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전역을 눈물바다로 만든  아버지의 사랑

 

태어날 때 탯줄이목을 감아 뇌에 산소공급이 준단되었고
뇌성마비와 경련성 전신마비로 혼자 움직일수도 말할수도없습니다.

의사는 아이를 포기하라고 했지만 그들은 포기할수없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컴퓨터로 언어를 사용하게 된 그는
달리고싶다고했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있느니라
-빌립보서 4장 13절 말씀-

 

'can'
아버지는 나의 꿈을 실현시켜주었다

 

'아버지는 내 날개 아래를 받쳐주는 바람이다'

 

아버지 나이 65세, 아들나이는 39세

 

 

자료출처
<모티브미술학원&미술천하>

F11번을 꼭!누루시고 보세요~^^
아그리파 [ Agrippa, Marcus Vipsanius ]



덩어리 수업과정중 1시간10분시범이였습니다.^^
아래 그림은 혹시 도움이 될까해서 올립니다~
꾸벅~꾸벅~감기조심하세용~^^
출처 : ♡♥입시미술♥♡
글쓴이 : 모티브▲송성수 원글보기
메모 :

 

 

 

 

1.석고의 중심을 확인후 종이의 중심과 일치시킨다.


2.수직상의 비례를 확인한다. 머리, 눈, 코, 턱 목, 단-수직상의 비례중 큰 형태 위주로 확인


3.큰 비례를 기준으로 수직과 수평확인을 한다. 대략의 위치파악(꼭지점, 어둠박스)


4.확인하는 선은 반드시 남겨 두고 지우개사용을 줄이자. 반드시 뒤로나와서 1분간격으로 뒤로나와서 형태확인한다-형태는 약 15~20분이다. 그렇다면 확인하는 횟수는 약 20회

 

5.연필은 길게잡으며 종이와 본인의자와의 거리를 넓히자 형태를 잡을시 가까이서 잡으면 절대 좋게 안나온다.

 

*본인이 형태를 잘 잡고싶다면 위의 내용을 지켜라. 지켜야할것은 반드시 지켜야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절대! 형태는 좋아질수없다. 기본을 지키자!!

 


(1)----피에르 가르뎅의 선택

꿈 많던 스물두살 청년 피에르 가르뎅은
어느날 종이 두장을 손에 쥐고 고민에 빠졌다.

파리의 적십자로 가는 전근 사령장과...
디자이너 왈그너의 가계에서 일할수있는 소개장...
긴 망설임 끝에 그는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내 위로 던졌다.
"앞면이 나오면 왈드너,뒷면이 나오면 적십자!"

결과는 앞면.
이렇게 해서 패션계에 발을 내딛은 피에르는
재능을 인정받아 왈드너를 거쳐 유행을 선도하던
최고의 디자이너 '디올' 밑에서 일하게 됐다.
몇 년 동안 실력을 갈고 닦던 그에게 또 다른 기회가 찾아왔다.
'디올'이 죽고 나자, 그의 사업을 후원하던 섬유회사 사장이
후계자로 피에르를 지목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이곳에 있으면 장래는 보장돼,
하지만 내 이름을 건 가게를 내고싶어.'

이번엔 연필을 세웠다.
"오른쪽으로 넘어지면 디올, 왼쪽이면 내 가게."

연필은 왼쪽으로 쓰러졌다.
독립을 택한 그는 이후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패션
디자이너로 성장했다.

엉뚱한 방법으로 인생의 중요한 선택을 한 피에르 가르뎅.
사실 그에게는 어떤 선택을 하던지 별 상관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
무엇이든 최선을 다했으리라는 것.
바로 이것이 그의 성공 비결이다.
선택을 했으면 이에 깨끗이 승복하고 최대한 노력을 귀울여라.




(2)--------링컨의 한마디---


무모한 대항보다는 복종하는 행위가 상대를 이길 수 있는 경우가 많다.
내가 만약 내게 쏟아진 숱한 공격에 대해서 일일이 대항했다면 나는 아마

뼈도 남지 않았을 것이다.




(3)----때를 알아라


우리의 얼굴을 보세요.
좌우 양쪽에 귀가 둘 있습니다.
이쪽 이야기도 듣고,
저쪽 이야기도 들으라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골고루 듣는 귀를 한문에서 총이(聰耳)라고 합니다.
우리는 나를 즐겁게 하는 칭찬의 소리만 들어서는 안 됩니다.
나를 냉엄하게 비판하는 충고의 소리에 더욱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4)----서두를 것 없다.


그림은 손으로 그리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과 몸 전체로 그리는 것입니다.
마음속에 그리고
싶은 것이 자라 오르면
손은 그것을 따라 그리는 것뿐입니다.
공부가 급한 것이 아니라
마음 공부, 사람 공부,
세상 공부가 더 중요한 것입니다.

 

<출처:모티브미술학원&미술천하카페/입시미술카페>

 

 

 

몸이 아파 고통스러웠던꿈(길몽)

성공하기까지의 어려운 과정이 꿈으로 나타난 것으로 고통의 강도와 성공의 정도가 비례한다.

제목:거래

 

『♡ⓕⓡⓞⓜ.kool』

 

남:나랑 사귀자!

 

여:아직 잘 모르겠어...

 

남:나랑 사귀면 너 해달라는 거 다 해줄께.너 가지고 싶다는 거 다 사주고.네가 시키는거 다

해줄께.

 

여:.....

 

남:우리 사귀자.나 차도 있고.돈도 많아.그리고 나 능력도 있어...나랑 사귀면 뭐든 다 해줄께


나랑 사귀면 뭐든 다해줄께...나랑 뭐뭐 한다면 뭐든 다 들어줄께.

사랑은 거래가 아니다! 아직 잘 모르겠다는 여자에게 어떤 조건을 제시하여

마음을 움직이려 하지 말고 조금 더 시간을 두고 진심을 보여줄 생각을 하는 것이 더 빠른 방법임을 잊지 마라.

 


『♥ⓕⓡⓞⓜ.시인 임석래』

 

남: 너는 내가 가지고 있는 꿈(비전)을 사라. 나는 너를 책임질 테니까.

 

여: 말해 봐.

 

남: 나 남모르게 영어회화 좀 공부했거든. 외국인 회사에 아르바이트로 취직했어. 졸업하면

외국인 회사에서 좀더 체험하고 미국으로 갈 거야.

 

여: (상대에 대해 나름대로 호기심을 갖기 시작한다.)

 

남: 그러니 너는 내 꿈을 사라.

 

여: (여자의 마음 속에 이 남자와 사귀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아름답고 가슴 뛰게 하는 연애감정을 거래라는 개념이나 느낌을 들게 해서 찬물을 끼얹는 남자와 여자가 너무 많다. 문제는 자기가 한 말이 그런 표현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데에 있다.

 

도대체 왜 나는 번번이 차이기만 하지, 하고 한숨을 푹 내쉰다. 자신은 영영 연애다운 연애 한번 하지 못하고 죽을 것 같아 속알이를 한다.

 

남녀의 관계도 법적 테두리로 보면 거래관계인 것은 마찬가지다. 누군가 다가와서 사귀자고 할 때, 어느새 상대방의 머리와 가슴속에서 계산기가 뜨르르 연산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이 사람다운 것은 꿈과 희망으로 산다는 사실이다. 꿈을 주고 희망을 불러일으키는 사람에게 사람은 따르기 마련이다.

 

쿨님이 ‘시간을 두고 진심을 보여주라는 것’은 "꿈과 희망‘을 주라는 것이다.

출처 : 쿨카사노바
글쓴이 : kool 원글보기
메모 :

출처:http://hackereyes.hufs.ac.kr/blog/162

 

최근 바탕화면의 아이콘 배치를 저장하는 툴을 받았다.
사용한 예제를 보니 내 머리속엔 몬드리안의 작품이 딱 떠올랐다~
근데... 이 머리가 그걸 과연 기억할 수 있었을까? ㅋㅋ
문득 떠오른것은 최강희가 나왔던 영화에서 나왔다는것!
그런데 영화 이름이 생각나질 않공...
ㅋㅋ 그래서 검색을 최강희 -> 달콤, 살벌한 연인 -> 몬드리안 순으로 겨우 찾아냈다.

그런데, 몬드리안 작품이 한두가지가 아니였다. 허걱~
아무튼, 그중에 홍태가 찾아준 바탕화면으로 쓰기 좋은 그림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것은 바탕화면 아이콘 배치 저장하는 프로그램과 같이 쓰면 좋을 듯~

http://hackereyes.hufs.ac.kr/blog/160







* 몬드리안의 다른 작품들

출처 블로그 > 푸른 서재
원본 http://blog.naver.com/bluehour64/100014671969
사용자 삽입 이미지
<Composition with Yellow, Blue, Black, Red and Grey,1921>
 
칸딘스키와 더불어 유럽 추상회화의 진운을 개척한 또 다른 화가로는 피트 몬트리안이 있다. 칸딘스키가 외부 세계에서 내부 세계로 눈을 돌려 추상회화를 개척했다면, 몬드리안은 외부 세계를 그리되 그것을 극단적으로 단순화하여 자연의 형태를 벗어남으로써 순수 구성의 추상회화를 개척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Composition-blanc, rouge et jaune:A , (Composition-White,Red and Yeelow:A) 1936>
 
몬드리안이 어떻게 수평선과 수직선, 빨강, 노랑, 파랑의 삼원색과 흑백의 무채색만으로 그림을 그리게 됐는지는 시간이 흐를수록 단순하게 표현된, 그의 '나무' 연작을 통해 잘 드러난다. 우뚝 선 한 그루의 나무가 갈수록 단순화되면서 나무의 줄기와 가지는 점점 선처럼 변해버리고 가지 사이의 공간은 평면으로 전환된다. 마침내 그 나무는 오로지 수평선과 수직선, 그리고 그것이 교차하면서 생긴 사각형만 남게 된다. 이렇게 극단적으로 단순화한 구성을 반복해 그리면서 그는 결국 모든 주제는 같은 결론에 이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아무리 복잡해 보여도 사물의 근원은 오직 하나라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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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position with Double Line (unfinished) 1934>
 
"자연은 그렇게 활기차게 끊임없이 변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절대적인 규칙에 따라 움직인다."
 
몬드리안의 이런 생각은 그림을 그리는 도중에 더욱 뚜렷해진다. 나무를 그려도, 도자기나 건물을 그려도, 그 어떤 것을 그려도 단순화하다 보면 그것들의 최종적인 모습은 늘 수직선과 수평선, 그리고 그 선들이 만든 면들로 귀결돼버렸던 것이다. 세계를 이렇게 단순화해서 표현하는 것이 몬드리안만이 전매 특허는 아니다. 옛 사람들은 일찍이 하늘을 점으로, 땅을 수평선으로, 사람을 수직선으로 간단하게 표현했다. 사물의 겉모습을 계속 단순하게 생략해가다 보면 결국 남은 것은 수직선과 수평선뿐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Composition A, with Double Line and Yellow, 1935>
 
수평선은 우리에게 바탕과 휴식의 느낌을 준다. 대지와 바다는 수평선을 지니고 있다. 이것들은 바탕이다. 어떤 것이 자리할 토대이다. 사람과 동물, 식물이 살아가려면 땅이나 바다 같은 수평의 공간이 필요하다. 수직선을 서 있는 모든 것을 상징한다. 사람이나 나무가 대표적인 예이다. 이처럼 서 있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것이요, 살아 있다는 것은 의지를 갖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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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position (No.I) gris-rouge, (Composition (No.I) with Gery and Red) 1935>
 

사람들은 "뜻을 세운다"라는 말을 즐겨 쓴다. 뜻을 세운다는 말은 의지를 갖는다는 말인데,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삶의 의지를 올곧게 세우는 일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Composition with Blue and Yellow, 1932>
 
온갖 활동의 바탕이 돼주는 수평선과 삶의 의지를 담은 수직선이 만나면 존재의 좌표가 된다. 몬드리안은 평생 수평선과 수직선만으로 그림을 그렸다. 그러므로 그의 단순한 그림은 바로 우리의 실존적 좌표 혹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본질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Composition with Red, Blue and Yellow, 1930>
 

물론 가장 단순한 조형요소만으로 근원을 형상화한다 하더라도 몬드리안의 그림 가운데 어느 하나도 같은 것은 없다. 간단한 수평선과 수직선, 몇 가지 색채가 전부이지만, 그의 그림은 끝없이 변모한다. 이는 근원으로 돌아가더라도 그것이 정지나 종말이 아니라, 정연하고도 조화로운 운동과 전개임을 보여주는 행위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Composition:No.III, with Red, Yellow and Blue, 1927>


몬드리안이 벗어나고자 한 것은 무질서였다. 근원과 본질에 대한 이해 없이 무작정 변하는 것은 무질서일 뿐이다. 세계는 이 무질서로 충만하다. 그는 무질서에세 인간을 해방시키기를 원했다. 그가 돌아가고자 한 질서는 그의 작품이 보여주듯 끊임없이 변하면서도 근원과 본질을 놓치지 않는 것이었다. 그는 이처럼 미술이 지닌 초자연적인 힘을 믿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Composition: No.I, with Black, Yellow and Blue, 1927>
 
"미술은 초인적인 것이어서 인간이 가진 초인적인 요소를 개발해냄으로써 종교와 마찬가지로 인간성을 고양시키는 수단이 될 수 있다."
몬드리안 역시 자기 파멸의 공포로 흔들리던 20세기 초의 유럽에 추상회화를 통해 우주 신비를 새롭게 확인시켜주며 영속적인 가치와 의미에 대해이야기하려 한 예술가였다.
 
 
이주헌의 <서양화 자신있게 보기 2> 중
 


그의 작품엔 유쾌한 절제가 들어있다.

정제된 색과 선들이 바라보는 시선을 맑게 한다.

선과 선을 따라가다보면 어김없이 만나는 색면의 징검다리들.

선명한 사고를 만들어내더니 복잡한 상념 쪼가리들을 훌훌 털게 한다.

그래서, 군더더기없는 자유를 준다.


그리고...

오늘,

투명한 얼음속에 들어있는 사각형의 단정한 색들을 본다.

게으른 시선을 압도하는...

색과 형의 순수함.최근 바탕화면의 아이콘 배치를 저장하는 툴을 받았다.
사용한 예제를 보니 내 머리속엔 몬드리안의 작품이 딱 떠올랐다~
근데... 이 머리가 그걸 과연 기억할 수 있었을까? ㅋㅋ
문득 떠오른것은 최강희가 나왔던 영화에서 나왔다는것!
그런데 영화 이름이 생각나질 않공...
ㅋㅋ 그래서 검색을 최강희 -> 달콤, 살벌한 연인 -> 몬드리안 순으로 겨우 찾아냈다.

그런데, 몬드리안 작품이 한두가지가 아니였다. 허걱~
아무튼, 그중에 홍태가 찾아준 바탕화면으로 쓰기 좋은 그림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것은 바탕화면 아이콘 배치 저장하는 프로그램과 같이 쓰면 좋을 듯~

http://hackereyes.hufs.ac.kr/blog/160







* 몬드리안의 다른 작품들

출처 블로그 > 푸른 서재
원본 http://blog.naver.com/bluehour64/100014671969
사용자 삽입 이미지
<Composition with Yellow, Blue, Black, Red and Grey,1921>
 
칸딘스키와 더불어 유럽 추상회화의 진운을 개척한 또 다른 화가로는 피트 몬트리안이 있다. 칸딘스키가 외부 세계에서 내부 세계로 눈을 돌려 추상회화를 개척했다면, 몬드리안은 외부 세계를 그리되 그것을 극단적으로 단순화하여 자연의 형태를 벗어남으로써 순수 구성의 추상회화를 개척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Composition-blanc, rouge et jaune:A , (Composition-White,Red and Yeelow:A) 1936>
 
몬드리안이 어떻게 수평선과 수직선, 빨강, 노랑, 파랑의 삼원색과 흑백의 무채색만으로 그림을 그리게 됐는지는 시간이 흐를수록 단순하게 표현된, 그의 '나무' 연작을 통해 잘 드러난다. 우뚝 선 한 그루의 나무가 갈수록 단순화되면서 나무의 줄기와 가지는 점점 선처럼 변해버리고 가지 사이의 공간은 평면으로 전환된다. 마침내 그 나무는 오로지 수평선과 수직선, 그리고 그것이 교차하면서 생긴 사각형만 남게 된다. 이렇게 극단적으로 단순화한 구성을 반복해 그리면서 그는 결국 모든 주제는 같은 결론에 이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아무리 복잡해 보여도 사물의 근원은 오직 하나라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Composition with Double Line (unfinished) 1934>
 
"자연은 그렇게 활기차게 끊임없이 변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절대적인 규칙에 따라 움직인다."
 
몬드리안의 이런 생각은 그림을 그리는 도중에 더욱 뚜렷해진다. 나무를 그려도, 도자기나 건물을 그려도, 그 어떤 것을 그려도 단순화하다 보면 그것들의 최종적인 모습은 늘 수직선과 수평선, 그리고 그 선들이 만든 면들로 귀결돼버렸던 것이다. 세계를 이렇게 단순화해서 표현하는 것이 몬드리안만이 전매 특허는 아니다. 옛 사람들은 일찍이 하늘을 점으로, 땅을 수평선으로, 사람을 수직선으로 간단하게 표현했다. 사물의 겉모습을 계속 단순하게 생략해가다 보면 결국 남은 것은 수직선과 수평선뿐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Composition A, with Double Line and Yellow, 1935>
 
수평선은 우리에게 바탕과 휴식의 느낌을 준다. 대지와 바다는 수평선을 지니고 있다. 이것들은 바탕이다. 어떤 것이 자리할 토대이다. 사람과 동물, 식물이 살아가려면 땅이나 바다 같은 수평의 공간이 필요하다. 수직선을 서 있는 모든 것을 상징한다. 사람이나 나무가 대표적인 예이다. 이처럼 서 있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것이요, 살아 있다는 것은 의지를 갖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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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position (No.I) gris-rouge, (Composition (No.I) with Gery and Red) 1935>
 

사람들은 "뜻을 세운다"라는 말을 즐겨 쓴다. 뜻을 세운다는 말은 의지를 갖는다는 말인데,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삶의 의지를 올곧게 세우는 일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Composition with Blue and Yellow, 1932>
 
온갖 활동의 바탕이 돼주는 수평선과 삶의 의지를 담은 수직선이 만나면 존재의 좌표가 된다. 몬드리안은 평생 수평선과 수직선만으로 그림을 그렸다. 그러므로 그의 단순한 그림은 바로 우리의 실존적 좌표 혹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본질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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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position with Red, Blue and Yellow, 1930>
 

물론 가장 단순한 조형요소만으로 근원을 형상화한다 하더라도 몬드리안의 그림 가운데 어느 하나도 같은 것은 없다. 간단한 수평선과 수직선, 몇 가지 색채가 전부이지만, 그의 그림은 끝없이 변모한다. 이는 근원으로 돌아가더라도 그것이 정지나 종말이 아니라, 정연하고도 조화로운 운동과 전개임을 보여주는 행위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Composition:No.III, with Red, Yellow and Blue, 1927>


몬드리안이 벗어나고자 한 것은 무질서였다. 근원과 본질에 대한 이해 없이 무작정 변하는 것은 무질서일 뿐이다. 세계는 이 무질서로 충만하다. 그는 무질서에세 인간을 해방시키기를 원했다. 그가 돌아가고자 한 질서는 그의 작품이 보여주듯 끊임없이 변하면서도 근원과 본질을 놓치지 않는 것이었다. 그는 이처럼 미술이 지닌 초자연적인 힘을 믿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Composition: No.I, with Black, Yellow and Blue, 1927>
 
"미술은 초인적인 것이어서 인간이 가진 초인적인 요소를 개발해냄으로써 종교와 마찬가지로 인간성을 고양시키는 수단이 될 수 있다."
몬드리안 역시 자기 파멸의 공포로 흔들리던 20세기 초의 유럽에 추상회화를 통해 우주 신비를 새롭게 확인시켜주며 영속적인 가치와 의미에 대해이야기하려 한 예술가였다.
 
 
이주헌의 <서양화 자신있게 보기 2> 중
 


그의 작품엔 유쾌한 절제가 들어있다.

정제된 색과 선들이 바라보는 시선을 맑게 한다.

선과 선을 따라가다보면 어김없이 만나는 색면의 징검다리들.

선명한 사고를 만들어내더니 복잡한 상념 쪼가리들을 훌훌 털게 한다.

그래서, 군더더기없는 자유를 준다.


그리고...

오늘,

투명한 얼음속에 들어있는 사각형의 단정한 색들을 본다.

게으른 시선을 압도하는...

색과 형의 순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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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스크랩 몬드리안그림 낙서장
출처 블로그 > sulyun77님의 블로그
원본 http://blog.naver.com/sulyun77/50015459364
자연의 순수한(?) 내면 그대로를 표현한 몬드리안
조회 (566)
* 인테리어 콜렉션 | 2006/09/20 (수)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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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썰미가 있으신 분들은 르 코르뷔지에(http://blog.empas.com/cutesun21c/15719427),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http://blog.empas.com/cutesun21c/15739529), 그리고 미스 반 데 로에(http://blog.empas.com/cutesun21c/15807463) 작품에서 유명한 추상화가 몬드리안의 작품이 연상되는 건축물을 아마도 접했을 것이다. 이러한 세계 유명 건축가의 작품이외도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몬드리안의 작품을 자주 만나고 있다.
 
내가 가장 그의 작품을 접한 것은 초딩 때 스케치북 표지였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몬드리안이 누군지 몰랐고 단지 그의 그림의 하얀 면에 각자 이름들을 써가지고 다녔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나서 미술사를 배우면서 그의 그림은 친숙하게 다가왔고 미술 시험에서 아마 틀리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쉬운(?) 문제에 해당되는 사람이었다. 아울러 요즘 나오는 물건들 중 부엌가구나 김치 냉장고, 공기 청정기 등에도 그의 작품이 이용되었고 지금은 시티은행으로 흡수된 한미 은행의 로고로도 이용되었다.


 
하지만 대학에 와서 그이 신 조형주의 이론을 접하니 결코 만만하게 쉬운 사람이 아니었고 단순하고(?) 그게 그것인 것처럼 다 똑같아 보이는 그의 그림이 내포하고 뜻이 너무나 추상적이고 까다롭게 느껴졌다. 더구나 <서양 근대 가구사>는 강의 위주의 수업이 아니라 학생들이 각각 디자이너랑 건축가를 한 사람씩 맡아서 조사하고 프레젠테이션을 할 것을 준비하여 발표하는 시간이었는데 나는 그와 함께 De Stijl 운동을 한 건축가 게릿 리에트펠트(Gerrit Rietveld)가 배당이 되는 바람에 애 먹었다. 즉 몬드리안의 이론을 논하지 않고는 게리 리트벨트(Gerrit Rietveld)에 대해서 할 말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오늘은 이 두 사람에 관해서 각각 포스팅하기로 마음 먹었다. 여기서는 몬드리안과 그의 작품, 그리고 신조형주의에 대해 올려 놓은 글들을 퍼올렸고 게리 리트벨트(Gerrit Rietveld http://blog.empas.com/cutesun21c/15838702)에선 그의 작품과 아울러 지난 번 3대 건축가 이야기 할때마다 언급 되어진 De Stijl에 운동에 대해서 올려 놓았다. De Stijl란 네델란드 말로 영어의 [The Style]에 해당되는 데 발음이 다 가지각색이라 그냥 De Stijl로 다 표기 하였다.


 
1872년 네덜란드에서 태어난 몬드리안의 집안은 엄격한 칼빈주의였습니다. 5형제의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가난한 집안에 대한 부담감과 신에 대한 갈망, 그리고 자신 안에 내재해 있는 예술에 대한 갈망으로 힘든 갈등의 삶을 살아야만 했습니다.
 
아마추어 화가였던 아버지로부터 그림 공부를 시작한 몬드리안은 잠시 미술교사로도 활동하였고, 종교에 대한 열정으로 성직에 나갈 생각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결국에는 화가의 길을 선택하였고, 심지어 멀고 먼 한국이라는 나라의 한 은행 로고에까지 사용되는 유명한 걸작들을 그렸습니다.


 
몬드리안의 초기작들은 나무와 교회 건물 등과 같은 풍경화로서, 인상주의에서 보여 지는 자연주의 화풍이었습니다. 그 후 시대의 흐름에 따라 야수파의 마티스, 입체파의 피카소 등을 거치면서 결국에는 칸딘스키와 마찬가지로 추상파 화가로서의 입지를 다지게 됩니다. 그가 추구하는 것은 모든 자연의 외형에서 벗어나 색채와 선만으로 표현되는 절대적 순수미였습니다.
 
몬드리안의 작품 스타일을 보게 되면 처음에는 나무와 같은 사물에서 시작된 형상들이 단계적으로 변형되어가며 추상작업을 이루게 됩니다. 결국에는 사물의 형태가 사라지고 어떤 의미인지 파악조차 어려운 수직과 수평의 선들만이 남게 되죠. 그 사이를 절대적 색채들이 메꾸게 되는 것이구요. 순수한 선과 색의 결합으로 아름다움을 표현하고자 한 그의 예술관이 엿보입니다.
 
사실 그의 그림을 보면 무슨 뜻인지, 어떤 의미인지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아마도 20세기 초 현대미술의 추상그림들 중에서 가장 감정이 결여되어 보이기도 하고 그림을 읽는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 보이기도 합니다.


 
몬드리안의 수직선은 신과 같은 절대적 존재에 향한 인간의 의지가 담긴 것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또한 수평선은 모든 사물과 그 사물에 대한 포용을 의미하죠. 이러한 그의 기하학적 추상은 무한한 우주 공간을 담고 있습니다.
 
그는 <우리가 자연의 외형을 버리면 자유로워질 수 있다. 내 그림 속의 수평과 수직선들은 어느 것에도 제약 받지 않는 자연 그대로의 표현이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형식의 타파에 익숙한 현대인에게는 어느 정도 쉽게 인식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는 20세기 초였으며 민주주의조차 제대로 확립되지 않은 사회였습니다. 따라서 몬드리안의 이러한 생각은 당시의 엄격한 규율 속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당시 미술계를 이끌어 가던 많은 선지자들과 마찬가지로 파격 그 자체였죠.
 
몬드리안 말년에는 1, 2차 세계 대전이라는 전쟁을 거치면서도 참혹한 인간사나 사회상과는 무관하게 순수한 구성만을 추구하는 신조형주의 일명 De Stijl 운동을 일으켰습니다. 캔버스 라는 공간 안에서 수평과 수직의 선들로만 독립된 구성체를 만들어 나가고, 그 안에서 색채와의 관계만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De Stijl 운동은 건축, 디자인 등 여러 응용예술 분야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몬드리안 (Piet Mondrian 1872∼1944)
 
네덜란드 화가. 추상회화 창시자의 한 사람이며 신조형주의 주창자이다. 암스데르담 미술학교에서 공부하는 한편, 경건한 칼뱅주의자인 아버지에게 감화를 받았다.
 
그의 작품 활동 경력은 1895년부터 1944년까지에 이르는데, 그의 작품은 20세기 디자인의 전 분야에 영향을 끼쳤다. 몬드리안의 초기 그림들은 그가 세잔느의 작품을 알지 못하면서도 어떻게 세잔느가 추구했던 것과 같은 것- 현상의 우연성 이면에 있는 항구적인 것- 을 추구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세잔느와 달리 몬드리안은 신지론에 기초한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우리가 보는 모든 특정한 사물, 즉 풍경이나 나무, 집이거나 간에 그 저변에는 본질이 내재해 있으며, 그 본질들은 외양이 각기 다름에도 불구하고 조화상태에 있다고 믿는다.
 
미술가의 목표는 이 실재의 숨겨진 구조, 보편적 조화를 그림 속에서 드러내는 것이었다. 그의 초기 그림들은 그가 실재로 볼 수 있었던 표면에서 그다지 깊이 내려가지 않은 곳에서 이러한 본질과 조화를 찾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우리는 이것을 나무 연작에서 아주 분명하게 볼 수 있다.<붉은 나무>는 밝은 야수파적인 색채로 그려진 표면적인 그림인데, 여기서 우리는 나무와 그 주변에서 돋아나고 있는 풀들의 생명을 분명하게 의식하게 된다. 그 후의 나무 그림에서는, 가지들이 그림 가장자리로 퍼지면서 나무를 그 공간속에 <가두려>하기 시작한다. 이제는 나무와 나무 자체의 생명이 주제가 아니라 단지 나무와 다른 모든 것과의 연관성이 주제가 되고 있다. 나무의 활동성은 우주적 운동의 일부로서 나타내고 있으며, 이 운동은 나무에서 부분들이 갖는 특성을 제거하여 사실상 추상화시킴으로써 표현되고 있다.


 
몬드리안이 추구한 이러한 우주적 조화는, 다른 나무 그림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고 있다. 그림에서 나무의 줄기와 가지들은 직선과 곡선이 되었으며, 가지는 운동이고 그 사이의 공간들은 그 반대가 된다. 가지들은 마치 몬드리안의 초기 작품에서 모래 언덕이 바다에 버티면서 힘의 균형 된 대립을 보여준 것처럼, 공간과 대비되는 긴장감을 자아낸다. 그는 주변 공간에 비해 너무 강해 보이는 풍차의 돛이라든가 바다의 수면을 너무 무겁게 억누르고 있는 듯한 수평선 등과 같이 사물에서 균형이 결여된 것에 대해 대단히 예민했다.
 
몬드리안은 1911년에 파리로 가서 후기 단계에 있는 큐비즘을 알게 되고 그것에 심취하였다. 큐비즘은 비록 매우 다른 방법이긴 하지만 실재를 보는 하나의 새로운 방법으로서 그가 걸어온 길을 확신케 해주었다. 그러나 종합적 큐비즘 또는 콜라쥬 큐비즘이 발전되어 실재의 사물들이 그림에 부착되는 것을 보고서는 그는 이러한 방법을 따르려 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회화에서 실재의 사물을 더 이상 묘사하지 않았는데, 이것은 그런 것들이 느낌을 불러일으키며 또 느낌이란 순수 실재를 애매모호하게 만들어버린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일이 년 후에는 러시아 화가들도 이와 동일한 사고방식에 이르렀다. 그들에게 추상화란 조화와 균형을 향한 길이었다.
 
몬드리안에게 있어서도 그것은 보편적 조화와 균형을 향한 길이었는데, 그는 보편적 이미지를 위해 특정한 이미지를 버림으로써만이 그러한 조화와 균형을 드러낼 수 있다고 믿었다. 심지어 추상적 형태에 대해서조차도, 그는 자신이 아직도 무언가를 너무 완전하게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신적인 것과 신비적인 것이 들어설 여지를 남겨두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즉 칸딘스키와 마찬가지로 몬드리안 또한 신비주의에 깊이 매료되어 있었고 전생에 동안 신지학회의 회원으로 있었다.


 
러시아 절대주의자들은 네델란드의 화가이자 이론가인 테오 반 되스버그(Theo van Doesberg)에게 영향을 주었는데 그와 몬드리안은 1917에 De Stijl이라는 운동의 공동 창시자가 되었다. 출판물의 이름이기도 한 이 운동에는 화가 반 데어 렉크 (van der Leck), 조각가 죠르쥬 방통절루, 건축가 아우트 (J.P.Oud), 로브 반 트호프(Rob van t'Hoff)와 후일의 게르트 리에트펠트(Gerrit Rietveld)등이 참가했다.
 
이 운동의 양식은 <신조형주의 (Neo-Plasticism)>라고 불리었는데, 신조형주의는 사물의 본질적 요소는 수평선과 수직선, 원색과 같은 가장 단순한 방법으로 표현될 수 있다는 생각에 기초하고 있다. 즉, 만약 우리가 무엇인가를 충분히 분석하고 단순화시키면 그것의 본질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이다. 20년대와 30년대의 몬드리안의 그림은 사선이나 곡선을 폐기하였다. 이는 그것들이 관상자를 그림 속으로 <끌어들이는>반면 수평선과 수직선을 관상자와 캔버스 사이의 접속을 축소시키는 장애가 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수직선과 원색은 평등성과 균형을 갖춘 명료하고 밝으며 힘찬 구조를 만들어냈는데, 몬드리안의 그림은 그의 자연에 대한 견해로부터 전 우주에 대한 관념화된 견해로까지 발전했는데, 그곳에서는 모든것은 통일성, 실천성, 아름다움이 함께 결합되어 있다.
 
그의 철학에서는 개인은 보편적인 삶과 문화 속에 용해되는 것이었다. 그는 파리에서 이론서적 <신조형주의>를 펴냈으며 <적·황·청의 콤퍼지션>이 그 시대의 대표작이다. 1930년대에는 다시 화면을 단순화한 <두 선의 콤퍼지션>을 그렸다. 1940년 뉴욕으로 망명, 거기에서 종래의 검은 선 대신에 색 면을 잘게 분절화(分節化)한 작품을 그렸다.


 
신 조형주의와 몬드리안
 
몬드리안 자신은 신조형주의에 대해서 그의 글 <등가적 조형의 일반원리>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신조형주의>는 회화에 있어서 처음으로 완전한 형으로 나타난다. <회화에 있어서> 조형원리는 확실하다고 할 수 있으므로 명백한 것이 되었으며, 이 조형적인 것은 더욱더 완전한 것이 된다. <신조형주의>의 기원은 입체파이다. 그것은 <추상적으로 현실적인 회화>라고 부를 수도 있다. 이것은 추상적인 것은 (수학에 비유할 정도로 절대적인 것에 도달되지 못하더라고 거의 그와 똑같이) 조형적인 현실성에 의해 표현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회화에 대한 <신조형주의> 특유의 본질이 있다. 채색된 구형 면에 대한 구성은 더욱 깊은 현실성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것은 모든 관계를 조형적으로 표현하는데 따라 도달되는 것이며 자연이 표출되는데 따라서는 아니다. 모든 회화가 소망하고 있는 것처럼 불명료한 형식밖에 나타나지 않았던 것을 그것은 실현한다. 채색된 평면은 색채의 가치에 따라서 평면의 위치나 크기에 따라서도 조형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균형> 관계뿐이며 <무엇인가>의 형태를 표현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신조형주의>는 그 관계를 미적으로 균형 시키고, 그렇게 하는데 따라 새로운 조화를 나타내는 것이다. <신조형주의>의 장래는 엄밀하게 말해서 회화에 대한 그 실현은 건축에 대한 색채조형에 의존한다. 색채 조형은 건물의 내외에 미치며, 외부에 있어서는 색채에 따라 조형적으로 모든 관계를 나타내는 것 전부를 포함한다. 색채조형도 그것을 도출한 <회화로서의 신조형주의>와 같이 <장식>은 아니다. 그것은 완전히 새로운 회화이며, 회화적인 회화이며, 장식적인 회화이며, 모든 회화는 그곳에 되돌아 가 버린다. 그 것은 장식예술이 가지고 있는 객관적 특성을 (그보다 더 강하고) 회화예술의 주관적 특성에 (그보다 더 깊고) 결부된다.


 
위와 같은 몬드리안 자신의 견해에 비추어 볼 때, 신조형주의는 단지 회화에의 실현에 있는 것만은 아니다. 그리고 신조형주의의 조형 원리는 가장 보편적인 것을, 현상의 가장 본질적인 면을 현실적으로 조형적으로 나타내는 것으로 보인다. 이 신조형주의가 어떻게 대상을 표현하는 조형원리인지, 어떻게 구체화 되는지는 그 주창자인 몬드리안의 작품에 대해 살펴보면서 느껴보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다.


 
몬드리안의 대표적 작품이라 일컬어지는 작품들을 여러 개 한꺼번에 본다면, 맨 처음 느껴지는 것은 <다 똑같다> 라는 느낌일 것이다. 그렇다. 일단 보기엔 <다 똑같아> 보인다. 백지 위에 검은 선 몇 개 그리고, 몇 개의 칸에 빨강, 노랑, 파랑 색을 칠해놓고 그 것의 변화만 조금씩 주어진 것이 각각의 작품이다. 그러나 그 각각의 흰색 면조차도 각각 다른 방향으로 칠해져 있으며 검은 선의 굵기가 서로 다 다르다는 것을 안다면 오히려 놀라고 경탄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이 그림이 이렇게 그려지게 된 데에는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다>라는 것이다. 그럼 왜 몬드리안의 회화가 (신조형주의 조형원리를 도입한 이후라고 할 수 있는 시기의) 그러한 모습을 하게 되었느냐하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몬드리안은 그의 저서 <새로운 조형>에서 <회화에 있어서 위치와 직선의 2원성에 의한 조형표현이 가장 순수한 것으로서도 새로운 조형은 현재화된 색채를 채용한다.> 라고 말한 적 있다. 또한 몬드리안은 <순수한 실재의 표현은 오직 순수한 조형에 의해서만 성취될 수 있다>고 믿고 있었으며, 이 순수조형이란 그것의 본질적 표현에 있어서 <주관적인 감정이나 관념에 구애받지 않는 것>이다. 몬드리안의 주장에 의하면 <오랜 시일에 걸쳐나는 형태와 자연색채의 특수성은 주관적인 감정의 상태를 환기시키며 극한적 감정의 상태는 순수 실재를 모호하게 함>이고 <자연형태의 외관은 변하나 실재는 불변>이고 그가 말하는 실재란 바로 극도로 추상화된 형태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의 작품에서 보여 지는 직선들과 색들은, 실제로는 어떤 형태가 가장 극단적인 형태까지 추상화된 것들은 몬드리안의 조형에 대한 이와 같은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이러한 추상화의 단계는 그가 나무를 그린 그림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나무의 형상이 서서히 추상화되어 수직, 수평선으로만 표현되는 단계, 그것이 몬드리안이 추구하는 실재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다시 신조형주의에 대해 말해보기로 하자. 앞에서 몬드리안이 신조형주의를 회화만이 아니라 건축의 영역에까지 실현하려고 했다고 했다. 신조형주의가 건축의 영역에까지 확대되어 실현할 수 있었던 데에는 신조형주의 혹은 몬드리안 자신의 조형양식의 특성에도 그 가능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몬드리안이 뜻한 바는, 신조형주의는 <기계학적 추상에 기초를 둔 미의 표현수단이었으며 자연으로부터 탈피하고 인간의 정신 속에서 영감을 찾는 순수조형주의의 이론이었으며 이러한 원리 이른바 수직 수평적 리듬의 결과>였다. 바로 <수직 수평적 리듬의 결과> 이것이 건축가들에게, 디자이너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었던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한없이 자유로운 곡선과 불분명한 형태> 가 신조형주의의 조형원리였다면 디자이너는 몰라도 건축가들에게까지 영감을 줄 수 있었을까? 주지적 구성적 추상주의의 원형으로 개성을 배척하고 보편에 철저한 몬드리안의 새로운 예술관은 현대 우리들에게도 많은 것을 시사해 주고 있다. 추상적 리얼리티의 시각은 현대인의 시각의 핵심과도 유사하며, 기술적인 환경 형성에 영향을 받은 현대인의 시각뿐만 아니라, 기술적 환경이 생활을 지배하기 시작한 당시의 건축가들의 시각은 다분히 몬드리안 적인 시각과 유사했을 것이며 이런 시각의 유사성이 신조형주의가 건축 분야에까지 폭 넓게 응용되는 결과를 낳았다고 생각한다.


 
<수직 수평적 리듬의 결과>는 당연히 몬드리안의 회화에서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몬드리안의 작품은 평면상에서 직각으로 교차하는 수평과 수직이 직선 이것에 의해 구별된 장방형의 단순하고 똑같은 원색의 면과 백 혹은 이러한 선과 면색으로 구성된 화면이 적재, 명쾌한 인상을 주어 대칭을 어겨 불규칙한 구성의 긴장을 머금은 동적 균형을 유지한다. 그런데 이러한 양식은 <본래부터 -전통적 미학에서 말하는 형식미의 법칙에 의해 - 밖으로부터 규정된 것이 아니고 맥동하는 [Vital foke] 생명력을 가지고 안에서 생성한 것이다.> 라고 몬드리안은 말한다. 몬드리안은 질서 속에 위치한 보편적인 진리를 추구하기 위해 개별적 표현을 부정하고 가장 기본적인 선과 선의 관계 속에 조형적 표현을 한정시켰다. 수직수평의 직선이야말로 가장 기본적이고 일반적인 요소였고 삼원색은 현실에는 존재치 않는 비재현적 성질의 것이었다. 또는 개별적 형태는 직선 속에서 환원되며 삼원색에서 비롯된다. 몬드리안은 비례의 대비와 색의 대비가 그의 회화적 기조이다. 방형, 원, 삼각형이라는 세 개의 형 가운데서 그는 화면을 직선으로 세분한다. 그 결과 살아오는 면적의 양적인 비례는 독자의 생명을 갖는다. 또한 Doesburg는 <하나의 선, 하나의 색채, 하나의 평면보다 더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것은 없다는 것은 진리이다. 회화에 있어서는 아무 것도 읽혀질 수가 없다. 사물들은 오로지 보여질 뿐이다.>라 하였다. 즉 예술가가 연상의 모든 가능성을 배제하려면 그는 오직 정신을 완전하게 콘트롤하고 증명할 수 있는 명백하고 단순한 형태들로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러한 형태들은 기하학적으로 측정될 수 있는 형태들이다. 따라서 그림은 명백하게 규정된 평평한 평면들, 정확한 선들, 순수한 색채들만으로 구성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실제로 몬드리안은 그것을 작품에서 구체화 시켰다. 그의 작품 [Composition with red, yellow and blue]이라든가, 혹은 [Rhythm of Black Lines]같은 작품에서 쉽게 알 수 있다. 실제 대상이 있는 것을 그와 같은 형태로 환원하여, 극도로 추상화하여 그린 작품으로는 (사실 다른 작품도 그러한 대상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몬드리안이 미국으로 건너간 이후 뉴욕 시가지를 보고 그린 그림인 [Broadway Boogie Woogie]가 있다.


 
몬드리안의 화풍, 조형원리는 그의 작품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는데, 그의 화실은 가구는 수수하고 별로 놓여있는 것이 없지만, 너무도 단정하였다. 몬드리안은 벽과 가구들을 De Stijl의 원리에 따라 칠을 하였다. 벽은 수직과 수평으로 장식했으며, 바탕은 순수한 빨강, 노랑, 까만 색으로 둘러쌌다. 마루도 같은 방법을 사용했다. 부엌의 식탁은 흰색으로 칠하여져 있고, 빨강 서랍이 달려있었다. 이젤 위에 놓여있는 그림과 다른 캔버스들은 벽의 패턴과 어울리게 조심스럽게 놓여 있었다.
 
이에 비추어 보건대, 몬드리안은 신조형주의를 직품의 조형원리 뿐만 아니라 생활원리, 생활양식으로까지 확대해서 생각했던 것이 아니었던가 한다. 사실 몬드리안 자신이
 
오늘날의 개화된 사람들은 점차로 자연적인 사물로부터 탈피해가고 있고 그들의 생활은 점점 추상적으로 되어가고 있다.
 
이라고 말한 적 있다 물론 몬드리안이 이 말을 신조형주의를 생활양식으로까지 확대해서 적용한다는 뜻에서 한 것은 아니겠지만, 사람들의 생활이 자연적인 사물로부터 탈피하여 기술적인 환경 속에서 살아가게 된 것도 사실이고, 그러한 생활환경 속에서 신조형주의가 상당 부분 반영될 수 있다는 것도 사실임엔 틀림없다.


 
실제로 몬드리안은 생활양식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음악의 분야에서까지 신조형주의가 적용 가능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음악이라는, 시각적인 구체화가 되지 않는 분야에서의 신조형주의를 말하기 위하여 몬드리안은 신조형주의를 결국 인간에 대해서 까지 폭을 넓혀 말하고 있다. 자신의 글 <신조형주의 음악과 미래의 극장에 대한 그 실현>에서 몬드리안은
 
그러므로 신조형주의가 미래의 완전한 인간에 있어서 즉 육체와 정신의 균형 잡힌 2원성을 목표하기 때문에 특히 어울리는 표현이 되는 것은 그것이 가장 깊은 미적 이미지(조형)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있어서도 육체적인 것은 정신을 타파하려고 하나, 이것에 대항하여 균형 되는 것은 추상예술뿐이다. 이것과는 반대로 개별적인 것이 지배되는 개체 개별에 있어서는 형태 조형적인 것이 필요하다. (중략)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는 본래의 그대로이다. 무엇에 있어서도 모두는 새로운 정신의 순수한 표현으로 따라서 조화로 통일로 성장되어 간다. 신조형주의의 회화를 <추상적 현실적 회화>라고 부르는 것처럼, 신조형주의의 음악을 <추상적 현실적 음악>으로 이름 붙일 수도 있다. (중략) 그것은 형태 조형적이며, 음악에서도 회화에서도 가장 외적인 외관과 가장 내적인 외관을 표시해 왔다.
 
이라고 말하고 있다. 결국 신조형주의는 삶의 균형, 혹은 어떤 것이라도 균형을 이루고 본질을 지키는 것이라는 기본적 이념이라고 생각한다.


 
몬드리안은 신조형주의의 주창자로서 가장 신조형주의의 조형원리를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었던 당사자였다. 몬드리안은 그의 작품에서 회화로서의 신조형주의를 구체화시키는 것과 함께 신조형주의에 대한 그의 견해를 피력한 글들에서 신조형주의를 단지, 회화의, 혹은 건축의 디자인의 조형양식으로 국한시키는 것이 아니라 신조형주의를 삶의, 인간에 대한, 혹은 사회 전반에 대한 원리로 확대시키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몬드리안의 작품은 이지적으로 냉정한 <차가운 추상>의 대표작으로 불리우고 있지만 그 외의 신조형주의가 남긴 흔적이라던가 그 이념에 대해서는 잘 접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사실 신조형주의의 본질은 그렇게 휘황찬란한 장광설보다는 그의 작품이나 생활에서 찾아볼 수 있는 단 한 단어로 설명될 수 있다고 본다. 그것은 바로 <균형>이다. 이 단어를 빼고 신조형주의나 그의 작품에 대해서 논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한다.

영화 줄거리
내 인생에 찾아온 아릿한 도발, 우리… 사랑일까? She said…우연히 아이를 데리고 나간 놀이터에서 그를 만났다. 변호사 시험을 준비하며 아이를 돌본다는 브래드. 그의 매력적인 웃음에 살짝 마음이 떨렸다. 수영장을 다닌다는 그의 말에 빨간 수영복을 주문했다. 그리고 그와 입을 맞춘 순간, 무료했던 내 삶이 달라...
나의 평가
꽤 괜찮아요꽤 괜찮아요꽤 괜찮아요꽤 괜찮아요꽤 괜찮아요
영화 감상평
위에 좋은 말~ 촛점~ 줄거리등등 다들 좋게 썼는데
^^그냥 저도 몇자 적어봅니다.

줄거리를 보거나 예고편을 보고 영화를 선택했을때
이영화는 '불륜이군' 케이트 윈슬렛이 벗었네 +.+!
포스터를 본다.... 흠....
줄거리를 읽으면 ... 이런이런~ 아릿한 도발이구만-!
을 생각하며... 봤던 시간이

전 아깝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사랑은 일반 분륜과 다른것이 없어보였고
야한 영화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 ... 보통 드라마에 속하는... 평범함 같았습니다.

이곳에서 변태아저씨가 나오는데...
참 여운이 남았습니다...
한사람이 실수해서 누군가 고발하고 밝혀지면 범죄... 모르고 안들키고 말안하면 ... 아무도 모르는
그 범죄를 저지르면 평생의 오점으로 남으며... 바꿀려고 해도 평범한 사람보다 몇백해 힘든...
그런 누군가의 삶...

'과거는 바꿀수 없지만 미래는 다르다... 어디서 부턴가는 시작을 해야한다...'

어디서 부턴가의 시작...........

과거에 공부를 못했건... 왕따건... 가난하건... 불륜을 저질렀건...
그모든것에 대한 잘못을 바꾸고 미래를 바꾸고 싶어한다면
바꾸려는 출발점을 찾아야한다는 말처럼 들렸다.

부드러운 나래이션 목소리... 편안한 자막 해석 ... 그리고 여운...
어둠의 경로로 보시면 ... 약간 불편한 자막을 선택할수있죠 ㅎㅎ

저에겐 '리틀 칠드런'이 이런 영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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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지 얼마안된 쌍둥이

하지만 왼쪽의 아이는 몸이 약하여

작고작은 인큐베이터 안에서 혼자죽음을 맞이했습니다

 

간호사가 이를 너무 안타깝게 여겨

다른 쌍둥이를 인큐베이터안에 같이 넣었다고합니다

 

그런데 다른 쌍둥이가 죽은 쌍둥이의 어깨의 힘없이 손을올리며 안아주었다고합니다

그런데 죽은줄알았던 왼쪽쌍둥이는 맥박,심장,체온 모든게 정상으로 돌아왔다고합니다


                     -출처:다음-

플래시 드로잉 툴 중에는 사각형툴을 선택했을때 라운드를 둥글게 할수 있도록 대화상자가 있습니다.

하지만 수치를 넣기 번거롭거나, 혹은 조금이라도 더 빨리 모서리가 둥근 사각형을 만들수가 있는데요

일단 사각형툴을 선택하고 적당한 크기로 사각형을 그린후에 마우스를 떼지 마시고,
화살표의 위아래키를 눌러봅니다.

그럼 사각형 혹은 모서리가 둥근 사각형이 만들어집니다.

 

 

출처:http://cafe.naver.com/carmerit/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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