굉장히 멋진그림을 그려놓고 언제나 하는 한마디
"참 쉽죠?"
어렸을때 난 페인트붓이랑 물감사서 아저씨만 따라하면
누구나 밥 로스 아저씨만큼 그릴줄 알았다
"밥 로스의 그림을 그립시다"
어렸을때EBS에서 유일하게챙겨 본 프로그램이다
언제부턴가 안하길래 아저씨가 이젠 쉬나~했었는데
알아보니 1995년에 간암으로 돌아가셨단다..

외국에서도 아저씨가 인기가 많았나보네~
미술도구 세트도 아저씨 이름을 딴 제품이 나와있다
밥로스 아저씨처럼 잘그리고 싶다고 많이 샀을거 같군ㅋ

지금 봐도 멋진 아저씨의 그림들

 

 

 

 

 

 

 

 

 

 

 

원본출처:http://bonniepink.tistory.com/497?nil_no=758&t__nil_ucc=upimg&nil_id=6

 '사람' 이 '힘' 이라고 한다. '인맥' 이 '권력' 이라고 한다. 그만큼 살아가는데 있어서 인간관계 관리는 필수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과유불급" 이라는 말이 있다. 사람과 인맥 사랑이 과하다 못해 사람 자랑, 인맥 자랑으로 이어지고 그것이 힘 자랑, 권력 자랑, 돈 자랑처럼 보인다면 그건 곤란하다. 그 단계까지 나아가면 '사람과 인맥' 은 '돈과 권력' 의 구린내를 풍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현재, 아쉽게도 '연예계 마당발' 박경림의 인맥 자랑이 이런 불편함을 풍기고 있다.





물론 박경림이 '돈과 권력' 을 위해 유명 인사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한다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명랑 히어로] 에서 박미선이 말했던 것처럼 박경림은 사람을 대할 때, 언제나 진심을 다하는 사람이다. 진심어리고 성실한 태도가 지금의 '연예계 마당발' 박경림을 만들었을테고 인맥이라면 남부럽지 않은 성공한 사람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인간' 박경림이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분명히 진실하고 아름다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문제는 "거기에서 끝났어야" 한다는 것이다. 박경림의 문제는 자신이 알고 있는 유명인사나 인맥을 방송 뿐 아니라 사적인 자리에서 너무 '과시' 한다는데에 있다. 본인은 "과시하는 것이 아니다!" 라고 항변할지 모르겠지만 순수하게 TV를 접하는 일반 대중의 시선은 다르다. TV 에서 박경림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거의 절반이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톱 스타들과의 친분 관계가 전부다.


방송을 보면 박경림의 레퍼토리는 거의 '판박이' 라고 할 정도로 정해져 있다. 꽃미남 배우와의 스캔들을 거론하면서 조인성과의 친분을 끊임 없이 강조하고, 지춘희 같은 문화계 최고의 유명 인사들과의 에피소드도 꼭 빠지지 않는다. 이기찬, 이수영, 장나라와의 추억은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들었고 결혼식에 히딩크가 다녀간 것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물론 부끄러운 이야기는 아닐테지만).


여고 시절 처음 만났다는 장동건과의 추억, [별이 빛나는 밤에] 에서 만났던 이문세 이야기, [이소라의 프로포즈] 에서 이소라와 맺은 인연, MC 박수홍이 군대 다닐 때의 이야기, 김장훈과 싸우고 화해하는 이야기 역시 박경림이 나오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레퍼토리다. 좋은 것도 한 두번이라고 이런 패턴이 끊임없이 반복되다 보니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 지 눈에 뻔히 보이고, "나 이렇게 대단한 사람들과 친해!" 라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어느샌가 박경림의 '인맥' 은 그 순수성을 잃어버리고 박경림의 '방송수단' 으로 전락해 버린 듯한 느낌까지 준다. 유학 전만해도 박경림은 지금처럼 폭넓은 인맥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그것을 은연중 과시하거나 자랑하는 듯한 분위기를 풍기지 않았다. 한 두번씩 그들과의 인연을 이야기 할 때도 진정성이 있었고, 함부로 인맥에 대해서 말을 꺼내는 스타일도 아니었다.


그러나 유학 이 후, 인기가 땅에 떨어지고 예전의 '톱스타' 위치를 확보하지 못하자 그녀의 입에서 '인맥' 에 대한 이야기가 끊임 없이 쏟아져 나왔다. 방송인으로서의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주저 앉기 시작하자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인맥들을 마치 '방송인' 박경림의 '비전' 인 것처럼 대중의 눈을 속이고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그녀는 방송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하는 현 상태를 더 많은 인맥의 형성을 통해 채워 넣으려는 무리수도 두고 있다.


그만큼 지금 '방송인' 박경림을 지탱하고 있는 것은 박경림의 내적인 재능이나 실력이라기 보다는 외적인 인맥과 사람들처럼 보인다. 비전과 밑천이 떨어진 재능을 떠 받치고 있는 것이 인맥이다 보니 듣는 사람이나 말하는 사람이나 불편하기 짝이 없고, 더 이상 사람과의 추억이 풍기는 진정성이나 아름다운 향기 역시 기대하기 힘들게 됐다. 이것이 지금 박경림이 자랑하는 '대단한 인맥' 의 현주소다.


사실 연예계에 박경림만큼의 인맥을 자랑하는 사람은 널리고 널렸다. 장례식장이 국장처럼 보였던 故 이주일 선생, 30년 방송생활 동안 방송인 대부분과 인맥을 쌓아 아들 결혼식이 마치 '축제' 를 방불케 했던 임하룡, 1000여명의 결혼 하객이 몰려 인산인해를 이룬 유재석, 방송 20년의 세월 동안 사람 관리에도 천하장사가 된 강호동, 인맥만으로도 국내 최정상의 엔터테인먼트 회사를 만들어 낸 신동엽 등이 그러하다.


그러나 이들의 입에서 '인맥 자랑' 의 분위기를 풍기는 것을 나는 보지 못했다. 더 나아가 "인맥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가, 사람관계란 무엇인가?" 라며 책을 내는 것도 나는 본 적이 없다. 인맥을 활용해 상업적인 냄새를 풍기지 않고 언제나 정직하고 성실하게 방송인으로서의 비전과 재능만으로 승부를 봤다. 그렇기에 그들의 인간 관계는 대중에게 존중받고 신뢰 받았으며, 의심의 눈초리를 받지도 않았다.


박경림은 알아야 한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것을.


그녀의 입에서 그 '대단한 인맥' 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나올수록, 인맥에 관한 책을 써 놓고 주절주절 이야기 할수록, 스캔들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억지 웃음을 유발하면 유발할수록 사람들은 그녀가 그토록 '소중' 하게 생각한다는 인맥에서 돈 냄새, 상업주의 냄새, 권력 냄새를 느끼게 될 것이다. 사람에 관한 이야기가 아름다운 사람 내음보다는 방송의 수단으로 전락해 버린 구린내를 풍기게 된다는 것은 참 슬프고 아쉬운 일이다.


겸손해야 한다. 사람 이야기 대신 방송인으로서 비전을 제시해 대중들을 감동시키는 것이 우선임을 알아야 한다. 인맥에 관한 이야기를 자제하고 순수하게 '박경림' 그 자체로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정상의 자리를 회복할 수 있어야 한다. 언제까지 박경림은 과거의 인기와 현재의 인맥에 둘러 싸여 아무런 가능성도, 아무런 비전도 제시하지 않은채 정체되어 있을 것인가.


듣기 싫고 불편한데다가 거북스럽고, 이제는 거부감까지 드는 그녀의 인맥 자랑이 이 쯤에서 '제발' 멈췄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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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의 생일로 확인해주세요~~(양력으로 하는 거 알죠?)

♧12월 23일 ~ 1월 1일 ☞ 사과나무
♧ 1월 2일 ~ 1월 11일 ☞ 전나무
♧ 1월 12일 ~ 1월 24일 ☞ 느릅나무
♧ 1월 25일 ~ 2월 3일 ☞ 노송나무
♧ 2월 4일 ~ 2월 8일 ☞ 포플러나무
♧ 2월 9일 ~ 2월 18일 ☞ 삼나무
♧ 2월 19일 ~ 2월 28일 ☞ 소나무
♧ 3월 1일 ~ 3월 10일 ☞ 수양버들
♧ 3월 11일 ~ 3월 20일 ☞ 라임나무
♧ 3월 21일 ☞ 떡갈나무
♧ 3월 22일 ~ 3월 31일 ☞ 개암나무
♧ 4월 1일 ~ 4월 10일 ☞ 마가목
♧ 4월 11일 ~ 4월 20일 ☞ 단풍나무
♧ 4월 21일 ~ 4월 30일 ☞ 호두나무
♧ 5월 1일 ~ 5월 14일 ☞ 포플러
♧ 5월 15일 ~ 5월 24일 ☞ 밤나무
♧ 5월 25일 ~ 6월 3일 ☞ 사시나무
♧ 6월 4일 ~ 6월 13일 ☞ 자작나무
♧ 6월 14일 ~ 6월 23일 ☞ 무화과나무
♧ 6월 24일 ☞ 자작나무
♧ 6월 25일 ~ 7월 4일 ☞ 사과나무
♧ 7월 5일 ~ 7월 14일 ☞ 전나무
♧ 7월 15일 ~ 7월 25일 ☞ 느릅나무
♧ 7월 26일 ~ 8월 4일 ☞ 노송나무
♧ 8월 5일 ~ 8월 13일 ☞ 포플러나무
♧ 8월 14일 ~ 8월 23일 ☞ 삼나무
♧ 8월 24일 ~ 9월 2일 ☞ 소나무
♧ 9월 3일 ~ 9월 12일 ☞ 수양버들
♧ 9월 13일 ~ 9월 22일 ☞ 라임나무
♧ 9월 23일 ☞ 올리브 나무
♧ 9월 24일 ~ 10월 3일 ☞ 개암나무
♧ 10월 4일 ~ 10월 13일 ☞ 마가목
♧ 10월 14일 ~ 10월 23일 ☞ 단풍나무
♧ 10월 24일 ~ 11월 11일 ☞ 호두나무
♧ 11월 12일 ~ 11월 21일 ☞ 밤나무
♧ 11월 22일 ~ 12월 1일 ☞ 사시나무
♧ 12월 2일 ~ 12월 11일 ☞ 자작나무
♧ 12월 12일 ~ 12월 21일 ☞ 무화과나무
♧ 12월 22일 ~ 12월 31일 ☞ 너도밤나무


#해설....

♠ 사과나무 (사랑) ♠

가냘픈 체형, 매력적이고 애교 많으며 호소력 있음, 상쾌함 발산,
때로 경박하기도 하지만 대담하며 민감하고 항상 사랑을 빠져있으며
사랑하고 싶어하고 사랑 받고 싶어한다.
믿음직스럽고 부드러운 배우자, 관대하며 과학적 재능이 있고 걱정
없이 오늘을 사는 풍부한 상상력의 낙천주의자

♠ 사시나무 (야망) ♠
비범한 매력, 활기차고 충동적이며 남들의 시선을 고려하지 않는
야심차고 현명한 재능꾼, 운명에 도전하며 이기적이긴 하지만
믿을만하고 신중한 사람, 사랑도 너무 신중하여 때때로 감성보다
이성에 지배되기도 하지만 매우 신중하게 배우자 선택

♠ 너도밤나무 (창조) ♠
고급취향을 가졌으며 외모를 중시하고 삶과 일에 확실한 체계를
가지고 있다. 재력이 있으며 훌륭한 리더, 불필요한 선택은 피하며
합리적이고 화려한 인생을 살며 운동 혹은 다이어트를 통해 외모
가꾸기에 정진

♠ 자작나무 (영감) ♠
활기차고 매력적이며 우아하고 친절, 꾸미지않은 수수함. 오버하는
것 싫어하며 저속함을 거부하고 있는 그대로 조용한 삶을 원하며
그다지 정열적이지 않으나 상상력 풍부하고 야망은 그다지 크지
않다, 조용하고 안정적인 분위기 창조

♠ 삼나무 (자신감) ♠
미의 극치, 누구와도 어울릴 줄 알며 고급스러움을 좋아한다.
그다지 수줍음은 없으나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고
자신감 넘치며 결단력 있고 다소 성급하나 호소력 있고 많은
재주가 있고 근면하며 낙천적이고 진실한 사랑을 기다린다.
속전속결

♠ 밤나무 (정직) ♠
비범한 미, 판단능력이 뛰어나고 활기차고 재미있는 타고난 외교가,
그러나 쉽게 짜증내며 민감하게 반응하며 종종 자신감 결여로 이해
하기 힘들때가 있다. 배우자 찾는데 어려움이 있지만 일편단심
민들레, 단 한번의 사랑

♠ 노송나무 (신의) ♠
강하고 웅통성 있으며 베풀기 좋아하고 낙천적이기도 하지만 명예와
재력을 위해 노력하고 고독을 싫어하며 쉽게 만족할 줄 모르며 성격
급하고 제멋대로 행동하며 나서기 좋아하며 부주의함. 정열적 사랑을
꿈꾼다.

♠ 느릅나무 (고결) ♠
세련된 외모와 잘빠진 용모, 수수함, 관대하지 않으며 리더쉽 있으나
남의 말을 잘 듣지 못함. 정직하고 믿음직스러운 배우자, 타인을
배려하는 결정을 잘 하며 관대하고 유머감각이 있으며 현실적임.

♠ 무화과 나무 (감수성) ♠
강하며 고집 세고 독립심 있으며 모순이나 논쟁을 절대 허용하지
않으며 삶을 사랑하며 가정과 아이들, 동물을 사랑함, 사교계 제왕,
유모감각 뛰어나나 게으르고 태만함. 현실감각 뛰어나며 지능적임

♠ 전나무 (신비) ♠
비범한 취향, 존엄, 세련됨, 미를 사랑하며 완고하며 자아의식이 강
하나 주변인을 배려할 줄 알며 다소 겸손하고 야망이 있으며 근면하
고 재능 있다. 친구도 적도 많음.

♠ 개암나무 (비범) ♠
매력적이며 욕심 없고 사려 깊다. 감동을 줄줄 알며 활동적인 사회
사업가. 인기 있으나 엉뚱한 짓 잘하고 변덕 심함, 정직하고 정확한
판단능력

♠ 자작나무 (고급취향) ♠
세련된 미,외향과 조건, 고급 선호 자기위주는 아니지만 가능한
편안하고 안락함을 선택, 합리적이며 질서 있는 생활을 이끌어나가며
친절하고 정서적인 배우자를 만나 인정 받고 싶어함,
현실직이지 않은 이상적 사랑을 꿈꾸며 좀처럼 행복을 느끼지 못하며
의심이 많고 양심적이다

♠ 라임나무 (의심) ♠
차분하게 받아들이며 분쟁을 싫어함.
스트레스, 노동, 안일, 태만 등을 혐오마음이 부드러우며 희생정신이
강함. 다재다능하나 끈기가 부족하며 종종 비탄에 젖어있거나 불만
이 많고 질투심이 강함

♠ 단풍나무 (독립) ♠
풍부한 상상력, 수줍음 많으나 야망이 있으며 자신감이 넘치고 새로
운 도전과 경험을 갈망함. 때때로 신경질적이며 복잡하다.
기억력이 좋으며 쉽게 배우며 얽혀있는 사랑을 하며 타인에게 감동
주기를 좋아한다.

♠ 떡갈나무 (용기) ♠
강건하며 용기 있고 가차없으며 독립적이고 예민하다.
변화를 싫어하며 한가지를 고수하려 한다.

♠ 올리브나무 (지혜) ♠
태양을 사랑하며 따뜻하고 합리적이며 조화로우며
폭력과 공격을 피하며 관용 있고 쾌활한 성격,
판단능력 뛰어나며 동정심 많고 쉽게 질투하지 않는다

♠ 소나무 (독특) ♠
의견일치를 좋아하며 쉽게 타협을 볼 줄 알며
활동적이며 자연스럽다 좀처럼 친해지기 어려우나
쉽게 사랑에 빠지고 금방 정열을 불태우며 쉽게 포기한다.

♠ 포플러 (불확실) ♠
자신감 부족하나 필요하면 용감해진다.
호의적이나 매우 까다롭고 쉽게 외로움을 느끼며
예술적 기질이 뛰어남. 철학적이며 신중한 배우자 선택

♠ 마가목 (민감) ♠
매력만점, 삶을 사랑하며 복잡 미묘, 독립적이기도 하고
의존도 강한 양면성을 지님,
고급 취향을 가졌으며 예술적 기질이 뛰어나고
정열적이며 감성적이나 쉽게 용서하지 않음


♠ 호두나무 (정열) ♠
독특한 성격, 쉽게 자아의식에 빠지고 공격적이며 극과 극을 달림,
예상할 수 없는 반응을 보이나 매사에 자발적이며
야망이 크고 좀처럼 타협하지 않는다.
타고난 전략가로 존경 받으며 쉽게 부러워한다.

♠ 수양버들 (우울) ♠
동정심 많으며 매력적이지만 늘 우울하다.
여행을 좋아하는 몽상가. 변덕스러우나 정직하다.
귀가 얇긴 하지만 삶을 좌우할 정도는 아니며 직관력이 뛰어남.
사랑으로 힘들어함

출처 : 엽기 혹은 진실..(연예인 과거사진)
글쓴이 : 세상을다바꿔 원글보기
메모 :

작은 꿈을 꾸지마라. 

건축가 다니엘 버넘은 “작은 꿈을 꾸지마라.
그것은 당신의 피를 들끓게 하는 기적을 일으키지 못한다.
원대한 꿈을 세우고 드높은 이상과 희망을 향해 나아가라.”고,
원대한 꿈의 중요성을 역설했습니다.
 
성공은 동기와 집중과 인내에 의해 이뤄진다고 합니다.
어떤 이는 세상에서 가장 이상한 비밀은 ‘모든 일은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라고 말합니다. 성공한 사람들은 늘 소망을 품고 있습니다.
그들은 지금 상태에 만족하지 않고 더 나은 변화를 원합니다.
지금까지 성공하기를 원하지 않은 승리자는 없었습니다.
목표가 없는 사람은 키 없는 배와 같습니다.

 

 

출처:http://blog.empas.com/lococo/16511406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SEOUL, Korea (AVING) -- <Visual News> 현재 전세계 컴퓨터 사용자 중 '빌게이츠'와 '윈도우XP'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둘이 무슨 인연인지 '빌게이츠'는 27일, '윈도우XP'는 30일 단 3일간의 간격을 두고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은퇴했다. 과연 이 둘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진 걸까?

'윈도우XP'라는 운영체제가 7년 동안 전 세계를 누비고 있을 때, '빌게이츠'는 분명 차기 운영체제를 구상했을 것이며, 그 작품이 바로 '윈도우 비스타' 이었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빌게이츠' 조차도 모바일과 저가PC의 열풍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일까? 마이크로소프트사는 PC시장의 최근 흐름과 맞지 않는 '무거운 운영체제'인 '윈도우 비스타'를 발표했고, 지금까지 저가PC, MID, UMPC 등을 위한 '데스크탑'의 '윈도우XP' 만한 운영체제를 보여주지는 못하고 있다.

물론 '윈도우 모바일'이라는 모바일 운영체제가 있지만, 구글의 공개 운영체제인 '안드로메다', '심비안' 등의 운영체제에 비하면 무거워, 100% 모바일 운영체제가 아닌 '윈도우XP'의 압축판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으며, 최근 출시된 '윈도우 임베디드 내브레디 2009'는 초기 단계로 그 성능과 안정성을 아직까지는 판단할 수 없다.

 

 


결국, '윈도우 비스타'가 출시되었지만, 대다수 개인 사용자는 아직도 '윈도우XP'를 사용하거나 심지어 '윈도우 비스타'를 '윈도우XP'로 다운그레이드 하는 사용자까지 나타나고 있다.

이는 7년이라는 오랜 시간을 함께한 운영체제 '윈도우XP'에 너무나도 익숙해져 버린 사용자들과 '윈도우 비스타'의 높은 하드웨어 요구사항 등의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문제는 '빌게이츠'와 '마이크로소프트'는 이러한 결과에 승복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다. 현재 인포월드(www.infoworld.com)를 통해 21만 명 이상의 사용자들이 '윈도우XP 연장'에 대한 서명을 했지만, 마이크로소프트는 이에 대응하지 않고 결국 30일 '윈도우XP'의 종료 선고를 했고, 27일에는 '빌게이츠'도 은퇴했다.

'빌게이츠'가 운영체제 시장을 독점해 '마이크로소프트'를 크게 키운 것은 데스크탑 운영체제, 특히 '윈도우XP'의 성공이었다. 지금까지 '빌게이츠'와 '윈도우XP'는 전 세계의 수많은 데스크탑에 장착된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 받고 있다.

이제 PC는 모바일의 세상이다.

현재 소비자는 머리가 4개 달린 쿼드코어 CPU와 고사양을 요구하는 화려한 인터페이스 보다는 간편하고 저렴한 '아톰' 프로세서를 가진 'EeePC'에 열광한다. '빌게이츠'는 저가PC시장에서 맞지 않는 '윈도우 비스타'는 과감하게 버리고 저가 PC인 '넷탑'과 '넷북'에는 '윈도우XP'를 2010년까지 연장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빌게이츠'는 이러한 PC시장의 변화를 받아들인 걸까? 분명, '빌게이츠'는 자신의 최대 작품인 '윈도우XP'와 함께 데스크탑 시장의 정상에서 모바일이라는 시장의 변화를 받아들이며 멋지게 물러난 CEO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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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만우절 이벤트를 벌여온 구글(www.google.com)이 올해는 '사투리 번역'을 들고 나왔다.

1일 구글 관계자는 "올해는 최초로 한국인 사용자만을 위한 '구글 사투리 번역'(www.google.co.kr/saturi)을 선보였다"며 "이 서비스는 구글코리아 R & D센터 엔지니어들이 자체 개발한 사투리 통계번역 시스템을 활용한 제품으로, 국내 팔도 사투리로 검색이 가능하고 다른 지방 사투리 혹은 표준어로 자유자재 번역해주는 제품"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모두 거짓말이다.

 

 

 

구글이 만우절 이벤트를 해왔다는 사실을 모르는 네티즌들은 실제 페이지에 가 보면 깜빡 속아넘어가기 쉬울 정도.

해당 페이지에는 "'표준어→경상도 사투리'로 '저기 있는 저 아이는 누구입니까?'를 입력하면, '자는 누꼬?'로, '제주사투리→표준어'로 '곤밥 먹은 소리 듣쟨하난 죽어지컹게 구글 이시난 지꺼점쩌'를 입력하면, '표준어만 듣다보니 힘들었는데 구글이 있으니 좋구나'로 번역된다"는 내용의 캡처 화면이 떠 있다.

그러나 실제로 '구글 사투리 번역 사용해보기' 버튼을 누르면 "구글 만우절 페이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라는 멘트가 나온다.

구글은 지난 2000년부터 매년 만우절 프로젝트를 진행해 전세계 사용자들을 속여왔다. 해마다 만우절을 앞두고 과연 올해는 구글이 어떤 기발한 속임수를 들고 나올지를 기다리는 매니아들이 생겨났을 정도.

지난 2006년에는 '구글 로맨스(http://www.google.com/romance)'에서 적합한 이성을 검색해주는 중매 서비스를 통해 세계 로맨스 지도를 만들겠다고 했으며, 2005년에는 마시면 머리가 좋아지고 구글 서핑 효과를 높여주는 음료수 '구글 걸프(www.google.com/googlegulp)'를 선보였다.

또 2004년 4월 1일에는 용량 1G의 검색하기 href="http://search.daum.net/search?w=tot&q=%C1%F6%B8%DE%C0%CF&nil_profile=newskwd&nil_id=v20080401142011072" target=new>지메일을 발표해 전세계 사용자들을 어리둥절케 했으나 이는 사실인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원본:http://media.daum.net/culture/art/view.html?cateid=1021&newsid=20080401142011072&cp=inews24


 

 

사투리번역사용하기

http://www.google.co.kr/landing/saturi/qna.html

 

이쪽이 진짜:http://www.google.co.kr/landing/saturi/s_translate.html

철없어야 평생 활약한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평생의 업에서 은퇴하고 제2의 인생을 열곤 한다. 그래서 패션 디자이너 노라노 씨의 행보는 더욱 눈에 띈다. 한국에 ‘패션 디자인’이라는 ‘신문화’를 소개한 입지전적 인물인 그는 여든 넘은 나이에 현역 디자이너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광복 이후 홀홀단신 미국 유학을 떠날 때처럼, 한국전쟁 중에 의상 숍을 개업했듯이 지금도 순수할 열정으로 도전의 나날을 보낸다

 

 

 

 

 

 

 

 

 

 

 

 

 

 

 

 

 

 

 

 

 

1947년, 스무 살이었던 노라노 씨는 패션 디자인을 공부하기 위해 미군 폭격기 B-27을 개조한 노스웨스트 항공사 여객기를 타고 미국으로 떠났다. 이혼의 아픔을 안고 결정한 일이었다. 당시 ‘노명자’가 ‘노라노’로 다시 태어나는 순간은 꽃 한 송이가 피어날 때처럼 천둥이 꽝꽝 치는 엄청난 일이었다. 지금이야 미국 여행이 어렵지 않지만, 우리나라 1인당 국민총생산GNP이 57달러였던 그 시절에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 편도 티켓이 무려 1천 달러였다. 그는 미국행 비행기에 오른 두 번째 한국인 여성 승객이었다. 물리적인 어려움은 차치하고라도 아녀자가 홀홀단신 미국 유학길에 오를 결심을 했다는 사실이 더욱 혁명적이었다. 어쩌면 집이라는 굴레를 벗고 자기 인생을 찾으러 떠난다는, 입센의 희곡 <인형의 집> 주인공 노라 이야기의 후속편을 노라노 씨가 완성시켰는지도 모른다. 그는 여든한 살이 된 지금도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찾아 현재진행형의 자유를 누리고 있으니 말이다.

 

‘최초’를 의식하지 않았고 ‘최고’도 목표가아니었다 지난해 노라노 씨가 여든 살을 맞아 발간한 자전적 에세이 <노라노, 열정을 디자인하다>(황금나침반)를 읽고 소설가 박완서 씨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염색한 미군 군복바지를 입고 다니던 전후의 그 극빈한 시절에도 어딘가에 패션계가 있었다는 건 얼마나 놀라운 사실인가.” 그렇다. 1940년대 우리나라 문화에는 ‘패션’이란 코드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 외할아버지와 어머니를 통해 내려온 ‘멋쟁이 유전자’를 지닌 덕분에 남들보다 유난히 옷 매무새가 감각적이었던 노라노 씨를 한 외국 부인이 눈여겨보았다. “패션 디자인을 공부해보는 게 어때요?”라는 그 부인의 한마디가 노라노 씨의 패션 디자인 인생 60년을 연 셈이다.

 

황무지에서 출발했으니 그의 이력에는 ‘최초’라는 수식어가 많다. 최초의 유학파 패션 디자이너, 서울 반도 호텔에서 연 국내 최초의 패션쇼, 맞춤복이 전부였던 1966년에 개최한 국내 최초의 기성복 패션쇼…. 이렇듯 패션계에서는 입지전적인 인물이었지만 사실 대중에게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국내에서 처음 활동할 때에는 요즘처럼 패션계의 거장이나 소위 ‘패셔니스타’들을 조망하는 잡지나 방송이 전무했기 때문이다. 스스로도 “나는 수줍음 많은 기술자일 뿐 사교적이거나 사회적이지 못하다”라고 말한다.

디자이너 노라노 씨는 미국에서 프랭크 왜곤 테크니컬 칼리지를 졸업한 뒤, 한국 전쟁이 한창이던 때 명동에 의상 숍 ‘노라노의 집’을 열면서 서울 시내에서 고급 부티크로 성공했다. 이런 전성기는 30~40대에서 그치지 않고, 50대에 오히려 더욱 드라마틱한 곡선을 그리며 힘차게 이어진다. 52세가 되던 1979년 뉴욕 맨해튼 7번가 패션 거리에 ‘노라 노Nora Noh’ 간판을 걸고 쇼룸을 열었다. 1949년 미국에서 패션 공부를 하고 패션의 중심지 뉴욕 7번가에 정식으로 진출하는 데 30년이 걸린 셈. “쇼룸을 열자 뉴욕의 고급 부티크 바이어들로부터 주문이 쏟아졌어요. 첫날 주문량이 자그마치 7백 벌이더군요. 사무실 팩시밀리로 주문서가 쉴 새 없이 들어오는데, 멍하더군요.” 성공이었다. 그런데 그는 그 결과가 굉장한 것인지도 몰랐단다. 신나서 전력투구했을 뿐이었다.

 


 

 

(위) 노라노 씨는 젊을 때부터 지금까지 검정과 회색 옷을 즐겨 입었다. 출근할 때마다 구두와 백을 바꾸는 번거로움이 없기 때문이다. 이 의상은 촬영을 위해 몇 일 전에 직접 디자인한 정장이다.
1 패션 디자이너로 살아온 60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았던 손.
2 노라노 씨는 “과하지 않게 자신을 단장하는 것은 타인에 대한 예의”라고 말한다. 1947

성공의 출발점은 가슴속의 분노였다. “여성에게 억압이나 제약이 많던 그 시절, 실패나 아픔으로 인한 분노는 성공의 씨앗이 되었어요. 제 분노요? 결혼해서 실패한 것이겠죠. 그 덕분에 이만큼이라도 열심히 살게 된 것 같아 감사하지요.” 한번 떨어져봐야 그 충격으로 튀어 오를 수 있는 법이다. 그는 당시 여성에게 큰 오점과도 같은 이혼을 경험한 뒤 어린 나이에도 무서울 게 없어졌다. 잃을 게 없으니 용기가 생겼다.

“건달 정신으로 살아요” 패션 중심지에서 원 없이 전성기를 누렸다면 이쯤 되어 쉬고 싶지 않을까? 대체 노라노 씨를 60년 동안 현역으로 활동하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글쎄, 하루하루 열심히 살다 보니 어느새 여기까지 왔네요. 여전히 의욕이 있고 건강하니까 계속 일을 즐겨 하지요.” 거창한 대답을 기대했던 게 잘못이다. 그인들 80세까지 일할 줄 알았겠는가. “성공하고 싶다는 젊은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해요. ‘목적의식 가지고 일에 임하지 말라’고요. ‘무엇을 얼마큼 달성해야겠다’고 생각하지 말고 그저 최선을 다해 전력투구하라고요. 그러면 좋은 작품이 절로 나와요.”

젊음을 유지하는 방법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그는 ‘철들지 않아서 젊은 것 같다’며 웃는다. “저는 건달이에요, 고급 기술을 가진 건달. 최초로 패션쇼를 열었던 것도 하고 싶어서 한 거고, 아무리 대단한 사람도 만나고 싶지 않으면 안 만나요. 제 열망이 이끄는 대로 따라갈 뿐 이해타산에 얽매이지 않아요.” 그는 ‘돈을 벌겠다’ ‘출세하겠다’ ‘지위를 얻겠다’ 따위의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단다. 농담조로 말했지만, 기실 ‘건달 정신’을 갖고 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위) 노라노 씨는 젊을 때부터 지금까지 검정과 회색 옷을 즐겨 입었다. 출근할 때마다 구두와 백을 바꾸는 번거로움이 없기 때문이다. 이 의상은 촬영을 위해 몇 일 전에 직접 디자인한 정장이다.
1 패션 디자이너로 살아온 60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았던 손.
2 노라노 씨는 “과하지 않게 자신을 단장하는 것은 타인에 대한 예의”라고 말한다. 1947

성공의 출발점은 가슴속의 분노였다. “여성에게 억압이나 제약이 많던 그 시절, 실패나 아픔으로 인한 분노는 성공의 씨앗이 되었어요. 제 분노요? 결혼해서 실패한 것이겠죠. 그 덕분에 이만큼이라도 열심히 살게 된 것 같아 감사하지요.” 한번 떨어져봐야 그 충격으로 튀어 오를 수 있는 법이다. 그는 당시 여성에게 큰 오점과도 같은 이혼을 경험한 뒤 어린 나이에도 무서울 게 없어졌다. 잃을 게 없으니 용기가 생겼다.

“건달 정신으로 살아요” 패션 중심지에서 원 없이 전성기를 누렸다면 이쯤 되어 쉬고 싶지 않을까? 대체 노라노 씨를 60년 동안 현역으로 활동하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글쎄, 하루하루 열심히 살다 보니 어느새 여기까지 왔네요. 여전히 의욕이 있고 건강하니까 계속 일을 즐겨 하지요.” 거창한 대답을 기대했던 게 잘못이다. 그인들 80세까지 일할 줄 알았겠는가. “성공하고 싶다는 젊은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해요. ‘목적의식 가지고 일에 임하지 말라’고요. ‘무엇을 얼마큼 달성해야겠다’고 생각하지 말고 그저 최선을 다해 전력투구하라고요. 그러면 좋은 작품이 절로 나와요.”

젊음을 유지하는 방법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그는 ‘철들지 않아서 젊은 것 같다’며 웃는다. “저는 건달이에요, 고급 기술을 가진 건달. 최초로 패션쇼를 열었던 것도 하고 싶어서 한 거고, 아무리 대단한 사람도 만나고 싶지 않으면 안 만나요. 제 열망이 이끄는 대로 따라갈 뿐 이해타산에 얽매이지 않아요.” 그는 ‘돈을 벌겠다’ ‘출세하겠다’ ‘지위를 얻겠다’ 따위의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단다. 농담조로 말했지만, 기실 ‘건달 정신’을 갖고 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는 평생 뭔가를 소유하며 산 적이 없다. 그의 집은 마치 여행지에서 장기 투숙하는 오피스텔처럼 심플하다. 회사 경영권도 동생에게 있기 때문에 노라노 씨는 지금껏 사장에게 용돈을 받으며 살았다. 자신을 위해 돈을 쓴 적도 없고, 딱히 돈을 쓸 곳도 없었다. “돈의 쓰임은 세 가지면 될 것 같아요. 우선 생계를 위해 먹고살아야 하고, 둘째 병이 나면 고칠 수 있어야 하고, 셋째, 공부할 학비가 있어야 하지요. 그다음에 여유가 된다면 집을 마련하는 데 쓰면 되지요.” 그가 스물일곱 살 때 아버지가 위암으로 세상을 떠나 할머니, 어머니, 그리고 일곱 동생을 책임지는 가장이 된 뒤로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이기도 하다. 평소 걸음걸이처럼 인생 또한 훨훨 자유롭다.

이마에 팔자 주름 없는 80대 그래서일까, 노라노 씨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마에 팔八자 주름이 없다. 유심히 관찰하면 젊은 사람들 중에도 말할 때마다 미간에 주름이 서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80대인 그는 눈가의 진한 주름이 눈에 띌 뿐 팔자 주름이 없다. 단연코 성형수술 한 번 해본 적이 없는 얼굴인데 말이다. “제게 팔자 주름이 없나요? 몰랐네요. 하긴 그래요. 저는 찡그려본 적이 없거든요.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즐거워요.”

그렇다고 인생을 쉽게 살았다는 말이 아니다. “세상에 힘들지 않은 일이 어디 있습니까. 일이란 당연히 힘든 거예요. 쉬운 일은 없어요. 다만 저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지요. 스트레스란 내가 할 수 있는 깜냥보다 더 많이 해내려고 할 때 생겨요. 잘났든 못났든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최선을 다하면 되는데, 그 이상을 가지려고 욕심 내니까 스트레스가 쌓이는 거지요.” 물론 인생에서 ‘플러스 알파’라는 게 있다. 가령 달리기를 할 때 자기 능력치 이상으로 빠른 속도가 나오기도 한다. 실력이 아주 많이 누적되었을 때 어느 순간 딱 넘쳐서 그 이상의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때때로 그런 순간이 찾아오면 보너스를 받은 듯 즐겁다.

욕심 내지 않고 순수한 열정으로 일상을 살아가니 정신이 건강하다. 뿐만 아니라 몸의 건강도 열심히 돌본다. “누군가 묻더군요. 젊을 때 무슨 운동을 했냐고. 그래서 이렇게 말했지. ‘젊을 때 무슨 운동을 해요, 춤추고 놀면 그게 운동이지.’ 그렇게 매사 신나게 살다가 50대부터 몸 관리를 했어요. 처음으로 등산을 시작했고, 담배를 끊기로 결심했지요.” 매주 일요일 새벽 서울 근교의 산 정상에 올라가 아침 식사를 하고, 내려와서 제인 폰다가 출연하는 에어로빅 비디오를 보고 동작을 따라 했다. 30년 동안 하루 최대 두 갑 정도 피우던 담배는 50세에 끊을 결심을 하여 60세가 되었을 때 영영 이별했다.

요즘 그의 하루 일과는 이렇다. 아침 여섯 시쯤 일어나서 아침 식사로 수프 한 그릇, 사과 반 쪽, 바나나 반 쪽, 토마토 반 쪽, 고구마나 빵 또는 와플 하나, 물 한 잔, 커피 한 잔을 먹는다. 식사한 뒤에는 매일 운동을 한다. 스트레칭 40분, 아령이나 자전거 운동 40분, 그리고 근처 도산공원 산책 40분 등이다. 50대부터 꾸준히 운동을 했기 때문인지 그는 허리가 곧고 걸음걸이가 나이를 짐작할 수 없도록 힘차다.


1 일은 하고 싶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평생 단 한 번도 숙제하듯 일을 해본 적이 없다. 노라노 씨는 자신이 원 없이 일할 수 있도록 도와준 모든 이들에게 감사한다. 딸이나 며느리로 이어지는 그의 오래된 고객들, 그리고 의상 숍 가족과 모든 지인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기 위해 내년에 큰 행사를 열 예정이다. 
2 청담동 노라노 씨의 숍(02- 542-2793) 위층에 있는 그의 자택. 꼭 필요한 것만 갖추어놓아 간소하다.
3 젊을 적 그는 모델 못지않게 늘씬하고 스타일리시했다. 한국전쟁이 일어났을 때 스물세 살의 그는 블라우스와 개버딘 스커트 차림에 핸드백을 걸치고 피란을 떠났을 정도. 
4 패션 잡지에 실린 그의 컬렉션 광고들.

내 인생 최고의 유행은 열정과 도전 50대에는 원숙한 디자이너로 세계무대에서 활약했다. 그는 출장 때문에 세계 일주를 일 년에 네 번이나 한 적도 있다. 60대 초반까지도 뉴욕과 홍콩, 일본 등지에 법인을 설립하며 왕성하게 활동하다가 70대부터 일을 줄였다. 대신 패션 역사의 산증인으로 후학을 위해 강연할 시간을 낼 수 있었다. 80대가 된 요즘은 마무리 작업을 할 시기라고 생각한다. 지금껏 벌여온 일도 정리하고, 패션계를 위해 기록에 남겨야 할 것들은 챙겨놔야 한다.

“10년마다 인생을 ‘리폼’해야 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아무래도 몸이 먼저 ‘날 좀 신경 써줘’라고 외치거든요. 그에 맞게 삶의 패턴을 바꿔야 합니다.” 일의 활동 반경을 변경한 것처럼 몸 관리도 10년 주기로 조금씩 철저하게 다져나갔다.

그럼 노라노 씨는 언제까지 현역에서 뛰고자 할까? “강연할 때마다 농담처럼 하는 말이 있어요. 코코 샤넬이 활동을 접었다가 71세에 패션계에 컴백해 88세까지 일하다가 세상을 떠났지요. 그럼 난 90세까지만 일하면 코코 샤넬의 기록을 깬다고요.” 언제까지 건강하게 살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는 숨 쉬는 동안에는 ‘사는 것처럼’ 살고 싶단다. 그는 패션 디자이너이고, 그렇기에 패션을 창조하는 사람으로 사는 것이 당연하다. “산다는 게 뭔가요. 산다는 것은 생산적인 일을 한다는 것입니다. 하다못해 할 일이 없으면 봉사라도 해야지요. 앉아서 놀고 먹으면 죽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아요. 저 역시 건강이 나빠지고 기억력이 쇠퇴하게 되면 그때 제가 할 수 있는 다른 일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한 번도 ‘늙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다만 요즘 때때로 기력이 조금 약해졌다는 변화를 느낀다. 그러나 나이가 들고 나니 자신이 감추고 싶었던 것들로부터 해방된다는 점이 좋다. 젊었을 때라면 자서전을 못 썼을 것 같다. 자서전을 낸다는 것은 발가벗고 남 앞에 서는 일인데, 남의 비판으로부터 다치기도 하던 젊을 적에는 엄두도 못 냈던 일이다.

노라노 씨는 “내 인생에서는 오직 열정과 도전이 최고의 유행처럼 들고 났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 열정과 도전은 많은 이들의 도움 없이는 꺼내볼 수 없었을 것이다. “삶을 돌아봤을 때 단 한 가지 깊이 반성하는 게 있습니다. 사느라고 바빠서 도움 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 인사를 못했어요. ‘신세를 졌으니 갚아야지’ 하고 돌아보면 연락이 닿지 않거나 이미 돌아가셔서 안 계시더라고요. 무척 마음이 아파요. 이 마음을 다독일 수 있는 건 제가 미국에 갈 수 있도록 도와주신 스미스 씨의 이야기입니다. ‘네가 성장한 것을 지켜본 것으로 충분히 행복했으니, 넌 나에게 빚이 없다. 그런데 만일 조금이라도 고마운 마음이 들거든 다음 세대에게 갚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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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부모가 자녀의 조기 경제교육에 나섰다. 아이에게 이것저것 일을 시키며 그 대가로 용돈을 지불했다. 한마디로 일하지 않으면 돈도 없다는 것.

그런데열심히 용돈을 벌기 위해 일하던 아이가 골똘히 생각했다. 왜 부모는 구두 닦고 설거지 한 것만 대가를 주는가. 그러면서 뭔가 열심히 적었다. 그리고 다음날 엄마에게 내일었다. 거기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동생돌봐준 값 1000원 × 200일= 200000원
책정리한 값 500원 × 10번= 5000원
심부름한값 500원 × 20번= 10000원



등등합계 1,005,000원

만약댁의 자녀가 이렇게 청구했다면 당신은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그부모는 아이에게 다음과 같이 회신했다.

옷,기저귀 빨래한 값 1000원 × 10년
분유값 10000원 × 5년
동화책값 200000원
유치원학원비 200000원 × 2년



등등

그러므로너는 부모에게 평생 갚아야 한다.

오복(五福)이란말이 있다. 오래 사는 것[壽], 물질적으로 넉넉한 것[富], 몸이 건강하고 마음이 편안한 것[康寧], 덕 쌓기 좋아하는 것[攸好德], 제 명대로 살다가 편히 죽는 것[考終命].

오래전말이라 새겨들어야 하지만, 분명한 것은 단지 복이 5개에 국한하지 않는다. 이가 튼튼한 것도 복이고, 배우자를 잘 만난 것도 복이고, 외모가 준수한 것도 복이다. 이렇게 따지자면 보면 세상에 복 없는 사람이 없다.

그럼에도불구하고 나는 박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누구는 좋은 학교 나와 번듯한 직장에 부모가 물려준 재산에 떵떵거리고 사는 데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수렁에 빠진 듯 점점 가라앉고 있다는 한탄.

여기에원인이 있다. 복은 자신이 지은 과보인데 자신에게 원인을 찾지 않고 드러난 결과만 비교하며 ‘하늘도 무심하지’, ‘불공평한 세상’하고 원망을 하는 것.

남과비교하는 사람 치고 복 있는 사람 드물다. 굳이 신세를 비교하여 자신의 경쟁력을 높이려면 제대로 비교할 필요가 있다. 병원 응급실이나 중환자실에 가보라.

불의의사고로 피 흘리고 질병으로 링거 호스를 꽂고 있는 환자 옆에 울고불고하는 가족을 보고 있노라면 생지옥이 따로 없다. 부부가 서로 소홀해지면 장례식장에 한 번씩 가보는 것도 괜찮다. 대판 싸우고 토라져 외출했다가도 상갓집에서 돌아올 땐 제 짝이 소중해진다. ‘살면 얼마나 산다고.’이런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주변을둘러보면 속 썩이는 자식, 재산싸움으로 반목하는 일가친척으로 마음이 불편한 사람들이 적지 않다. 가뭄, 홍수, 태풍 등 자연재해를 당해본 사람은 자연의 혜택을 절감한다. 이처럼 세상엔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행복의 변수들이 많다.

만약하늘에 열심히 기도한 자가 ‘왜 나에겐 남들과 같은 부를 내려주지 않습니까’하고 불평한다면, 하늘은 부모가 아이에게 회신한 청구서 같은 것을 내밀지 모른다. 그래도 아우성 치면 왜 당신의 오늘이 남들과 차이 나는지 아마 전생, 전전생을 거스르는 긴 손익 계산서까지 출력하여 청구할지 모른다.

우리는이미 엄청난 복주머니를 가지고 있다. 이세상에 태어난 것이 바로 그 복이다. 사람들은 이를 망각할 때가 많다. 우리가 얼마나 자잘한 것에 불평하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언제 어디서 무슨일이 생기든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은 정당한 것이다.

아이에게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듯, 한번쯤은 자기가 가진 것 중에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라. 자신이 어떤 복을 타고 났는지 헤아려보라. 그럼으로써 자신의 그릇크기를 안다면 더욱 행복해 질 것이다.

복은남과 비교는 것이 아니다. 복은 자기 마음에서 온다. 복을 누리면 행복이 된다. 행복을 누릴 줄 아는 자가 행복을 불릴 수 있다. 남보다 없는 것을 바라보며 울상 짓기보다 내가 이미 가진 것을 돌아보며 지금 누릴 줄 아는 자, 남들과 차이를 인정하고 그 차이가 축복임을 인정하는 자야말로 진짜 행복한 부자가 아닐까. 성공해서 행복하려하지 말고 행복해서 성공한 삶이 되시길.

[출처]한경닷컴 / 차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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