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테리어디자이너 마영범

 

마영범  


1986 경희대학교 대학원 미술교육학과 졸업 1986 현재 소 갤러리 대표 1997 현재 경원대학교 실내건축학과 겸임교수 1995 KOSID 협회상 수상 1995 월간 디자인 올해의 디자인상 수상 1999 월간 인테리어 명가명인상 수상





  왜 인테리어디자이너가 되었는가?   


동기/ 유치원도 들어가기 전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부모님은 나를 화가로 키우기 원하셨고, 나도 그 이외의 다른 내 모습은 상상도 한 적이 없었다. 국민학교 때부터 장래희망을 물으면 한 번도 망설이지 않고 ‘화가’라고 대답하였다.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계속 미술을 했고, 미술교육학과를 졸업하였던 이유로 대학 졸업 후 잠시 고등학 교에서 미술을 가르친 적도 있다. 첫 개인전을 개최한 이후 후원해주는 평론가의 도움으로 두 번째 전시회를 초대전으로 치루게 되었다. 두 번째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젊었을 때 빨리 유명해지고 싶었고, 젊은 나이에 초대전을 갖게 된 것에 대해 자랑스러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그것이 스물 아홉 살의 일이었다. 그런데 두 번째 전시회를 마치고 나서 극심한 혼란을 겪게 되었다. 첫 번째 개인전과 두 번째 전시회 사이의 기간이 6개월밖에 되지 않았고, 충실한 준비를 하지 못한 채 전시회를 마치고 나서 나 자신을 속였다는 자책감과 절망감을 느꼈다. 극도의 혼란 속에서 다시는 그림을 안 그리겠다 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어려서부터 순수예술을 한다는 데 대해 자부심을 가져왔고, 디자인 분야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었 고 경시하는 마음이었다. 순수예술만이 가치가 있는 것이고, 그림을 통해 세상에 메시지를 전하고, 또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이 때 세상에 대한 인식을 다시 하게 되었고, 세상에 대해 새로운 눈을 뜨게 되었다. 1주일 동안의 전시 기간 중 고작 몇 백명의 관람객만이 그림을 감상할 수 있는데, 이것으로는 세상에 영향을 미칠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당시 나의 그림은 매스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반박과 인간성 회복에 관한 주제를 담고 있었다. 죽을 때 까지 예술가로서 남고자 했었지만, 두 번째 전시회를 마친 후의 기간에는 그렇게 폼 잡고 사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 후 4, 5년 동안을 일반인들의 기준으로 ‘방탕하게’ 보냈다. 그러나 사회에 대한 인식의 폭을 넓히게 된 시기였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리고 나에 대해 다시 인식하고 ‘나’를 알게 되었다. 이렇게 나는 화가의 길을 버리고 디자이너의 길로 들어서는 전기를 맞게 되었다. 과정/ 처음부터 인테리어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내가 처음 인테리어디자인을 시작하였을 때는 ‘인테리어 디자인’이라는 명칭조차도 일반화되지 않았을 때이다. 공식적인 나의 인테리어디자인 작품은 1989년의 카페 ‘앵콜’이었다. 내가 클라이언트로서, 디자이너로서 나의 가게를 꾸미는 작업이었다. 작업의 댓가를 금전적 환산으로 돌려받는 일로 시작 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디자이너들과는 인테리어디자인에 대한 접근이 달랐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디자인은 ‘일’이 아니 라 그냥 ‘생활’이었다. 나를 솔직하게 보여줄 수 있는 방법으로 택한 하나의 표현 방식이었다. 그 공간을 통해 내가 좋아하 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었고, 내 공간을 통해서 세상과 대화하고 싶었다. 그렇게 남과 다른 시선으로 ‘일’을 보았고, 그 일에 대한 개념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인테리어디자인을 하면서도 제도권에는 관심이 없었다. 1994년 이영희 한국의 상점으로 KOSID 협회상을 수상하면서 처음으로 KOSID에 가입하게 되었다.

  디자이너로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디자이너는 사고방식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디자이너들에게는 일을 위한 사고방식만이 존재한다. 디자이너 는 생활 자체가 디자인과 연결되어야 한다. 도면과 씨름하는 것이 디자이너가 아니다. 큰 차를 타고, 많은 직원들을 거느 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디자이너다운 생활방식이 중요한 것이다. 디자인은 책에서, 말로써 배우는 것이 아니라 생활 자체에서 배워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에게 인테리어디자인이 가지는 의미는?   


‘인테리어디자인은 내 방식으로 그리는 그림’이다. 나는 인테리어디자인에 너무나 자유스럽게 접근했다. 구한테 인테리어 디자인을 배운 적도 없고, 누구 밑에서 일을 한 적도 없다. 심지어 도면도 못그린다. 이 일이 내게 있어서 직업이 될 줄은 정말 몰랐다. 바보가 아닌 바에야 직업이 되리라고 생각했으면 학원에라도 다녔을 것이다. 그림을 그리면서 과외로 디자인 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은 인테리어디자인이 그림을 그리는 행위와 같다고 생각한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그 표현 형태가 달라졌을 뿐이며, 캔버스가 공간이라는 영역으로 바뀐 것이다. 디자인은 내 생활의 전부이며, 내게 목숨을 걸만한 가치로서의 의미를 가진다.









  자신에 대한 사람들의 부정적인 시각에 대한 반론을 제기한다면?   


어려서부터 예술가가 되고 싶었고, 그것만을 위해 생활해왔었다. 세상의 틀과 규정에 얽매이기 싫었다. 어떤 사람들은 나의 직선적인 면에 대해 좋지 않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것을 안다. 하지만 나는 나의 이익이나 개인적 발전을 위해 하 고 싶지 않은 얘기를 한다든가, 하고 싶지 않은 행동을 해야 하는 것에 부정적이다. 그러나 나의 일이나 삶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았다고 생각한다. 이 시대는 예술가나 디자이너에 대한 구분 자체가 애매모호한 시대이다. 나는 그저 크리에이티브한 일을 할 뿐이지 사람들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이 없다. 한편으로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 리는 것은 그만큼 화제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일의 결과보다 중요한 것은 디자이너의 정신이다. 나는 디자이너로서 나의 일로써만 보여지고 싶을 뿐이며, 현재의 나의 위치나 사람들의 시선은 상관하지 않는다. 조그만 사무실 에서 행복하게 공부하고, 좋은 디자인을 보고 그것을 사용하는 것에 만족을 느낀다.

  미니멀 디자인으로 규정되는 자신의 작품 경향에 대해서   


첫 번째 작품이었던 ‘앵콜’의 디자인은 ‘소 갤러리’의 디자인으로 이어졌다. 소 갤러리를 만들면서 그림을 그렸던 것처럼, 순수예술을 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디자인을 해나갔다. 디자인을 통해 나를 알리고, 세상을 바꾸고 싶었으며, 하다 보니 까 디자인이 너무나 재미있어졌다. 인테리어디자이너가 되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지만 작업을 하다보니 조금 유명해지기 도 하고, 책임감도 무거워졌다.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미니멀적인 그림에 대한 과정을 거쳤다. 그림을 그릴 때는 ‘LESS IS MORE’라는 말은 몰랐지만 추상회화를 전공했기 때문에 화면 속에서 이야기를 지워나가는 작업을 했었다. 그와 연결해서 공간도 그래야 된다고 생각했다. 10년이 넘는 기간동안의 나의 작품은 거의 비슷하게 미니멀리즘적인 성향을 띄고 있다. 물론 중간에 장식적인, 앤틱적인 디자인 스타일에 대한 시도도 있었지만 이는 변화를 위한 과정의 일환이었다. 작품을 진 행할 때마다 공부를 한다는 마음으로 임한다. 계속 다른 변화를 주고 싶었고, 의도적으로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그래서 모든 작품이 어떤 의미에서는 계속 미완의 작품으로 남아있다고 생각을 한다.





  디자인 작업을 풀어나가는 자신만의 방법   


디자인 작업은 시행착오를 거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흔히 현장용어로 사용되는 ‘데나오시’를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의 작업은 그림을 그리는 것과 같은 과정을 겪는다. 바탕이 되는 밑그림은 있지만 색, 질감, 재료 등은 그리면서 변화를 겪는다. 설계의 큰 줄기는 정해져 있지만 나머지는 진행해 나가면서 수정을 되풀이 한다. 그래서 나는 작은 일들을 좋아한다. 변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체로 우리나라에서 진행되는 인테리어디자인 작업이 시간적으로 여유가 없기 때문에 충분한 리서치 과정을 거칠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까운 점이다.

  자신의 작품 중에서 좋아하는 작품과 내놓기 싫은 작품이 있다면?   


나의 인테리어디자인 작업 중 내게 그 의미가 남다른 특별한 작품이 2개 있다. 이영희 한국의상점과 Barba가 그것인데, 이영희 매장은 내게 공간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가져다 준 작품이었고, Barba는 내가 의도했던 변화가 일반 대중에게 영향을 준 경우였다. 둘 다 일반적인 상식을 깨는 무언가가 존재했고, 이것은 내가 그림을 그렸던 경험에서 나올 수 있었 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두 공간 모두 영업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에 의해 처음의 나의 의도와는 다르게 바뀌어져 갔고, 그렇게 다른 사람에 의해 나의 디자인이 변질될 때 디자이너는 서글픔을 느낀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So Gallery’로서 내 공간이었고, 내가 계속 직접 손 대고 꾸밀 수 있었기 때문이다. 디자이너로서 내놓기 싫거나 부끄러운 작품은 없다. 다 잘 했기 때문이 아니라 작품 하나하나가 나를 나타내는 수단이었고, 또다른 나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 다. 물론 작업 도중 클라이언트와의 관계라든가 사람들하고의 마찰이 있어서 애를 먹은 경우는 많지만 작품 자체로서는 모두 다 애정을 가지고 있다.







  디자인 카피에 대한 의견과 본인의 예를 든다면?   


디자인이란 그 시대의 정치, 종교, 사회상이 반영된 문화의 한 단상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그러한 문화는 없이 디자 인만 외부에서 유입되었기 때문에 당연히 COPY가 있을 수밖에 없다. 어느 나라든 COPY는 존재하는 것이고, 유명한 디자 이너도 자기의 것을 찾기 위해서 COPY의 과정을 거친다. 자기가 너무나 좋아하는 디자이너처럼 되기 위하여 그 사람의 작품을 모방하는 것은 언젠가 자기 자신의 디자인이 나오기 위한 과정이다. 하지만 그냥 아무런 생각없이 잡지를 보다가, 또 책을 넘기다가 그냥 베끼면 괜찮겠다 싶어서 무조건 베끼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단순하게 베끼기 위한 COPY는 곤란하다. 나의 경우도 이전에 필립 스탁을 좋아했기 때문에 스탁의 작품을 COPY 한 적이 있다. 또 누구 것인지 모르는 작품을 COPY 한 적도 있다.

  디자이너로서 자신에게 부족한 점을 꼽는다면?   


디자이너로서 비즈니스 마인드가 결여되어 있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돈 계산을 전혀 못한다는 점. 이것 은 우리나라의 사회구조적인 문제와도 관계가 있고, 내가 순수미술을 전공했다는 사실과도 관계가 있다. 나는 화가란 세상 과 담 쌓고 은둔하면서 그냥 그림만 그리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 때의 사고방식이 지금도 나를 지배하고 있는 것 같다.

  현재 좋아하는 디자이너는 누구인가?   


예전에는 필립 스탁을 좋아했지만 지금은 신예 디자이너들이 너무 많아서 한 두명만을 얘기할 수가 없다. 요즘은 디자이 너의 춘추전국시대인 것 같다.얼마 전에는 네델란드의 DROOG DESIGN에 관심이 많았고, 최근에는 잉고 마우러의 CD ROM을 보고 있다. 또 레고의 ‘TECHNICS’ 시리즈에 푹 빠져있다. 이 시리즈는 너무나 놀랍고, 신나고, 재미있다.







  21세기의 디자이너로서의 자화상   


요즘은 하루에 6시간씩 컴퓨터 앞에 앉아있다. 또 사무실에서 LP를 들으며 행복해하고 있다. 사실 나는 컴맹이었기 때문 에 컴퓨터가 보기도 싫고 무서웠지만 또 다른 변화를 위해서는 필요하다는 생각에 컴퓨터에 매달렸고, 지금은 무척이나 재미를 느끼고 있다. 외부의 것을 받아들이는 데 누구나 어려움을 느끼지만 극복해야 한다. 책에서 보거나 남들이 떠드는 얘기 때문에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라 생활을 하면서 느껴야 한다. 내가 변함으로써 세상이 변하는 것이지, 세상의 변화에 따라 내가 따라서 변화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2000년은 단순히 숫자의 변화일 수도 있지만 내 스스로 변화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영희 한국의 상점 이후 한동안 한국성에 대한 고민과 함께 그 해결방안을 찾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이제는 인위적으로 일부러 찾으려 하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나’라는 개체를 통해 사람들이 세상을 인식할 수 있는 안테나가 되고 싶고, ‘나의 공간’에 대해 새로움의 인식을 가지고 접근했으면 좋겠다.



  앞으로의 계획   


내가 디자인을 잘 한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항상 부족함을 느끼다 보니까 다음에 더 잘 할 것을 다짐하곤 한다. 디자인은 나를 보여주는 작업이기 때문에 남과는 다른 디자인 환경을 설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10년 이상 이 일을 하다보니까 목표도 생기도, 생각도 확장되고, 뭔가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지금 나의 관심은 현재의 나의 위치보다는 앞으로 오랫동 안, 백발이 되어서도 현역에서 디자인 작업을 할 수 있을까하는 것이다. 백발이 성성해서도 디자인을 하고 있을 때 그때 진정한 디자이너라고 이야기 할 수 있을 것 같다. 앞으로 새로운 것을 제시할 수 있는 여건의 디자인 작업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후배들에게 해 주고 싶은 이야기   


디자이너다운 삶을 살 것을 말하고 싶다. 사회에 대한 인식이라든가, 문화라는 관점에서 보다 ‘큰’ 것을 볼 수 있기를 기대 한다.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생활 자체가 디자이너답다면 일로도 반드시 나타나게 된다. 그것이 솔직한 결과이다. 디자인의 시작은 개인적인 문제이지만 결국은 사회적으로 커다란 영향을 끼치게 된다. 교육도 물론 중요 하지만 진정으로 디자인을 미치도록 좋아하느냐에 대한 자기 성찰이 있어야 한다. 성적에 맞춰서, 전망이 좋다고 하기 때문에 디자인을 선택해서는 안된다. 또한 학교에서는 가장 기본적인 것과, 가장 진보적이고 전위적인 것을 동시에 학생들 에게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지금 대학의 교육 시스템은 작은 것밖에 볼 수 없도록 강요하고 있기 때문에 더 큰 발전을 위해서는 가르치는 사람들부터 변화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는 디자이너들이 서로 인정하고 북돋아줘야 발전을 이룰 수 있다. 도시의 라이프 스타일은 그 도시를 이루고 있는 건축, 인테리어디자인에 의해 달라질 수 있다. 디자이너들 은 이러한 면에 책임감을 느껴야 할 것이다. 많은 디자이너들이 변화를 두려워하고,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디자 이너는 세상의 변화와 새로움에 대해 적응하고, 체험하고, 포용하여야 하며, 그 속에서 자기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






 

 

협력교육기관

  

출처 : 인테리어뱅크차태현인테리어이야기
글쓴이 : 차태현 원글보기
메모 :

 

논현동에 위치한 홍진경의 신혼집은 화이트톤의 모던한 인테리어로 거실과 부엌, 그리고 드레스룸
으로 구성된 1층과 은밀한 침실로만 꾸며진 2층으로 나뉘어져 있다. 홍진경의 스타일룸은 그녀의
방과 남편의 방으로 분리되어 있는데, 수트와 셔츠, 그리고 팬츠로 구분해놓은 남편의 드레스룸과
는 달리, 홍진경의 드레스룸은 한쪽 벽면만을 이용한 알뜰한 수납 형태를 보여준다. 맨 위 칸에는

모자, 중앙에는 즐겨 입는 티셔츠 종류와 데님 팬츠류를 구분해 수납했고, 서랍장의 끝부분엔 핸드
백을 수납하는 공간과 즐겨 신는 신발만 모아놓은 신발장이 놓여 있다.


한 가지 독특한 방법은 백들의 부피감을 줄여 납작하게 만든 다음, 스포티한 백과 이브닝백, 그리고
늘 들고 다니는 백 등으로 구별해 수납했다는 것. “제 수납 요령은 최소한으로 간소화시키는 거예
요. 그래서 상의 옷걸이도 세탁소에서 사용하는 아주 가는 철제 옷걸이만 쓰죠.” 특이한 점은 그녀
의 노출된 신발장 안에서는 하이힐을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는 것. “자주 신는 신발과 그렇지 않은
신발을 분류해 자주 신는 운동화류는 바깥에, 손이 안 가는 힐 종류는 보이지 않는 수납장 속에 따
로 보관하기 때문이죠.” 옷의 경우도 마찬가지. 즐겨 입는 옷은 이 벽면 수납장에 두고, 그렇지 않은
것은 보이지 않는 장롱 속에 넣어둔 채 시즌이 바뀔 때마다 정기적으로 교체한다. 액세서리의 경우
에도 선글라스와 팔찌, 귀고리 등을 넣는 서랍장과 메이크업 제품을 넣는 서랍장을 따로 두었다.
“효율적으로 공간을 활용하기 위해 연구한 결과, 이런 수납 형태가 되더라구요.”


출처:헤어&메이크업 / 미유

그녀와 함께 쇼핑 중, 프라모델(조립식 장난감) 매장을 보자

갑자기 옛날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어릴적 유달리 좋아했던 프라모델...

일단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저거 하나 살까?"

그러자 그녀가 대답했다.

"그래? 그럼 한번 보자!"

그녀의 첫 번째 배려였다.

매장 안에서 이것 저것 고르다,

마치 어린애처럼 그녀에게 의견을 물어 보았다.

"어떤 것이 괜찮을까?"

그러자 그녀가 대답했다.

"이게 더 멋진 것 같은데! 그리고 이건 30% 세일도 하네!"

그녀의 두 번째 배려였다.

계산을 하고 나와서 프라모델 상자를 열어보니

십자 도라이버가 필요했다.

"십자 도라이버도 사야하는데...여긴 철물점 같은 곳이 없네..."

그러자 그녀가 대답했다.

"이 근처에 내가 아는 철물점 있는데 거기서 사면 될거야!"

그녀의 세 번째 배려였다.

그 당시 정말 그녀는 단 한번도 내게 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장난감? 너 나이가 몇살이니!"

"대충 사고 얼른 가자! 난 이런 것 잘 몰라!"

"십자 도라이버는 너희 동네가서 사!"

그녀는 그렇게 나를 이해해주었고, 배려해주었던 것이다.

대개,

"유치하다."

"수준 이하다."

"참 독특하네!"라며 자신의 기준에서 상대방의 취미나 기호를 무시하곤 한다.

그것에 어떤 추억이 담겨있는지 먼저 헤아리기 보단(나의 경우 프라모델을 보자 과거의 추억이 떠올라 그 추억을 다시 한번 느껴보고 싶어서 그것을 샀다.)

자신의 의견부터 배설하고 본다.

하지만 그녀는 세번이나 나를 배려하며,

나 자신을 존중해 주었던 것이다.

그렇게

상대방을 존중해 주면서,

자신을 사랑스러운 여자로 만들어 나갔던 것이다.


"남자는 유치하다. 그래서 여자에게는 남자의 유치함을 이해해줄 수 있는 배려심이 필요하다."
출처 : 쿨카사노바
글쓴이 : kool 원글보기
메모 :


담배모양을 한 차 티백!
출처 : 이색적인 디자인의 제품들!
글쓴이 : 스마일 원글보기
메모 :
“어느 땐 엄마도 마녀… 아이들에게 통쾌함 주고 싶었다”
[조선일보   2007-04-21 07:27:34] 
볼로냐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 박연철

작가 박연철(37)은 한국 그림책 분야에 혜성처럼 등장했다. ‘어처구니 이야기’(비룡소)로 ‘2005황금도깨비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한 그는, 이번엔 두 번째 그림책 ‘망태할아버지가 온다’로 2007년 볼로냐국제어린이도서전이 선정하는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 80인’ 명단에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

경력이 독특하다. 치기공과를 전공했지만 그림을 그리고 싶어 영국 킹스턴 대학이 운영하는 사이버대학에서 일러스트레이션(API) 과정을 2년간 공부했다. ‘망태 할아버지가 온다’는 이 대학 졸업작품으로 준비한 것이다. “한국은 물론 전세계 아이들에게 유령 캐스퍼 같은 친근한 존재로 우리의 망태 할아버지를 소개하고 싶었다”는 그를 도서전(4월24~27일) 참가를 위해 볼로냐로 떠나기 사흘 전에 만나 인터뷰했다.

―첫 작품 ‘어처구니 이야기’나 이번 ‘망태 할아버지가 온다’ 모두 옛이야기 구조에 바탕을 두었다.

“나는 옛 이야기가 좋다. 단순하고 반복적인 구조에 선악이 명쾌해서 좋다. 그 속에 숨은 다층적 의미를 파악해가는 것도 재미있고.”

―논란의 여지가 있는 ‘문제작’이다.

“졸업 작품으로 이걸 심사하던 영국 교수가 엄마를 잡아가는 대목은 안된다고 결사반대했다. 아이를 집에 혼자 있게 해도 아동학대로 처벌받는 자기네 문화 때문이었을까?(웃음) 그래도 고집을 꺾지 않았다. 어린이 책은 반드시 안전한 결말로 가야 하는 걸까?”

―엄마들이 괘씸하다고 책을 안사면 어쩔텐가.

“건강한 엄마라면 자신의 두 가지 모습을 있는 그대로 유쾌하게 받아들일 거라고 믿는다. 왜 엄마는 늘 천사로, 구세주로 묘사돼야 하는가. 엄마가 너무너무 미울 때 아이들이 죄책감을 느끼는 대신 이 그림책을 읽고 히죽 웃으며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고 싶었다.”

―그림도 아이들이 보기엔 칙칙하고 뾰족뾰족하다.

“내 37년 인생이 좀 뾰족뾰족하다.(웃음) 원색을 좋아하지만 내가 A형이라 소심해서 그런지 잘 쓰지 못한다. 무채색을 쓰면 마음이 안정된다.”

―혜성처럼 등장했다.

“그렇지 않다. 황금도깨비상 받기 전까지 8년 동안 학습지 그림도 그리고 전집 일도 했다. 그림이 전공이 아니라는 콤플렉스를 극복하는 게 가장 힘들었다.”

[글=김윤덕 기자]

[사진=정경렬 기자 krch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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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단계는 여권발급부터 시작을 해볼까요~? 물론 여권이라는것은 해외로 가기위해서 필로 발급 구비를 해야하는것입니다. (무조건 하셔야하는것입니다.-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ㅋ-)

 

여권은 각 도시에 있는 시청이나 도청에서 발급받을수 있습니다.

 

그럼 여권을 발급하기 위해선  구비서류가 무엇이 필요한지 알아보겟습니다.


◎ 여권(Passport)이란?
해외여행중에 여행자 신분보호를 의뢰하는 문서, 해외에서 유일하게 자신의 신분을 국제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신분증. (여권법에 의해 국외여행을 하고자 하는 국민은 발급된 여권를 소지 하여야 출국 할 수 있다. 국외 체류하는 동안 반드시 휴대 하여야 한다.)
 
◎ 여권의 종류
1. 일반여권 : 통상적으로 해외여행시 일반인이 사용하는 여권입니다
    1) 복수여권 : 여권발급일부터 여권만료일까지 횟수에 상관없이 국외 여행할 수 있는 여권
                       (10년 이내의 유효기간 부여. 단, 만 18세 미만자, 병역미필자 또는 만 18세 이상의 희망자
                       에 대하여는 유효기간 5년 이내의 여권 발급)
    2) 단수여권 : 1회에 한하여 국외여행할 수 있는 여권(유효기간-1년)
                      ※ 여권 재발급시 사용한 단수여권이라도 유효기간이 남아 있으면 반납해야 함
2. 관용여권 : 여행목적과 신분에 비추어 외교 통상부장관이 특히, 관용여권의 발급에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자에게 발급하는 여권 (관용여권, 거주여권(이민)은 외교통상부 여권과에 신청해야한다)
3. 해외이주(이민)여권 : 해외이주 허가서 또는 영주 허가서 및 이민 사증, 이에 갈음하는 최장기 체류 허가
                                 증명서 중 택일, 국세 혹은 지방세 납세필증이 있는 사람만이 발급 받을수 있다.

여권발급은 여권과 자체업무 이외에도 병무업무, 주민등록업무, 경찰업무(신원조회)등이 상호 관련되어 있다.

우리 국민이 해당 여권발급기관에 여권발급을 신청하면 전산확인을 통해 신원조회를 거친후 통상 7일 이후에 여권을 발급 받을 수 있다.(※ 발급기관별로 차이가 있으니 자세한 사항은 551-0211~5으로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단, 신원조사가 「미회보」로 분류된 경우 다소 시일이 소요될 수 있으나, 특별한 사정이 없는한 30일이내에 신원조회가 처리되도록 규정되어 되도록 빠른 시일내 여권을 발 급 받을 수 있도록 편의를 도모하고 있다.

신청서 작성 →신청서접수(민원실)→신원조회확인→경찰청(민원실)→조회회보 →여권서류 심사→여권제작→여권 교부
 
◎ 여권발급 수수료
종 류
유효기간
수수료
대 상
복수여권
10년
55,000원
ㆍ만 18세 이상 희망자
5년
47,000원
ㆍ만 18세 이상 희망자
ㆍ만 8세 이상 ~ 만18세 미만자
15,000원
ㆍ만 8세 미만자
ㆍ기간연장 재발급 해당자
 
5년 미만
15,000원
ㆍ국외여행허가대상자
ㆍ잔여 유효기간부여 재발급
단수여권
1년
20,000원
ㆍ1회 여행만 가능
기재사항변경
5,000원
ㆍ동반 자녀 분리
ㆍ사증란 추가(1회)
 

구비서류 (공통)
1. 여권발급신청서 1부 (소정양식 민원여권과 비치)
2. 여권용 칼라사진2매 (여권사진 전사 스캔용 1매 포함)
3. 신분증(주민등록증,운전면허증,공무원증, 군인신분증)
   - 대리신청시는 본인의 위임장(여권발급신청서 뒷면에 있음)과 신분증 및 그 사본, 대리인의 신분증을
     제시
   - 개명, 생년월일 정정이 있는 경우에는 호적등본 제출
   - 유효기간 : 호적등본 3개월, 인감증명서 3개월
4. 구여권(유효기간 남아있는 여권은 지참-단수포함)
   ※ 신청서에 기입한 서명은 여권에 그대로 전사되므로 반드시 본인이 하여야 함
       (여권명의인, 단, 미성년자의 경우 법정대리인이 여권명의인 이름으로 대리서명)
  ※ 남자 만30세 이하인 경우 주민등록초본 1통 (병역관계서류 입증)

◎ 병역관계서류
연     령
대     상
사      항
18세 ~ 30세
병역필자
  행정전산망으로 조회확인(확인불가할 경우 병적증명서)
병역미필자
  관할병무청의 국외여행 허가서
병역면제자
  국외여행신고 및 허가불필요. 다만 병역사항 전산조회 불가시는   병적증명서

미성년자(만18세미만)
1. 여권발급신청서 1부
2. 여권용 칼라사진2매
3. 부 또는 모의 여권발급동의서 및 동의인의 인감증명서 각 1부( 부 또는 모가 신청시에는 면제)
   - 부모 이혼시 호적상 친권자, 부로 사망 또는 친권자 연락두절시 좁주, 조모, 기타 법정대리인의 순으로
       동의 가능(증빙서류 - 호적등본, 행방불명신고서, 가출신고서, 출입국사실증명서)
   - 친권자가 국외에 체류하는 경우 재외공관에서 영사확인을 받은 여권발급동의서(인감증명 불필요)
7. 남자가 만17세 되는해 7월 1일 이후 신청할 경우 - 부 또는 모 인감날인된 귀국보증서
                                                                     - 부 또는 모 인감증명서 첨부


병역미필자 (만18세되는해의 1월1일-만30세 12월31일까지)
1. 여권발급신청서 1부
2. 여권용 칼라사진2매
3. 신분증
4. 국외여행허가서 1통 (관할 병무청장 발급)
   - 국외여행허가서 문의전화 : 병무청 ☏ 02) 551-0950

※ 국외여행허가 기간 - 6개월 미만 : 단수여권 발급
                              - 6개월 이상 1년 미만 : 1년 복수여권 발급
                              - 1년 이상 : 허가기간까지 유효기간 부여(5년이내)한 복수여권 발급


현역군인 (사병, 장교 포함)
1. 여권발급신청서 1부
2. 여권용 칼라사진2매 (군복 착용 사진 불가)
3. 신분증 - 대리신청시 : 사본추가
4. 군인 신분증 또는 복무확인서 (미제출시 신원조사)
5. 국외여행 허가서 1부(허가권자인 소속 부대장 발행)


2개월이내 전역예정자
1. 여권발급신청서 1부
2. 여권용 칼라사진2매
3. 신분증 - 대리신청시 : 사본추가
4. 전역예정 증명서 또는 복무확인서(전역예정일 명시)


대체의무복무종사자
1. 여권발급신청서 1부
2. 여권용 칼라사진2매
3. 신분증 - 대리신청시 : 사본추가
4. 국외여행허가서(병무청 발행)
5. 복수여권발급추천서(해당 업체장 발행 - 전문연구요원, 산업기능요원에 한함)

※ 대체의무 종사자 : 공익근무요원, 전문연구요원, 산업기능요원, 공중보건의, 국제협력의사,
                             징병전담의사, 공익 법무관 등


공무원(신원조회 면제)
1. 여권발급신청서 1부
2. 여권용 칼라사진2매
3. 공무원증 원본
4. 재직증명서 1통

※ 일반인과 같이 신청하셔도 되나 공무원증 첨부시 신원조회가 면제되어 여권 발급시 소요되는 시간이
    빠르게 처리될 수 있습니다.


기간연장재발급

여권의 유효기간은 사진부착식 일반 복수 여권의 경우 유효기간이 5년 연장되며, 연장 한 적이 없고 여권의 만료기간 기준으로 전, 후 1년 이냉 연장이 가능하다.(단, 사진전사방식의 여권은 연장제도가 없어진다.)
1년이상 남았을 경우와 단수여권은 연장이 불가하며, 구비서류는 다음과 같다.
1. 여권발급신청서 1부
2. 여권용 칼라사진2매
3. 연장 가능한 여권
4. 신분증(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 공무원증, 유효한 여권, 유효한 선원수첩, 복지카드)
5. 병역관계서류(병역의무자에 한함)
6. 미성년자의 경우 : 부 또는 모 의 여권발급동의서 및 인감증명서 (대리신청시)
   - 부모가 직접 신청시 제외
   - 주민등록상 부모와 같이 되어있지 않을시 호적등본 제출
7. 수수료 : 15,000원


동반자녀분리
1. 여권기재사항변경등 신청서 1부
2. 동반자녀 병기된 부 또는 모의 여권 및 여권사본 1부
3. 대리신청시 대리신청인의 신분증
5. 수수료: 5,000원

※ 분리된 자녀의 여권이 필요할 경우에는 신규발급 받아야 함.

여권 사증란 추가 (1회에 한함)
1. 여권기재사항변경등 신청서 1부
2. 여권 및 여권사본 1부
3. 대리신청시 대리 신청자의 주민등록증 지참
4. 수수료 : 5,000원


분실 재발급 (대리신고 불가)
1. 여권발급신청서 1부
2. 여권용 칼라사진 2매
3. 신분증
4. 여권 재발급 사유서(단, 여권분실신고 확인서로 대체가능)
5. 수수료


훼손 재발급
1. 여권발급신청서 1부
2. 여권용 칼라사진 2매
3. 훼손여권 및 여권사본 1부
4. 여권 재발급 사유서
5. 수수료


성명 등의 정정 재발급
1. 한글 성명, 주민등록번호 정정 재발급
  - 여권발급신청서 1부
  - 여권용 칼라사진 2매
  - 여권 및 여권사본 1부
  - 성명, 주민등록번호 정정사항이 표시된 호적등본 등 첨부
  - 여권 재발급 사유서 1부


2 . 영문성명 정정 재발급
  - 여권발급신청서 1부
  - 여권용 칼라사진 2매
  - 여권 및 여권사본 1부
  - 여권 재발급 사유서 1부

   ※ 영문성명 정정은 다음과 같은 경우에만 허용됨
      - 여권의 영문성명이 한글성명의 발음과 명백하게 불일치하는 경우
      - 국외에서 여권의 영문성명과 상이한 영문성명을 취업 또는 유학생활 등으로 장기 사용하여
        당해 영문성명을 계속 사용하고자 하는 경우
      - 여권의 영문성이 가족구성원 상호간에 일치하지 않는 경우
      - 여권의 영문성명이 부정적인 의미를 가지는 경우
      - 여권발급 후 출국사실이 없는 경우

◎ 여권 수령시 지참물
1. 본인수령(미성년자 제외) : 신분증 및 접수증
   - 학생증, 임시운전면허증 등은 신분증으로 사용불가
2. 대리인 수령 : 여권명의인과 대리인 모두의 신분증, 접수증
3. 미성년자의 여권수령 : 친권자의 신분증, 친권자임을 증빙하는 서류(주민등록등본, 호적등본,
                                  의료보험증 등), 접수증
※ 참고사항
- 신분증이 없으면 여권을 수령할 수 없습니다.
- 미성년자에게는 여권을 교부하지 않습니다.
- 유효기간 만료 등으로 효력이 상실된 신분증은 신분증으로 인정되지 않습니다.
※ 발급된 여권은 발급일로부터 6개월 이내에 찾아가지 않으면 직권폐기 합니다.
 
◎ 여권발급신청서 작성시 유의사항

1. 여권신청서는 반드시 흑색 펜으로 작성하셔야 합니다.
2. 신청서를 다운받아 작성하실 경우 반드시 칼라프린터를 이용, 앞뒷면을 모두 출력하여야 합니다.
3. 신청서상의 서명은 여권에 그대로 인쇄되므로 반드시 본인(여권명의인)이 붉은선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도록 주의하여 서명하여야 하며 미성년자의 경우에는 본인 또는 법정대리인이 대신 서명할 수 있으며
    서명시 여권명의인 이름으로 하여야 합니다.
   ※ 서명을 대신하는 경우 규정에 따라 처벌을 받으며, 여권명의인도 불이익을 받을 수 있습니다.
4. 신청서를 접거나 훼손하시면 안됩니다.
5. 신청서에 꼭 기재하여야 할 사항
   - 여권발급명의인의 성명(영문, 한글, 한자) 및 주민등록번호
   - 여권발급명의인의 인적사항 : 본적, 호주, 주소, 국내 긴급연락처 등

  발급기관
지방청
주소
전화번호
팩스 번호
종로 구청 서울시 종로구 수송동 146-2 T: (02)731-0610~4 F: (02)731-0659
노원 구청 서울시 노원구 상계6동 701-1 T: (02)950-3750~1 F: (02)950-3755
서초 구청 서울시 서초구 서초2동 1376-3호 T: (02)570-6430~3 F: (02)570-6440
영등포청 서울시 영등포구 당산동 3가 385-1 T: (02)2670-3145~50 F: (02)2670-3595
동대문구청 서울시 동대문구 용두1동 39-9 T: (02)2127-4681 F: (02)2127-5103
강남 구청 서울시 강남구 삼성동 8번지 T: (02)551-0211~5 F: (02)551-0216
구로 구청 서울시 구로구 구로본동 435 T: (02)860-2301 F: (02)864-9595
송파 구청 서울시 송파구 송파동 113-2 T: (02)410-3270~4 F: (02)410-3894
마포 구청 서울시 마포구 성산로 557 T: (02)330-2114  
부산 광역시 부산광역시 연제구 연산5동 1000 T: (051)888-3561~6 F: (051)888-3569
대구광역시 대구광역시 중구 동인동 1가 1번지 T: (053)429-3888 F: (053)425-8272
인천광역시 인천광역시 남동구 구월동 1138 T: (032)440-2470 F: (032)425-2207
광주광역시 광주광역시 동구 계림동 505-900 T: (062)224-2003 F: (062)606-2259
대전광역시 대전광역시 서구 둔산동 1420 T: (042)600-3381~6 F: (042)600-3389
울산광역시 울산광역시 남구 신정1동 646-4 T: (052)272-3000~1 F: (052)260-5252
경기도 경기 수원시 팔달구 우만동 228번지 T: (031)249-4071/8 F: (031)249-4105
경기도 북부 경기도 의정부시 호원동 119번지 T: (031)870-2068 F: (031)870-2079
강원도 강원도 춘천시 봉의동 15 T: (033)254-3001 F: (033)249-4030
강원도(2) 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읍 교학리 134 T: (033)662-3701 F: (033)660-1399
충청북도 충북청주시 상당구 문화동 89 T: (043)220-2254 F: (043)220-5577
충청 남도 대전광역시 중구 선화동 287 T: (042)251-2253 F: (042)251-2560
전라북도 전북 전주시 완산구 중앙동 4가 1번지 T: (063)280-2253 F: (063)286-2928
전라 남도 광주 광역시 동구 광산동 13번지 T: (062)232-9129 F: (062)222-0275
경상 북도 대구광역시 북구 산격동 1443-5 T: (053)950-2253 F: (053)957-3126
경상남도 경남 창원시 사림동 1번지 T: (055)279-2252 F: (055)279-2259
제주도 제주도 제주시 연동 312-1 T: (064)746-3000 F: (064)740-1616

-출처 : [직접 서술] 블로그 집필 - <호주 유학/워킹홀리데이가기>

 

 

 

지금 내 마음은 부재중입니다


차디찬 바람이 일고
파아란 바다의 새하얀 파도가 거품 부는
파아란 하늘의 새하얀 구름같은
초록빛 내 마음
지금은 부재중입니다.

 

늘, 언제나
은은한 향기 그윽하게
당신 가슴속으로 베이게 하여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줄 알았던
초록빛 내 마음
지금은 부재중입니다.

 

지쳐가는 삶의 여정 그 위
당신 심장 내 심장 그 맞닿는 중간쯤
그 어디에서 길잃은
그 어디에서 길찾은
초록빛 내 마음
지금은 부재중입니다.

 

햇빛따라색색으로 뿜어내는
능선따라 곱게 타고 오르는 빙꽃
장관이듯
당신 인생의 그렇게 특별한 환희이고 싶은
초록빛 내 마음
지금은 부재중입니다

 

당신 사랑
소풍 간
지금 내 마음은 부재중입니다.
 

출처 : 해피월드
글쓴이 : 해피해피해피 원글보기
메모 :

산을 오르라고 한 까닭은?  
 
 


모든 지혜를 젊은 제자에게 전수하고
죽을 날만을 기다리고 있는 늙은 스승이
어느 날 제자를 불러 말했다.

"저기 저 너머에는 아주 높고 깊은 산이 있단다.
나는 이제 거기서 편히 쉬고 싶으니
짐을 챙겨서 떠나지 않으련?"
제자는 기꺼이 스승을 업고
짐을 진 채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산은 가파르고 너무나 높았기에
올라도 올라도 힘만 들고 끝은 보이지 않았다.
제자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서 스승을
시원한 그늘에 앉혀놓고는 짐을 풀고 쉬었다.

스승이 제자에게 물었다.
"그만 오르고 싶더냐?"
"아닙니다. 잠시 쉴 뿐입니다."
스승은 아무 말 없이 기다려 주었고
제자는 다시 스승을 업고 산을 올랐다.

한참 오르다가 제자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짐은 잠깐 내려놓고 스승만 업고 가겠노라고 했다.
하지만 한참 스승을 업고 가던 제자는 다시
"스승님. 제가 나중에 모시러 올 터이니
제가 산을 다 오를 동안만 기다려 주세요.
먼저 올라가서 집 상태를 보고 모시러 오겠습니다."
스승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내려온 제자에게
어찌하여 벌써 내려왔냐고 스승이 묻자
"산이 너무 높아 도저히 정상을 보지 못하고
내려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그 말에 스승은 들고 있던 지팡이로
제자를 힘껏 내리치며 호통을 쳤다.

 

"이런 어리석은 놈! 산을 오르며 너는 어찌하여
아무 것도 얻지 못했더란 말이냐?


중간에 하나둘 포기하더니
이제는 네 자신마저 포기하고
너에게 남은 것이 무엇이란 말이냐!"

제자는 그제야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힘을 내어 스승을 업고 산 정상에 도달했다.

 


- 솔 바 람 -
 

 


자기가 먼저 연락하기를 꺼려하는 남자.

에게 쓰는 인색한 남자.

나의 과거에 집착하는 남자.

내 사랑을 시험해 보려는 남자.


쓸데없이 거만한 남자.

자기 기분에 따라 행동하는 남자.

자신의 쾌락만을 위하고,

여자소중히 하지 않는 남자.

한번도 사랑 때문에 아파 보지 않은 남자.

사랑에 대해 환상만을 가지고,

현실직시를 못 하는 남자.


쉽게 불 붙고 쉽게 식는 남자.

밀고 당기기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는 남자.

여자를 애태우려고 애쓰는 남자.

나를 자기 기준에 끼워 맞추려는 남자.

사랑하면서도 떠나가려는 여자를 잡지 않는 남자.

쉽게 다른 여자한테 한눈파는 남자.

맺고 끊음이 확실하지 못한 남자.


-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

 

                                                                                      출처: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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