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AV/HD사진 게시글" 에 아르둥이님의 시스템에 벽지랑~

인조해파리가 참인상깊었습니다. ㅎㅎ 멋있구요.

벽지도 참 특이해서 함 지식인을 뒤져봤습니다.

인조해파리둥 그래서 사진 몇장 올려봅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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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벽지- (네온)인디고라고하네요.


(폭 106Cm x 길이 750Cm)

가격선...약 25,800원이네욤...

 

ㅡㅡ;;; 가격은 좀 더 많이 비교하시길...

(광고가 아니므로 링크는 걸지않겠습니다.ㅎㅎ)

 

구성 - (실크벽지) 네온 인디고 (폭 106Cm x 길이 750Cm) - 8㎡

          일반 가정집 바닥부터 천장까지 도배하시는 기준으로 가로벽 3m 10cm정도 도배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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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해파리는 전지현네 집에도 설치되어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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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FULL-HDTV & 디지털플레이
글쓴이 : HD동경™ 원글보기
메모 :

http://www.magmypic.com/upload

 

방법-사진업로드후 기다리면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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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글이구요. 원본은 아래를 찾아가세요

 

[작은 아이디어가 세상을 바꿉니다]님의 방
http://danwha-idea.tistory.com/302

 

 

 

펀드는 위험한 것이다

 


안녕하세요.


3년쯤 전만해도 펀드가 막 유행하기 시작할 무렵,
펀드 가입을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펀드가 무서운 것으로 알았다.


그래서 가급적 안정적이고 원금 손실이 적은 것으로 골랐고
가장 많이 선택한 것이 채권형과 혼합형이었다.
주식형은 가입하면서 망설이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원금 보존이 안된다고 하면 발걸음을 돌리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후 시장이 상승하면서
고수익이 발생하고,
펀드가 더욱 유행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채권형을 기피하기 시작했다.
혼합형도 찬밥이었다.
이제는 주식형만 펀드인 것으로 착각한다.
원금 보존인지 아닌지 신경 쓰지도 않는다.
손실을 볼 수 있다고 해도 설마? 하며 한쪽 귀로 흘린다.
2-3년 새 완전히 투자 패턴이 바뀐 것이다.


얼마전 인사이트 펀드를 출시했을 때
고위험 고수익을 외치며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들고보니 고위험 펀드가 아니라서 실망이라는 사람들이 많다.
고위험이 아니어서라기보단 고수익이 아니어서 일 것이다.
인사이트 자체는 운용 능력만 뒷받쳐 준다면 대단히 좋은 펀드임에도
사람들은 고수익 추구가 아니라서 실망이라고 한다.


위험하거나 말거나
고수익의 가능성이 보이는 펀드로 사람들은 몰려간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다.


수익이 큰 펀드는 이유가 있다.
때로는 고수익이지만 때로는 고위험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고위험이란 단어를 뇌리에서 삭제한다.
그들의 머리에는 고수익만 남아 있다.


 

가끔, 게시판에서
피같은 돈을 펀드에 투자하려 합니다.
이런 글을 본다.


솔직히 피같은 돈은 펀드에 투자하면 안된다.
펀드에 투자하는 돈은 반드시 여윳돈이어야 하고
잃어도 좋을 돈이면 더더욱 좋다.
그런 유리함이 궁극적으로 수익을 키운다.
(펀드를 잘 골라서가 아니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대부분 멀리 한다.


최근 몇 년간 처럼
재테크가 그리 쉬운 것이라면 부자가 안될 사람이 누가 있을까.
점차 전 세계를 휩쓴 유동성의 광기가 사라져 가고 있다.
아마 내년 하반기가 되면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 시작될 확률이 높다.


이럴 때 일수록
정석투자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아야 할 때이다.
왜 긴 기간을 가져가야 하는지,
왜 타이밍 투자가 불리한지,
왜 적절히 분산을 해야 하는지 말이다.


펀드는 손실이 날 수 있는 상품임을,
역사적으로 보면 우리나라에선 적어도 90%가 손실이 낫고
미국에서도 장기투자라면서도 70%의 사람들이 손실이 났던 상품임을
명심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손실을 보는 것은 개인이다.
펀드에 투자한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개인이 시장의 꼭지를 만들기 때문이다.
이것은 불변의 진리다.


오늘 나온 뉴스를 보더라도
펀드의 단기투자가 심각하다고 한다.
올해 들어서는 1년을 지속하는 펀드가입자가 드물다고 하니
더더욱 문제다.


 

개인은 자주 이익을 본다.
최근의 경우처럼.
그러나 그동안 얼마의 이익을 벌었든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마지막에 다 날리기 때문이다.


개인이 돈을 벌면
자동차를 산다거나 (그나마 집을 사는 경우엔 좀 낫다) 하여
그 돈을 소비한다.
또는 번돈을 갖고 잠시 떠났다가 금방 다시 돌아온다.
고수익의 달콤한 맛을 잊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언젠가 한번은 나락으로 떨어진다.
그리고 모든 것을 잃는다.


진정한 승자는
대세상승기에 많이 버는 사람이 아니라
하락기에 깨지지 않는 사람이다.
긴 세월을 지나보면 그 차이가 얼마나 큰지 역사는 증명해주고 있다.

펀드로 돈벌기에서 수정이네님 최근 글

글쓴이: ComAniA 님

비쥬얼이 강한 디자인---

http://superlover.com.au 이 사람껏도 연구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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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10월 9일 한글날이다.

자국의 언어와 그 논리, 무엇보다도 서체의 아름다움이 탄생한 것을

축하하고 우리의 역사 속에 베어있는 언어의 향기를 즐기는 날이기도 하다.

 

한글에 대하여 어떤 소재를 가지고 접근할까를 고민하다가

최근 유럽에서 한글 서체를 패션에 응용하여 세계에 알리고 있는 패션 디자이너

이상봉의 작품들을 소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상봉의 올봄 2007년 S/S 패션의 테마는 한글이었다.

그는 한글 서체의 미학과 아름다움에 중독되어 있는 패션 디자이너다.

그의 작업은 이제 유럽에도 알려져서 이번 프르미에르비종(세계 최고의 원단시장)에서

유럽의 디자이너들이 한글의 재발견이란 테마 하에 그의 아이디어를 빌린 다양한 디자인을 선보이기도 했다.

 

패션이란 것이 내 영혼의 거푸집인 신체를 감싸는 최종의 외피로서

우리를 드러내는 기능을 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국적 불명의 다양한 외국어가 부분별하게 프린트된

옷들을 입고, 그 속에서 식민화된 풍경의 백성으로 살아온 것도 사실이다.

 

 

서양미술사에서도 자신의 언어와 그 서체를 이용한

다양한 상상력을 선보여왔다. 미술사에서 이러한 노력들은 흔히 서체예술, 캘리그라피란

이름으로 캔버스 위에 구현되었다. 목적과 용도, 미적인 풍모를 위한 다양한 형태의 서체를

개발하는데 게을리 하지 않았던 것도 바로 이러한 언어 서체의 미적인 잠재력을 초기부터 잘 간파했기 때문이다.

 

 

2006년 파리에서 선보인 이상봉 디자이너의 작품들, 한국에서는

한글, 달빛위를 걷다란 제목으로 정식으로 미술관에서 전시를 갖기도 했다.

 

내가 이상봉의 작업에 주목하는 이유는 바로 그가 한국적인 소재를 세계화에

성공했다는 식의 견해에 의한 것은 아니다. 바로 그것은 이제서야, 우리를 둘러싼 한글이란 체계

그 랑그의 힘을 넘어, 서체라고 하는 개인의 개성과 각자의 내밀한 품성이 녹아내린, 파롤(Parole)의 체계로서

서체에 대해 눈을 뜨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 언어를 사용하되

사용하는 사람의 특징에 따라, 그가 살아온 배경과 삶의 풍경에 따라, 그 빛깔과 색조와

취향에 따라 한획 한획 새롭게 창조되는 그 언어의 무궁한 가능성을 발견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우리 내 시골마을, 대청마루를 스쳐 지나가는 달빛을 본 적이 있다.

그 예전, 마루를 비껴가는 달빛을 아무리 쓸어내어도 대지에 반사된 그 거대한 달빛을

쓸어낼 수 없는 것은, 바로 그것이야말로 거대한 뿌리로서 우리를 구성하는 힘이기 때문이다.

언어와 그를 캔버스에 그려내고, 혹은 패션을 위한 소재 위에 그려내는 작업도

바로 이러한 우리를 구성하는 작업의 일환이다.

 

이상봉의 말처럼, 한글이 달빛위를 걷는 다는 것은

그가 디자인한 외피들, 패션 디자인 작품 하나하나에 그 거대한 달빛을 녹여내고 있다는 말이 된다.

 

 

유구하나 녹슬지 않고

유장하며 긴급하지 않고, 우리 내 영혼의 볼우물을 가득 메워온

풍성한 우리들의 상상력, 그 원천인 한글을 과연 우리는 얼마나 사랑하고 껴안아 왔는지

반성하지 않을수 없었다. 난 이상봉의 작업을 볼때마다 그래서 죄책감이 느껴지면서

한편으로 또 고마움을 느끼는 것이다.

 

 

섬세하고 낭만적인 달빛을 녹여낸듯한 우리들의 서체

개별 언어 하나하나가 일종의 그래픽으로, 또한 기하학적 문양으로

동양의 호사스러움을 토해내는 우리의 한글 서체.

 

이러한 서체들이 프린팅된 텍스타일들을 볼때마다

마치 그 위에서 달빛이 미끄러내릴 것만 같다는 환상에 빠지곤 한다.

 

 

신체의 곡선미를 감싸고 도는 바디 컨셔스

그 위를 살포시 안고 도는 우리 내 한글의 우아함이 모델이 입고 있는

쉬폰 소재의 드레스 위에서 마치 춤을 추는 것 같다.

 

 

배흘림 기둥의 곡선미와 마치 한지 위에 물을 머금고

번져가는 수묵의 여백이, 각자 물성을 유지하면서 땅의 힘에 굴복하듯

그렇게 미끄러져 가는 소재의 우아함, 드레이프(주름처리)는 동양이 가진 매력으로

서양의 텅빈 영성을 메울수 있다는 가능성을 말해주는 듯 해서 기운이 벅차 오른다......

 

사진 속 모델이 입고 있는 옷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 내 대지의

가르마길, 그 봉싯봉싯 곱단하게 그어진 시골길의 정취가 현대적인 모습으로 태어나는 것 같다.

땅의 단순함을 얼르고 도는 화려한 여인의 소품, 비녀의 재발견.

 

입어보고 싶다. 그리고 걷고 싶다. 달빛 어린 가을 하늘 아래

한글이 총총 걸음으로 내 안에 들어오는 그 환희를 느끼고 싶다.

 

 

 

 

출처 : 김홍기의 문화의 제국
글쓴이 : 김홍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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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특별전 백남준 비디오 광시곡 (Rhapsody in Video)

  

 

▲ 백남준 비디오 광시곡 특별 전시

 

 

백남준 비디오 광시곡”은 한국방송 80년을 기념하는 백남준 특별전이자 작가의 죽음을 애도하며 바치는 헌정 추모전으로 마련되었다. 광시곡이라는 전시 제목이 시사하듯, 이번 전시는 장엄한 스펙터클과 시적 환상을 과시하는 1990년대 멀티모니터 작품들로 구성된다. 10미터 길이에 166개의 모니터가 달린 전자 <거북>(1993)을 비롯해 30여점의 중대형 출품작들이 500여개의 모니터로부터 동시다발적이고 변화무쌍한 영상들을 송출하며 환상적이고 영웅적인 비디오광시곡을 연주한다.

 

백남준의 광시곡은 내용적으로도 민족적 대서시로서의 광시곡 미학을 공유한다. 즉 코스모폴리탄 작가로서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면서도 결코 모국과의 정신적 끈을 놓지 않았던 그의 작업에서 발견되는 한국정서와 동양사상의 뿌리가 광시곡 유추를 정당화시킨다는 것이다. 나아가 이 음악적 제목은 비디오아트라는 새 장르를 개척하기 이전 쉔베르크에 심취하고 다수의 전위적 행위음악을 작곡, 연주했던 청년 백남준의 음악적 배경을 암시하기도 한다. 또한 狂詩를 光時라는 언어적 ‘펀’으로 대치시킬 때 빛과 시간의 예술이라는 비디오아트의 장르적 의미가 강조되기도 한다.

 

1990년대 멀티모니터 작품들과 함께 이번 전시의 중요한 개념적 축을 이루는 또 하나의 작품군이 1984년 <굿모닝 미스터 오웰>로 시작해서 1986년<바이바이 키플링>과 1988년 <손에 손잡고>로 완결되는 위성삼부작이다. 이는 텔레비전 방송, 비디오아트, 퍼포먼스가 결합되고, 예술과 유흥, 미술과 음악과 스포츠가 혼재하는 멀티미디어 축전이 위성을 통해 전 세계로 중계된 역사적인 방송 프로젝트였다. 이 세계적 방송 프로젝트에 KBS가 중요 스테이션으로 참여함으로써 백남준과 KBS의 공식 인연이 맺어지는데, 이런 맥락에서 KBS가 80주년 기념행사로 백남준을 초대한 것은 일면 당연하면서도 뜻 깊은 일이다.

 

 

 

▲ 백남준 비디오 광시곡 중 거북

 

 

거북은 토끼와 함께 백남준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상징적 모티프이다. 토끼가 유라시안 기마 민족의 역동성과 생존력을 상징한다면 거북은 한국인에게 장수, 불사, 다산을 표상하는 대표적인 전설적 동물로 민족적 함의를 갖는다. 그러나 주제적 내용보다 일차적으로 관객을 압도하는 것은 10미터 길이의 거북이라는 스케일상의 과대함이다. 관객은 거북이라는 친밀한 주제를 과장된 크기로 재현한 낯설음으로 인해 친숙하면서도 기이한 엇갈리는 감흥을 경험하며 환상의 세계로 진입한다. 166개의 모니터로 거북을 재현한 이 비디오 조각은 자연과 기술, 동양정신과 서양문물의 결합이라는 백남준 특유의 미학을 반영하는 대표작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작가가 이미 세상을 떠난 지금 장수 거북을 주제화한 이 기념비적 작품에서 거북의 민속적 의미와 함께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라는 경구를 되새기게 된다.

 

 

 

 ▲ 백남준 비디오 광시곡 중 비디오벽

 

 

94개의 TV모니터들로 이루어진 가로 9.6미터, 세로 3.3미터의 거대한 비디오 벽체가 모차르트, 존 케이지, 레이비드 브라운, 요셉 보이스 등의 영상을 송출한다. 백남준의 비디오 벽은 수많은 동영상 이미지로 구성된 움직이는 벽화로, 미시적이면서도 거시적인 동영상의 조합과 분열이 프랙탈적 장관으로 관객에게 새로운 지각경험을 제공한다. 그가 장담하였듯, 캔버스 그림을 대치할 것이라는 브라운관 예술이 키네틱 벽화를 통해 그 효과를 만개시킨다.

 

 


▲ 백남준 비디오 광시곡 중 TV침대

 

 

엔틱 베드에 18개 TV모니터를 이용한 는 1972년 원작을 1991년에 재제작한 작품이다. 자신의 에로티카 파트너 샤롯 무어맨의 휴식을 위해 만든 비디오 조각이자 무어맨이 누워서 TV첼로를 연주하도록 만든 퍼포먼스 작품이기도 하다. 침대라는 모티프가 제시하듯이, 작가는 일상과 예술을 접목하는 삶의 예술의 철학 속에서 에로티즘, 섹슈얼리티와 같은 인간 보편적인 주제를 다룬다. 그의 에로티즘은 새롭고 대담한 방식으로 관객에게 충격을 가함으로써 소통성을 증폭시킨다는 점에서 형식적 특성과 미학적 의미를 갖는다.

 

 

 

▲ 백남준 비디오 광시곡 중 해왕성

 

 

<태양>, <수성>, <목성> 등 행성 연작 중 하나로 명왕성을 주제로 한 작품은 우주의 역동적 에너지를 가시화하듯 만다라 원형상으로 만들어져 있다. 16개의 모니터에서 분출되는 우주적 이미지를 통해 별들과 별들의 소통을 참여TV의 최종목표로 설정한 작가의 “일렉트로닉 수퍼하이웨이”의 메시지를 이해할 수 있다.  

 

 

 
▲ 백남준 비디오 광시곡 중 인플럭스 하우스

 

 

1993년 52대의 텔레비전 수상기로 제작한 비디오 건축이자 미디어 전당. 뉴욕 도심지 타임스퀘어로부터 교외의 가정에 이르기 까지 공적이고 사적인 영역 모두에서 엄청나게 공세하는 미디어의 습격을 고발하는 동시에 정보 사회의 미래적 삶에 대한 비전을 제시한다. 1950년대 초기 라디오와 텔레비전 수상기로 플럭서스 활동의 맥락에서 제작한 <홈 엔터테인먼트 센터>(Home Entertainment Centers)에 기반한 작품으로 모니터를 통해서 플럭서스 퍼포먼스 이미지들이 다채롭게 편집되어 나온다. 레이저 디스크의 뒷면을 이용해 만든 무지개빛의 반짝거리는 지붕이 백남준의 재치 있는 조형감각을 엿보게 한다.

 

 


▲ 백남준 비디오 광시곡 중 TV튤립

 

 

멀티모니터 동영상을 컴퓨터 출력 이미지로 대치시킨 2차원적 비디오 벽면 작품이다. 3차원적 사물을 2차원으로 재현한다는 변치않는 미술의 화두를 비디오 언어로 풀이하듯, A4 크기의 100개의 튤립 출력이미지와 동영상을 병치시키고 있다. 동시에 [TV정원(TV Garden)](1974), [물고기가 하늘을 날다(Fish Flies on Sky)](1975) 등과 마찬가지로 식물, 꽃과 같은 자연적 모티프를 사용함으로써 비디오 기술을 인간화 하려는 작가의 인간주의와 자연주의 감성이 돋보인다.

 

 

 

▲ 백남준 비디오 광시곡 중 비디오 스쿠터

 

 

스쿠터를 의인화한 <비디오 스쿠터>는 실제 스쿠터와 20개의 TV를 결합하여 만든 비디오 조각으로 바닥에 놓인 TV화면에서는 도로 이미지가 송출된다. 산수탉과 실물 오토바이를 무대 위에 등장시킴으로써 생음악을 연주했던 초기 행위음악의 비디오 버전이라고 볼 수 있는 이 작품에서 전자음악을 전자비전으로 확장시킨 백남준 비디오의 태동 배경을 감지할 수 있다. 

 

 

 

 

▲ 백남준 비디와 광시곡 중 자화상

 

 

1950년대에 만들어진 텔레비전 브라운관 속에는 백남준과 인연 깊은 오브제들이 하나 가득 들어있다. 하나씩 꼼꼼히 살펴보자. 한 가운데에 백남준의 얼굴을 청동으로 떠낸 마스크가 있고, 그 얼굴은 TV안경을 쓰고 있다. 불상과 자석, 피아노, 껍질을 벗겨낸 비디오테이프, 시계, 그리고 '혁명'이란 단어도 강하게 와 닿는다. 자신이 애용했던 다양한 오브제들을 무차별적으로 쏟아 부은 방식은 백남준의 비빔밥 정신과 닮아있다. 동시에 온갖 일상의 소도구들이 담긴 이 작품은 이동할 때면 한 장의 보자기 속에 사물을 모두 쓸어 넣는 한민족의 보자기 정신과도 통한다.

 

출처 : KBS 특별전 백남준 비디오 광시곡

 

 

롤러 曰 :

비디오아트의 창시자이자 매체미술의 대가 백남준.

싱거운 인생을 조금 더 짭짤하고, 재밌게 만드는게 예술 활동을 하는 목적이라던

그의 자유분방한 어록이 생각난다.

 

옳거니! 백남준 비디오 광시곡 전시회 놓치면 후회할지도.

뜨거운 여름에 시작한 전시회는 12월 30일을 끝으로 막을 내린다.

막상 크리스마스가 되면 할일이 없거나, 작년처럼 잔잔하게 보낼 심산이라면

고독을 즐길 겸 혼자 백남준 비디오 광시곡에 찾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터.

 

날 얼떨떨하게 만들 준비가 되어 있다는 백남준의 한마디, 기대하겠어!!!!!!!

출처 : R.U.Ready to PLaY
글쓴이 : 롤러 원글보기
메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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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수를 위해 내민 이지선(29)씨의 손. 엄지를 빼고 손가락의 끝 마디들은 모두 절단돼 뭉툭했다. 얼굴뿐만 아니라 옷으로 가려진 그 작은 몸의 안쪽까지 화상 자국은 선명했다. 웃는지 찡그리는지, 표정은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다.

늦가을 미국 보스턴의 호텔 숙소에서 그녀의 실물을 나는 마주하고 있었다. 그녀는 2004년 유학 와 현재 보스턴대학에서 석사 과정(재활상담)에 재학중이다. 이제 말문을 열어야 할 때였다.

“혹시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연극 같은 것을 하고 있는 걸까요?”

그녀가 반문했다.

“정말 그런 의문까지 드세요?”

화상으로 얼굴이 일그러진 꽃 같은 여대생을 이해하기 어려웠고, 그런데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 ‘지선아 사랑해’라는 글을 쓰는 그녀를, 독자들을 그 ‘밝음’으로 열광시키는 그녀를, 나보다는 한참 나이가 어린 그녀를 이해하기 어려웠고, TV의 공익광고에 출연해‘희망을 응원합니다’라며 보스턴의 강변을 따라 자전거를 모는 그녀를, 나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오욕칠정(五欲七情)을 가진 인간으로는 그럴 수 없었다.

“일부러 그렇게까지 연극이 되나요? TV에서 제 얘기를 ‘인간극장’으로 찍을 때(2003년), 제작팀에서 ‘콘티’를 짜왔어요. 제목이 ‘울지마 지선아’였어요. 저나 우리 식구들이 겉으로는 밝은 체하지만, 실제는 남몰래 슬픔으로 지새우는 줄로 알았나 봐요. 그렇게 ‘신파’ 쪽으로 생각을 하고 오셨는데, 도통 안 우니까 나중에는 제목도 바꾸고 다 바꿨어요. 지금은 많이 회복돼서 웬만한 생활을 하고 있지만, 옛날에 진짜 아팠을 때도 종일 침울했을 때도, 늘 감사하고 기쁜 것을 찾았던 것 같아요.”

―그 상황에서 무슨 기쁘고 감사할 게 있나요?

“안 그러면 살 수 없었으니까요. 죽는 것보다 사는 것이 훨씬 어려워요. 포기하는 게 더 쉽죠. 그만 죽는 쪽을 선택하는 것이 훨씬 더 쉬운 상황이었죠. 그래도 사는 것이 더 가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죽을 가능성이 훨씬 높았지만, 사는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었지요.”

―살고 싶다는 의욕도 거울을 보면 번번이 좌절되지 않았나요?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듯, 정말 이 얼굴로 어떻게 살아요? 그러니 감사하고 기뻐할 것을 찾아야지, 만약 감상(感傷)과 우울한 기분에 빠지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밖에는 답이 없어요. 그래서 거울을 보면 ‘이 얼굴로 어떻게 살아’가 아니고, 솔직히 믿을지 모르겠지만, ‘나름대로 꽤 귀엽다’ 이런 생각하면서 살았어요. 이 얼굴을 내 걸로 그냥 받아들였던 거죠.”

2000년 7월, 도서관에서 공부를 마치고 오빠와 함께 귀가하는 길이었다. 그녀가 탄 차는 신호선에 멈췄다. 그때 음주운전자의 차가 뒤에서 들이받았다. 그녀는 잠깐 정신을 잃었고, 차는 폭발했다. 짧은 순간이 운명을 바꾼다. 그녀는 전신 55%의 3도 화상을 입었다.


―사고 난 뒤 처음 거울을 봤을 때는요?

“병원에서 7개월쯤 누워있는 동안, 눈 코 입만 내놓고 얼굴은 붕대로 칭칭 감겨있었지요. 얼굴에는 피부가 없었죠. 안경을 쓸 수가 없었고. 그러니 무얼 볼 수 없었죠. 피부 이식을 받고 집으로 퇴원해, 식탁에서 숟가락에 비친 내 얼굴, 노래 제목을 보려고 한 CD판에 비친 내 얼굴, 밤 유리창에 쓱 비친 내 모습, 정말 내가 외계인같이 느껴졌어요. 그때 ‘난 아무것도 본 게 없어’라며 머릿속으로 내 모습을 지우려 했지요.

한번은 TV를 보다가 혼자 재미있어 웃다가, 내가 더 이상 이런 것을 아무 생각 없이 재미있어 하는 시절이 지났고, 영화 같은 사랑 이야기에 가슴 아파할 수도 없고, 난 더 이상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고, 나는 전혀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어요.”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고 가족에게 신경질을 부렸나요?

“결국은 저 혼자만의 싸움이었죠. 내가 짊어져야 할 짐이고. 엄마 아빠의 짐에다가 내 마음의 짐까지 더 얹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저로 인해 분위기가 심각해지는 것이 싫었어요. 사람들이 나를 걱정하고, 그렇게 걱정한다고 상황이 나아지지도 않고, 오히려 저도 같이 우울해지니까. 저는 계속 농담하고 다른 사람들을 일부러 놀리고 웃고 그랬어요.

되돌아 생각하면 저는 제 모습을 못 보지만, 가족과 친구들은 제 ‘무서운’ 얼굴을 보고 있잖아요. 너무나 심각한 상황에 제가 아무리 농담을 한다고 해도 별로 웃기지 않았을 텐데, 이분들은 예전의 나로 그냥 그렇게 대해주셨어요. 여전히 사랑받고 있는 존재라는 사실이 제가 저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해준 것 같아요.”

―집안에서 사랑을 많이 받았던 모양이죠?

“저는 막내고 작고 귀여웠죠.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어요. 그 사건 후 오빠가 굉장히 힘들었어요. 사고 현장에 같이 있었고, 오빠가 저를 구해냈는데, 제가 계속 아프니까, 차라리 불타는 차에서 안 구해냈던 게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했던 것 같아요. 그래도 서로 위로하고 응원하면서 살았던 것 같아요.”

―지선씨가 알려진 것은 인터넷 홈페이지에 글을 올리면서였는데, 왜 글을 쓰게 됐죠?

“저를 보고 걱정하는 것이 싫었어요. 심각한 상황이라는 것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제 마음까지 걱정할까봐. ‘이 말은 물어봐도 되나? 궁금하지만 여기까지 건드려도 되나?’ 이런 생각들을 하지만, 제게 물어보는 데 한계가 있잖아요. 그래서 저 자신을 먼저 열어놓고 싶었어요. 여기까지는, 이 마음까지는, 내가 정리가 돼서 열어놓을 수 있다, 지금 수술 상황은 이렇게 됐고, 간혹 침울해질 때도 있고, 그걸 또 추스르는 마음도 있다, 일기처럼 썼어요. 그 내용이 현재진행형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더 관심을 가졌던 것 같아요.”

―그런 마당에 남 걱정할 여유가 있었습니까?

“제 상황은 50인데, 사람들이 지레짐작으로 ‘쟤는 100쯤 될 거야’라면, 이는 정말 쓸데없는 걱정이잖아요. 그 걱정을 한다고 내가 달라지는 것도 아닌데. 그런 게 싫었어요. ‘쟤는 항상 밤마다 울 거야’ ‘쟤는 지금 우리와 농담하고 있지만 혼자 있을 때는 분명히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할 거야’, 이런 생각을 주는 게 싫었어요. 그게 아닌데.”

―자신의 상황을 뭐 별거 아니라는 식으로 말하지만, 실제로는 심각했잖아요?

“감정의 과잉이 싫었어요. 내게 생긴 일들을 부인하지도 부정하지도 않고, 과장하지도 과소평가 하지도 않고, 그냥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지요, 얼굴은 이만큼 남아있고…. 그렇게 받아들이는 데는, 어떤 막연한 믿음이 아주 컸어요.”

―막연한 믿음이라면?

“당초 제 손가락이 모두 절단될 줄은 몰랐어요. 그전까지 붕대에 감긴 오른손을 전혀 쓸 수가 없었어요. 손가락이 끝까지 다 있었지만, 전혀 움직여지지 않는 거예요. 모양만 있으면 뭐하나 싶어, 수술을 받고 손가락이 짧아지더라도 움직일 수는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어요. 또 내가 이 손을 부끄러워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어요.

다음 날 수술실에 들어갈 때까지 오른손가락만 자르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양손을 다 해야 되는 것이었어요. 정상이라면 거의 패닉 상태일 수밖에 없잖아요. 오른손을 마지노선이라고 생각했는데, 왼손도 잘라야 한다…. 막 울고 싶은 마음이 아니라, 상황이 더 나빠질 수도 있었다는 것을 떠올렸어요.”
―그건 체념의 힘인가요?

“앞으로 더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를 버린 적이 없으니, 체념은 아니에요. 당시 수술실에 들어가면서 ‘오빠가 나를 좀 더 늦게 구했다면 팔 전체를 다 잃을 수도 있는데, 여기까지만 자르는 것도 감사하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엄마께 ‘더 많이 자르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말했거든요. 모르겠어요. 원래 성격이 낙천적인가 보다, 사람들은 그렇게 얘기하세요. 하지만 이게 정말 낙천적인 것으로만 되는 거 같지는 않아요.”

―가해자인 상대방 음주운전자에 대해 원망했겠지요?

“혹시 합의해달라고 그 가족들이 찾아올 줄 알았는데 안 왔대요. ‘혹시 오면 내가 용서해주고 싶다고 말해달라’고 그렇게 얘기를 했었어요. 그냥 그 말이 나왔어요. 나중에 그분 가족들이 오지 않은 것을 굉장히 감사했어요.

나를 이렇게 만든 가해자가 있다, 이런 생각에 분노가 들끓고 누군가를 미워하지 않아도 됐으니. 가해자 존재 자체를 그냥 잊고 살았어요. 본 적도 없고 이름도 모르고. 굳이 알려고 하면 알 수 있었겠지만. 그냥 말로 용서하고 그렇게 생각했던 것대로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원두커피를 끓여와 그녀 앞에 놓았다. 그러면서 “내가 지선씨라면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가해자를 눈으로는 안 봤지만 그래도 원망이 없다면, 이는 보통 인간의 마음이 아니다. 내가 이해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그녀는 화상 입은 두 손으로 커피잔을 만지작거렸다.

“이 고통 안에 가해자까지 들어올 자리가 없었던 것 같아요. 고통이 너무 커서 가해자를 미워할 생각까지 할 수 없었어요. 어쩌면 그 사람에 비해 내가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지금 아프고 불편하지만 가족의 사랑을 받고 있으니, 감옥에 갇힌 그 사람보다는 더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솔직히 나빠지려면 얼마든지 더 나빠질 수 있잖아요. 그래서 감사하다고 생각했어요.”

―이렇게 살아있는 것 자체가 정말 감사할 일입니까?

“내 인생은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며 살다가, 정말 아무것도 아님을 알게됐죠. 아마 내가 죽었으면 오빠도 못 살았을 거예요. 그러면 엄마 아빠는 어떡해. 그런 생각 끝에는, 내 고통은 분명 끝날 것이라는 믿음이 있죠. 화상은 죽는 데서 시작했으니 점점 좋아질 일밖에 안 남았다, 그래서 감사했던 것 같아요.”

15시간의 비행으로 지친 탓도 있었고, 극도의 피로감으로 이날은 여기서 작별했다. 다음 날 그녀는 빨간 셔츠와 청바지 차림에 목도리를 두르고 나왔다. 옅은 화장품 냄새도 났다.

―예뻐 보이고 멋있어 보이고 싶은 욕망은 그대로죠?

“제가 예뻐 보이는 것을 좋아하고, 또 관심이 많았어요. 그러나 사고 난 뒤로는 예전처럼 옷을 입지 못했어요.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를 거는 것처럼 너무 안 어울려요. 항상 큰 바지에 큰 셔츠를 입고 다녔어요. 그때는 똑바로 서있지도 못했어요. 척추에 압박이 오니 고개도 못 들었고, 눈도 다 안 감기고 항상 건조했어요. 사진을 찍어도, 나는 웃고 있는데 표정은 화가 난 듯했어요. 몸 상태가 점점 좋아지면서, 재작년부터는 ‘다시 화장해도 괜찮구나’‘치마 입어도 괜찮구나’생각했어요.”

―어떤 사람들은 외모보다 내면이 더 중요하다는데 정말일까요?

“누구나 제일 먼저 눈에 보이는 것부터 인식하니까요. 그런 풍조를 따라가면 저는 계속 절망일 수밖에 없죠. 다치면서 크게 깨달았다면, 눈에 보이는 것은 언제든지 없어지고 썩는다는 거죠. 그동안 내가 없어질 것을 향해서 열심히 달리고 있었던 것을 몰랐어요.”


―그런데 사람들은 지선씨의 얼굴을 보면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병원에 통원치료를 받을 때 한 아이가 저를 보고 ‘괴물’이라고 했어요. 너무 충격이어서 정말 영화의 한 장면처럼 온 세상이 정지한 듯하고, 귓가에는 계속 그 소리만 들렸어요. 겨우 어린애의 말이었는데도. 제가 대학에서 유아교육을 전공했어요. 이런 아이들의 선생님이 될 수도 있는 내 아이덴티티(정체성)가 어느 날 ‘괴물’로 되었다니. 서러워 울면서 많이 기도했던 것 같아요. 또 할머니나 아줌마들이 ‘젊은 여자가 쯧쯧쯧쯧’ 혀를 차는 것도 싫어요. 내가 그렇게 동정받을 만큼 불행한가, 나는 그렇게까지는 불행하지 않은데.”

―어떤 말을 들을 때 가장 마음이 아파요?

“지금도 가끔 그런 이메일을 받는데, ‘나 같으면 못 살았을 거다. 자살했을 것 같다. 그런데 당신은 살아서 참 대단하다’라는 식의 말 입니다. 마치 내가 굉장히 독해 살아있는 것처럼. 물론 그분들은 저의 삶에 대한 용기를 칭찬해주려고 하는 말이었지만, 굉장히 슬프더라고요. 또 저 자신의 이름 앞에 따라붙는 ‘화상 환자’라는 수식어도 그래요.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이제는 지겹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화려하지도 좋지도 않은 수식어가 계속 붙는 것이. 제가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고 박사가 돼도, 그 수식어가 평생 따라다니겠죠.”

―대학교 4학년 때 사고가 났으니, 그때 사귀는 남자가 없었나요?

“별로 연애를 오래했던 적도 없었고. 그 당시에 만약 있었다면 얘기가 복잡해졌을 텐데. 이제는 나이가 이렇게 되도록 심각한 연애를 못 해봤다는 것이 창피하지만. 그때는 짠할 만큼 연애를 했던 사람이 없던 게 오히려 감사하더라고요.”

―그전에도 말끝마다 ‘감사 감사’했습니까?

“안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런데 ‘감사하다’고 말하고 생각하는 것이 참 좋아요. 감사할수록 제 삶이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뒤돌아 보지 않게 되고. 그렇게 한들 제가 그때로 돌아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 상황을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거든요.”

―사고를 당하지 않았더라면 어떤 삶을 살았을까요?

“유치원 선생님이 됐든지 회사를 다녔든지, 사고 나기 전 대학원 준비를 하고 있었으니까 공부를 좀 더 하다가 회사를 다녔든지, 아마 친구들처럼 평범하게 살았겠죠. 그런 삶을 못 사는 것에 대해 속상하고 아쉬운 마음이 있었어요. 한번은 백화점에 앉아있는데 제 나이 또래의 사람들이 아기를 데리고 쇼핑하는 걸 보면서, ‘난 못 하겠구나. 나는 저런 삶은 못 가지겠구나’라고 생각했어요. ”

―지금도 그런가요?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이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을 안 해요. 내가 지금껏 소망했던 일들이 차근차근 이루어졌던 것처럼, 이것도 소망하고 있으니까. 때가 되면 좋은 사람 만나고 결혼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는 시내로 나와 베트남국수와 새우튀김을 함께 먹었다. 음식점은 붐볐는데, 아무도 화상 입은 그녀의 마음 행로(行路)를 알지 못했을 것이다. 헤어지면서 물었다.

―살면서 무엇에 가장 가치를 두나요?

“생명이오. 감히 내가 그 사람을 다 모르면서, ‘나 같으면 죽었을 텐데’라고 쉽게 말하는 식으로, 생명이 결정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저도 어떤 사람들을 보고서‘아, 저러고도 어떻게 사나’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어요. 하지만 그 사람도 그 나름대로의 삶이 있고, 그 사람 안의 생명은 정말 그 사람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건데. 그 사람 안에 생명이 있다면, 그 자체가 의미가 있는 거잖아요. 우리가 판단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이지선은  

이대 4학년 때 전신 화상… 보스턴大 재활상담 전공 중 

그녀는 이화여대 4년 때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 그녀의 표현을 옮기면 “병실에서 언제 끝이 날지 모르는 싸움을 시작한 나는 더 이상 이지선이 아니라 ‘BURN(화상)’으로 불렸다. 여덟 개 손가락의 절단으로 지문도 없어져 나만의 고유성을 보여줄 지문도 잃었다”고 했다.

그동안 20여 차례의 수술을 받았다. 지금도 방학 중에는 재건 성형수술을 받는다. 그녀는 자신의 솔직한 얘기를 인터넷에 올려 화제가 됐고, 그 뒤 ‘지선아 사랑해’(2003)라는 제목의 책은 베스트셀러가 됐다. 그해 TV의 ‘인간극장’에도 소개됐다.

그녀는 미국 보스턴대에서 석사과정에 있고 박사 과정을 계속 밟을 계획이다. 보스턴대학과 온누리교회에서 주는 장학금, 인세 등으로 유학 생활을 하고 있다. 그녀는 재활상담을 전공하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가족들이 힘을 합쳐줬고, 교회에서 정신적으로 지지를 받아, 나는 이겨낼 수 있었다. 정말 너무나 큰 힘이었다. 이런 지원이 없는 환자들은 몇 배나 더 힘들 것이다. 병원에 있으면서, 언제 나갈지도 모르지만 이런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결국은 여기까지 왔다.”

그녀의 아버지는 사고 당시 공무원이었고, 불길에 휩싸인 동생을 구하다가 팔에 화상을 입었던 오빠는 결혼해 증권회사에 다니고 있다.

예전에 박진영이 usb목걸이를 하고 다닌다고해서 생각나서 찾아본 제품이지만... 썩 맘에드는 디자인은 아직 안나온것같다...

 

 

[세빗 2007][CeBIT2007 디자인세상]

Transcend, 목걸이 같은 USB메모리 'JetFlash V90'

 

HANNOVER, Germany (AVING Special Report on 'CeBIT 2007') -- Transcend는 주얼리 컨셉으로 디자인한 USB메모리 'JetFlash V90'를 세빗(CeBIT) 2007에서 선보였다.

All Visual Internet News of Goods
최민 기자aving.net

 

 

 

 
남,여성용 목걸이로 제격인 USB메모리 샤이닝

 

 

 

 

 

[Mini Review] 이어폰과 USB가 보석을 입었다

 

검은 색과 흰 색 일색이던 IT기기가 보석과 만나 화려한 개성을 찾았다. 스와로브스키의 크리스탈이 메탈 재질과 어울려 사이버틱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느낌을 잘 살려준다. 필립스가 선보인 '액티브 크리스탈' 제품들은 IT기기라기보다는 하나의 액세서리처럼 보이기도 한다. 독특한 스타일을 원하는 신세대 여성이라면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한 번 눈독들여 볼 만하다.

스와로브스키의 크리스탈이 리시버 뒷면에 박힌 '아마존' 이어폰은 착용하면 큼지막한 크리스탈이 마치 귀걸이처럼 귀에서 반짝인다. 실버 메탈릭 비즈로 장식된 이어폰 선은 목걸이가 드리워진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한 쪽 끝에는 고리가 있어 MP3 플레이어를 달고 다닐 수 있도록 했다.

 

디자인도 예쁘지만 성능도 결코 그에 뒤지지 않는다. 필립스의 이어폰답게 풍부하고 깊은 음량을 자랑한다. 착용감도 좋아 깊숙이 들어가도 귀가 다치지 않도록 실리콘 재질의 마개가 귀를 보호해 준다. 이어폰을 쓰지 않을 때는 가방에 집어 넣을 필요 없이 목걸이처럼 걸고 다닐 수 있어 편리하다.

USB는 전면에 스와로브스키의 크고 작은 보석들이 촘촘히 박혀 있어 보고 있으면 눈이 부실 정도. 메탈 재질의 몸체와 보석들이 반사하는 빛이 어우러져 고급스러운 느낌을 준다. 조금만 더 크기가 작고 가벼웠다면 목걸이에 꿰어서 걸고 다닐 수 있을 정도다. 다만 손에 쥐었을 때 묵직한 느낌이 들고, 손목에 하중이 느껴질 정도라 목에 걸고 다니기에는 부담스럽다. 노트북을 자주 사용하는 직장여성들이 사용하기에 좋은 아이템이다.

비밀번호 보호기능이 있으며, 용량은 1GB가량으로, 다소 적은 편이다. 용량이 2GB 정도로 넉넉했다면 좋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생긴다. 대략 250곡의 MP3 파일과 1천여개의 JPEG 사진을 보관할 수 있다. 대용량 동영상이 대세가 되어 가는 최근의 추세에 따라 용량을 산정할 때 동영상을 기준으로 했어도 좋을 뻔 했다.

이어폰은 10만원대, 메모리 USB는 20만원대다. 비싼 편이지만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탈을 박아넣은 IT기기를 소유할 수 있는 기회는 그만큼 매력적이다.


 

 

판매처...

http://www.swarovski.com/is-bin/INTERSHOP.enfinity/WFS/SCO-Web_CA-Site/en_US/-/CAD/SW_DisplayProductInformation-Start?ProductSKU=909821&CategoryName=010306&ProductPage=0
세상에서 가장 귀한 공주님, 왕자님이 사는 곳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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