는 워킹맘. 엄마들 사이에서 힘들게 알아낸 정보로 좋다는 학원이며 학습지까지, 미안한 마음에 남부럽지 않을 만큼 시키고 있다. 밤이면 화장을 지울 새도 없이 학교 숙제와 학원 숙제에 그날 학습지 채점까지 아이와 눈 마주칠 새도 없다. 엄마는 이렇게 노력하는데, 학원을 무단결석했다는 전화와 제대로 하지 않은 학교 숙제, 밀린 학습지를 보면 엄마는 폭발하기 직전이다. 아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놀이터에서 놀기 바쁘다. 엄마는 어느새 아이를 데려와 불같이 화를 낸다.
해결 솔루션!
아이에겐 능력이 있고, 엄마에겐 서포트해줄 마음이 있다. 부족한 것은 오로지 시간뿐이다. 늘 급한 마음이다 보니 질과 내용보다는 분량 채우기에 급급하다. 이런 생활이 오래되고 반복되면 아이와 엄마가 서로에게 부정적인 시너지를 주기 쉽다. 이런 유형의 아이와 엄마는 우선 정서적인 단절감부터 회복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아이의 학습 능력을 의심할 때가 아니다. 하루 종일 엄마를 기다린 아이가 아닌가. 다급한 마음과 치미는 화를 조절해보자. 하루 10분이라도 아이와 눈을 맞추고 온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져라.
그리고 믿고 기다려라. 부모가 해줄 수 있는 가장 최선은 믿음과 기다려주는 여유다.
감시와 채찍은 아이와 멀어지게 만들 뿐이다. 정서적 교감이 이루어지면 스스로 하는 공부를 잘해낼 것이다.
type 4 “저는 공부하면서 놀아요!”
즐기면서 공부하는 공부벌레형 아이 | 운동 능력이나 예능적 소질은 조금 떨어지지만 공부 자체를 즐기며 파고드는 아이들이다. 어린 나이지만 스스로 공부하는데 그것도 즐기면서 좋아서 하는 게 보인다. 이런 아이들은 놀 때조차 책을 읽으며 독서 활동을 하는 경향이 있다. 또래보다 조숙한 경우가 많고, 어른스러운 편이다. 흔히 공부벌레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대한민국 모든 부모의 로망이기도 하다.
공부벌레형 아이 뒤에는 유도형 엄마가 있다.
“아이의 호기심과 사고는 콕,콕 자극!”
질문 유도형 엄마! | 질문 유도형 엄마들은 ‘빨리’라는 말을 거의 쓰지 않는다. 조금 늦더라도 아이의 대답과 결과를 기다리는 편이다. 때로는 여유롭다 못해 태평해 보이기까지 한다. 소신 있는 교육관을 가지고 있으며, 당장 눈앞의 성적표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공부를 장거리 마라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이들과 대화를 가장한 토론을 하고, 엄마의 생각대로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생각을 열어주는 유도에 능한 편이다. 아이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며 대부분 긍정적인 반응을 건넨다.
해결 솔루션!
가장 이상적인 형태로 아무 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말 그대로 아이의 공부는 장기 마라톤이기 때문에 당장의 상황에 만족해서는 위험하다. 우리 주변을 둘러봐도 ‘한때는’ 공부를 잘한 수재들이 넘치고 넘치기 때문이다. 공부에 재능을 보이는 아이들이라면 그 잠재력에 대한 강한 믿음을 가지고 과제를 줄 때 수준보다 약간 더 높은 과제를 체계적으로 제시할 필요가 있다. 또 학습에 너무 신경 쓴 나머지 사회성은 계발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아이에 맞게 행동하고 사고하는 모습 또한 지켜질 수 있도록 균형을 잡아주는 것이 필요하다.
조기 교육은 시대적 트렌드를 넘어 부모 된 이들에게는 당연한 과제가 되었다. 아이들의 교육이 아주 이른 시기에 시작되기 때문에 좌절과 실패를 맛보는 시기도 훨씬 빨라졌다. 예전 같으면 출발선이었을 상황에서 마치 도착점에 선 사람처럼 많은 부모와 아이들이 낙담한다. 조기교육에서 가장 우려되는 상황과 현실이다. 알찬 결실은 오랜 시간 인내하고 견뎌야 얻을 수 있다. 모진 비바람과 뜨거운 태양, 살을 에는 추위를 견뎌야 비로소 건강하고 튼실한 작물을 손에 쥘 수 있다. 아직 여물지 않은 알곡을 두고 왈가왈부하지 말고, 손에 쥐고 자세히 살펴보자. 싹을 틔우지 않는다면 분명히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원인을 찾아 알곡의 양분이 되는 부모부터 돌아보자. 아이의 태도를 나무라기 전에, 아이의 능력을 포기하기 전에, 아이의 미래를 단정하기 전에 부모의 문제부터 하나씩 찾아가자. 문제는 아이가 아닌 부모에게 있다. 잊지 말자. 우리 아이들은 이미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재목이라는 사실을!
/ 여성조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