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넬 (CHANEL) 진품과 이미 차이점

 

 

세탁  http://www.topclean114.co.kr/index.php

 

 

 

진품확인 http://blog.naver.com/whyhow90?Redirect=Log&logNo=80118726165

 

[ OST ] 정글은 언제나 하레와 구우(ジャングルはいつもハレのちグゥ)

 

こいせよ 少年少女(しょうねんしょうじょ)たち
코이세요 쇼-넨쇼-죠다찌
사랑하라 소년소녀들이여

 

きらい (ひとみ)に☆(ほし)いれて
키라이 히또미니호시이레떼
반짝하고 눈동자에 별을 담아

 

生(う)まれたまんまの 情熱(ジョネツ)が
우마레타만마노 죠-레쯔가
태어난 그대로의 정열이

 

火花(ひばな)ちらす Jungle ハレのちグゥ
히바나찌라스 Jungle 하레노찌구-
불꽃튀기는 정글 하레와 구우

 

めくるめく こしつき ム-チョ
메꾸루메꾸 꼬시쯔키 무-쵸
현란한 몸짓 ancy

 

子供(こども)にゃきわどい アミ-ゴ
코도모냐키와도이 아미-고
아이들에겐 아슬아슬하기만 한 아미고

 

キスしたら 吸(す)いこまれそう
키스시따라 스이코마레소오
키스했다간 빨려들어갈것만같아

 

こわいもの 見(み)たさ Tonight
코와이모노 미따사 Tonight
무서운걸 봤는걸 오늘밤

 

おじ氣(け)づいたらら ダメ
오지케즈이따라 다메
겁먹으면 안돼

 

押(お)して 押(お)されて Going
오시떼 오사레떼 Going
밀거니 당기거니 Going

 

ドッキリ 氣分(きぶん)が い-ね
돗키리 키분가 이이네
무작정 기분좋은걸

 

ちゃっかり 朝(あさ)まで Dancing
챳카리 아사마데 Dancing
꼬박 아침까지 Dancing

 

LOVE LOVE LOVE トロビカ-ナ
LOVE LOVE LOVE 토로비카-나

 

ヤシの木陰(こかげ)で つかまえて
야시노코까게데 츠카마에떼
야자나무 그늘에서 붙잡고서

 

じらして とことんとことん
지라시떼 토꼬톤토코톤
속 다 태워먹곤 기어코 마지막까지

 

ごめんね あなたはもう虜(とりこ)
고멘네 아나따와모우토리꼬
미안해요 그대도 이미 노예

 

逃(に)げられない Jungle ハレのちグゥ
니케라레나이 Jungle 하레노찌구-
도망갈 수 없는 정글 하레와 구우

 

(こい)せよ 少年少女(しょうねんしょうじょ)たち
코이세요 쇼-넨쇼-죠다찌
사랑하라 소년소녀들이여

 

きらい 瞳(ひとみ)に☆(ほし)いれて
키라이 히또미니호시이레떼
반짝하고 눈동자에 별을 담고서

 

生(う)まれたまんまの 情熱(ジョネツ)が
우마레타만마노 죠-레쯔가
태어날적 그대로의 정열이

 

火花(ひばな)ちらす Jungleハレのちグゥ
히바나찌라스 Jungle 하레노찌구-
불꽃튀기는 정글 하레와 구우


출처:http://cafe.daum.net/remnantlife

 

 

송시원 제52회 사법시험 합격.연세대 정치외교학과 4년



Ⅰ. 시작하는 글
유난히 긴장 된 일주일이었다. ‘혹시나’하는 기대감을 갖는 것만으로도, 재시로 치러지는 다음 년도 시험에 부정이 될 것이라는 걱정에, 집안에서는 발표에 대한 기대감을 될 수 있는 한, 함구하고 있었다.


발표가 예정된 날, 어김없이 어머니와 아침 밥상에 앉았다. 우리는 아무렇지 않으려고 부단히도 노력했다. 오전에 헌법 강의를 듣고, 간단히 점심식사를 해결한 후, 독서실에 앉아, 그 날 배운 범위를 열어 복습을 시작했다. 처음으로 응시한 2차 시험의 결과가 발표되는 날, 무척이나 긴장하고 있는 내 모습이 퍽이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 평소와 같은 일과 속에서 덤덤히 결과를 받아들이고 싶었으나, 책상 앞의 나는 무척이나 긴장하고 있었다. 2시가 조금 넘어, 어머니께 전화가 왔다. 3시 발표가 예정이었으나, 그보다 이른 시간에 발표하는 것이 통상적이었으므로, 긴장된 마음으로 휴대폰을 들고 조용히 열람실을 나와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그렇게 신림동에서의 22개월간의 사법시험 공부가 마무리되었다.


합격수기를 부탁받았다. 법대생이 아니었기 때문이었고, 수험기간이 짧았기 때문이었다. 합격에 이르는 길은 다양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걸은 길이 반드시 옳은 것이라 할 수 없으며, 각자의 성향과 상황에 맞추어 자신의 길을 만들어 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다만, 이 길이 합격을 준비하고 있는 수험생에게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 수 있도록, 진솔하게 합격수기를 시작하고자 한다.

Ⅱ. 1차 수험 기간

하나. 시작


(2009년 1월~2월)
2009년의 시작을 앞 둔, 어느 추운 겨울, 절친한 친구와 함께 학원에서 상담을 받고자, 신림동을 처음 방문하였다. 사법시험이 주는 위화감으로, 긴장감에 가득 차, 학원 문을 열었다. 상담 결과, 당시 나의 상태는 지독히도 암울했다. 사법시험을 시작할 준비조차 되어 있지 않았다. 유효한 토익 점수가 없었을 뿐더러, 학교를 다니며, 이수한 법학 과목은 두 과목으로 달랑 6학점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아는 것이 적을수록, 용기 있다는 말이 맞는다면, 난 당시 용기로 가득 찬 수험생이었다. 상담의 주된 요지는 겨울방학에 개설되는 ‘민법 특강’을 수강해 보라는 것이었다. 곽낙규 강사의 ‘겨울방학 민법 특강’. 2009년 1월, 본격적인 수험생활이 시작되었다.


민법 실강은 오후 수업이었으므로, 수업 시간인 1시부터 5시까지를 제외하고, 아침 8시부터 저녁 11시까지는 독서실에서 공부를 하였다. 대부분의 수험생이 그러하듯이, 하루는 크게 3토막으로 구분된다. 오전, 오후, 저녁 공부. 세 part 중, 한 part는 보통 학원에서 보내게 되므로,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은 두 part에 지나지 않는다. 하루를 3개의 part로 구분하여 생활하는 것은 나의 수험생활 전반에 걸쳐 생활의 목표이자, 평가의 기준이었다. 겨울방학 당시, 오전 시간에는 예습을, 저녁 시간에는 복습을 진행하였다. 진도가 후반기에 이르러, 오전 시간에도 복습을 해야 했지만, 구분 된 3part를 만족스럽게 보내는 것을 최고 목표로 하여 생활하였다. 겨울방학 특강은 이해하기 난해한 민법 공부에 큰 밑거름이 되었다.


2009년 2월, 51회 사법시험 1차. 학점과 토익점수가 준비되어 있지 않은 터에, 시험장 구경도 하지 못한 채, 서늘한 신림동 2월의 기운을 느끼는데 그쳐야 했다.

둘. 기본강의와 독학사


(2009년 3월 ~ 8월)
사법시험 1차 시험을 처음으로 준비하는 수험생은 누구나 종합반 수강의 득과 실 앞에서 고민하게 되는 듯하다. 종합반 홍보에 열을 올리는 학원과 이를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선배 수험생들의 시선 앞에서, 나 또한 꿰나 긴 시간을 고민했다. 주위에 조언을 구할 수 있는 사법시험 준비생은 2차를 준비하고 있는 고등학교 선배가 유일했다. 선배는 회의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 수업을 모두 듣고 있을 시간이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강사 선택의 재량권을 이유로 고민하는 내게 선배의 조언은 종합반 수강을 단념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진도별 모의고사 기간에 접어들었을 무렵, 선배의 조언은 적확했다는 것을 알았다.


기본강의 기간 동안, 앞서 소개한 3part를 충실히 보내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공부하였다. 법학 이수학점이 준비되지 않았으므로, 다른 수험생들과는 달리, 독학사를 통한 학점 취득 준비를 병행해야 했다. 독학사를 이용해 법학학점 이수를 준비하고자 하는 분들을 위해 간략하게나마, 준비과정을 간략히 소개하고자 한다. 독학사는 한 과목 당 5학점을 배정하여, 60점 이상의 점수를 획득하면, 해당 학점을 부여하는 학위취득 제도이다. 30학점이 필요하였으므로, 6과목을 준비해야 했다. 5월과 8월에 각 3과목씩, 헌법, 민법, 형법을 응시하였다.(과목은 Ⅰ/Ⅱ로 나뉘어 있다.) 신림동 기본강의 일정에 맞추어서는 5월 시험에는 형법과 헌법, 8월 시험에는 헌법 통치구조와 민법 가족법 부분을 대비할 수 없었다. 이에, 오전공부 시간의 조금을 활용하여, 전년도 기본강의를 Tape을 이용해 들었다. 하루에 2개 듣는 것을 목표로 하고, 독학사 진도범위에 한정하여 수강하였다. 독학사 시험 직전에는, EBS 독학사 문제집을 통해, 미처 익히지 못한 부분과 미진한 부분을 정리했다. 4지 선다형 문제에, 60점이라는 커트라인에도 불구하고, 독학사는 꿰나 큰 심리적 스트레스를 주었다. 물론, 당시 독학사를 준비하며,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었던 점과 얇게나마 한 선행학습이 약간의 도움이 되었던 점은 무시할 수 없다.

셋. 진도별 모의고사 기간


(2009년 9월 ~ 12월)
진도별 모의고사 시즌이 다가왔다. 주요한 내용의 이해를 위해 ‘수업’을 들어야 하는 것인지, 다 같이 시험 보는 분위기에 익숙해지기 위해 ‘only모의고사’를 들어야 하는 지, 문제집을 별도로 구하여 혼자서 공부를 해야 하는 지, 다시금 고민이 들었다. 일전에 조언을 구했던 선배는 저번과 같은 이유로 혼자 공부할 것을 추천해왔다. 내심, 학원가서 시험을 보는 것이 얼마나 시간을 빼앗긴다고, 그 마저도 ‘그럴 시간 없다’는 이유로 배제해야 하는 지 의문이었으나, 오롯이 스스로 공부하는 시간을 많이 확보하는 것이 나쁠 것 없다는 생각에 선배의 말에 따랐다.


진도별 모의고사 기간 동안, 생활은 보다 단순해 졌다. 분위기 전환차원에서 독서실을 옮겼는데, 학원들로부터 거리가 있는 독서실을 선택했다. 학원 근처의 독서실이 되레 스트레스를 주는 것 같아 옮긴 것이었는데, 식당과 독서실만 오가는 단순한 동선 덕분에, 수험가가 주는 스트레스로부터 조금은 빗겨서있었던 듯하다.


하루 일과 역시 무척이나 단순했다. 시험은 오후 2시경에 보는 것을 목표로 했다. 정해진 정도의 진도를 ‘기본서’, ‘판례집’, ‘기출문제집’을 보는 것을 기본으로 했다. 점심 식사를 한 후, 기본서를 빠르게 읽고, 2시에 시험을 보았다. 혼자서 하는 만큼, 보다 시간 엄수에 엄격하려 노력했고, OMR카드도 복사하여 실제로 마킹연습도 하였다. 채점 결과를 토대로 가볍게 복습을 했다. 애당초는 2시간 정도로 복습을 하고자 하였지만, 다음 날 진도로 인해 종국에는 틀린 문제 확인정도에 그쳤다. 기본 3법은 모두 ‘기본서+판례집+기출문제집’을 통해 공부하고, 같은 일정으로 시험을 치렀다. 혼자 공부를 하였으므로, 목요일에도 시험을 보았고, 토요일은 밀린 진도의 완충역할 및 1주일 간 점수가 낮은 진도범위의 선택한 강사 이외의 시험지를 구해 푸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다.


사법시험 수험기간 동안 중요하지 않은 기간은 사실 없다. 아침에 눈을 뜬 ‘하루’가 가장 소중한 날이라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 바람직한 수험생의 자세이다. 따라서 진도별 모의고사 기간이 중요하다는 것은 불필요한 수식어에 불과할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기간은 무척이나 중요한 기간이라 표현하고 싶다. 막바지에 이르면, 기본서를 차분히 이해할 수 있는 기회는 없으며, 이 기간에 정리되지 않은 판례집을 시험을 앞두고 빠르게 본다는 것은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 기간이 지니는 중요성에 비해, 몇 가지 점만 유의한다면, 진모 기간을 알차게 보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만은 않다. 첫째, 끈기와 인내심을 필요하다. 모의고사 점수에 일희일비하지 말라는 조언은 사실 수험생에게 공허한 외침이다. 감정이 있는 사람인 이상, 일희일비 할 수밖에 없다. 다만, 낮은 점수 앞에서 참고, 다시 도전하는 끈기가 필요하다. 둘째, 과감할 필요가 있다. 정해진 진도를 하루에 학습하기 위해서는 지나치게 지엽적인 부분은 과감히 넘어갈 필요가 있다. 진도가 밀리게 되면, 시험을 중심으로 계획된 딱 떨어지는 느낌의 하루 일과를 보낼 수 없게 된다. 크게 이 두 가지 점만 유의한다면, 진도별 모의고사 기간을 알차게 보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넷. 52회 사법시험 1차, ‘8-4-2’와 자신감


(2009년 12월 ~ 2010년 2월)
진모기간이 끝나고, 마무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 지 고민이 많았다. 8, 4, 2로 정리하는 것이 수험가의 대세적인 견해였으므로, 이를 따르기로 했다. 그리고 선배는 ‘4’와 ‘2’기간에는 오전, 오후, 저녁으로 나누어, 하루에 기본 3법을 모두 보았다고 했다. 예를 들어, 오전은 형법, 오후는 헌법, 저녁은 민법을 보는 방식으로, 12일·6일 동안 보는 것이다. 선배의 조언에 따라 이 방식으로 마무리 정리를 시작했다. 예상대로 8일 동안 민법을 모두 정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민법은 12일이 걸렸고, 초과한 4일은 정해진 국제법의 일정을 단축하여 진행함으로써, 일정을 조절하였다. ‘8’과 ‘4’기간에는 기본서+판례집+기출문제집을 빠르게 반복하여 보았다. ‘2’기간에는 민법은 판례집으로, 형법과 헌법은 기본서 만으로 정리하였다.


8, 4, 2를 마치고 시험까지는 10일의 기간이 남아, ‘조문’, ‘부속법령’, ‘최신판례’ 등 모자란 부분들을 보충하는 시간으로 보냈다. 이 기간에 조문을 별도로 정리한 것이 실전에서 큰 도움이 되었다. 모의고사는 전 범위 모의고사를 2~3일에 한 번 꼴로 독서실에서 혼자서 치렀는데, 점수에 대한 기대보다는 70분 동안 40문제를 푸는 감을 유지하는 데 주력했다.


진모를 마친 이후, 시험 당일 까지는 자신감과의 싸움이었다. 사실 시험 직전에 이르기까지도 민법 문제집 전 범위 모의고사 성적은 들쑥날쑥했고, 불합격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감이 가득했던 기간이었다. 다양한 방식으로 마음을 차분히 하고자 시도하였다. 이때의 불안감은 좋은 글귀나 운동 따위를 통해 극복되는 문제는 아닌 듯싶다. 불안한 마음을 당돌한 자신감으로 극복하려는 노력을 반복하는 것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시험 전 날, 이제는 시험에 최종 합격한 고등학교 선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선배는 내게 “민법 마지막 종 치는 순간까지 절대 포기하지 마라”는 조언을 해주었고, 2010년 2월 27일 1차 시험 합격의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Ⅲ. 2차 수험 기간

(예상치 못한 생동차 합격이었습니다. 2차 시험 공부 방법에 대해서 글을 쓰는 것이 많은 수험생분들과 합격생분들에게 누가 되는 건 아닌 가 싶어 조심스럽습니다. 2차 준비 기간의 목표와 생활적인 측면을 중심으로 기술하겠습니다.)

하나. 시작


시험을 본 다음 날, 항상 아낌없는 조언으로 힘을 주신 선배와 식사를 하게 되었다. 선배는 동차반을 들을 것을 추천하였다. 법대생이 아니므로 답안작성 연습을 많이 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고, 예비순환에 비해 동차반의 분위기가 좋을 것이며, 7법을 모두 보는 것 역시, 도움이 될 것이라 하였다. 후4법에 대하여 아는 바가 없으므로, 다소 버거울 것이나, 중요한 쟁점을 암기하고, 큰 줄거리를 이해하는 한도에서 수업을 쫓아가다 보면, 동차 합격도 온전히 불가능하지는 않다는 것이었다.


동차합격을 목표로 한 것은 아니었다. 동차반을 듣기로 결심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초시의 기회를 ‘2차 시험장 구경’하는 정도로 낭비하지 말자는 의지의 표현일 뿐이었다. 초시를 통해 달성하고 싶은 목표는 전 과목의 과락을 면하는 것이었다. 1차 시험을 치르고 일주일이 지난 후, 2차 공부가 시작되었다.


1차 점수가 예상 커트라인 점수에 비해 높았음에도, 발표가 나지 않은 상태에서 2차에 온전히 집중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생활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서 나름대로의 원칙을 세웠는데, 이틀에 한 번 있는 시험에 반드시 응시하는 것과, ‘예습-수업-복습’을 절대 거르지 않는 것이었다. 결국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는 목표에 다름 아닐지 모르나, 가시적인 원칙은 1차 직후 수험생활의 부담을 한 결 덜어주었다.

둘. 후 4법


(2010년 3월 ~ 5월)
상법, 민소법, 행정법, 형소법의 순으로 후4법 강의를 수강하였다. 1차 공부할 때와 같이, ‘예습-수업-복습’의 계획으로 시작하였으나, 많은 복습 양과 처음 읽어서는 이해할 수 없는 낯설음으로 인해 예습은 사실상 무의미해졌다. 동차 합격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으므로, 이해에 초점을 두어 공부를 하였고, 모의고사 전날을 이용해 이틀 분량의 내용을 간단히 암기하고, 시험 본 내용을 다시 암기하는 방식을 택했다. 상법을 마친 후, 민소법 기간의 예습 시간을 활용하여, 상법 수업시간에 다룬 모의고사 문제의 논점과 주요 개념들을 다시 암기하였다. 행정법 기간에는 민소법, 형소법 기간에는 행정법, 형법 기간에는 형소법의 모의고사 문제들을 정리하였다. 모의고사의 주요 논점들이 거의 기억이 나지 않았으나, 강사님들이 출제가 유력하게 예상되는 문제로 선정한 것이라 여기고, 그 문제들이라도 철저히 이해하고 암기하려 노력했다.


상법은 강사의 명쾌한 설명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양이 문제였다. 다행히도 맨 처음 상법부터 공부를 시작한 터에, 개념어 중심으로 정리한 노트를 만들 수 있었다. 시험을 앞두고는 이 한권 반 정도 되는 노트를 빠르게 읽으며 암기를 했다. 본 시험을 한 달여 앞둔 5월 말 경, 학원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김혁붕 강사님의 회사법 1일 Remind 특강을 인터넷 강의로 수강하였다. 밤 11시부터 강의를 들어야 했으므로, 하루치 강의를 일주일 정도로 나누어 들었다. 늦은 밤 무리해가며 강행군을 한 것이, 회사법 비중이 큰 상법에 자신감을 갖게 해준 도움을 주지 않았나 싶다.


민사소송법은 내용 자체의 난해함으로 초시 공부 가운데, 가장 힘들었던 과목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해가 잘 되지 않아 노트를 통해 정리하는 것은 진작, 포기했다. 사례집을 암기하여 시험장에 갈 요양이었으나, 내용이 정리되지 않은 채로 무작정 외우는 것은 되레, 과목 자체에 대해 두려움마저 생기게 하였다. 민소법은 이해되는 한도에서 암기를 했고, 종국에는 시험으로 치룬 모의고사와 3순환 문제를 구하여, 문제의 개념을 통으로 외우려 했다. 결국 시험장에서 가장 쓴 맛을 본 과목이 되었고, 2차 시험이 끝나고 1순환 기간 가장 긴장된 채로 수업을 들었다.


행정법은 1차 헌법 공부할 때 답답했던 구석이 시원해지는 느낌을 주어, 시작은 상쾌했으나, 국가배상법과 행정구제법, 행정법 각론이 지나치게 짧은 시간 안에 진도를 나가게 되어, 답답하고, 찜찜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아마 그 느낌은 시험장에 들어섰을 때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교수의 기본서를 정독하는 것은 포기하고, 시중의 요약서를 중심으로 암기를 했다. 행정법은 사례의 개요 구성하는 연습을 다른 과목에 비해 많이 하였고, 강사가 예상한 출제 유력한 판례와 논점들이 시험에 적중한 덕을 많이 보았다.


형사소송법은 2차 과목들 가운데, 이해하기는 가장 수월한 과목이 아닌가 생각한다. 형소법 수업을 들을 즈음에는 이미 시험이 머지않았으므로, 노트를 별도로 정리할 엄두를 내지 못하였고, 강사가 제공해주신 Keyword중심으로 정리한 단문집을 활용했다. 재판과 상소부분이 명쾌하지는 않았지만, 수사법, 증거법을 집중적으로 암기하려 했다. 소송법은 그 특성상, 문제되는 제도와 논점을 소송 전체 과정 속에서 이해하는 것이 효율성과 정확성을 동시에 도모할 수 있는 방식이라 생각한다.


셋. 기본 3법


(2010년 5월 ~ 6월)
동차생들에게 기본3법이 상대적으로 유리하다고 하지만, 이것은 수험장에서 유효한 분석이지, 수험기간에서는 크게 도움을 본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이미 4개의 법을 공부하면서, 기본 3법의 세밀한 부분의 판례와 개념들은 희미해져있고, 짧은 기간 동안 그 기억을 되살리는 것은 무리다. 사례집 풀이를 통해서 문제 풀이에 대한 감을 익히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


형법과 헌법은 작은 크기의 노트에, 사례 풀이 시 자주 활용되는 목차, 개념, 학설, 판례를 단어 또는 짧은 문장으로 옮겨 적었다. 1차 지식을 활용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내용들을 적어 두었다. 사례를 통해 올바른 논점을 추출하기만 한다면, 노트에 적힌 내용으로 답안지를 채울 생각이었다. 작은 크기의 노트는 식사, 이동, 화장실 등에서 반복해서 보며, 암기했다. 시험 직전에 형법과 헌법 사례집을 모두 검토하는 것은 무리였으므로, 동차반 모의고사 문제와 형법의 경우는 2순환 문제를 구해, 사례 풀이 구조를 반복하여 연습했다.


민법은 법 자체가 지니는 내용의 방대함과 심오함으로, 1차와 마찬가지의 어려움을 겪었다. 동차반에서 민법 과목의 모의고사는 답안지를 작성하는 것조차도 힘들었고, 실제 점수도 그에 걸맞게 낮은 점수가 반복하여 나왔다. 노트를 만들 엄두를 내지 못하고, 핸드북으로 내용 정리 및 암기를 했고, 사례집을 통해 문제 풀이 연습을 했다. 시험장에서 받아 든 문제가 반복적으로 외웠던 모의고사 문제와는 그 방향이 일치 하지 않아, 적지 않아 당황했고, 1차 공부에서 알고 있는 지식으로 답안지를 메우고 나왔다


Ⅳ. 합격을 꿈꾸는 우리는,


합격으로 가는 길은 정해져 있지 않다. 규칙을 준수하며, 공정한 경쟁을 치르는 가운데, 수 가지의 길을 통해 합격에 이른다. 내가 걸었던 길이 반드시 옳은 길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많은 합격하신 선배님들과 동료 분들에게는 송구스럽고, 너무도 크게 찾아온 행운에 더럭 겁이 나기도 한다. 그만큼 운의 도움을 크게 본 수험생활이었다. 그렇다 하여, 이 모든 것을 운으로 돌리는 것은 나와 같은 길을 꿈꾸는 이들에게 무의미한 시간낭비이므로, 수험생활을 통해 합격을 꿈꾸는 우리가 준비해야 하는 몇 가지를 조심스럽게 적어본다.


첫째, ‘건강관리는 필수적’이다. 수험생활을 핑계로 살이 불어 오르는 것을 방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살이 불어 오르면, 그만큼 자기의 몸을 활동시키기 위해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므로, 졸음이 많아지고, 집중력도 저하된다. 멋진 몸매를 위해 많은 시간을 들이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가급적 과자나 자판기 커피음료를 지양하고, 수면을 충분히 취하며, 하루에 30분이라도 줄넘기 및 체조를 통해 가볍게 땀을 흘려주는 것이 좋다. 공부를 마치고 밤늦게 줄넘기 15분과 윗몸일으키기를 꾸준히 하였는데, 덕분에 수험생활 동안 크게 아프지 않고 지낼 수 있었다. 사법시험은 치열한 자기관리를 필요로 한다.


둘째, ‘힘든 일에 직면’하라. 별게 다 힘들었다. 스터디도 하지 않고, 친구도 하나 없어 외로워서 힘들었다. 하루 종일 앉아있는 것도 힘들었고, 연락 한 통 없는 휴대폰을 쳐다보는 것도 힘들었다. 밥을 혼자 먹는 것도 힘들었다. 졸음은 왜 자꾸 오는지.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는 예상치도 못했던 수 만 가지 힘든 일들이 있었다. 실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대부분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명색이 사법시험인데, 이 정도는 힘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선배님은 힘들다고 투정부리는 내게, “넌 되겠다”고 위로를 해주셨다. 어쩌면 그건 위로가 아닐 지도 모르겠다. 지금 본인이 힘들다면, 그만큼 합격에 한 걸음 가까이 다가간 것이다.


셋째, ‘슬럼프 극복’하기. 공부가 매일 잘 될 수는 없다. 수험 기간 동안 슬럼프는 반드시 찾아온다. 생활이 극도로 단순하면 슬럼프가 찾아올 확률이 낮다고 하지만, 극도로 단순하면 매너리즘에 빠져, 슬럼프가 찾아오기도 하는 것 같다. 찾아 온 슬럼프를 극복하는 것은 개인별로 다양하다. 나의 경우는 더 몰아치듯이 공부를 했다. 코너에 밀어 넣고, 더 다그쳤다. 'stop watch'로 하루 공부시간을 체크하는 것을 선호하지는 않지만, 슬럼프에 빠졌을 때는 stop watch를 이용했다. 물론, 각자의 슬럼프 극복하는 방식을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


마지막으로, 정말 열심히 해야 한다. 수험 생활을 시작하면서, 주위 친구들에게 몇 년 생각하면서 공부를 시작 하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그때마다 붙을 때까지 할 것이라고 웃으며 대답하곤 했다. 사실 시험을 시작하면서부터 ‘포기’에 대한 생각을 했었다. 모든 이들의 인생에 사법시험이 정답이 될 수 없듯이, 시험과 인연이 닿지 않는 다면, 포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포기할 수 없다.’ 진정 사법시험이 나와 인연이 있는지 아닌지를 알기위해서는 최선을 다해야 하고, 모순적으로, 이 시험을 포기하기 위해서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포기한 후에도, 고시경험이 결코 부끄럽지 않는 큰 자산이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후회 없는 수험생활이 되기 위해서 최선의 최선을 다해야 한다.

Ⅴ. 나가는 말과 감사의 말씀
많은 이들에게 도움이 되고, 이 사회에 보탬이 되라는 의미에서 생동차라는 행운이 주어졌다고 생각하고, 더 낮은 곳을 바라보며, 더 넓은 마음으로 살아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시험이 끝난 후, 합격 수기를 작성할 기회를 주신 법률저널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수험생활의 정신적 지주이셨던 존경하는 KH선배님께도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또한 저의 힘든 수험 생활을 함께 해 준 절친한 벗인 MG과 여자친구 JY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전합니다. 마지막으로 그 누구보다 사랑하는 부모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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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천재’ 9세 소년…“벌써 자산 11억원”

[서울신문 나우뉴스]

명석한 두뇌를 가진 수학 영재와 피카소를 연상케 하는 감각의 미술신동에 이어 남다른 사업 수완으로 벌써 10억원 이상 자산가가 된 9세 사업 천재소년이 캐나다에 등장했다.

안정된 투자와 과감한 도전정신으로 '작은 사업가'(Tiny Trump)란 별명을 얻은 주인공은 캐나다 온타리오에 사는 라이언 로스. 또래 초등학생처럼 앳된 외모를 가졌지만 로스는 올해로 사업 6년째를 맞는 어엿한 사업가다.

로스는 3세 때 집에 있는 닭들을 돌보며 얻은 달걀을 교회와 지역장터에 팔면서 처음 돈을 만졌다. 당시 닭들은 하루 48개씩 알을 낳았는데, 이를 모두 팔면 330 캐나다 달러(37만원)이 남았다.

이 돈을 차곡차곡 모은 로스는 아예 다른 서비스 사업을 시작했다. 이웃집 마당의 눈을 치우거나 잔디를 깎아주는 대가로 시간당 20달러(2만 2000원)씩을 받은 것.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 덩치 큰 형들을 고용해 이윤을 남겼다.

2년 간 여러 사업으로 돈을 번 로스는 어머니의 도움을 받아 캐나다 지역 부동산에 투자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5세. 로스는 온타리오와 브리티시컬럼비아에 있는 아파트 6채를 사들여 현재 자산은 100만 달러(11억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로스는 "사업 아이디어는 내가 생각하지만 구체적인 계획은 부모님과 상의한다."면서 "사람들이 나에게 작은 사업가라고 말하면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밝은 성격으로 하키를 즐겨 하는 로스는 학교를 다니지 않고 홈스쿨링을 하고 있다. 프리랜스 메이크업 아티스트인 어머니와 교사인 아버지는 로스의 교육과 사업 등을 전반적으로 도와주고 있다.

경제 관련 강연회에 종종 연사로 초청되는 로스는 "왜 도전을 두려워하는가. 우리가 돈을 버는 것을 방해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자신의 경영 마인드를 설명하기도 했다.

사진=라이언 로스


[원본출처]http://photo.media.daum.net/photogallery/foreign/0803_surprise/view.html?photoid=2795&newsid=20101124112619740&p=seoul

[스페셜리포트] 김화수 잡코리아 대표이사 사장
‘무료’가 돈 되냐구요? 그게 바로 우리의 가치

[ⓒ '글로벌 석간 종합일간지' 아시아투데이]



 


[아시아투데이=홍성율 기자] 극심한 취업난이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가운데 취업 시장에 일대 지각변동을 일으킨 인물이 있다.

온라인 리크루팅 업체 ‘잡코리아’를 이끌고 있는 김화수(40) 대표이사 사장이다.

그는 몇 수 앞을 내다보는 탁월한 안목과 창의적 사고로 업계를 평정하며 일자리 창출에 기여했다.

격식을 버린 끊임없는 소통과 집요한 근성으로 일궈낸 그의 성공 스토리에 대해 들어봤다.

-회사를 설립한 계기는.

“대학교 3학년 때 직업에 대해 고민하다 해외시장 조사를 온라인으로 대행하는 일과 회사가 있다는 걸 발견했다. 고객이 원하는 자료를 찾아 리포팅 해주는 일이었는데 분야에 따라 일하는 패턴이 달라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그 당시는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은 시기라 정보 하나 얻는 데 100달러, 프로젝트 하나에 몇천 달러가 들었다. 무료로 각종 해외 데이터를 공개하는 곳을 찾으려 인터넷에서 법률과 특허, 무역정보 등을 샅샅이 뒤졌다. 그 결과 의외로 많은 정보원이 제공되는 것을 발견하고 혼자 아는 게 아까워 ‘인터넷 정보검색의 마지막 노하우’라는 제목의 책을 냈다.

출판을 계기로 사설 학원에서 일반 기업체를 대상으로 정보기술(IT) 온라인 검색 강의를 했다. 책을 내고 강의를 나가면서 이 분야의 전문가로 보이니까 기업에서 의뢰한 프로젝트도 맡게 됐다. 맡은 프로젝트를 여럿이서 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창업으로 이어졌다.
IMF가 시작된 1997년 말 회사생활을 하며 마음에 맡는 동료와 웹에이전시 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납품 대금을 못 받는 등 영업에 집중하는 성향과는 맞지 않다고 판단해 서비스를 주력하는 사업으로 선회했다. 실업자가 200만명에 육박하는 시기인 만큼 일자리와 인터넷을 키워드로 연관지었다. 이 같은 키워드로 적합한 사업 아이템을 찾다 보니 잡코리아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정장 입은 직원이 보이지 않는다. 회사 분위기가 자유로워 보이는데.

“직원 평균 연령이 32세 정도로 낮은데다 이 분야의 일이 B2C(Business to Customer)이기 때문에 온라인에서 기업에 세일즈하는 일 외에 외부 업무나 미팅이 그리 많지 않다. 자연스레 회사 안에서 자유롭고 편하게 일하는 분위기가 안착했다. 정장을 차려입어야 하는 등 복장에 대한 규정 자체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자유로운 분위기가 적극적인 소통을 유도하는 것이라고 본다.

일반적으로 임원은 바로 아래 직급인 팀장과 소통하는데 그치지만, 우리는 두 단계를 넘나들며 소통하는 것을 강조한다. 임원들도 과·차장과 함께 소통해야 한다. 이 때문에 중간에서 조율하는 팀장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이렇게 되면 팀장의 의사결정 권한이 임원보다도 더 많아진다.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탄탄한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다. 얼핏 보기에 자유로운 분위기만 조성될 것 같지만 긴장도 필요하다. 사장이 직접 소통에 나서기 때문에 실무 업무에 대한 이해도가 높기 때문이다. 자유로움과 긴장감이 공존하는 커뮤니케이션 체제가 아닌가 싶다.

대표든 말단직원이든 혜안을 가지려는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 혜안을 가지려면 큰 그림이나 조감도만 보면 나오는 게 아니라 세부 사항까지 봐야 한다. 격식을 따지거나 윗선 사람만 만나면 어떤 사건이나 사물, 행위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소통이 불가능하다. 본질을 파악하는 것도 연습이 필요한 법이다. 해결법이나 아이디어가 필요할 때 사무실을 돌아다니면서 직원들에게 고민하는 이슈와 관련된 키워드를 갖고 질문하다 보면 아이디어를 얻는 경우도 있다.”

-선제적 복지 제도에 직원들의 만족도가 높을 거 같다.

올해 이직률이 단 0.5%(1명)에 불과하다. 직원들과의 관계나 경영관리 측면에서 최대한 먼저 앞서 배려하려고 한다. 직원들이 불편을 느끼거나 요구를 하기 전에 제도화시키는 것이 소모적 비용이나 커뮤니케이션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인사팀도 직원 관리와 통제의 측면보다는 회사가 직원을 위해 무엇을 제도화할지 차원에서 운영된다. 직원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때쯤 이미 제도화가 돼 있으면 회사에 대한 신뢰감이 올라가기 마련이다.

직원들의 편의를 위해 회사가 사용하는 건물 8개 층 가운데 한층 전체를 휴게실로 만들었다. 휴게실 내 입점한 카페에서는 아메리카노를 1000원에 판매하도록 하고 나머지 차액은 회사에서 보조금을 지원하는 형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복지뿐만 아니라 연봉도 동종업계 내에서 상위를 기록하고 있다. 다른 불확실성 없이 업무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이다.”

 

 

 

-업계에서 부동의 1위를 차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처음 시작할 때는 크고 작은 경쟁사가 200여개 됐는데 어느 한 업체가 점유율이 높거나 낮은 게 아니라 다 비슷한 상황이었다. 구직자 입장에서 생각해보니까 매우 불편했다. 제각기 다른 디자인의 웹사이트에 일일이 찾아봐야 올라온 채용공고가 한두 개뿐이었다. 이에 구직자나 기업들이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일자리 메타검색 엔진을 만들었다. 200여개에 달하는 웹사이트의 채용정보를 잡코리아에서 한번에 검색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잡코리아를 통해 타사 웹사이트에도 유입되는 방문자가 늘면서 경쟁사들도 환영했다.

2000년 들어 IT 업계에 거품논란이 일며 위기가 찾아왔다. 회원을 모으기 위해 마케팅 비용으로 몇억을 들였지만 매출은 없는 상황이었다. 온라인 리크루팅 업체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압박감을 이기지 못한 업체들은 유료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유료화로 나선 업체들은 채용공고를 무료로 올리던 기업들이 수수료를 내기 시작하면서 매출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우리는 기업들에 무료 서비스를 하던 가치를 유지하면서 매출을 내는 방법을 고민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하이브리드 형태의 수익모델이었다. 무료 서비스를 유지하면서 부각된 공간에 광고를 올려주는 등의 옵션으로 유료화했다. 채용공고를 유료로 올리는 기업들은 광고 노출도가 올라 구직자들이 10~20배 더 지원했다. 기존의 가치를 유지하면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한 것이다. 이 같은 사업을 바탕으로 3~4년이 지난 2003년쯤에는 리크루팅 업계 1위를 차지하며 경쟁사의 매출을 추월했다. 지금은 시장 점유율 70%를 차지하는 업체로 성장했다.

앞으로 새로운 사업에 대해서도 늘 생각하고 있다. 한 영역에서 계속 성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새로운 영역에서 같이 성장하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기업이든 개인이든 시작하는 프로젝트와 안정적인 프로젝트가 융합될 때 서로 도움이 될 수 있는 시너지가 나온다.”

-바쁜 와중에도 책을 많이 읽는다고 알고 있다.

연간 150~200권의 책을 읽는다. 비즈니스 서적보다는 소설이나 철학서, 수필을 많이 읽는 편이다. 그 속에는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녹아들어 가 있어 다양한 간접경험과 사상을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생각들을 읽어내고 남을 어떻게 배려하는지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기만의 굉장히 완벽하고 복잡한 사고를 하고 있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사실 자기 이상의 복잡한 사고체계를 가진 사람은 너무도 많다. 독서를 하는 과정에서 남을 인정하게 되고 배려하게 되는 습관을 배우게 된다.”

-많은 구직자가 취업난에 허덕이고 있다. 기업에서 원하는 인재상은.

회사에서 맡은 프로젝트든 사회현상이든 간에 집요하고 근성 있게 파고들어 그 영역만큼은 자신이 최고가 될 수 있게끔 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제대로 된 해결책 없이 모호한 순간을 자주 접하는데 대부분은 그 순간을 지나쳐버린다. 모호함에서 원인을 찾아내고 관찰해서 해결책을 만들어내는 습관을 들이는 게 중요하다. 항상 물음표를 갖고 존재하는 것에서 현상의 원인을 찾아낼 때 창의와 혜안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기업에서 적당히 잘하는 사람은 너무나 많다. 이들은 단기적으로 봤을 때 회사에 급여만큼의 기여를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회사에 독이 될 수 있다. 변화없이 안주하면서 현재 주어진 일만 잘하기 때문에 탁월한 인재를 바탕으로 5년 뒤를 보고 쫓아오는 후발 경쟁 기업에 백전백패할 수밖에 없다.

차라리 못하는 사람은 변화시키려고 노력하는데 적당히 잘하는 사람들은 변화의 필요성을 못 느껴 회사에서도 관심을 놓아버릴 수 있다. 도전도 안 하게 되는 셈이다. 안 좋은 성과를 내던 사람은 오히려 도전이나 새로운 변화를 추구할 기회를 얻게 된다. 실제 기존 플랫폼에서 좋은 성과 못 내던 사람이 플랫폼 바뀔 때는 탁월한 결과를 보이는 경우도 있다.”

 

출처:http://1979piano.blog.me/30096290537 [출처] [스페셜리포트] 김화수 잡코리아 대표이사 사장 |작성자 더반찬

대전지법 김진선 판사가 최근 자신이 다룬 한 재판 사건을 소회하며 판사와 피고인에 앞서 인간으로서 느낀 연민의 정을 다룬 '풀잎에도 상처가 있다 < 정호승의 시 > '라는 글이 법원 내부통신망에 게재된 후 조회수가 1500회를 넘어서는 등 사법부 내부에서 잔잔한 감동을 안겨주고 있다.

지난 7월 대전지법 법정. 김인숙씨(여·가명·24)씨는 두차례에 걸쳐 지인들의 지갑을 절취하고, 절취한 신분증을 이용해 사금융에서 대출을 받고 이 과정에서 각종 서류를 위조·행사하고 피해자들의 주민등록번호를 사용해 재판을 받게 됐다.


김씨는 어린 시절 엄마가 가출하고, 조부모의 손에 양육된다. 아버지는 재혼을 하고,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 할머니와 산다고 놀림을 받던 그녀는 아버지와 함께 사는 것을 소망했고, 초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 기대에 부풀어 아버지와 새엄마가 사는 집으로 가게 됐다.

새엄마는 아버지 앞에서는 소녀에게 다정하게 대해줬지만 아버지가 없는 곳에서는 갖은 구박을 일삼았다. 이후 김씨의 아버지는 재혼에 실패한 뒤 두번째, 세번째 새엄마를 들였다.

김씨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으로 반항을 하기도 했지만 별다른 비행없이 학업을 마치고 고교를 졸업하자 마자 취업을 하게 됐다. 그러나 건강문제로 직장을 그만두고 어린 나이에 적지 않은 돈을 벌게 돼 씀씀이가 커져 버리자 일정하지 않은 아르바이트 등을 하다가 돈이 부족하자 이 사건을 저지르게 됐다.

김 판사는 이 글에 "처음 공소장을 봤을 때는 죄질이 썩 좋지 않은데다 두 건이 병합돼 있어 좋은 인상은 아니었다"며 "내가 그녀의 사연에 주목하게 된 것은 법정에서의 피고인 신문도 있었지만, 50 페이지에 달하는 장문의 반성문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반성문은 형식적인 내용이고, 진심으로 참회하고 가슴으로 전해지는 경우는 흔치 않은데 이 반성문에는 피고인의 일대기가 고스란히 담겨 한 편의 자전소설과도 같아 무심해진 나의 마음을 흔들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불행이 닥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원망을 하게 마련이다. 왜 하필이면 '나'냐고"라며 "스스로 범죄를 저질러 법정에 선 피고인들 역시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그녀는 반성문에서 이렇게 구속돼 잘못된 길로 들어서려는 자신의 발걸음을 멈추게 돼 다행이라고 적고 있었다"고 밝혔다.

김 판사는 마지막 구절에서 "나보다 힘들고 어려운 시절을 겪어내신 분들에겐 정말 죄송한 이야기지만 나는 내 딴에는 아플만큼 아파봤다고 생각해왔다"며 "그러나 나는 여전히 흔들리고 아파해야 할 일이 많은 모양이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때로는 뿌리까지 흔들릴지도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확신한다. 그 상처들이 나를 향기롭게 할 것이라고. 그리고 법정에서 마주한 그녀를 위해 기도한다"고 기원했다.





[김진선 판사 글 전문]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나는 부끄러움을 많이 타고, 누가 물어보는 말에 대답하는 것 이상의 많은 말을 하지 않는 편이다.

그런 내가 시키지도 않는 이런 류의 글을 쓴다는 것은 알 수 없는 어떤 힘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벌써 3개월이 지나 구체적인 이야기는 많은 부분 잊어버렸지만, 나는 아직 그녀의 이름과 얼굴, 그리고 그녀의 눈물을 잊을 수가 없다.

그러니까 지난 7월 20일경의 일이다.

법정에 선 그녀는 24살의 아가씨였다.

그녀는 두 차례에 걸쳐 지인들의 지갑을 절취하고, 절취한 신분증을 이용하여 사금융에서 대출을 받고, 그 과정에서 각종 서류를 위조하여 행사하고 피해자들의 주민등록번호를 사용하였다는 내용으로 재판을 받고 있었다.

처음 공소장을 봤을 때는 죄질이 썩 좋지 않은데다 두 건이 병합되어 있어 그리 좋은 인상은 아니었다.

법정에서 피고인은 범행 일체를 자백하였고, 변호인 역시 양형사유에 중점을 두고 변론을 하였다.

그녀는 아주 어린 시절 엄마가 가출을 하고, 조부모의 손에 양육된다.

아버지는 재혼을 하고,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 할머니와 산다고 놀림을 받던 소녀는 아버지와 함께 사는 것을 소망하게 되고, 드디어 초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 기대에 부풀어 아버지와 새엄마가 사는 집으로 가게 된다.

새엄마는 아버지 앞에서는 소녀에게 다정하게 대해주지만, 아버지가 없는 곳에서는 갖은 구박을 일삼는다.

8살의 어린아이에게 젓가락질이 서툴다고 집 앞 거리에 나가 "젓가락질을 잘 하겠습니다"라고 외치게 하는 등 사소한 트집을 잡아 소녀를 괴롭히고 매질을 한다.

커다란 상처를 받은 소녀는 아버지와 새엄마를 미워하게 되고, 다시 할머니와 살면서 학교를 다닌다.

그 후 아버지는 재혼에 실패한 후 두 번째, 세 번째 새엄마를 들이게 된다.

소녀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으로 반항을 하기도 하지만 별다른 비행 없이 성실히 학업을 마치고 고교를 졸업하자마자 취업을 하게 된다.

그러나 건강문제로 직장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는데, 어린 나이에 적지 않은 돈을 벌게 되어 씀씀이가 커져 버린 그녀는 일정치 않은 아르바이트 등을 하다가 돈이 부족하자 이 사건 범행에 이르게 되었다.

내가 그녀의 사연에 주목하게 된 것은 법정에서의 피고인신문도 있었지만, 50페이지에 달하는 장문의 반성문 때문이었다.

내가 법정에서 피고인들의 반성문이나 탄원서 내용 중 일부를 언급해서인지 한 때는 반성문이 정말 많이 들어와서 어떤 피고인은 매일같이 반성문을 제출하기도 하고, 어떤 사건은 반성문이 공판기록의 대부분을 차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반성문은 형식적인 내용이고, 진심으로 참회하고 있음이 가슴으로 전해지는 경우는 흔치 않다.

위 사건에서 피고인의 일대기가 고스란히 담긴 반성문은 한 편의 자전소설과도 같아 무심해진 나의 마음을 흔들었다.

불행이 닥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원망을 하게 마련이다.

왜 하필이면 '나'냐고 말이다.

스스로 범죄를 저질러 법정에 선 피고인들 역시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그녀는 반성문에서 이렇게 구속되어 잘못된 길로 들어서려는 자신의 발걸음을 멈추게 되어 다행이라고 적고 있었다.

그리고 더욱 다행인 것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아버지에게 처음으로 속마음을 털어놓고 화해를 하게 되었으며, 아버지 역시 최선을 다해 피해자들과 합의를 이끌어내었다는 것이다.

비록 여러 건의 범죄로 구속되었지만, 초범이고, 아직은 어린 나이로 개선의 가능성이 있으며, 피해자들과 합의가 이루어졌다니 빨리 선고를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틀 후로 선고기일을 잡았다.

그리고 선고를 하면서 그녀에게 내 마음 속에 있는 말들을 모두 전해주지는 못했지만, 다음과 같은 시 한편으로 그 마음을 대신하였다.

여기에 정호승의 시 "풀잎에도 상처가 있다"를 옮겨본다.

풀잎에도 상처가 있다

꽃잎에도 상처가 있다

너와 함께 걸었던 들길을 걸으면

들길에 앉아 저녁놀을 바라보면

상처 많은 풀잎들이 손을 흔든다

상처 많은 꽃잎들이

가장 향기롭다

사실 그 무렵의 나는 남편이 교통사고로 중환자실에 입원하여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눈물로 지새우는 나날이었다.

그리고 나 역시 그 피고인만큼은 아닐지 모르지만 유년의 아픈 상처가 있었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살던 집이 경매되고,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할아버지, 할머니 손에 자라면서 그 작은 손으로 우리 가족의 생계를 책임질 바구니를 만들기도 했다. 연탄배달조차 되지 않는 달동네에 살면서 두 손으로 직접 연탄을 나르기도 했고, 연탄가스를 먹어보기도 했으며, 장학금 없이는 공부할 수 없는 시절을 보내기도 했다.

나는 그 모든 상처와 인간적인 연약함을 가린 채 법대 위에서 그 피고인을 향해 말하지만, 사실 나도 상처 많은 풀잎에 지나지 않는다. 다만, 나는 당신의 인생만 아픈 것은 아니라고, 슬픔 없는 사람은 없는 것이라고, 고통에는 뜻이 있는 거라고, 상처 많은 꽃잎들이 더 향기로운 것이라고 말해 주고 싶은 것이다.

나보다 힘들고 어려운 시절을 겪어내신 분들에겐 정말 죄송한 이야기지만, 나는, 내 딴에는 아플만큼 아파봤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흔들리고 아파해야 할 일이 많은 모양이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때로는 뿌리까지 흔들릴지도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확신한다. 그 상처들이 나를 향기롭게 할 것이라고.

그리고 나의 법정에서 마주한 그녀를 위해 기도한다.

부디 그녀의 아픈 상처들이 그녀의 발목을 잡는 것이 아니라 향기로운 삶으로 피어나기를...

원본:http://media.daum.net/society/people/view.html?cateid=1011&newsid=20101111165133039&p=nocut

 

 

 

 

[전시소개]

‘지적 감동이 있는…… 2010년 꼭 보아야 할 Photo & Story 展 ’

1888년 미국 국립지리학회에서 처음으로 발간하여 현재 전 세계32개국에서 34개 언어로 발행되고 있는 월간지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주옥 같은 사진들을 한데 모은 전시가 오는 10월 29일부터 약 40일 동안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한국판 창간 10주년을 맞이해 기획된 이번 전시회는 <내셔널 지오그래픽> 한국판의 발행사인 YBM/Si-sa가 주최하고, 미국 국립지리학회(National Geographic Society, 이하 NGS)가 전시회의 콘텐츠를 제공한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작품들은 미국 NGS가 보유하고 있는 모든 콘텐츠를 대상으로 현대 사회의 중요한 이슈인 ‘지구환경과 인간의 삶’에 관해 라는 주제를 다룬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그 동안 게재된 무수한 사진 중 사진 자체로 아름다움을 주는 사진, 예상치 못했던 충격을 주는 사진, 아름다운 이미지 속 슬픈 현실과 같은 놀라운 반전이 있는 사진, 마지막으로 사랑, 우정, 노력, 희생 같은 인간적 가치가 느껴지는 사진 등 다양한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또한, ‘최초의 컬러 수중 사진’,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과 관련된 사진’ 등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게재되어 세계적으로 큰 이슈가 되었던 사진들과 역사적 의미를 가진 사진들이 에 함께 전시될 예정이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은 바닷속 생물, 성층권에서 바라본 지구와 우주의 모습, 야생동물 등 특징 있는 기사만큼이나 사진 촬영에 있어서도 선두적인 역할을 해왔다.

[전시구성]

`자연이 선사하는 아름다운 생명의 파노라마`

본 전시는 라는 주제로 아름다운 자연과 동?식물의 생태계 및 파괴되어 가는 환경에 대한 안타까움 그리고 환경 재건을 위한 노력 등의 주제를 담은 4개의 관 및 특별관으로 구성된다. 자연 풍경을 시작으로 동식물의 삶과 인간에 의한 환경 파괴의 모습 그리고, 훼손된 자연을 되살리고 보존하려는 희망의 메시지로 이어지는 4가지 핵심 주제에 따라 선정된 200여 점의 사진을 통해 위기에 처한 지구 환경에 대해 다시 돌아보는 기회가 될 것이며 ‘사실’ 중심의 이야기를 함께 제시한다.

Part 1. 자연의 풍경: 땅, 하늘, 바다를 본다
본 관에서는 땅, 하늘, 바다의 인상적인 경치를 주로 전시한다.
아름답고 웅장한 자연 경관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저절로 경외심을
느끼게 만드는 사진들이 전시될 예정이다.

Part 2. 생명의 드라마: 동식물의 삶을 담은 역동적인 이미지
동식물(사람)의 삶을 담은 역동적인 이미지들이 전시될 예정이다. 특히 최근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는 북극곰과 펭귄의 생태에 관련된 사진들도 전시된다.

Part 3. 지구의 눈물: 화석 연료 남용, 화학 제품양산, 남벌 등으로 병들어 가는 지구
불법 포획, 화석 연료 남용, 화학 제품양산, 남벌 등으로 병들어 가는 지구의 사진들을 선보인다. 이를 통해 환경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고 더 이상 지구의 아픔을 외면할 수 없음을 함께 공감하고자 한다.

Part 4. 아주 작은 희망: 자연 보존 및 친환경 라이프스타일 장면
고통 받는 지구를 되살리려는 자연 보존 및 친환경 라이프스타일의 사진들이 공개된다. 관람객들로 하여금 우리의 노력으로 자연을 보존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한다.
 
출연 및 작가소개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역사]

전 세계에서 ‘성경’과 함께 가장 많이 읽히는 서적

미국 워싱턴 D. C에서 출판되는 지리학?고고학?인류학?탐험에 관한 월간지. 독자들의 요구를 최대한 충족시켜주기 위해 세련되고 정확한 설명과 최상의 사진 및 지도를 제공한다. 1888년 비영리 단체인 미국 국립지리학회가 이 잡지를 창간했다. 길버트 그로브너가 편집을 맡았던 1926년에는 발행부수가 100만 부에 달했다. 바닷속 생물, 성층권에서 바라본 지구와 우주의 모습, 야생동물 등의 촬영에도 선두적인 역할을 했다. 세계 여러 지역에 관한 풍부한 기사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이 잡지는 '어느 나라, 어느 국민에 관해서든지 그 진정한 본질만을 보여준다'는 신조를 표방하고 있다. 이와 같은 신념을 토대로 하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은 기사로 싣는 지역의 환경적?사회적?문화적 측면에 대한 실질적 정보를 제공한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은 글?사진 등의 탁월한 수준뿐만 아니라, 간행물 수입을 이용하여 과학 탐험을 지원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현재 34개 언어로 32개국에서 발행되고 있으며, 5,000만 명 이상의 독자들이 읽고 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한국판은 지난 2000년, 세계에서 9번째로 창간된 바 있다.

미국 국립지리학회(National Geographic Society)의 연혁

지난 한 세기 동안 극지탐험, 고대 유적발굴, 동식물과 자연환경에 관한 연구 등을 포함 9,000여 건이 넘는 프로젝트를 지원해 온 학회는 <내셔널 지오그래픽> 및 기타 잡지 발행, 단행본 발간, TV프로그램과 비디오 개발, 초/중/고등학생과 교사들을 위한 고급 교육 프로그램 개발, 교육 지원금 운영 등의 활동을 펼치고 있다.

1888.1.13 33인의 창립회원들이 미국 워싱턴 코스모스 클럽에서 '인류의 지리지식 향상을 위하여'라는 기치 아래 학회 창설
1888.10 내셔널 지오그래픽 창간호 발행
1898.1.7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이 학회 회장 취임
1909.4.6 학회의 후원으로 탐험가 로버트 피어리가 북극점에 최초 도달
1922 페루 안데스 산맥의 잉카 문명지 마추픽추 탐사 지원
1926 학회 소속 작가 찰스 마틴이 최초의 수중 컬러 사진 촬영
1929.11.29 리처드 버드의 남극 유인 비행 성공
1959.9 루이& 메리 리키부부가 175만년 전의 유인원 '진잔트로푸스' 발견
최초로 잡지에 컬러 사진 사용
1962.2 잡지 전체를 컬러 사진으로 인쇄
1963 학회 후원으로 미국 최초 에베레스트 정복
1969 아폴로 11호가 달에 협회 깃발을 가지고 감
1985 타이타닉호 발견을 NGS가 발표
1993.1 폴 세레노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공룡화석 발견
1996.5 페루 고원에서 발견된 잉카 소녀의 냉동 미라가 학회 전시관에 전시되어 85만 명의 관람객이 방문

 

내용출처:http://www.sac.or.kr/Program/view.jsp?prog_id=15716

 

 

 

사진출처:http://magazine.jungle.co.kr/justice_event/announce_view.asp?idx=492

 

 

 

 

 

사진출처:http://www.ngphoto.co.kr/

 

 

 

< 촬영일지 >

★ 일시 : 2008. 10. 12. 17:52

★ 장소 : 전남 완도군 완도읍 대가용리, 도로 옆 밭

★ 카메라 기종 : Canon IXUS 970IS

 

맨드라미[cockscomb]

 

쌍떡잎식물 중심자목 비름과의 한해살이풀. 학명은 Celosia cristata

[계관()]·[계두()]라고도 한다.

열대 인도산이며 관상용으로 심는다.

줄기는 곧게 서며 높이 90cm 정도 자란다.

흔히 붉은빛이 돌며 털이 없다.

잎은 어긋나고 달걀모양 또는 달걀모양의 바소꼴이며 잎자루가 있다.

꽃은 7∼8월에 피고 편평한 꽃줄기에 잔꽃이 밀생하며, 꽃색은 홍색·황색·백색 등이다.

화피조각은 5개로 바소꼴이다.

편평한 꽃줄기의 윗부분이 보다 넓어지고 주름진 모양이 마치 수탉의 볏과 같이 보인다.

열매는 달걀모양이며 꽃받침으로 싸여 있고 옆으로 갈라져서 뚜껑처럼 열리며 3∼5개씩의 검은 종자가 나온다.

꽃은 지사제로 약용하거나 관상용으로 이용한다. 꽃말은 ‘열정’이다

출처 : 진달래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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